"저희가 여태까지는 그냥 착한 학생들이었어요. - 오마이뉴스 기사-

Walking 2011. 10. 20. 22:41


자세히 읽어보고 싶은데 기사 옆의 광고짤이 너무 토 나와서 기사 통째로 퍼왔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41313


5달동안 대학생 4명 자살...대체 무슨 일?
'최고은 후배'들의 잔인한 가을 계속된다
[대학잔혹사②] 추계예술대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11.10.19 12:53 ㅣ최종 업데이트 11.10.19 15:45 홍현진 (hong698)



 
추계예대, 예술대, 최고은, 한예종, 부실대학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 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지난 1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했던 유망한 32살의 예술인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가 집 주인 문 앞에 써 붙인 메모는 예술인의 열악한 현실을 대변했고, 곧 여야는 물론이고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나서서 '예술인 복지법' 통과를 촉구했다.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들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로부터 9개월여가 지난 10월. '최고은의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예술대학생들은 '잔인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는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부실대학'에 지정되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다섯 달 사이 무려 4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야가 함께 발의했던 예술인 복지법은 법제사법위 논의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 유보된 상태다.
 
[추계예술대학] '부실대학' 선정 한 달... '모래알' 같은 예술대생들
 

'연어구이 페스티벌'이 열리는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추계예술대학교(이하 추계예대) 캠퍼스는 한산했다. 학교 정문 앞에 붙어있는 '추계 지금 야단났어'라는 발랄한 문구의 포스터가 무색했다.
 
'연어구이 페스티벌'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월 5일 추계예대를 '부실대학'으로 선정하자 이에 반발한 추계예대 졸업생들이 준비한 축제. '집나간 연어(졸업생)들도 돌아오게 만드는 교과부'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캠퍼스 곳곳에는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운동장에 있는 농구대 앞에는 교과부 장관 명의로 '청년인력의 정신에 획일적 사회구조와 무관한 이념을 심어준 불순함이 인정되어 철거를 결정한다'는 내용의 '퇴출공고'가 붙어 있었다. 교과부가 취업률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순수예술대학'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정한 것을 비꼰 것이다. 
 
'집나간 연어'들은 돌아왔지만 정작 재학생들은 조용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뿔난 추계인들(뿔추)'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의 수. 판화과 4학년 이현정씨에 따르면 현재 15명 정도가 '뿔추'에 속해 있고, 이 가운데 언제든 활동 가능한 학생은 5~6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추계예대생은 1200명이다. 이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술가들이 원래 좀 모래알 같아요. 자기 성향이 강하고 활동이 개별활동이다 보니까 .이 와중에도 '내 살길이 더 힘들어졌구나. 내 그림 더 열심히 그려야지. 학교가 내 인생 책임져줄 것도 아니고 내가 잘 되자'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지 한 달, 대학 본부 측은 '전국 1위'였던 등록금을 2012년부터 10% 인하하고, 재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은 2학기부터 15% 늘리기로 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추계예대는 2014년까지 장학금 확충과 전임교원 확보 등 직접 교육비로 8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씨를 비롯한 '뿔추'들은 이러한 자구책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예술대를 '취업률'로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한 달간 '뿔추'들은 '예술대 평가기준 수정'을 요구하면서 서울역, 광화문, 인사동 등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모은 서명지는 9월 30일 현재 2300여 장. 목표치는 1만 장이다. 이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순수예술이 뭔지, 실용예술, 응용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그런 무지한 사람들이 교과부에 앉아서 대학구조조정을 하고 있어요. 지금 다른 학교들 보면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순수예술학과가 사라지고 있어요. 순수예술학과가 학교 점수를 깎아먹는 골칫거리가 된 거죠.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순수예술학과가 다 없어질지도 몰라요."
 
또 다른 '뿔추' 이가은(서양화과 4)씨 역시 "정부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예술을 쓸모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예술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보고 있기에…"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 선배의 직설 "먹고 살려면 그림 그리지 마세요"
 

  ▲ 추계예술대 재학생 이현정씨가 서울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뿔난 추계인들
 추계예술대
물론, '순수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현정씨는 그래서 더욱더 '직장보험 가입여부'로 자신들을 평가하는 정부가 야속하다.
 
"좋아하지만, 섣부르게 선택할 수 없는 게 이 길이에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도 아니고 적게 벌어서도 아니고 먹고 못 살까 봐 못해요. 내 밥은 내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88만 원 세대, 88만원 세대'하지만 88만 원도 못 벌까 봐 못해요. 제 동생이 홍대 미대를 나왔는데 한 달 실수령금이 100만 원도 안 돼요. 2년차 됐는데 연봉이 1500만 원도 안 돼요.
 
그런데 저는 4학년이 되어서야 '그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으니까 3년만 해보자. 3년은 어떻게든 해보자고 결심을 했는데, 그걸 힘들게 결심하게 만드는 이 나라가, 그런 꿈을 펼치기 무섭고 두렵게 만든 것도 부족해서, 괴롭히지나 말라는 거예요.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감, 프라이드로 사는데 그것마저 짓밟으니까… 100원 한 장 보태준 것 없으면서 이제는 부실이라고 수치, 모욕감까지 주니까…."
 
이날 오후 4시 30분께 추계예대에서는 '졸업 후 진로와 미술현장'이라는 제목의 '특강'이 진행됐다. 추계예대 출신인 홍경한 미술평론가(월간 <퍼블릭 아트> 편집장)는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전했다.
 
"여러분들, 취업 목적으로 대학 온 거 아니잖아요. 그냥 그림이 좋아서 온 거 아니에요? 반 고흐가 되려고, 박수근이 되려고. 그런데 살아생전 반 고흐, 박수근은 안 원하더라고요. 앤디 워홀을 원하지. 여러분, 먹고 살려면 작가하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한 해 여러분 같은 예술전공하시는 분들 3만 명 정도가 배출돼요. 그림, 처음에는 많이 그려요. 그런데 나중에는 손가락에 꼽아요. 왜? 돈 때문에. 생활고 때문에. 물감, 요즘 비싸요. 하나에 3~4만 원씩 해요. 그런데 예술가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는 너무 빤해요. 그림 파는 게 목돈이 돼요. 그런데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으면 그림 안 사요.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럼 뭘로 살아야 하나. 하나밖에 없어요. 자존감. 굶어죽어도 마음은 지켜야 해요. 그러니까 먹고 살려면 그림 그리지 마세요."
 
홍 평론가의 '충고'에 강의실에 있던 30여 명의 학생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쉬쉬하는 사이 재발, 삼발"... 다섯 달 새 4명 자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에서는 '교수협의회' 주최로 학내 현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논의된 '학내 현안'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두 명의 학생은 미술원 2학년, 또 다른 두 명의 학생은 각각 영상원 3학년, 4학년이었다고 한다. 앞서 지난 6일 한예종 캠퍼스에서는 세상을 떠난 네 명의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한예종 캠퍼스 곳곳에는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명의의 추도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 5월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한예종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숨진 2명의 학생이 속해 있는 영상원의 전규찬 교수는 "첫 사건이 저희 학과에서 있었을 때 주변의 고통과 불편에 움찔하면서 말을 아꼈고 결국 사건은 재발, 삼발, 사발했다"고 개탄했다.
 
윤상정 총학생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많은 기자분들이 개별적인 이유를 궁금해하시는데, 개별적인 이유는 개별적인 이유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애도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학생들의 학생회 차원에서 비상대책회의를 한 결과,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공통적인 고민이 있는 것 같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예술을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나'라는 고민이 있다. 굉장한 경쟁구도 안에서 서로가 좁을 문을 뚫으려다 보니까 '내가 하는 작업이 과연 예술이 맞는 건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드는 거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예술이라는 게 A라는 인풋(Input)을 넣는다고 B라는 아웃풋(Output)이 나오는 게 아닌데 정부나 학교는 당장 콩쿨 수상 실적을 요구한다.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거기에서 생기는 열패감이 있다."
 
윤 회장은 '추계예대 사태'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추계예대 사태만 보더라도 정부에서 예술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하는 것은 예술가를 노동자로 본다는 거다. 연초에 최고은 선배의 죽음으로 인해 예술인 복지법이 환기됐지만, 결국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물건너 간 상황이다. 예술인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 복지법을 시행할 수 없다는 거다. 이는 모순된다. 문화예술을 보는 척박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개인 작업에만 몰두... 경쟁만 하고 서로에게 무관심"
 

  ▲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예술계열 대학생들이 2009년 6월 서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말할 권리를 막아 나선데 이어 문화예술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문화예술을 정권의 도구화하려 하고 있다"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자료사진).
ⓒ 이경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어 윤 회장은 '감사사태' 이후 이러한 '성과주의'가 더욱 더 강화됐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예전에는 학교에 대안학교적인 성격이 있었다. 모여서 파티하거나 서로 작업 보여주고 비평하는 시간 갖거나.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다 개인 작업에만 몰두하게 됐다. 그러면서 경쟁만 하고 서로에게 무관심해진 것 같다. 감사사태 이후 학교가 경직화됐다."
 
지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예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실시한 후 통섭교육 중지, 이론과 축소·폐지 등과 함께 교수징계를 요구했다. 이에 황지우 당시 총장은 "한예종 감사는 진보성향 문화예술 인사에 대한 전형적인 표적감사"라며 유인촌 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한예종에는 뉴라이트 성향의 박종원 총장이 취임했다. 당시 교수직까지 박탈당했던 황 전 총장은 '총장직에서 물러났어도 교수직은 유지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번 학기에 교수로 복귀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황 교수는 "귀국 후 잇따른 제자들의 자살소식을 듣고 전임총장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콩쿨 같은 경우 매우 근소한 차이로 어떤 자는 1등이 되고 어떤 자는 2등이 되는데 그 작은 차이 때문에 2등은 전적으로 무시되는 예술교육은 구 교수법이다. 학생들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러한 교육으로부터 온 측면이 있다. 공유창의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법이 교수들 차원에서 마련되고 실시돼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는 교수 10여 명, 학생 10여 명만이 참석했다. 최근 '한예종 사태'에 대한 외부의 관심에 비해, 낮은 참가율이었다. 발언을 신청한 한 학생은 "적어도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이 회의에 참석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교수님들이 정말로 학생들의 죽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최고은' 그 후] 10월 20일, 추계예대생 600명 모일까?
 
2학기 들어 처음으로 대규모 반값등록금 촛불이 켜졌던 지난 9월 29일. 예술계열대학생 100여 명도 집회에 참석했다. 촛불을 들고, 팻말을 든 일반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들은 '눈' 그림이 그려진 풍선 수백 개를 엮어 하늘 높이 들었다. '지켜본다'는 의미의 풍선들이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한예종, 추계예대, 이화여대의 합작품이었다.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지 한 달 여. 이현정씨는 '학내 연대'를 꿈꾸고 있다. 오는 10월 20일 추계예대에서는 1974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학생총회가 열린다. 추계예대생 1200명 가운데 절반인 600명 이상이 모여야 37년 만의 학생총회가 성사될 수 있다. 이씨에게 '학생총회'는 예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찾는 과정이다. 
 
"저희가 여태까지는 그냥 착한 학생들이었어요. 학교가 (돈) 내라는 만큼 내고, 학교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그런데 이제는 이 일을 통해 학생들의 권리를 되찾는 것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싸움이 길어지려면 학생들이 지치면 안 되잖아요. 우리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향후 움직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같이 의견을 모을 수 있도록 총회를 열었으면 해요. 그래서 교과부에게 공식사과 받아내고 평가기준 수정하는 거죠. 진정한 학교 홍보는 교과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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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사망

Walking 2011. 10. 20. 22:35

저는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타인을 도륙하던 자가 죽었다. 그도 탁 치면 억 하고 죽는 사람이었다니. 뚫으면 뚫리는 과녁이었다니. 저렇게 악과 광기로 똘똘 뭉친 게 정녕코 사람이었다니... 순간 허무하고, 내가 왜 허무함을 느끼는 건지 황당하다. 
독재자라는 게 참 대단하긴 하다. 사실상 나는 그의 호령 한 번 들어본 적이 없고 그가 고혈을 짜낸 나라가 정확히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만리타국의 소시민인 나마저 그를 '인간 외'의 대열에 집어 넣게 하다니 말야. 그게 인간 이상이냐 인간 이하냐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뻘한 생각인데, 가면 갈수록 현재 대세를 이루는 진영과 적대하는 악은 패배하는 순간 저를 드라마적으로 연출할 여유도 없어지고 있구나 싶음. 어느 순간부터 패배자들의 말로는 정말 초라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어렴풋. 

아무튼 다행이다. 신이 인간을 죽게 만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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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웃기는 건데

Walking 2011. 10. 18. 11:46

죽는 게 무서운 주제에 죽고 싶어한다는 게 가능하다. 예전 내 상태가 그랬다. 지금은 그 반대. 죽는 게 무섭지는 않은데 절대 죽기 싫다. 왜 죽어. 살아야지. 이렇게 좋은데. 

그러니까 주저주저하지 말자. 죽는 게 안 겁나는데 무서울 게 뭐 있냐고. 어차피 아무리 안되어봤자 죽기 밖에 더 하겠어.  그리고 지금까지 뭘 죽을 만큼 한 적도 없잖아.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항상 어설프게 하니까 아프기만 하고 까무러치기까지도 못 간 거 아냐. 불평은 죽을 만큼 한 다음 하자. 살아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 불평과 고려는 구분하고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더라도 눈먼 무소의 뿔이 되는 건 곤란하긔 - 
숨 쉬는 게 너무 좋다. 


역시 한자와 동양 고전 공부를 좀 해야겠다.  불교 교리도. 지금 나한테 굉장히 필요한 것 같다. 무의식에 축적되어 있는 적당히 한국적인 그 어떤 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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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Walking 2011. 10. 14. 10:37

- 여러가지 미숙한 부분이 있는데도 일단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 모자란 건 수정하면 되지만 애초에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어 의미가 없다구 ㅇㅇ

- 하지만 이번에도 시간에 쫓겨 중반부부터 텐션이 맛이 가기 시작한 건 문제. 그러다보니 뒤쪽으로 갈수록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도 모르게 되고, 결말부 힘이 딸림. 환상적인 결말이냐 아니냐랑은 상관없는 문제.

- 어휘, 캐릭터 보강, 특히 캐릭터 별 말투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음. 이 것 역시 좀 더 시간을 두고 파들어가면서 만들어야 할 문제. 쓰는데 걸린 시간이 적은 건 아니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고 이틀동안 거의 집중을 하지 못했다. 현실도피. 그러다보니 체감상으로는 급하게 몰아쓰는데 실제 진도는 매우 느리게 진행됨. 이건 고질병이다. 글 퀄리티를 올리고 싶으면 이 버릇 확실히 고쳐야 함. 이젠 더 이상 급하다고 하루에 여덟장 아홉장 쓸 수 있는 몸도 아님. 다음 번에는 확실히 이 버릇 고치고 이 전 결과물과 비교해 보자.

- 고쳐야 할 것: 집중도 올리기. 시간 낭비 줄이기.  8장 이상 작업은 최소 마감 일주일 전부터 시작할 것. 써나가면서 변경된다고 해도 일단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정리해 둘 것. 사건얼개에 대한 스케치를 좀 더 뚜렷하게 한 다음 덧칠 하기. 

- 이래 저래 게으름을 피우다보니 영어 공부를 한동안 못 했다. 역시 작심삼일 좀 벗어나려고 하면 작심오일 형식으로 끊어지고 있음. 일단은 다음 주 스터디 + 대여한 장편 관련 자료부터 먼저 살펴야 할 듯. 하지만 내일부터는 알바 가는 날 아침에도 문제집은 풀어야겠다. 아. 그리고 저번에 산 문법 문제집도. 

- 비가 또 샌다. 벽이 예쁘게 젖었다.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니 다행히 더 이상 물이 고이진 않는다. 책상 아래에는 고여 있을 것 같지만 어차피 거기에는 손도 닿지 않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그나마 책장의 책들을 다 빼놔서 다행이다. 빈 책장에 가방이며 바닥의 책들을 긴급 대피시키고 한숨 돌리긔. 제발 여기서 더 새지 말길.  

- 스터디 용 책 읽기. 근대 문학의 종언 읽기. 좀 일찍 나가서 소모임 글 읽고 합평 준비. 소모임. 오늘은 되도록 뒷풀이 참가해볼까 싶지만 이건 비 새는 거 상태 봐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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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왔다

Walking 2011. 10. 10. 22:14

아홉살 때의 나는 알았을까? 이후의 내 삶이 제가 과제로 낸 동화처럼 될 거라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긴다. 나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주인공 은행나뭇잎이 얼마나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나뭇잎이었는지, 구름과 햇살과 바람이 그 나뭇잎을 어떻게 아꼈는지, 나뭇잎이 노란 나비를 발견했을 때의 경탄, 맹목적인 동경, 조바심, 누렇게 말라 죽은 나무를 보고 어떻게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지, 그렇게 말라 죽기 직전 상태에 들어갔을 때 둘러본 주변이 어떠했는지. 

그걸 써내려갈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기억한다. 나비와의 만남과 마른 나무를 보고 흉내내는 부분을 쓸 때는 이게 혹시 외모 콤플렉스 이야기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뭇잎이 말라 죽은 나무를 흉내내는 건 예뻐지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손이 아프고 기운도 빠져서 퍽 맥없이 끝내버렸다. '나뭇잎이 거의 다 말라죽어가는 상태에서 되살아나는 게 가능한가?' 하고 나름 개연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3학년때도, 4학년때도 연말 자유과제에는 그 이야기를 써냈다. 다른 이야기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지간히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대략 18년 쯤 지나 돌아보니 내가 정말 그 이야기대로 살고 있는 거다. 조바심에 눈이 멀어 다른 나뭇잎들이 물들 때까지 눈감고 귀막은 채 말라비틀어져 가다가 극적으로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다시 자라기 시작한 나뭇잎. 지난 약 10년이 딱 그런 식이더라.  

난 지금 그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이르렀고, 거기서 다시 아홉살 때로 돌아왔다. 아홉살이 좀 심하다면 한 열두세살 쯤, 아무튼 10년 이상 전인 건 확실하다. 아직 세상의 색색깔이 살아있고, 내 감정과 감각이 연결되어 있던 때. 나는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하루 하루 내가 그때의 나와 겹쳐지고, 그때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가는 게 느껴진다.  매일 행복해서 막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정말 행복하다. 이야기가 귓가에서 근질근질거리고 머리에서 팍 팍 튀어오르고 가슴에서 부글부글 끓고 진짜 행복해 죽겠다. 지나간 10년 중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심신 양면 모두. 이젠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고, 평생 뭘 상대해야 할지 안다. 그리고 아마 난 평생 그걸 할 거다. 평생 한 가지 일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무엇을 하든 결국 내가 하고 있는 건 그것일 거다. 내가 공부를 하든,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대여점 아르바이트를 하든, 신문을 돌리든, 껌을 팔든, 설령 평생 침대에만 누워 있더라도 의식이 있는 한 그걸 할 거다. 그리고 의식을 잃더라도 계속 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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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일기

Walking 2011. 10. 3. 07:34


- 벌써 10월 3일이다. 언빌리버블!
비록 휴학생인데다 아르바이트는 주말에 하지만 그래도 월요일 휴일은 좋은 거다. 일단 집안 공기가 훨씬 평화로움. 화장실과 부엌에서 전투가 일어나지 않는다.

- 공사를 하긴 할 모양이다.  여름 내내 그렇게 고생해놓고 10월에 들어서서야 할 듯 하다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어쩌랴. 돈이 없는 걸. 

- 요즘의 저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예 1: 잘 안 되지만 되도록 집중해서 책 읽기.
  -> 2: 아침에는 되도록 밥을 먹는다. 밥을. 밥을 먹는 거다. 과일러쉬나 뻥튀기러쉬가 아니라 밥! 밥량 100g+풀 반찬 많이 = 하면 어지간한 다이어트 과자 비슷한 열량이 나온다. 어차피 그 열량이 그 열량이면 과자 한 봉지 먹느니 제대로 된 한 끼가 좋잖아.
  -> 3: 자꾸 윗배 아랫배 운동 호흡연습 중에 잠들어버리긴 하지만 아침에 운동하기 - 밥 먹고 바로 자지 않으려는 노력 
  -> 4: 중간에 깨더라도 되도록 도로 잠들어본다. 물 한 잔 마시고 누워서 심호흡하고 있다 보면 어찌어찌 다시 한 두시간 정도는 더 잘 수 있다. 더 자고 나면 아침 먹고도 잠이 덜 온다. 당연한 얘기지만...ㄱ-; 
 -> 5: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글 구상 중. 
 -> 6: 아직 이것 저것 막 쑤셔보고는 있지만 어쨌든 근대 쪽부터 문학 공부.
         전공자 주제에 연구할 게 안 보인다고 투덜대다니 한심한 소리다. 근사한 주제거리를 찾는 게 아니라 관심분야를 파고 들었어야지. 현상이 있는 한 어떤 시각에서든 파들어갈 건 있어. 물론 그게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연구거리가 될 수 있느냐는 별개 문제지만...'ㅠ' 
 -> 7: 중딩 레벨부터지만 영어 공부 합니다 ㅇㅇ 하루 2~3시간 정도씩. 문제집 좀 풀고 독해 좀만 하면 2~3시간 지나 있더라.;; 아니 왜 시간 없어요. 요새 이런 수준은 초딩이나 유딩 쯤 되는 거 같지만 어쩌리 내 뇌가 영어를 잊은 것을..... 사실 공부하다보니 영어보다 한자가 더 급한 거 같아서 한자 공부도 조만간 시작할 예정.



- 또 토끼꿈을 꿨다. 갈색의 큼지막한 토끼였다. 이번엔 집 안 우리가 아닌 바깥 산비탈에 매여 있었고, 굶주리지도 않았다. 밥그릇도 차 있었고, 날 향해 애교도 떨었다.-그 애교 중에 똥 싸기가 끼어 있었다는 게 웃김. 아니 왜 똥 싸요... 라고 해도 토끼는 똥도 귀엽습니다. 동글동글해서. 지옥같은 건 오줌이지.. - 좀 지저분하긴 했지만 건강했다. 그리고 난 이제 토끼를 떠나야 했던 것 같다. 얘가 날 좋아하는구나, 하고는 동행하고 있던 사람-누구인지는 모르겠음. 아마 아롬이었지 싶음-과 산비탈을 내려갔다. 10월 1일에 꾼 꿈이었다. 달 첫째날부터 그런 꿈을 꾸니 기분이 좋았다. 특히 저번에 우리 안에 있지만 굶지 않은 토끼 꿈을 꾼 후, 다음 번 꿈 꿀 때는 얘가 바깥에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꿈대로 되는 게 아니라 바라는대로 꿔졌어! 우와앙! 

다음 번에는 토끼가 풀어져 있으면 좋겠다. 온 산 온 들이 다 토끼 거였으면 좋겠다. 신나게 뛰어다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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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환 코드야 뻔하지.

Walking 2011. 9. 28. 02:57

이제는 내가 무엇이 될지, 무엇이 되지 못할지 겁나지 않는다. 내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증명해야 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자격심사같은 건 무의미했던 거다. 모자라고 채워나가고 부족에 허덕이는 지금의 나, 여기 서 있는 내가 나다. 뭔가를 완성해야 하고 자라야 하고 진짜 내가 아니라고 허덕일 필요가 없다. 이렇고 저렇고 그런 이 모든 게 나다. 변하고 있는 게 나다. 나는 여기 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하든. 어떤 일을 겪든. 아무도 날 해칠 수 없다. 이미 내가 존재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줌 티끌이든 손톱 끝만하든, 내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모를 수도 있고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지울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도 나에 대해 완벽하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다. 나는 날아오른다. 전진하고, 비약하고, 추락하고, 후퇴하고, 춤추고, 헤엄치고, 뛰고 긴다. 그 모든 게 나다. 내가 무언가를 중도에 그만두게 된다 하더라도 그건 그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지 내가 멈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말의 목표

- 집중력을 기른다.
- 영어, 한자 실력을 실질적으로 올린다. 
- 전에 없던 취미를 하나 이상 만들어 본다.-되도록 뭔가를 만드는 걸 해보는 게 좋겠다.
- 많이 읽는다.
- 쓰고 싶은 게 생각나면 무조건 쓴다.
- 지금 이 감각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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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읽는 책들

Walking 2011. 9. 21. 20:27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소세키), 보트 위의 세 남자(제롬), 장편소설과 민중언어(바흐친), 소설의 이론(루카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가라타니 고진), 파문(이명원), 한국문학과 그 적들(조영일) 까뮈 단편(까뮈), 런던통신(러셀), 로마제국쇠망사 1(기번),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진즈부르그), 뉴욕 3부작(폴 오스터), 어스시 1, 2(르귄), 바람부족연대기(케말), 종의 기원(다윈), 파브르 곤충기(파브르), 파우스트 박사(토마스 만),  아르미안의 네 딸들(신일숙), 달의 아이(시미즈 레이코), 나츠메 우인장(미도리카와 유키), 시티헌터(츠카사 호조), 3월의 라이온(우미노 치카), 셜록(권교정), 씨엘(임주연) ...

8월 말부터 읽어온 걸 장르 구분 없이 나열하니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요새는 자꾸 19세기 말~20세기 중반(대략 2차대전 직전쯤. 책을 집게 된다. 단순 여흥 거리로 읽는 것도 있고 필요해서 읽는 것도 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작가 나이대가 좀 엇비슷하다 아무래도 지난 10년 간 부실했던 독서를 보충하려다 보니 일단 근대 코너부터 돌게 되는 듯. 에코가 한 얘기던가? 책이란 결국 다른 책에 대한 인용이라서, 이 책에 나온 얘기를 이해하려면 그 전 대 책을 안 읽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 이런 걸 잃어버린 10년 복구라고 하는 거다. 지난 10년간 마음대로 못했던 전국구 심즈를 해먹는 걸 일컫는 게 아니라. 

어제는 대략 얼떨떨했다. 두서없이 써내려가다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블록 촉감이 떠올랐다. 누워서 벽지 잔물결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던 게 떠올랐다. 정말, 숟가락 젓가락 한 짝 씩만 있어도 언제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순간 그 감각이 되살아났는데, 그때부터 내 자신이 감당이 안 됐다. 쓰고 있던 포스팅을 제대로 정돈할 수 없을 만큼 먹먹했다. 눈을 가린 손 틈에서 눈물이 찍찍 터져나왔다. 꼭 수도꼭지를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어제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가 그렇게 ... 음. 대체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건 너무 어렵다. 그렇게 눈물을 찍찍 뿜어내며 울게 만든 게 구체적으로 도대체 뭘까. 슬픈 것도 같고 아픈 것도 같았는데 당황스럽게도 슬프고 아플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대체 뭐가 슬프지? 그냥 어렸을 때 놀던 기억을 떠올린 것뿐인데? 그런데 그 블록 촉감이, 어린 애 한 주먹 안에 빠듯하게 들어오던 육면체 귀퉁이가, 그게 너무 뻑뻑하고 먹먹했다. 그걸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 때문인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정작 그 블록을 갖고 노는 어린 시절의 나는 즐겁게 놀고 있는데 그 감각을 퍼올린 나는 울게 되고 울고 싶었다. 어. 그래. 그러니까 울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울 일이 뭐란 말인가? 


운 일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수차례 해줬던 말들을 어제 좀 체감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건 다 다른 차원이고, 나 같은 벽창호 고집쟁이는 결국 세 번째 단계가 되지 않으면 1, 2단계를 언제든 씹어 버리더라. 어. 벽창호. 나 벽창호 맞더라.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귀 막고 눈 감아 내 편견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어. 그러니까 열등감. 그 말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분부터 머릿 속 둑이 무너진 것 같아. 지금까지 계속 난 못 들었어 못 봤어 없는 걸로 칠래 하고 담벼락 너머에 쌓아둔 것들이 와르르 벽 너머로 쏟아진 것 같아. 그래. 어제는 그것 때문에 쇼크 상태에 빠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음.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 내면의 문제 대개는 아마 자존자애감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많이 걸려 있을 거다. 내 문제도 결국은 그거였고. 날 사랑할 수가 없다는 건데. 여기저기서 자신을 아낄 줄 모른다, 자존감이 너무 떨어진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지만 나로서는 도대체 그게 어쨌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진짜 쓰다 보니 몰려오는 중이함에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정말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뭐 어떤 감각인건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나의 '스스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언제나 사후약방문일 수 밖에 없었다. 그야 행동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문제를 인정하지 못하니까. 내가 보는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 난 의식적으로 자해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골치 아픈 문제 잡고 늘어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둥글게 둥글게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내 생각같지가 않았다는 거. 무의식으로 내 발에 쇠고랑을 채워놓은 채 불붙인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다든가, 스스로 일을 골치 아프게 꼬아놓고는 오로지 고집 하나로 골머리를 썩히길 잘한다든가, 네 네 응 응 하면서도 사실은 한 치도 양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아주 아주 최근에야 알았다. 외부의 내가 '네 네, 응 응' 하는 것도 사실은 내부의 나의 자학, 내부의 나의 고집(난 내 주장따위 할 자격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거였어. 게다가 내부의 나는 궁극적으로 지금 처한 상황을 흘려 넘기고 '못난 나-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를 유지하려고만 하지 남이 좋게 말해주든 따끔하게 찌르든 그걸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었던 거야. 아......................OTL
'남에게 숙여주는 사람, 맞춰주는 사람, 뭘 하든 잘해봤자 B급인 사람, 제 의견은 분명 남들의 의견보다 보잘 것 없을 테니까 남의 말을 듣는 게 나은 사람'이 컨셉이어서 그렇게 한거지 정말로 숙인 게 아니었던 거다. 그게 남에 대한 이해든, 존중이든, 수용이든, 굴복이든 어떤 의미에서라도...... 어머니...OTL

자체 점검범위가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 느끼기로는 결국 문제는 스스로가 그리는 자신을 바꾸지 않고서는 해결 안 날 거 같더라. 내가 날 좋아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 '나는 이런 것도 못 하고 저런 것도 못 하고 그런 것도 못하고 아무튼 못 하는 것 천지라서 좋아할 가치가 없다'라는 것도 다 핑계다. 내가 만든 '못난 나'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두른 장갑같은 거, 내가 내 스스로에 찌뿌린 오물같은 거란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주변 모두에게 미안하단 말을 안할 수가 없다. 그냥 툭 던진 말이든 진심을 담아 전해준 말이든, 지금까지 난 '자신을 아껴라'는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 왜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고.; 그나마 나아진 수준의 사고라는 게 '내가 안 그러면 남들이 피곤하니까.'였다니. 아 이건 진짜 ... 어떠케 이러케 이기적일 수가 있지?  ... 이건 그냥 아...아오 혈압이............. 아놔... 뭐야 이건... 진짜 이러고 잘도 스물일곱해를 살았군?... 대단한데?........ 어이 없어...; 

 여러분이 해준 말을 그렇게 낭비해버리고는 또 힘들다고 징징대서 미안합니다.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준 호의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가족들. 1n년 지기들. 멤버 여러분. 학부시절 친구들. 대학원 동기들. 그외 지금은 거의 연 끊고 있지만 한때 얼마간이라도 나랑 긴 대화를 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나랑 어떻게 엮이고 어떻게 헤어졌든 정말 미안해요.




이건 그냥... 아놔... ... .... 아 왜 스물일곱 처먹어야 깨닫는 거예요. 어뜨케 이러케 스스로를 모를 수가 이써!
 ....근데 정말 그렇게 살아왔던 게 나란 인간인거지. ... 어 진짜 우리존재 파이팅이다... 빵상빵상...  

새삼스레 날 상담한 상담선생이 참... 상담선생이 했을 고생이...안타깝다. 오죽하면 방학기간에 진행했다고는 해도 남들 두 배나 붙들고 있어줬겠어. 슨상님 고생 많아써혀... 게다가 가장 열받는 건 이 내담자가 도대체 진척을 안 보인다는 거지.... 이건 뭐... 어떻게 이렇게 밀랍의 소라껍질을 만들고 그 안만 빙빙 돌 수가 있냐? 지겹지도 않더냐?.... 


...내가 요 몇달간 뭐 대단한 거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책 좀 읽고 단전호흡 좀 하고 거울 속의 나 좀 둘여다 본 것 뿐인데... 아니 진짜 좌향좌 한번만 했어도 답이 뻔히 있었는데... 그걸 내버려두고 아 왜 난 계속 이 모양이에요? 이러고 있었으니... 지가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하고 있으면서 왜 이러냐고 그러면 남들이 뭐라고 그래?....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만. 왜 내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건지는 몰랐어. 어. 내가 날 싫어한다? 정이 없다는 건 알았는데 그래서 왜 정이 없는지, 그게 뭐가 문제인건지는 몰랐던 거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거지. 왜냐! 정이 없으니까! 음허하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엄마ㅠㅠㅠㅠ어우후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엄마가 스물일곱해 동안 병신을 먹여 살렸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말투가 상당히 감정적인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 속에서 감격의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은 굉장히 조용하다. 지금 알게 된 건 내가 사랑할만한,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축하할 만한 소식이 아니다. 내가 정말 존중할만한 구석이 없는, 버러지같은, 앞으로도 엄마 말 마따나 남의 똥구멍이나 쫓아다닐 인간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계속 '어떤 틀'에 맞춰 스스로를 설명하려 했었고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걸 안거다. 그것도 그냥 이미지의 하나인 거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거. 그런 이미지를 누구에게서 따오고 어떤 갈등에 의해 강화시켰는지, 나와 내 성장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날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었다는 걸' 알게 된 것 뿐이다. 그리고 이 말을 죽 치면서, 사실 이미 모두가 나한테 해주고 있었던 말이었다는 걸 깨달으니 부끄러워서 손발이 막 오그라든다.
왜 한국 말을 못 알아 들었던 겁니까. 으아아... 왜 국문관데 한국말 못 해요... 지금까지 잘도 지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구나.; 






--------------------------- 위와는 별개 이야기

나는 사람이 좋다. 사람들이 살려고 하는 자잘하고 구질구질한 행동들 하나 하나가 너무 사랑스럽다. 생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급한 놈들(얄팍한 정신에 혓바닥만 거창하게 놀리며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는 당당한, 얼마나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으면서 조금이라도 그 힘을 다른 사람이 나눠가지는 건 못 참는 구역질나는 짐승새끼들)을 제외한다면, 어느 정도의 위선과 어리석음도 좋다. 약함은 분명 존중하고 보호할만한 것이다. 우리의 가장 위대하고 선의있는 행동들은 우리의 약함에서 기반한 것들이 꽤 많다. 나는 약한 사람이 좋고, 제 약함을 아는 사람을 존경하고, 제 약함을 떨쳐내지 못하면서도 끝내 제가 가야 할 곳을 향해 거꾸러지는 사람에 환장한다. 그리고 결국 사람이 제 갈 곳을 정하게 되는 요인 역시 약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큰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지. 그걸 피하려 하든 뛰어 넘으려 하든 부정하든 긍정하든 말야.  어. 확실히 내 이상형은 이거야. 내가 인정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내가 반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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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꺼내다가 발견한 것

Walking 2011. 9. 20. 18:23



도시와 인간의 1.5배 쯤 될 법한 위엄있는 크기..
우리 집에 미미하게 흐르는 기운을 좌빨의 번데기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역시 아빠한테서 온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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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에서 깨작거리다 어째 도배하는 꼴이 되길래 블로그로.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여러번 했던 것 같고, 생각은 확실히 여러번 했지만. 아빠에 대해 조각조각 떨어지는  정보들을 곱씹으면 참 미묘하다. 아빠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아빠도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고, 그냥 무턱대고 살 뿐인데 가끔 가끔 돌아보면 내가 이 아저씨한테 의외로 결정적인 것들을 물려 받은 것 같아서. 아빠에 대해서는 언제봐도 되게 낯설고, 그걸 내가 낯설게 느낀다는 게 더 놀랍다. 생각해보면 닮은 게 당연하잖아. 아빠인데. 

그냥 나한테는 아빠한테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자기 시각과 의지가 있다는 게 신기한 것 같기도 하다. 아. 참. 이렇게 써놓으니 어떤 불효보다 더 미안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도대체 뭐, 알 수가 있어야지. 

나는 아빠에게서 직접적으로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았다. 아빠는 자식들에게 꿈이나 희망같은 건 아무것도 투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아빠가 노조지부장 선거에 나간다고 연설문 타이핑을 부탁했을 때에도 난 그게 대체 뭘 하는 건지, 왜 해야 하는 건지 어떤 설명도 들은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면 오히려 더 관심이 갔을 텐데, 아빠가 한다니까 외려 시큰둥했던 것 같다. 하면 하는 갑다 말면 마는 갑다. 있으면 있는 갑다 없으면 없는 갑다. 아빠에 대한 내 감상은 딱 그 정도고 앞으로도 별반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이 양반은 도대체 가정이란 걸 왜 꾸렸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 가정에 아무것도 안 바라면서 아빠 자리는 묵묵히 지키고 있으니 더 그래.

그래서 집에 오래 묵어있는 7, 80년대 문예지들과 커다란 옥편이며 영어사전. 시집들. 신영복과 월러스틴의 책들. 그리고 저런 책들을 보면 되게 기분이 이상해진다. 저런 책을 읽는 아빠 모습이나 아빠 머릿 속을 상상하면 한없이 낯설고, 지금의 아빠가날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저히 상상이 안간다. 왜 아빠는 지금의 나한테 저런 얘기를 하나도 안할까? 나도 이러다 한 2~3년 더 지나면 또 저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게 되는 걸까? 지금 어설프게 영글기 시작한 고민들이 꼭 저런 식으로 책장 깊은 곳에 꽂힌 채 그대로 케케 묵게 될까? '이미 늦었음'과 '내 모자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인 채 그냥 그렇게 살게 될까?

그러고보면 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막연하게 아빠처럼 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더랬다. 변화도 없고 결실도 없고, 언제까지나 외부인인 채로 그대로 굳어 버리는 거. 가장 짜증나는 건 '아빠처럼 되기 싫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이미 '난 결국 저렇게 될거야. 난 그 정도 인간이니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나한텐 특히 잘난 부분이나 크게 될 재능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 왔고, 무리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똑똑한 아이들을 보면 속이 언짢고 목이 메었다. 난 허풍으로라도 절대 저렇게 주목을 받을만한 부분이 있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뭘 하든 똑부러지고 그럴듯하게 해내는 아이들에 대면 난 언제나 어딘가 딸리는 애였다. 언제나 어질러져 있고, 엉성하고, 뭘 해도 그저 그렇고, 끝을 맺질 못하고. 종이접기를 하면 언제나 종이귀가 딱 맞질 않는다. 리본을 묶으면 양쪽 귀 길이가 항상 다르다. 철봉에는 어렸을 때부터 반 초도 매달려 있질 못했다. 달리기도 느리고, 애들하고 하는 얼음땡이나  숨바꼭질도 요령이 없어서 맨날 헤매고, 공기나 고무줄은 아예 해보려고 시도조차 안했고, 남들이 괴롭히거나 부당하게 대해도 나서서 말도 못하고. 그냥 한없이 책 읽는 것만 좋아했다. 그리고 뭐로든 이야기 만들기도 좋아했고...
 


(... 어 잠깐만... 써내려가다보니 그렇네. 아 뭐야. 나 아빠한테 영향 엄청 많이 받았구나. 뭐야. 지 자신에 대한 가치 평가가 아빠에 대한 평가와 동일시되어 있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는 건 아빠에 대한 가치 평가의 적어도 8할 이상은 엄마의 시각을 통해 만들어져 있다는 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뭐야 존나 복잡해 이런 니미럴 썅썅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서 상담가 선생이 그렇게 아빠 아빠 거렸던 거군 이런 젠장할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 다시 얘기로 돌아가보자면. 정말 할 줄 아는 게 책 읽는 거랑 얘기 만들기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못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은 게' 그 둘이라는 편이 맞겠다. 내가 잘 하든 못 하든, 아무도 타박하거나 재촉하지 않는 게 그 둘이었던 거다. 집에 알파벳, 숫자, 한글 자모음이 쓰여있는 색색깔 블록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던 게 기억난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색과 문자 종류별로 패를 나눠서 싸우기도 하고 마을도 만들고 아무튼 뭔가 .. 뭐로든 이야기를 만들고 놀았다. 아니면 다시 책 읽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친구는 아오안하고 책만 봐서 친구들이 참 싫어했다. 뭐 초딩도 되기 전이라 지금은 기억 못할테지만. 유딩 때 친구들아 미안...... 심지어 친구가 책 보는 날 엎어놓고 의사놀이 한다고 막 찌르고 꼬집어도 냅두고 책 봤었지....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는 놀러와서는 책만 보는 내가 얄미워서 일부러 세게 꼬집어댄 것 같아.... 이모들도 미안... 책 보고 안 꽂아놓고 가서...아놔

아 그러고보니 그렇구나. 내가 일찌감치 작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 건 내가 만들어놓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나보고 잘했다 못했다는 소리를 할 수 없어서라고 생각해서였군. 쟤보다 못한다, 몇등이다, 이런 소릴 안 들어서였던 거였어.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분야라서 거기 안주하려고 했던 거였구먼... 으으음 어허허.....................


그리고 여기서 새삼 깨닫는데 나 엄청 열등감에 찌들어 있었던 거구나. 그러게. 그 속이 부글부글 끓고 목이 빳빳하게 굳으면서 메이는 기분이 열등감이었던 거구만? 아니. 아빠가 자신의 일생을 패배감으로 점철시켰는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야. 문제는 엄마가 그렇게 보고 있었단 거고 내가 그걸 충실하게 이어 받았다는 거지. 그리고 그러는 한편 나는 엄마의 기대를 채워줘야 한다는 강박에 오링하게 되고. 그럴수록 열등감은 커지고. 난 안될거야 아마가 강화되고...으, 으?... 그리고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동생들에게도 투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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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한없이 길어진다. 뭐 그냥 어느 쪽으로 가든 냅두지 뭐. 어차피 내 블로그인데 아무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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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라든가 웃음의 대학이라든가

Walking 2011. 9. 13. 08:14
이렁 저렁 버프를 받은 덕분인지, 아니면 삽질도 지랄맞게 하다보니 질린 건지, 사춘기 오춘기 육춘기를 지나 드디어 철들 때가 된건지. 병원에서 마음 편히 가지고 심호흡 하라는 말에 세뇌가 된건지. 아무튼. 

전보다는 상태가 좋아진 요즘이다. 찌질찌질한 건 변함없고, 여전히 실수 투성이고. 뭐가 나아졌냐 하면 그냥 내가 나아졌다.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뭔가 해야 하니까 한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내가 할 일 찾으려고. 뭐 이렁저렁. 

세상이 막 굴러간다. 제정신으로 우울증에 빠져 버리거나 미치거나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좌절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그 다음. 생각을 날카롭게 가다듬고 눈을 똑바로 뜨는 것. 좌절하고 앉아서 다 끝났어~ 하고 있다고 사는 게 끝나주는 게 아니라서. 

이렁저렁해도 난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긴 하다. 살아만 있다면 그 어느 때라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해.'ㅠ' 살아만 있다면 말이지.'ㅠ' ㅇㅇ...그래 이게 제일 웃기는 거야.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생이라는 걸 이렇게 절대적으로 의지한다는게.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은, 글은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다. 우리는 죽음마저도 살아있기 때문에 쓰다듬는다. 살아있어서 더듬는 거다. 죽은 이후는 죽어서 알 일이다. 중요한 건 죽어야 할 이유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거다. 자살은 '이 몸을 더 둘 곳이 없기 때문에' 하는 거지 죽을 때가 되어서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제 생명을 처리하는 방법'이지 죽음을 맞는 자세는 아니다.  땅에 발붙이고 하늘을 이고 있는 한 아무도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태어나고 살고 그 삶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 뿐이다. 

내가 좀 더 강해지면 좋겠다. 남한테 잘한다 착하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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