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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06 건국의 정치 - 181~186p 정몽주의 등장과 불행한 의식
- 2016.10.16 세간을 늘여보자
- 2016.09.28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2015.08.07 미개해서가 아니라 _ 후죠의 증가와 후죠질의 개인화
- 2014.06.12 식습관개선용 백번 달성표
- 2014.05.15 이너피즈 검사
- 2013.12.31 30년 산 기념 베스트 목록
- 2013.07.27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 2013.07.16 이런 저런 코민코민해봐썽
- 2013.06.03 나나
글
건국의 정치 - 181~186p 정몽주의 등장과 불행한 의식
공민왕 5년 7월 인당에게 벌어졌던 일이 재현되었다. 장군들의 군사적 승리는 정치적 위협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찬양받는 것이다. 그것이 당대의 역사이다. 그들은 그 시대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의미 안에서만 수용된다. 사가史家들이 공정한 이유는 그들이 역사 밖에 있는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역사가는 그로 인해 당대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가들의 경우 당대를 넘어서는 의미를 이해한다 해도 정치적 불가피성은 그들에게 한정된 선택을 강요한다. 이런 정치가는 스스로가 분열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현실의 불가피성과 역사의 이념 사이에서 방황한다. '불행한 의식'은 역사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의식이다. 그러나 역사의 목적이 없다면 역사는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역사의 목적은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탄생된다. 그 경우 역사는 도달해야 할 목적을 가진다. 목적론적 역사는 자연적 의식이 아니라 불행한 의식의 역사이다.
정몽주는 엯사의 이러한 성격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었다. 홍언박 등 당대의 유수한 정치가들은 장군들의 살해를 불가피한 일로,혹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공민왕 역시 그랬다. 그들은 당대의 역사 안에서 그들을 이해했다. 그러나 안우의 아들에게 보인 공민왕의 연민을 볼 때 공민왕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공민왕은 안우 등이 정치적 불가피성의 희생자임을 알고 있었다. 안우 등을 처형한 뒤 내린 교서에서 왕은 "옛 공로를 생각하여 처자에게는 죄가 미치지 않게 할 것이며, 아울러 그 관할에 소속된 대소 관리는 관계 기관으로 하여금 공을 헤아려 서용케 할 것"을 명했다. 또한 안우의 어린 아들이 헐벗은 몸으로 길가에 서 있따는 말을 듣고, "슬퍼하여서 불러 궁중에 두고 돌아갈 곳을 물어서 보냈고, 안우의 휘하 군사가 놀라 무너지자 왕이 불러서 위로하였다"고 한다. 백성들 역시 이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방실의 아들은 중문中文이다. 안우의 아들은 나이가 겨우 10여 세였다. 저자에 나가 놀자, 사람들이 음식을 먹이면서 말하기를 "지금 우리들이 편하게 먹고 잘 수 있는 것은 모두 원수의 공"이라 말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고려사 열전 26, 안우)
정치가들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로는 이들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민왕 13년 정도전은 일찍이 정세운이 개경의 동문 밖에 심은 버드나무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성을 나와 남쪽 바라보니 갈 길은 멀고 먼데,
동풍 불어 때는 바로 이월 초순,
뉘라서 도성 문에 버들을 심었느냐.
해마다 버들솜 날아 사람의 슬픔을 더해주네. (삼봉집 出城)
그러나 이 사건을 역사의 보편적인 문제와 결부시켜 이해했던 사람은 정몽주였다. 김득배와 정몽주는 좌주와 문생 관계였다 김득배는 원래 과거에 급제한 문신으로 정당문학에 올랐다. 그는 공민왕 9년 10월에 지공거 (과거 시험관)를 맡아 정몽주를 뽑았다. 당시의 습속에서 '좌주-문생' 관계는 부자 관계처럼 인식되었고, 평생 동안 유지되는 중요한 정치적, 윤리적 관계의 하나였다. 김득배가 죽자 직한림 정몽주는 왕에게 청하여 시체를 거두고 글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아아! 황천이여! 나의 죄가 무엇이며, 아아 황천이여!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대개 듣건대 선인에게 복을 주고 악인에게 화를 내림은 하늘이요, 선인을 상 주고 악인을 벌함은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비록 다르다 하나 그 이치는 하나인즉, 옛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이 정하면 사람을 이기고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긴다 하였으나, 하늘이 정하면 사람을 이김은 과연 무슨 이치며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긴다 함은 또한 무슨 이치입니까? 지난날 홍건적이 침입하여 임금이 서울을 떠나시니 국가의 운명이 한 가닥 실 끝에 달린 것처럼 위태롭거늘, 오직 공이 먼저 대의를 선창하자 원근이 향응하였고 몸소 만 번 죽을 계책을 내어 능히 삼한의 대업을 회복하였으니, 무릇 이제 사람이 이 땅에서 먹고 이 땅에서 잠자는 것이 그 누구의 공입니까? 비록 죄가 있더라도 공으로써 덮는 것이 옳을 것이요, 죄가 공보다 무겁더라도 반드시 그 죄를 자복시킨 뒤에 베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말의 땀이 마르지 않고 개선하는 노래가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태산 같은 공을 오히려 칼날의 피가 되게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내가 피눈물로써 하늘에 묻는 바입니다. 나는 그 충혼忠魂, 장백壯魄이 천추만세토록 반드시 구천의 아래서 울음을 머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아, 명命이로구나!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고려사 열전 26, 안우)
비통함으로 가득한 이 글은 장차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한 글이다. 그런데 이 글에는 단순한 슬픔 이상으로 당대 고려의 정신이 직면한 분열과 위기가 격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즉 정몽주는 인간세계의 부조리와 하늘 및 인간의 관계를 묻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사마천이 중국 역사를 시작하면서 물었던 물음과 같은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천도天道는 특별히 친한 자가 없으며 항상 선인과 함께한다고. 백이. 숙제 같은 사람은 정말 선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인을 쌓고 깨끗한 행동을 하였는데 굶어 죽고 말다니! 70명의 문도 중에서 공자는 안회만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칭찬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안회는 굶기가 일쑤였고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여 베푸는 것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 나는 심히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 도대체 이른바 천도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기 열전 1. 백이숙제)
하늘은 인간과 만물을 낳았으니 인간과 하늘은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역사의 이 비극들은 어찌된 것인가? 과연 하늘은 존재하는가? 우리의 이해가 잘못된 것인가? 하늘이 인간을 이긴다 하고 인간이 하늘을 이긴다 하면, 하늘과 인간은 달느가?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영원한 가치의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가? 모든 가치는 상대적일 뿐 절대적인 가치는 없는 것인가?
정몽주의 이 모든 질문은 결국 그가 혼란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학문을 통해 배운 세계가 아니었다. 김득배의 죽음은 그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ㅇ벗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이성에 강렬하고도 파괴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제문은 정몽주가 이 도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비탄이 그 증거로, 그는 "이것이 내가 피눈물로써 하늘에 묻는 바"라고 말하고 있다.
정몽주의 이러한 질문들은 매우 독특한 인간의 탄생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는 홍언박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고착되어 그 안에서만 의미를 이해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현세에 있으면서도 현세 너머에서 현세의 문제를 통찰하려는 인간이었다. 그는 행위에 불변의 원칙을 가져다주고 삶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을 탐색하는 인간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삶과 모든 행위는 하루살이처럼 부질없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의 비탄처럼 이러한 모색은 혼란을 가져온다. 세계는 더 이상 조화롭지 않으며, 모든 것은 이원적인 요소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이 속에서 우리는 현실 속에 가라앉거나 현실의 뿌리를 뽑는 극단적인 길을 택한다. 앞의 경우 역사의 의미는 질문되지 않으며, 뒤의 경우 역사의 의미는 살아갈 터전이 없다. 두 극단의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할 때, 그는 분열된 인간이며 그의 의식은 불행한 의식이다. 정몽주는 바로 그런 상태에 있었다. 정몽주는 그 혼란을 '명命'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그것은 알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란 뜻이다. 우리는 이 모든 역사의 부조리에 대해, 그리고 이 혼란에 대해 체념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이 역사를 묵묵히 견디며 살아갈 뿐이다.
성리학은 인간의 구원을 인간의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완성하려는 시도였다. 즉 인간은 그 잣니을 떠나서는 이 세계에서 구원될 수 없다. '천리'와 '수신'. '평천하'에 이러는 복잡한 설명은 그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세계의 실제는 그처럼 논리적으로 정합적인가? 인간은 그 자신을 스스로 구할 수 있는가? 또한 구원된 인간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가? 인간이 내적으로 그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성리학자들 역시 증험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나 이뉼, 만물로 확대된 자아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거기에 성리학자들의 곤경이 존재했다. 세계는 자기의 단순한 확장 이상인 것이다. 하늘은 세계를 선하게 창조하였찌만, 다만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남겨두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이 분열의 크레바스이다. 정몽주의 '천명'은 그 점에 대한 비통한 고백인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의 이 절규를 통해 우리는 하늘이 역사에서 이념 혹은 모적을 실헌하는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정몽주의 제문은 바로 그 자신이 김득배의 죽음을 통해서 역사의 참다운 이념을 근본적으로 자각했음을 보여준다. 김득배의 죽음에 대한 비탄은 역사의 불합리에 댛나 의문이지만, 동시에 역사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발견이기 땜누이다. 그리하여 여말선초의 역사에서 정몽주는 이념의 서식처가 되었다. 정몽주의 의식 속에서 역사의 이념은 이미 탄생되었으나, 그것은 아직 세계 속에 실현되지 않았다. 김득배의 죽음은 그 분열을 분명히 자각시켰다. 그러나 이념의 성술은 정몽주에게 그의 삶 전부를 요구했다. 그리고 정몽주는 정치적 생애의 종국에 마침내 그와 같은 인간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제문은 정몽주 자신의 정신적 운명에 대한 예언이다. 그는 정치 속에서 그의 정신을 완성하고자 했으므로, 그것은 또한 그의 정치적 운명이기도 하다. 그 자신도 본질적으로 김득배와 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정치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략의 희생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세계 속에 나타난 정신의 고통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김득배와 달리 그는 잣니의 죽음이 가진 이념적 의미를 자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몽주의 죽음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서 정신적 사건이 되었다. 조선의 정치적 탄생은 조선 건국자들의 공업이었지만, 정신적 탄생은 근본적으로 정몽주의 죽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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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ㄹ님이 기교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살아있는 글이란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등을 물어왔는데 답 다운 답을 못 했다. 지금 내 수준에서 답하려면 한없이 자잘해지거나 한없이 커져서 무의미한 답만 나올 것 같았음. 무의미한 답만 나올 거 같아서 무의미한 답을 함. 그리고 자갈자갈하게 부끄러워졌다.
대학원 내내 공부 제대로 안했고, 전공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그리 크지 않으며, 논문 끝낸 후 한 번도 관련 책을 안 읽어서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난다는 건 조금 부끄럽고 말 일이지만, (내가 내 돈 주고 대충 살았는데 뭐 어쩔텐가.) 나는 이렇게 쓴다 라고 말하지 못한 건 답답했다. 왜 아직도 모르는 거야? 왜 아직도 모르는 채로 있는 거야? 왜 알려고 이런 저런 걸 진작 해보지 않은 거야? 왜 지금 바로안 하는 거야? 이게 안 중요한 일인가?
나한테 중요한 일이 뭘까? 하고 싶은 게 뭘까? 솔직히 요즘은 글에도 별 생각이 없다. 난 애초에 글을 쓰고 싶긴 했던 걸까 싶다. 하면 즐거워서 좋아하지만, 그냥 즐거워서 좋았을 뿐이다. 그게 다다. 요즘처럼 뭔가를 즐기기 힘들 때, 점점 즐기기 힘들어져 가는 세상에서 무슨 동기며 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즐거움' 그 자체만을 즐기기에는 겁도 많고 욕심도 많다. 일 하는 중이나 마친 후에는 재미있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착수할 때는 그 이상을 원한다. 그냥 재미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안돼.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해. 더 얻는 게 있어야 해.
뭐 떠나서, 글을 안 쓰고 있으니 글을 쓰고 싶긴 했던 걸까 헷갈리는 거다. 다른 거창한 이유 필요 없고, 글을 너무 오래 안 써서 글 쓸 마음이 안나는 것이다. 안 쓰는데 어떻게 동기를 얻어. 안 쓰는데 어떻게 글에 대해 알 수 있겠어. 안 쓰는 데 누가 날 글 쓰는 사람으로 기억해. 다 그런 거지.
그러니까 다음 글이나 쓰자. 일단 저번 글보다 덜 딱딱하고 좀 더 알아먹기 쉽게 쓰는 것으로. ㅇㅇ.
글
미개해서가 아니라 _ 후죠의 증가와 후죠질의 개인화
미개해서가 아니라 _ 후죠의 증가와 후죠질의 개인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서 묻지마 폭행을 예술이라고 하는 거야? 진챙총씨의 광역 어그로 소식을 듣고 뒤늦게 그의 칼럼(http://acomics.co.kr/archives/24144 겁쟁이폐단. 살아남아라 후죠시)을 읽었다. 어. 대략 글의 요지에는 동의한다. 현재 동인계의 룰 중 많은 것들이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하며, 그 룰 안 지켜도 사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거. 사회에 있어 너희는 가둬야 할 범죄자도 퇴치해야 할 악마신봉자도 아니니 자 후죠여 당당히 후죠질 하자.
그래 그래 다 맞는 말이다. 갈수록 동인계 룰은 세분화되는데 그 룰의 근거는 빈약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룰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비난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고, '왜 이런 룰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기요.
글의 서두에서부터 묻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댁이 중지를 세워주고 싶다'는 그 죄의식 양산자가 대체 누구인가? 그런 길트립을 만들어서 동인계 길목마다 깔아놓은 정신병자가 대체 누구냐고. 어떤 피리부는 사기꾼이 우리 순진한 후죠시들을 몽창 홀려서 자기검열의 늪에 빠뜨린 건데?
진챙총씨가 현 후죠문화를 만든 근간을 무엇이라 파악했는지는 모르겠다. 저 칼럼에서 그는 후죠시들의 피해망상환자적 일면을 나열하며 비꼬기 바쁘다. 그리고 이번 진챙총씨의 전시 역시 글쎄...머리 열심히 굴려서 또다른 방식으로 시비를 거는 것뿐, 근본적인 성찰은 칼럼을 썼을 때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식의 '계몽 시도'를 할 리가 없으니까.
그랬다면 차라리 문제가 간단했을텐데_ 진챙총씨의 적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후죠들은 미신에 홀러거나 피해망상에 빠져 벽장에 숨는 게 아니다. 오히려 벽장에 숨고 싶어서 미신과 피해망상을 이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미신이라고 규정하는 게 미신 타파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금의 후죠에게 저작권법 강의를 한다는 건 애초에 면역 있는 사람에게 백신을 놔준 후 생색내는 것이나 똑같다. 꾀병을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꾀병의 원인을 짚어야 명의라고 추켜줄 것 아닌가.
게다가 정말 안타까운 건, 현 후죠문화는 어찌 보면 진챙총씨 주장대로 '당당하게 마음껏 후죠질을 한 결과'라는 거다.
현재는 90년대나 2000년대 초가 아니다. 수입되는 서브 컬쳐 장르도 늘어나고 유통 경로도 확산되면서 당연히 후죠도 늘어났다. 동인계의 독재자ㅋ 코믹월드의 대체 행사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이제 어지간한 장르는 다 온리전을 주최한다. 동인계 판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다. 물론 그래봤자 조금만 링크 타고 돌다보면 갸가 갸인 웅덩이지만, 적어도 이만큼 행사가 주최될 규모는 되는 거잖아. 자신이 자신의 장르 행사를 직접 기획해 진행하는 온리전은 후죠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생산-소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세상에. 이제는 시장을 직접 만든다.
그리고 나는 온리전의 증가야말로 현 후죠 문화의 핵심이자, 진챙총씨가 공격하는 v길트립v의 확산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 현대 후죠들은 온리전을 기획하는가? 그저 서드플래이스의 갑작스러운 증발 때문이라면 케이크스퀘어나 동네 페스타가 나타난 시점에서 그 행사에 참여하면 될 일이었다. 이 좁은 반도 땅에서 매 행사 때마다 대관처를 직접 수소문해야 하다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게다가 각 행사의 룰을 직접 짜고 룰이 잘 지켜지는지 감독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온리전 주최자는 행사를 열 때는 초대자가, 문제 발생 시에는 책임자가 된다. 권한은 적으면서 의무는 많다. 이런 행사는 열리더라도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당연하다고_누구나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후죠들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한다. 대체 어째서? 온리전의 이점은 단 하나. '같은 장르 파는 너 나 우리만의 행사'라는 거다. '누구에게도 참견받지 않는 내 취미 생활을 마음껏 즐기는 하루'를 얻기 위해.
진챙총씨가 문제시한 후죠의 피해망상적 사고는 결국 '누구에게도 참견받기 싫은' 후죠들의 예방적 행위이다. 나 좋아하는 동인질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규칙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예방 행위는 2차 창작 활동이 소규모화하면서 더 극성스러워졌다.
대형 교류전에서 판 회지가 문제가 된다면 그건 교류전을 상대로 왈가왈부할 일이다. 하지만 개인 온리전은? 주최자가 아무리 베테랑이라해도 일개 개인이 예방.책임질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어떻게 보호할 건가? 내 권리를 무슨 근거로 주장해야 하나? _나를 보호할 수단이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진행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_ 아니, 난 아예 문제 자체가 일어나는 걸 원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문제를 사전 차단하지?
'누가 니네 케이크 스퀘어에 간 사진 현상에서 직장에 뿌리는 거 아니다.' 라고 얘기해봤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거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누군가 나를 공격한다면?' '너가 날 편들어 줄거야? 무슨 수로? 공격당하는 건 '개인'인 나인데?'
현재 후죠계의 수많은 룰들은 이런 후죠들의 불안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 룰들이 효력이 없는데도 실제 세계의 법을 모방하는 것 (ex: 표지의 19금 수위물 표시 규칙) 역시 그때문이다. 정말로 불법을 저지를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법을 준수하는 흉내를 내서 '나 개인'이 참견당할 여지를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격당하는 것이 '개인'이기 때문에 상상하는 피해 범위 역시 자꾸 늘어난다. 결국 내가 보호받을 확실한 대피소가 생기지 않는 한 후죠의 매뉴얼은 더욱 정교화할 것이다.
후죠는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다. 현 후죠 문화는 래밍 무리의 본능적 대이동이 아니라, 오히려 후죠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 전략에는 아주 많은 폐단이 있으며 시급한 수정이 필요하다. 후죠 스스로 정말 이런 방법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하고, 후죠질이 진짜 개인의 영역인지도 돌아봐야 한다. 취미 생활은 개인적으로 하더라도 그 권리 주장은 단체로 할 수 있는 연대도 필요하다. 그래.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진챙총씨의 방식으로 문제를 까발리는 게 과연 후죠들의 의식 전환을 불러올 수 있을까? 진챙총씨 본인은 어떤가?
현재 진챙총씨의 퍼포먼스가 유의미하게 끝나는 길은 하나뿐이다. 진챙총씨가 고소당해 패소하는 것. 후죠들에게 '법을 이용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물먹인'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진짜로 법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오히려 수많은 동인계 룰은 없어지지 않을까? 문제가 생기면 법대로 하자고 끌고 가지 누가 효력도 없는 룰이 이렇네 저렇네 따지고 앉았겠냐. 진챙총씨가 패소까지의 시나리오를 짜고 움직이는 거라면 대단하다고 박수쳐줄 용의가 있다. 진심으로. - 너의 성장을 위해 악역을 감내했다-라니 여기 2D에나 나오는 악당 보스를 현실 재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누군가 그를 꼭 고소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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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주최자가 전시에 대한 반응들을 모은다고 들었습니다. 반응하는 것 자체가 병신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무서워서 할 말 못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몇 줄 적어 봅니다.
아. 혹여나 걱정되어 덧붙이지만 이 글은 온리전을 공격하는 글이 아닙니다. 진챙총씨가 공격하는 현상이 오히려 후죠가 발전했기에 만들어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글
이너피즈 검사
다시 해보니 다른 수치는 거의 다 똑같은데 / 신경증만 90이 나와서 '' 좀 스트레스 받은 버전이라 치고 ㅇㅇ
당신은 정서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편입니다. 평소 걱정이 많고 작은 일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기분이 요동치곤 합니다. 안 좋은 일이 터지면 불쾌감이나 걱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상당히 오래가기도 합니다. 걱정하고 기분 나빠해 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일이 계속해서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마음도 진정되지 않는 식으로 말이지요. ‘남들은 쉽게 털어버린다는 데 나는 왜 안 될까’라며 푸념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에 쉽게 상처 받고, 혹시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닌지 자주 불안을 느끼는 등 다소 예민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서 쉽게 위축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불안의 원인이 타인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탓은 아닌지 잘 살펴보며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또 스트레스가 쌓이면 신경질이나 짜증을 잘 내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다소 괴롭게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행복이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취미활동을 하거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등의 방법을 통해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세요.
혹시 담배나 술에 많이 의지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나친 걱정이나 술, 담배에 대한 의존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세요.
예민한 성격이라 힘든 일도 있겠지만, 덕분에 위험이 발생할 경우 이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대피할 가능성이 높기도 합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 시에도 다른 사람보다 생존확률이 높을 수 있습니다.
글
30년 산 기념 베스트 목록
오늘이 20대 마지막 해 마지막 날. 30년 살면서 좌충우돌한 리스트 작성.
결정적인 터닝포인트~터닝포인트 중에서 최고. ㅇㅇ.
인생의 영화: 반지의 제왕 (오늘날 호빗2가 저 꼴이 났는데도 이 순위를 못 바꾼다는 게 슬프다.) /
-> 국내영화: 지슬 : 소재와 주제, 기법, 연출 모두 완벽했음. 언젠가 어느 장르로든 이런 작품 만들 수 있으면 여한이 없다.
인생의 애니: 프린세스 츄츄
인생의 만화: ...최유기.-처음 다음 까페 가입한 만화
인생의 웹툰:
인생의 드라마:
판관 포청천: 어린 시절 유일하게 밤 늦게 시청하는 게 허락된 드라마
태조 왕건: 이걸로 처음 역사 인물 망상질 본격적으로 시작함
한성별곡: .........................................자세한 설명 생략함.
인생의 뮤지컬: 엘리자베트
인생의 연극: 필로우맨, 푸르른 날에
인생의 게임: 마비노기
30년간 가장 돈을 많이 쓴 덕질: 뮤지컬 엘리자베트+죽음 역 올렉 빈닉
인생의 소설: ...이건 못 고르겠어.
-> 그래서 좋아하는 글 목록: 어스시. 멋진 징조들. 꿈꾸는 책들의 도시, 초한지, 삼국지연...의.....?:).... , 조지 오웰 글 전반, 루쉰 칼럼, 포 단편, 슈테판 츠바이크 전기
-> 좋아하는 작가: 루쉰, 오웰, 톨킨, 르 귄, 츠바이크, 발터 뫼르스, 박지원, 배명훈, 이영도, 정유정, 김유정
좋아하는 배우: 이안 맥캘런 / 안내상 / 곽청 (올렉 빈닉은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배우로서 좋아하는 건 아닌 듯 함)
워너비 인간: 간달프, 칼 세이건 (...쓰고 보니 하나는 인간이 아니야?)
워너비 전공 분야 학자: 테리 이글턴, 바흐친
30년간 잘한 일 베스트: 살아있음.
30년간 삽질 베스트: 별 생각없이 대학원 진학/스틸 낫 졸업
30년간 못한 짓 베스트: 글 써. 쓰라고 좀. 왜 안 쓰냐...면 못 쓸까봐 안 썼지. (이걸 말이라고...)
30년간 흑역사:
지금 기억나는 거만 너댓개 되는데, 죄다 '왜 나는 하고픈 말을 제때 못하고... (박선생 왈 기분 나쁘다면 나쁘다고 말하라고)'의 범위에 들어가는 일.
30년간 가장 큰 변화:
- 16살 때 교회 여름 수련회 이후 교회 다니기 관둠.
- 20년 들여 찌운 살을 약 반년만에 뺐다. 그리고 지금 그중 최소 반 이상이 도로 돌아와 붙음.
30년간 잃은 것: 건강, 특히 관절...관절이.... 그리고 또 관절을.....
30년간 얻은 것: ...내 친우 지인들의 인내심?... / 망상, 인문학도부심
30년 중 가장 어렸을 적 기억:
- 4살 때. 둘째가 먹다 남긴 분유 먹으니까 구역예배 드리러 온 집사님이 아직도 분유 먹냐고 타박함. 그때 입고 있던 옷까지 기억함. 젠장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데 왜 뭐 왜요 ㅠㅠㅠㅠㅠ ...정작 분유를 끊은 후에는 분유 극도로 싫어하게 된 게 웃김.
이후 30년간 큰 그림:
겁 먹느라 시간 보내지 말고 할 일을 합시다.
- 어렸을 때 했던 질문 까먹지 말긔, 살아가면서 스스로 알아 보기로 했잖아.ㅇ<-<
- 언어가 무의미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언어의 의미는(그 의미가 가지는 가치)는 언어 사용자들간의 약속임. 약속조차 이행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상상이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람. 실현되는 걸 포기해버리는 꿈이 어떻게 꿈일 수 있음. ㅇ<-<
내년에 하고픈 일:
글을 쓴다. 글을 완성한다. 남들에게 많이 읽힌다. (상반기: 장편 1, 중편 1, 장편 팬픽 1, 단편 최소 2편 이상)
건강해진다.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늘리고 단백질 탄탄, 체력 지구력 //)
한자 공부를 꾸준히 한다.(제발 좀. 고전소설 줄줄 읽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논문이랑 시 속 단어 읽다가 막히는 수치플레이는 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레벨업: 중국어를 배운다. (중국 드라마 자막 최소한 키워드 파악은 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배운다. (...동화책 수준은 떼자.)
글 쓰면서 병행 가능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 1월의 할 일: 단편 1 완성, 장편, 장편팬픽 시작
논문 읽기
좋아하는 소설 많이 읽기
자료 정리
스트레칭+무릎에 무리 가지 않는 근육 운동 꾸준히
천문대 가기
필로우맨-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비교 감상
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예전 과외선생님은 말씀하셨지. 너 그러다 딱 수다 떠는 아줌마로 늙을 거라고.
요새들어서 그게 무슨 의미인건지 깨달음. 수다 떠는 아줌마들은 왜 수다를 떨게 되는지 말이야. 음. 뭔가 자극이 오면, 그걸 뇌 깊이까지 가지고있지 못하고 그대로 바로 방출하는 거야. 뭐 방출 사유야 여러가지겠지만. 내 경우에는 불안이 큰 것 같아. 말을 걸고 반응을 받고 싶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팽창하고 싶은 욕구도 있겠고.
아무튼 난 아주 꽉 찬 쓰레기통 같아서. 빈 캔 하나만 던져져도 안에서 벌레들이 와르르르 몰려나와서 웅웅 거리는 것 같은 상태야. 그리고 난 뭔가, 뭐든, 좀 얘기를 하고 싶어. 그런데 나 혼자 떠들려니 재미가 없잖아. 혼자 떠들려니 자극이 안되어서 뭘로 떠들어야 할지조차 모르겠어. 게다가 내 관심사를 가지고 덕질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무지하게 신경쓰여. 아 나도 떠들고 싶다. 입이 근질근질근질근질. 나같은 인간만 출연하는 연극에는 독백이 없을 거야. 모든 인간들이 다 같이 떠들고 싶어할 테니까. 누가 조금만 혼자 중얼거리면 바로 쫓아가서 어머 그건 무슨 이야기인가요 쫑쫑/ 그럼 중얼거리던 애도 아 사실 내가 말이야 중얼중얼/ ... 독백이 가능하겠어?
뭐 내가 이영도도 아닌데 가상의 나만 출연하는 연극은 그만 막 내리고. 다시 문제로 돌아와서. 그런데 그렇게 수다를 떨면서도 뭔가 막히고... 수다를 못 떨고... 아 이미 트윗에서는 어마무지하게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보일...려...나... 아무튼 나는 불만족을 느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있다고 치자. 그래서 왜 이러고 자빠졌느냐. 왜 뭔가 원하는 걸 하지 못하고 벌벌벌벌 떨어대고 있느냐. 여기서 문제가 의식 위로 표출되는데.
그러니까 근본적으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못 걸겠단 말이지. 존나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이 안나. 아예 기억이 안난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존나 관심있는 장르 썰 푸는 사람이 있길래 덕계 비공 풀고 말을 걸어볼까 했는데... 존나 비공 설정만 네 번인가 바꿈 오락가락오락가락 근데 못하겠는 거야 말을 못 걸겠어 식은땀이 줄줄 나
아니, 나도 이게 뭐 천년지대계 이딴 거 아니란 거 알고요. 그냥 말을 거는 것 뿐이죠 아이고 내가 앞으로 당신 팔로를 하겠습니다~ 이후에는 뭐 멘션을 걸든 말든 신경 전혀 쓸 일도 없을 거라고. 그냥 나는 지나가는 트잉여요 저쪽도 지나가는 트잉여일 뿐. 존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도 안다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라는 거. 간장종지에 물 받으면서 노아의 홍수 걱정하는 인간은 없잖아. 나도 그렇다고. 내가 막 엄청난 거절, 절망, 저 사람과의 운명적 랑데뷰 - 이런 걸 상상하면서 덜덜 거리는 건 아니라고.
그런데 왜 나는 이게 존나 무서운 걸까. 왜 식은땀을 질질질질 흘리면서 공개설정을 세 번 네 번 바꾸는가. 왜 나는 내가 공개되는 게 무서운가. 남한테 아주 조금, 찰나라도 '인식'되는 게 무서운가. 누군가 나한테 조금이라도 부정적 인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왜 이리 무서운가. 아 존나 정상적인 반응이 안된다니까? 내가 이래서 사회생활이 안돼. 앟홋시발
...뭐 이 문제가 사실 일이년 문제도 아니고. 적어도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에는 죽 따라왔던 문제같으니까. 뭐. 엄청 새삼스러운 거지. 이제와서 이거 가지고 오버 치는 것도 새삼스럽다. 야.
그래서 내 문제 2는 이거야. 왜 문제 1을 덮어두지 않는가.
솔까 사람 대하는게 어려우면 그냥 스토킹을 하고 냅두면 되잖아. 왜 뭐 왜. 스토킹이 뭐 어때서. 나도 스토킹 좋아해. 게다가 저 사람 개인과 꼭 관계를 맺고 싶은 것도 아니거든. 이런 조건에서는 스토킹이 제격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어... 나는 일단 나 혼자서는 수다를 못 떨어. 난 나 '혼자' 막 의미있는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외부 반응이 필요합니다. 외부 반응이. 아주, 아주 즉각적이고 확실한 피드백. 내가 참 이럴 때마다 변변찮은 인간이라는 걸 느끼면서 좌절치긴 하는데 그게 사실이야. 한 줄, 한 명에게라도 반응이 와야 한다고. 공치사라도 들어야 움직인다고. 오 이건 물론 저만의 특징은 아니야. 모든 인간들이 공유하는 성향이죠. . 그러니까 나도 그렇다고 말하겠어. 나한테는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아. 말하다 보니 느낀건데.1. 나는 피드백이 필요하구나. 이거 뭐 아주 오래전부터 몇번이나 나온 얘기인건데. 그래.피드백이 필요한 거였어. 피드백 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였어. 그래서 사람 대하는 게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피드백 받으러 나가고 싶은 거였어.
그리고 혼자 수다를 못 떨겠는 이유 2. 이건 좀 부가적인 문제야. 수다의...저작권? ㅋㅋㅋㅋ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음... 화제의 주도권? 화제를 처음 꺼낸 사람이 누구냐 하는 문제. 자. 내가 누군가를 스토킹한다고 쳐봐. 아주 재미있는 소재를 보았어. 오. 재미있네? 난 그걸 내 개인 비공계 계정에서 수다 떨어대. 그런데 내가 자극을 받은 정보 출처나, 링크나, 뭐 그걸 끌고 오기가 그런 거야. 내가 정보를 봤던 쪽도 정보 원 출처는 아니며, 더욱이 내가 그걸 보고 여기서 떠든다는 건 전혀 모른다고 해도 왠지 ... 음...
마치 뭔가 훔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저 사람이랑 내가 그걸로 대화를 한다면 상관이 없는데, 그러니까 내가 저 사람의 정보를 열람했다는 걸 저 사람이 인지하고 있다면 말이지. 근데 왠지 그걸 감추고 있는 상태에서 떠드는 건 좀... 어차피 이게 어마무지하게 흥행한 영화 배우 트윗 얘기라 도대체 누구 트윗 보고 파생 얘기 하는 건지 아무도 모르겠는, 심지어 나도 모르겠는 상황인데도 좀... 음 좀 찝찝한 거야.
난 좀 이런데서 강박이 있는데. '화제' , '정보'혹은 '아이디어'가 '내 것'이냐 '아니냐'에 되게 민감함. 내 것을 남이 쓰는 건 좋음. 얼마든지. 그런데 내가 남의 것을 쓰는 건 안됨. 저 화제나 정보가 내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면 그건 내 것이 아님. 앞으로 활용한다 해도 원 출처는 분명히 해야 한다는 거지. 내가 생각해 낸 게 아니니까. 원래 내 지식이 아니니까. 그걸 내가 알고 있었던 것 처럼 말해선 안됨. 그건 남을 따라하는 거잖아. 내 아이덴티티가 없는 거라고?
아. 말하다 보니 느낀건데.2. 난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 보다(물론 이것도 부담스럽지만) 다른 사람한테 영향을 받는 걸 부담스러워 하나 보다. 이게 웃기는 게, 난 내 화제나 정보, 아이디어를 남한테 제시하는 건 전혀 거리끼리 않거든. 오히려 막 퍼줌. 제발 가져가 주세요 하고 막 가는 길에 뿌려줌. 특히 아이디어 부분에서 그럼. 생각해내는 게 너무 너무 재밌어서. 이것도 생각나고 저것도 생각나니까 자 이 중에서 골라봐요~~~ 야호 신난다.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써주세요 출처 표기도 필요 없어요 저게 내가 생각해 낸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 됐어>~<///// 인데...왜...
... 아. 그렇군. '내 것이라는 걸 내가 알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까탈스러운 거였어. 즉 내가 '내 것이라는 걸 아는 것'이 최소한 조건인거지. 이게 남에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야 나도 존중 받을 수 있을 테니까.
... 아니. 솔까말 하자면 그냥 잘난 척 하고 싶어해서가 맞음. 존나 부자가 다른 사람한테 공짜로 뭔가 얻으면 기분이 이상할 거 아냐.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 상당히... 어마무지하게 세기 때문에...사실은 ㅈ도 없으면서 꼭 빌 게이츠나 된 것처럼 세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남을 따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못 견디는 게 맞는 것 같아. 어....음.....
한참 떠들었는데 결론은 나 수다 떨고 싶다고. 누군가한테서 피드백 좀 받았음 좋겠다고. 누군가한테 내 말을 공개하고 싶다고. 그런데 사람간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이런 저런 문제때문에 그게 너무 어렵다고. 결국은 문제 1로 다시 넘어가네. 왜 그게 무서운지. 뭐가 무서운지. 무서운 게 대부분 그렇듯 분류가 안된다. 그냥 위가 멈추는 것 같고 턱이 굳어버리는 것 같음. 음... 뭐가 무서운 걸까? 뭐지... 으... 아니 다시 집중해 보자고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뭐가 무서운지나 알자. 무시 당하는 게 무서운 건가? 나한테 화낼까 봐 무서운 건가? 내가 실수해서 남의 공격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무서운 건가? 거절 당하는 게 무서운 건가? 참견 당하는 게 무서운 건가? 내가 남과 비교해 보고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끼는 게 무서운 걸까?
물론 다 엿같긴 한데 이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게 있을 거 아냐. 이제와서 성향이 바뀔 것 같지는 않은데. 좀 알고 싶음. 답답하다. 대체 뭐때문에?
아무튼 피드백을 받고 싶으니 계속 나가고는 싶어 할 거 아냐. 언젠간 이거 좀 고쳐야 하는데. 이거 어떻게 고쳐...
는 결국 나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는 거 무서워요. 아... 난 뭐 이 소리 하려고 이렇게 미친듯이 수다를 떨어대냐?... 이럴 시간에 글 좀 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오 이게 다 머야
글
이런 저런 코민코민해봐썽
솔직해지는 게 어렵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관심있다 없다 하고 싶다 하기 싫다: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일, 내 일이 맞는데 그저 어려운 거 하기 싫고 책임지기 싫어서 튀려는 걸까? 아님 정말 내게 안 맞고 내 길이 아닌 건가? 사실은 내가 싫은 건데 좋다고 하는 건가, 좋은 건데 싫다고 하는 건가. 구분이 안가. 어느 쪽인지 자신이 없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려운 건지. 솔직하게 느끼는 게 어려운 건지. 아. 그냥 솔직하게 책임지는 게 어려운 건가? 뭔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의 결과를 보기가 싫은 건가?
요즘은 특히 학교 문제로 고민이 많다. 학교에서의 인간관계 - 학교 자체 - 어느 방향으로 작품 활동을 해야 할 것인가 문제 등등.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보니 나름 장점들도 있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는 건 인정. 하지만 내게 딱히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함. 내가 오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함.
그런데 이게 그저 내 철벽일 뿐이라면? 사실은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데 내가 그냥 다 바보 취급하고 들어앉아서 삽질 자위하는 거라면? 게다가 이 사람들에게 주워듣는 정보도 있잖아.
그리고 이게 내가 학교에서 얻은 게 없다는 근거가 되나? 졸업 못하고 있는 건?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게다가 학교를 졸업하는 거랑 내 작품 활동 방향이 무슨 상관인가. 실은 아무 상관 없는 게 아닌가.
거의 2년 정도 이 문제들을 다 짬뽕해서 보고 있었던 거 같음. 상당히 복잡했다. 학교에서 치는 문학은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이랑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그 부분에 있어서 무슨 도움도 받을 수 없어 보였음. 그런 와중에 졸업은 다가오고 나는 불성실 수료생으로 남았고. 이대로 학교를 튀면 난 수료생으로 남케치. ㅇㅇ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학교에서 튀냐 아니냐를 작품활동에서 튀는 문제로 인식했다는 거임. 학교에 있는 걸 '소설지망생' 명함 부착 자격 여부로 인식한 것임. 순문학을 안하는 나는 소설가지망생 자격이 없나? 그럼 일단은 학교와 연을 끊지 말아야 지망생 타이틀이 유지되는 건가?
(사실 이 순문학이라는 구분 자체가 겁나 야리꾸리. 실제 구분과 상관없이 내 머리 속 의미가 야리꾸리. 아무도 이런 게 순문학이라고 한 적 없는데 나 혼자 강요당했다고 착각하는 편견임)
그래서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얘기함. 아니. 뭐 내가 나랑 100% 싱크로 안하는 사람이랑은 말도 못 섞겠다는 순혈공주님은 아님. 문제는 내가 맞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억지로 맞춰가면서 구씹을 친다는 거임. 그러면서 스스로 헷갈려함. 순문학 공모전 막 준비해야 할 거 같고 그런 기분이 됨. 그렇게 '소설가 지망생 분위기'는 유지하면서 정작 아무 것도 쓰지는 않는 고자 상태가 계속 됨. 암흑의 고자 상태. 고.자.고.자.고.자.고.자.
아 뭐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일단 이 문제부터 정리해보자.
1. 학교와 내가 만드는 글은 아무 상관이 없다.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창작론을 쓴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2. 학교 사람들과 학교, 내지 학교를 졸업하는 문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설령 상관이 있어봤자 그 범위는 내 관심 영역이 아니다.
3. 학교 사람들에게 얻어 듣는 정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음. 당연하지. 인간은 협동의 동물임. 협동했을 때 얻는 성과라는 게 아예 없을 수 없음. 그런데 내 지금 일이 저 사람들과 협동을 해서 나아질 일인가? 아니지?
각 문제가 엿같은 건 알겠지만 서로 엮어대며 삽질 강도를 늘릴 필요는 없는 거지. 1이 어렵다는 이유로 2를 안하고 2가 어렵다는 이유로 3을 해결 안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네요. ㅇ<-<
결론:
1. 나님은 내가 쓸 글 쓰고, 땡기는 글 읽읍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 함미다. 글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보여줌미다. 퇴고 집중해서 함미다.
2. 나님이 졸업하고 싶다면 논문을 씀미다. 졸업하고 싶슴미다. 어. 논문을 씀미다. 당장 관점도 질문거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징징대지 말고 그거부터 찾음미다. 당장 못해낸다고 못하는 거 아니고 한심해봤자 내가 한심한거지 남은 상관 없는 일입미다 일단 좀 함미다.
3. 학교 사람들하고는 만나지 말든가. 만나더라도 필요없는 말 하지 않음미다. 괜히 내가 '순문학 공모전에 낼만한' 글 안 쓴다고 자격지심 같지 않음미다. 괜히 변명하려 하지 않음미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거 관심 있다고 맞장구 쳐주지 않음미다. 그냥 까말함미다. 니들이 듣기 싫든 말든 그럼미다. 마이웨이함미다.
이제 이 문제 가지고 지랄 삽질하지 않음미다.
ㅇ<-< 다음 당면 과제: 어케 시간 활용을 할 거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