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읽는 책들

Walking 2011. 9. 21. 20:27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소세키), 보트 위의 세 남자(제롬), 장편소설과 민중언어(바흐친), 소설의 이론(루카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가라타니 고진), 파문(이명원), 한국문학과 그 적들(조영일) 까뮈 단편(까뮈), 런던통신(러셀), 로마제국쇠망사 1(기번),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진즈부르그), 뉴욕 3부작(폴 오스터), 어스시 1, 2(르귄), 바람부족연대기(케말), 종의 기원(다윈), 파브르 곤충기(파브르), 파우스트 박사(토마스 만),  아르미안의 네 딸들(신일숙), 달의 아이(시미즈 레이코), 나츠메 우인장(미도리카와 유키), 시티헌터(츠카사 호조), 3월의 라이온(우미노 치카), 셜록(권교정), 씨엘(임주연) ...

8월 말부터 읽어온 걸 장르 구분 없이 나열하니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요새는 자꾸 19세기 말~20세기 중반(대략 2차대전 직전쯤. 책을 집게 된다. 단순 여흥 거리로 읽는 것도 있고 필요해서 읽는 것도 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작가 나이대가 좀 엇비슷하다 아무래도 지난 10년 간 부실했던 독서를 보충하려다 보니 일단 근대 코너부터 돌게 되는 듯. 에코가 한 얘기던가? 책이란 결국 다른 책에 대한 인용이라서, 이 책에 나온 얘기를 이해하려면 그 전 대 책을 안 읽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 이런 걸 잃어버린 10년 복구라고 하는 거다. 지난 10년간 마음대로 못했던 전국구 심즈를 해먹는 걸 일컫는 게 아니라. 

어제는 대략 얼떨떨했다. 두서없이 써내려가다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블록 촉감이 떠올랐다. 누워서 벽지 잔물결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던 게 떠올랐다. 정말, 숟가락 젓가락 한 짝 씩만 있어도 언제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순간 그 감각이 되살아났는데, 그때부터 내 자신이 감당이 안 됐다. 쓰고 있던 포스팅을 제대로 정돈할 수 없을 만큼 먹먹했다. 눈을 가린 손 틈에서 눈물이 찍찍 터져나왔다. 꼭 수도꼭지를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어제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가 그렇게 ... 음. 대체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건 너무 어렵다. 그렇게 눈물을 찍찍 뿜어내며 울게 만든 게 구체적으로 도대체 뭘까. 슬픈 것도 같고 아픈 것도 같았는데 당황스럽게도 슬프고 아플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대체 뭐가 슬프지? 그냥 어렸을 때 놀던 기억을 떠올린 것뿐인데? 그런데 그 블록 촉감이, 어린 애 한 주먹 안에 빠듯하게 들어오던 육면체 귀퉁이가, 그게 너무 뻑뻑하고 먹먹했다. 그걸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 때문인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정작 그 블록을 갖고 노는 어린 시절의 나는 즐겁게 놀고 있는데 그 감각을 퍼올린 나는 울게 되고 울고 싶었다. 어. 그래. 그러니까 울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울 일이 뭐란 말인가? 


운 일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수차례 해줬던 말들을 어제 좀 체감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건 다 다른 차원이고, 나 같은 벽창호 고집쟁이는 결국 세 번째 단계가 되지 않으면 1, 2단계를 언제든 씹어 버리더라. 어. 벽창호. 나 벽창호 맞더라.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귀 막고 눈 감아 내 편견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어. 그러니까 열등감. 그 말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분부터 머릿 속 둑이 무너진 것 같아. 지금까지 계속 난 못 들었어 못 봤어 없는 걸로 칠래 하고 담벼락 너머에 쌓아둔 것들이 와르르 벽 너머로 쏟아진 것 같아. 그래. 어제는 그것 때문에 쇼크 상태에 빠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음.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 내면의 문제 대개는 아마 자존자애감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많이 걸려 있을 거다. 내 문제도 결국은 그거였고. 날 사랑할 수가 없다는 건데. 여기저기서 자신을 아낄 줄 모른다, 자존감이 너무 떨어진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지만 나로서는 도대체 그게 어쨌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진짜 쓰다 보니 몰려오는 중이함에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정말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뭐 어떤 감각인건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나의 '스스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언제나 사후약방문일 수 밖에 없었다. 그야 행동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문제를 인정하지 못하니까. 내가 보는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 난 의식적으로 자해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골치 아픈 문제 잡고 늘어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둥글게 둥글게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내 생각같지가 않았다는 거. 무의식으로 내 발에 쇠고랑을 채워놓은 채 불붙인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다든가, 스스로 일을 골치 아프게 꼬아놓고는 오로지 고집 하나로 골머리를 썩히길 잘한다든가, 네 네 응 응 하면서도 사실은 한 치도 양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아주 아주 최근에야 알았다. 외부의 내가 '네 네, 응 응' 하는 것도 사실은 내부의 나의 자학, 내부의 나의 고집(난 내 주장따위 할 자격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거였어. 게다가 내부의 나는 궁극적으로 지금 처한 상황을 흘려 넘기고 '못난 나-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를 유지하려고만 하지 남이 좋게 말해주든 따끔하게 찌르든 그걸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었던 거야. 아......................OTL
'남에게 숙여주는 사람, 맞춰주는 사람, 뭘 하든 잘해봤자 B급인 사람, 제 의견은 분명 남들의 의견보다 보잘 것 없을 테니까 남의 말을 듣는 게 나은 사람'이 컨셉이어서 그렇게 한거지 정말로 숙인 게 아니었던 거다. 그게 남에 대한 이해든, 존중이든, 수용이든, 굴복이든 어떤 의미에서라도...... 어머니...OTL

자체 점검범위가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 느끼기로는 결국 문제는 스스로가 그리는 자신을 바꾸지 않고서는 해결 안 날 거 같더라. 내가 날 좋아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 '나는 이런 것도 못 하고 저런 것도 못 하고 그런 것도 못하고 아무튼 못 하는 것 천지라서 좋아할 가치가 없다'라는 것도 다 핑계다. 내가 만든 '못난 나'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두른 장갑같은 거, 내가 내 스스로에 찌뿌린 오물같은 거란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주변 모두에게 미안하단 말을 안할 수가 없다. 그냥 툭 던진 말이든 진심을 담아 전해준 말이든, 지금까지 난 '자신을 아껴라'는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 왜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고.; 그나마 나아진 수준의 사고라는 게 '내가 안 그러면 남들이 피곤하니까.'였다니. 아 이건 진짜 ... 어떠케 이러케 이기적일 수가 있지?  ... 이건 그냥 아...아오 혈압이............. 아놔... 뭐야 이건... 진짜 이러고 잘도 스물일곱해를 살았군?... 대단한데?........ 어이 없어...; 

 여러분이 해준 말을 그렇게 낭비해버리고는 또 힘들다고 징징대서 미안합니다.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준 호의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가족들. 1n년 지기들. 멤버 여러분. 학부시절 친구들. 대학원 동기들. 그외 지금은 거의 연 끊고 있지만 한때 얼마간이라도 나랑 긴 대화를 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나랑 어떻게 엮이고 어떻게 헤어졌든 정말 미안해요.




이건 그냥... 아놔... ... .... 아 왜 스물일곱 처먹어야 깨닫는 거예요. 어뜨케 이러케 스스로를 모를 수가 이써!
 ....근데 정말 그렇게 살아왔던 게 나란 인간인거지. ... 어 진짜 우리존재 파이팅이다... 빵상빵상...  

새삼스레 날 상담한 상담선생이 참... 상담선생이 했을 고생이...안타깝다. 오죽하면 방학기간에 진행했다고는 해도 남들 두 배나 붙들고 있어줬겠어. 슨상님 고생 많아써혀... 게다가 가장 열받는 건 이 내담자가 도대체 진척을 안 보인다는 거지.... 이건 뭐... 어떻게 이렇게 밀랍의 소라껍질을 만들고 그 안만 빙빙 돌 수가 있냐? 지겹지도 않더냐?.... 


...내가 요 몇달간 뭐 대단한 거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책 좀 읽고 단전호흡 좀 하고 거울 속의 나 좀 둘여다 본 것 뿐인데... 아니 진짜 좌향좌 한번만 했어도 답이 뻔히 있었는데... 그걸 내버려두고 아 왜 난 계속 이 모양이에요? 이러고 있었으니... 지가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하고 있으면서 왜 이러냐고 그러면 남들이 뭐라고 그래?....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만. 왜 내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건지는 몰랐어. 어. 내가 날 싫어한다? 정이 없다는 건 알았는데 그래서 왜 정이 없는지, 그게 뭐가 문제인건지는 몰랐던 거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거지. 왜냐! 정이 없으니까! 음허하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엄마ㅠㅠㅠㅠ어우후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엄마가 스물일곱해 동안 병신을 먹여 살렸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말투가 상당히 감정적인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 속에서 감격의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은 굉장히 조용하다. 지금 알게 된 건 내가 사랑할만한,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축하할 만한 소식이 아니다. 내가 정말 존중할만한 구석이 없는, 버러지같은, 앞으로도 엄마 말 마따나 남의 똥구멍이나 쫓아다닐 인간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계속 '어떤 틀'에 맞춰 스스로를 설명하려 했었고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걸 안거다. 그것도 그냥 이미지의 하나인 거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거. 그런 이미지를 누구에게서 따오고 어떤 갈등에 의해 강화시켰는지, 나와 내 성장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날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었다는 걸' 알게 된 것 뿐이다. 그리고 이 말을 죽 치면서, 사실 이미 모두가 나한테 해주고 있었던 말이었다는 걸 깨달으니 부끄러워서 손발이 막 오그라든다.
왜 한국 말을 못 알아 들었던 겁니까. 으아아... 왜 국문관데 한국말 못 해요... 지금까지 잘도 지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구나.; 






--------------------------- 위와는 별개 이야기

나는 사람이 좋다. 사람들이 살려고 하는 자잘하고 구질구질한 행동들 하나 하나가 너무 사랑스럽다. 생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급한 놈들(얄팍한 정신에 혓바닥만 거창하게 놀리며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는 당당한, 얼마나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으면서 조금이라도 그 힘을 다른 사람이 나눠가지는 건 못 참는 구역질나는 짐승새끼들)을 제외한다면, 어느 정도의 위선과 어리석음도 좋다. 약함은 분명 존중하고 보호할만한 것이다. 우리의 가장 위대하고 선의있는 행동들은 우리의 약함에서 기반한 것들이 꽤 많다. 나는 약한 사람이 좋고, 제 약함을 아는 사람을 존경하고, 제 약함을 떨쳐내지 못하면서도 끝내 제가 가야 할 곳을 향해 거꾸러지는 사람에 환장한다. 그리고 결국 사람이 제 갈 곳을 정하게 되는 요인 역시 약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큰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지. 그걸 피하려 하든 뛰어 넘으려 하든 부정하든 긍정하든 말야.  어. 확실히 내 이상형은 이거야. 내가 인정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내가 반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