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르네전

Playing 2012. 6. 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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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utterfly

Swimming/etc 2012. 5. 18. 12:36







5월 1일, 5월 17일 관람. 세종문화회관. 르네 갈리마르 역에 김영민 릴링 역에 정동화 / 김다현 


- 사랑하던 여자의 실체를 알았을 때 그저 한 남자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것만은 직시할 수 없습니다. 


이 극은 과연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가. 한 남자의 환상을 유지시킨 것은 송의 지독한 속임수였나, 그의 집요한 욕망이었나? 시커먼 열등감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정신, 무너지는 현실. 갇힌 몸. 작은 창으로 햇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비웃음. 그 와중 홀로 선명한 그의 나비. 



무대는 몽환적이다. 시작은 몸은 감옥에, 정신은 제가 만든 새장에 갇힌 르네 갈리마르의 자기 소개. 그의 좁은 행동반경 안에는 온갖 환상들이 겹겹이 일어나고 뒤섞인다. 극에 대해 기본적인 소재 '남자가 남자를 속이고 20년간 아내 노릇을 했는데 알고 보니 스파이. 프랑스인과 동양인' 밖에 모르고 갔기 때문에 르네를 보고 꽤 놀랐더랬다. 난 르네가 훨씬 멋지고 탐미적이고 여유있는 고위층 서양 남자일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 르네는 처음부터 적나라했다. 결정적인 실패를 겪기 전부터 그는 왕따였고 하급공무원이었고 발기부진이었다.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약자이자 배신당한 편이었다. 심지어 극 후반부 변신(...)한 릴링의 환상을 쫓아낼 때에도 그는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듯 하다. 

반전은 없었다. 파멸은 송과 만났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길이었다. 다가오는 끝을 치명적인 환상으로 덮어쒸우려던 한 남자의 몸부림만 있을뿐.


 초반 이야기 전환은 좀 당황스러울 만큼 빠르게 진행된다. 어린 시절에서 르네가 중국으로 갈 때까지의 과정과 오페라 나비부인에 대한 환상이 번갈아 튀어나온다. 모두 필요한 이야기꼭지들이고 재미있는 연출이 많다. 르네의 나비부인 연기를 무대 오른쪽 위에 나비부인으로 분한 송이 따라하는 게 특히 좋았음. 

  하지만 역시 어린 시절 르네랑 대학 시절 르네랑 나비부인이랑 청년 시절 르네 얘기 오가는 사이의 텀이 너무 짧다. 나비부인 이야기에 좀 집중을 하려다 보면 쑥 르네 본인의 회상으로 점프를 하는데 그 회상시점이 아까 나온 회상시점하고도 또 다르고. 배우가 말그대로 여기저기로 점프를 하면서 진행하는데 약간 따라가기 힘든 게 사실임. 


아. 난해한 건 아니다. 급박한 거지. 르네의 기본 욕망을 설명하지 않고는 극을 끌어나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싶지만서두.'ㅠ' ㅇㅇ 



하지만 송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오르고 그 후부터는 쭉 집중하게 된다. 그들의 만남이 몇십년에 걸쳐 일어났기 때문인지 전환도 여유로운 편. 르네는 송을 아름답게 회상하지만 공연은 아름답지 않다. 르네가 주인공이니까.ㅇㅇ 르네는 아름답지 않거등. 추하거등. 르네 왈 가장 추하고 별 볼 거 없는 놈들이 가장 아름다운 걸 원한댔거등. 관객이 몰입하게 되는 건 아름다운 송이 아니라 송을 두고 벌이는 르네의 추태니까. 송은 그 추태에 이쁘게 두른 붉은 리본이지.


아무튼 김영민씨가 워낙 단단하게 르네를 꽉 잡고 있어서, 어느 릴링으로 보든 극 완성도나 안정감은 아주 좋다. 르네는 처음부터 끝까지 찌질하고 처절하다. 그의 나약한 정신은 자그마한 자극에 금방 굴복하고 거만하게 부풀어 올랐다가 마구 쪼그라든다. 송이 변신한 후 르네의 연기는 레알 무대를 쥐락펴락하는데. 그 힘이 죄다 외부가 아니라  제 내부를 붕괴시키면서 나오는 힘이라는 거. 매번 무대때마다 저걸 해낸다니 김영민씨 정말 대단하다... 저렇게 무너진 다음 자살씬 마무리는 폐허 위에 부는 바람 한줄기 같이 헛헛해서 참...'ㅠ' 네 좋다고요 ㅠㅠㅠ// 


릴링은 배우마다 성격 차가 좀 있는데, 정동화는 좀 더 고고하고 김다현은 아름답고 순순하다.(흑흑 비쥬얼적 현실이란 것이 한몫을 안한다고 할 수가 업 ㅅ는 것이... 정동화의 어깨란 것이...) 재미있는 건 변신 이후인데, 정동화의 송은 나비일 때 내내 도도하고 냉정하고 흐트러지지 않다가 변신 후 오히려 매달리고 유혹하려 든다. 김다현의 송은 변신을 하고 나면 내내 굉장히 쿨다운. 르네를 덮(...)칠 때도 '진짜 힘을 가진 사람'이 야단을 치는 것 처럼 보임. 잘못을 일일이 지적해서 르네 눈에 들이대주는 듯 함. 두 릴링이 변신 후 르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다른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정동화 송 쪽이 마음에 든다. 움직임 완성도도 정동화씨 쪽이 좀 더 잡혀 있는 듯 하고. 색이 짙음. 두 공연 모두 좋았지만 김다현을 보고 나니 정동화 공연이 많이 고프더라는. 뭐 그런 이야기. 


아. 그러고보니 어제(17일 공연)는 로비에서 싸인회가 있었음. 김영민씨 정말 맑게 생기셨더라.ㅠㅠㅠㅠ 아니 공연 보러 가기 전 트위터에서 한참 제레미 아이언스 보기 황송한 남자라고 핥았는데 그런 사람을 또 보다니 뭐지 사실 '보기 황송한' 인종이 생각보다 흔했던 거냐 아님 내가 싼 여자인 거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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