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내가 돌아왔다
Walking
2011. 10. 10. 22:14
아홉살 때의 나는 알았을까? 이후의 내 삶이 제가 과제로 낸 동화처럼 될 거라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긴다. 나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주인공 은행나뭇잎이 얼마나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나뭇잎이었는지, 구름과 햇살과 바람이 그 나뭇잎을 어떻게 아꼈는지, 나뭇잎이 노란 나비를 발견했을 때의 경탄, 맹목적인 동경, 조바심, 누렇게 말라 죽은 나무를 보고 어떻게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지, 그렇게 말라 죽기 직전 상태에 들어갔을 때 둘러본 주변이 어떠했는지.
그걸 써내려갈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기억한다. 나비와의 만남과 마른 나무를 보고 흉내내는 부분을 쓸 때는 이게 혹시 외모 콤플렉스 이야기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뭇잎이 말라 죽은 나무를 흉내내는 건 예뻐지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손이 아프고 기운도 빠져서 퍽 맥없이 끝내버렸다. '나뭇잎이 거의 다 말라죽어가는 상태에서 되살아나는 게 가능한가?' 하고 나름 개연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3학년때도, 4학년때도 연말 자유과제에는 그 이야기를 써냈다. 다른 이야기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지간히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대략 18년 쯤 지나 돌아보니 내가 정말 그 이야기대로 살고 있는 거다. 조바심에 눈이 멀어 다른 나뭇잎들이 물들 때까지 눈감고 귀막은 채 말라비틀어져 가다가 극적으로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다시 자라기 시작한 나뭇잎. 지난 약 10년이 딱 그런 식이더라.
난 지금 그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이르렀고, 거기서 다시 아홉살 때로 돌아왔다. 아홉살이 좀 심하다면 한 열두세살 쯤, 아무튼 10년 이상 전인 건 확실하다. 아직 세상의 색색깔이 살아있고, 내 감정과 감각이 연결되어 있던 때. 나는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하루 하루 내가 그때의 나와 겹쳐지고, 그때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가는 게 느껴진다. 매일 행복해서 막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정말 행복하다. 이야기가 귓가에서 근질근질거리고 머리에서 팍 팍 튀어오르고 가슴에서 부글부글 끓고 진짜 행복해 죽겠다. 지나간 10년 중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심신 양면 모두. 이젠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고, 평생 뭘 상대해야 할지 안다. 그리고 아마 난 평생 그걸 할 거다. 평생 한 가지 일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무엇을 하든 결국 내가 하고 있는 건 그것일 거다. 내가 공부를 하든,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대여점 아르바이트를 하든, 신문을 돌리든, 껌을 팔든, 설령 평생 침대에만 누워 있더라도 의식이 있는 한 그걸 할 거다. 그리고 의식을 잃더라도 계속 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