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기누스 [숭고론] 44장

Growing 2011. 7. 10. 15:19
여담: 문학 쇠퇴의 여러 가지 원인 / 천병희 역 / 문예출판사 

적어도 이천년 전과 현재의 차이는 바늘귀 하나 정도 뿐이라는 증거.ㅇ<-<



(1)
- 전략 - 
이는 어떤 철학자가 일전에 내게 제기했던 문제요.  "나도 놀라지만" 하고 그는 말했소.
"많은 다른 사람들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오. 어째서 우리 시대에는 탁월한 설득력이 있고 공적 생활에 적합하고 약삭빠르고 다재다능하고 무엇보다도 우아하게 글 쓸 줄 아는 재사들은 태어나도 진실로 숭고하고 위대한 인물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거나 극히 드물게 태어나는 것일까 하고. 우리 시대는 전세계적으로 문학의 기근에 시달리고 있소.

(2) 우리는 과연"하고 그는 말을 이었소. "민주주의는 위대한 인물들의 상냥한 유모이고 위대한 작가들은 민주주의와 함께 번영을 구가하다가 민주주의와 함께 죽었다는 진부한 설명을 믿어야 하는 것이오? 그들의 주장인즉 자유는 고상한 인간들의 사상과 희망을 키워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상호 경쟁심과 상에 대한 야망을 불러일으킬 능력이 있다는 것이오. 

(3) 게다가 국가가 제공하는 상들에 힘입어 연설가의 지적 능력들은 실천에 의하여 예리해지고 말하자면 마찰에 의하여 불붙어, 당연한 일이지만, 자유로운 국가 안에서 자유롭게 활활 타오른다는 것이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려서부터 정당화된 예속 아래서 사는 법을 배웠고,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이 부드러울 때부터 똑같은 습관과 관습이라는 포대기에 싸인 채 자유라는 문학의 더없이 아름답고 풍요한 샘물을 맛볼 수가 없었소. 그래서 우리는 결국 숭고한 아첨꾼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오." 

(4)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다른 재능들은 노예들에게도 주어지지만 노예는 아무도 연설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오. 그것은 자기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자기는 말하자면 갇혀 있다는 생각이 금세 그를 엄습하기 때문인데, 그는 습관의 되풀이되는 타격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오.

(5)  호메로서의 말처럼 "예숙의 날은 미덕의 반을 앗아가버리기 때문이오. 그래서" 하고 그는 말을 이었소. "내가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퓌그마이오 족 또는 난쟁이족을 가두어두는 새장들이 그 안에 갇힌 자들의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을 옭아매는 사슬들로 그들을 불구자로 만들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예속도 설사 그것이 정당화된다 하더라도 영혼의 새장과 공동의 감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오."

(6) 그래서 나는 그에게 대답했소. "친구여. 언제나 현재 상황을 헐뜯는 것은 쉬운 일이며 또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위대한 인물들을 망쳐 놓는 것은 세계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욕망들을 움켜잡고 있는 이 끝없는 전쟁과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점거하여 이를 뿌리째 파괴하고 있는 열정들일 것이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탐욕스런 병인 금전욕과 향락욕은 우리를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있소. 아니. 그것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익사시킨다고 해야겠지요. 금전욕은 우리를 시들게 하는 병이고. 향락욕은 가장 비열한 것이오.

(7)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무한한 부를 그렇게 존중하고도, 아니 신격화하고도 어떻게 거기에 수반되는 악들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소. 제어되지 않은 무한한 부에는 사치가 가까이서 사람들 말마따나 보조를 맞추며 뒤따르기 때문이오. 부가 도시들이나 집들의 문을 여는 순간 사치도 함께 들어가 그 안에서 살지요.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생활 속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되면 철학자들 말마따나 그곳에 둥지를 틀고는 곧 새끼를 치기 시작하는데, 탐욕과 교만과 허영이 곧 그것이오. 이것들은 서자가 아니라 그것들의 적자들이오. 그리고 이들 부의 자식들은 성년이 되면 곧 우리 마음속에 사정없는 폭군들인 오만과 무법과 파렴치를 낳게 되지요.

(8) 이것은 불가피한 과정이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위를 쳐다보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의 명성에 유념하지도 않을 것이오. 이러한 악덕들이 순환하는 가운데 인간들의 삶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정싱늬 위대성은 이울다가 사라지며 더 이상 추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인간들은 자신들에게서 필멸의 부분은 존중하고 불사의 부분은 개발하기를 게을리하기 때문이오.

(중략)

(11) 간단히 말해서" 하고 나는 말을 이었소. "오늘날 인간들의 자질을 망쳐놓는 것은 나태이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소. 우리의 모든 노력과 기도가 지향하는 것은 칭찬과 쾌락이지 추구하고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행이 아니기 때문이오."


(하략) 

중략한 9번의 경우에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좀 있었고 예시 설명이라... 애초에 숭고론에서 말하는 미=선 개념이 오늘날 미 개념하고 같은 것도 아니고. '위대한 정신'이란 말을 좁게 해석하면 좀 답답해지는 경향도.... 롱기누스의 문제 제시는 그 자체가 쩔어준다기 보다는 2000년 전에도 자본주의 세대 문제같은 얘기가 나왔구나 싶어서. 뭐. 저때 상황과 현재 상황이 완전히 겹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걸 굳이 타이핑하게 된 계기는 11번 파트.  <
오늘날 인간들의 자질을 망쳐놓는 것은 나태이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소.> 특히 '모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소.'라는 말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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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 글의 취약점

Growing 2011. 7. 10. 14:03


- 소재에 비해 평이한 플롯 

- 인물 형성. 묘사

-  인과를 보여주는 것에 너무 집착함. 너무 세부적인 설명. 서사에 자신감이 없을 때 두드러짐.

- 시놉시스 설명이지 소설이 아닌 부분이 많음. 이건 윗 문제와 연관됨

- 마무리 취약

========================

이틀만에 써갈긴 탓이긴 하지만. 확실히 글을 짤 때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게 느껴진다. 그게 느껴지니까 더욱 이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게 되는 거지.
머리에 찬물을 좀 끼얹어야겠다. 내가 보기에도 바보같고, 엉터리고, 엉망진창인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겠음. '매끈하게 잘' 이 아니라 ' 하고 싶은 대로' 땡기는 대로. 깡 좀 부려봐라. 결국 그거 빼면 니가 가진 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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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불놀이]

Growing 2011. 7. 7. 21:42

국문학 전공하겠다고 집안 등골을 빼먹고 있는 주제에 과연 리포트나 쓸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문학에 대해 아나 하는 회의가 엄습하고... 사실 진작에 엄습했는데 내가 게으름 피운 게 맞지. 더 미뤘다간 레알 망하겠기에 7/80년대 작품 중심으로 읽기 시작함. 되도록 정독. 예전에 읽었던 것/ 읽지 않았던 것 가리지 말고.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다 읽고 까자는 마음으로 잡기 시작. 첫 타자 불놀이 


한국 리얼리즘 문학이란 뭔가. 혹은 7,80년대 작가들의 세계관은 - 그리고 그 세계관을 형성하는 스타일에 대한 의식은 대체... 음. 

뭐 거창하게 가지 말고 간단히 생각한 대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이건 썰 몇 개를 갖다가 늘어 놓은 것 뿐이지 소설적 형상화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글 아닌...가? 엄.... 당대의 구구절절한 사연 몇 가지를 끌어 모아 병치시킨 것 이상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라...나?... 응?...
 
근현대를 극적으로, 끔찍하게 극적으로 겪지 않은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극점에 눌려 버둥대게 된 삶에 대해 작가들이 평생 들쑤실 업보로 여기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하지만 한국의 사실주의적인 문학 중 정말 걸작이라고 할만한 게 있는지는 의구심이 솔직히... 안 든다고 하기가... 좀....; 

예술을 위한 예술은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만, 문학은 언제나 현실에서 한발짝 쯤 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예술보다 하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예술이 현실과의 연계없이 독자적으로 자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절대 아니고.
다만, 가상이니까. 가상이기에 현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문학 - 특히 서사문학-의 제시 능력이란 그런 데서 나오는 걸 거다. 현실을 쫓아가서 그대로 갖다 붙여 놓기에 바빠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현실을 반영하되, 이 현실에 속하지 않은 사람마저도 작품 속 세계를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구체화가 되어야지.; 문학의 거울은 반드시 깨어지거나 왜곡되어야만 한다. '다른 실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 적어도 불놀이가. 과연 한국 근현대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한국 근현대사를 아는 사람에게마저 지루하다. 단막 단막 인용된 부분을 잘라 볼 때에는 몰랐는데 죽 이어서 보니 진짜... 차라리 잘 쓰인 근현대사 논문을 읽는 게 더 소설적일 것 같다. 물론 사료를 문학 대하듯 하면 안되지만... 

예전에 교수님이 농담으로, 한국에서는 리얼리즘이라고 글을 썼는데 외국에서는 초현실주의 문학이라는 소릴 듣는다고 ㅋ 그만큼 우리나라가 미쳐 돌아간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음... 외국 평과 우리나라 평(혹은 작가의 의도)가 엇나가는 건 저런 문제도 있지 않나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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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오 왈

Growing 2011. 6. 28. 10:56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할 수많은 괴이한 일이 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으며, 그의 입에 또한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알릴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고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와 느낌이 생기면, 남의 술잔을 빼앗아 자기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에 뿌려 씻어내고 마음속의 불공평함을 호소하여 기이한 것을 찾는 사람을 천년만년 감동시킨다. 그의 글은 옥을 뿜고 구슬을 내뱉는 듯하고, 은하수가 빛을 발하면서 별들이 하늘에 찬란한 무늬를 만드는 듯하다. 마침내 스스로도 대단하게 여겨서 발광하여 크게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니, 멈추려야 멈출 수가 없다.


  차라리 이를 보거나 듣는 사람들이 격분하여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글을 쓴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게 할지언정, 차마 끝내 명산에 감추거나 물이나 불 속에 던져 사장시킬 수는 없다.....>


명말기 키워 탁오선생의 쩔어주는 한 마디. 어. 제일 마지막 문장에 발려서 이러는 거 맞음. 안타깝게도 정확히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긔. 저술 안인지 그냥 누구한테 보낸 서간에 남은 기록인건지. 인용한 책은 돌베개에서 나온 이탁오평전. 

사실은  내가 이 인간 존나 미친 ㅋㅋㅋ ㅋㅋㅋ ㅏㅓ미ㅣ아니ㅏ으아ㅏㅏㄱ 한 건  文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주변 학자들과 주고 받고 하면서 튀어나오는 막말들임. 아래는 경전향에게 보낸 편지 중, 경전향의 아들 경극명에 대한 이야기.

부연설명 해보자면 경전향은 당대 학계 메이저임. 집안도 출중하고 관직도 남부럽지 않은 직위까지 올라갔음. 탁오는 개마이너임. 종9품이었나로 시작해서 평생 발령받는대로 떠돌아다니다가 53세에 정 4품이었나로 관직 물러남. 그 와중에 자식들 때로 굶어죽고 아주 그냥 제대로 개고생... ㅇㅇ.
그리고 경전향의 동생 경전리와 탁오는 절친임. 경전리가 불러줘서 탁오가 몇년 경전향네 얹혀 살았음. 그 와중에 경전향 아들 극명이 탁오한테 영향을 받음. 

그러니까 지금 신세진 친구 형님에게 보낸다는 편지.ㅇㅇ


"그뿐만이 아닙니다. 극명이 초탈을 좋아하여 자손을 낳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분명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도리어 말을 돌려 비호하며 '우리 집 애들이 초탈을 좋아해서 대를 이을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어서 엉뚱하게 이 사람 이탁오를 나무라며 '이탁오 그 사람이 초탈을 추구하여 후손을 잇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내 자식이 본받을 뿐이다' 라고 말을 하다니요.

아니! 자식 낳고 손자 낳는 것이 무슨 일이기에 그것까지 남을 따라서 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또한 초탈하면 자식을 낳으면 안 된단 말입니까? 아들이 초탈을 좋아해서 아직 손자가 없다고 칩시다. 공은 초탈한 사람이 아닌데 왜 아들을 많이 낳지 않았습니까? 저는 아들을 넷 낳았습니다만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고, 늙으니 기운도 없어서 천명이라 생각하고 위안을 삼는 것이지, 사실 일찍이 초탈한 적이 없습니다. 공은 어째서 저를 심하게 무고하십니까?"


"또한 그뿐만이 아닙니다. 극명이 초탈을 좋아하여 과거 급제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분명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도리어 말을 돌려 비호하며 '우리 집 애들이 초탈을 좋아하여 평상의 자질구레한 집안일에 달라붙여 신경 쓰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어서 또 엉뚱하게 이 사람 이탁오를 나무라며 '이탁오 그 사람이 초탈을 추구하여 공명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집안 애들을 해친다'라고 말을 하다니요.

아니! 저 이탁오는 29세 때 관리가 된 뒤로 53세에 이르러서야 그만두었습니다. 어디 눈곱만큼이라도 초탈한 적이 있습니까? 극명은 해마다 시험을 보러 북경에 올라갔으니, 어찌 공명을 가벼이 여긴 적이 있습니까! 시운이 아직 이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역시 굳게 참고 계속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부친의 성미가 급하여 과거 준비를 공들여 하지 않은 탓으로 돌리니, 이는 부친의 욕심이 너무 조급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공들이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하나하나 당선되어야 한다면, 그것도 일찌감치 당선되어야 한다면 이백과 두보처럼 훌륭한 문장이 탈락될 리도 없고, 저와 공이 어떻게 요행으로 지목되는 일도 없었겠지요."

 경전향에게 보내는 편지가 몹시 김. 그리고 사실 포인트는 이 앞 쪽에서 도학자입네 하고 자꾸 지한테 선생질하려는 경전향을 열라 씹어대는 거. 니가 선생질을 그렇게 해대는데 그럴 자격이 있음? 니가 진짜 도학자긴 함? 이런 내용을 저런 말투로 존나 비비 꼬아 가며 씹어대는데 아주 예술임. 그런데 난 거기보다 저, 어쩌면 사소한 문제인 저 아들 얘기가 더 쩔더라고. 오히려 사소해서 그런 거 같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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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中

Growing 2011. 6. 10. 09:52
152~153
  3년 동안의 사업가 활동에서 얻게 된 10만 프랑의 빚은 그에게 시지포스의 돌이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근육을 거의 망가뜨리면서 이 돌을 꼭대기로 굴려올리곤 했지만, 언제나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생애 최초의 이 잘못은 그를 언제까지나 채무자로 남도록 운명지었다. 자유롭게 창작하고 종속 없이 산다는 어린 시절의 꿈은 절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업장부의 이런 냉담한 결산표에 비해서 견줄 데 없는 이익이 나타나고 있다. 사업가로서 잃어버린 것을 작가이며 인생의 서술자인 발자크가 더 높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전혀 다른 화폐로 다시 벌어들였다. 현실의 모순과 끈질기게 맞서 싸운 이 고단한 3년은, 전에는 오직 창백하고 삶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을 모방적으로 묘사하던 낭만주의자에게 일상의 연극을 담은 현실세계를 보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물질주의 시대에 돈이 가지는 막강하고 악마적인 의미를 체험하였다. 파리의 작은 가게들과 큰 사무실에서 매순간 벌어지는 어음과 채무증서를 둔 싸움들, 술책들과 기만들은 바이런의 해적선과 윌터 스콧의 고귀한 기사들 못지않게 힘겨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노동자들과 노동을 하고 고리대금업자들과 싸우고 절망적인 경계심을 품고서 물품공급자들과 거래를 해봄으로써 그는 자신의 동료들인 빅토르 위고, 라마르틴, 알프레드 드 뮈세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인 맥락과 모순들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이들 다른 작가들은 낭만적인 것, 고귀한 것, 위대한 것만을 추구하였던 반면, 발자크는 인간 속에 감추어진 작지만 잔인한 것, 추악한 것, 감추어진 폭력을 보았고 묘사할 수가 있었다. 

166
  발자크는 최초의 진짜 소설을 위한 주제를 이미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의 수많은 종이들 사이에는 소설 <사내들(Le Gars)> 을 위한 스케치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프랑스 공화국에 맞선 방데 지방의 봉기에서 얻어온 일화를 묘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높아진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전의 역사 소설들에서 역사적 사실이 얼마나 사실과 맞지 않고 결함 투성이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현대 쪽으로 다가가려는 사람은 주인공 주변에 베낀 배경을 세워서는 안 되고, 주변세계를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보아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전에 그가 중세를 배경으로 소설을 끄적거리면 고작해야 교수나 전문가만이 사실에 맞지 않는 것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방데의 싸움은 시대적으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데다가 푸른 제복 군대나 아니면 카두달의 농부군 사이에서 함께 싸웠던 수많은 목격자들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래서 발자크는 이번에는 근본적으로 작업에 착수하였다. 도서관에서 시대의 회고록들을 빌려 오고 군대의 보고서를 탐구하고 광범위한 개요를 작성하였다. 처음으로 그는 경박하고 낯선 문필가들에게서 베낀 프레스코 기법이 아니라,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참된 세부묘사가 위대한 소설에 설득력 있는 생명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진실성과 성찰성 없이는 예술이 생겨나지 않으며 인물들은 직접적인 주변세계, 대지, 풍경, 그리고 시대의 환경과 특별한 공기와 결합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로 실제로 적용할 수 없는 법이다. 자신의 첫작품과 더불어 사실주의자 발자크가 시작된다. 


303~4
  그는 자신을 알게 된 이후로 다른 사람들과 혼동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제 성숙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완전한 감각을 지니고서 자기 정도의 소설가에게는 인류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들,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인 문제들을 다룸으로써 소설을 높은 예술로 승격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는 사교계 안에 머물러 그 법칙을 따르고 그 형식에 동화된 사람들에 대하여, 중간 수준의 이해력을 넘어선 인물들을 마주세우려고 하였다. 그런 사람들은 범속한 사회적 틀을 박차고 고독 속에 잠기거나 광기의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발자크가 자신의 삶에서 패배를 맛보았던 이 시대는 동시에 그의 극단적인 대담성과 무모함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작품들에서 발자크는 자신에게 가장 높은, 거의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제시하는 인물들과 마주선다. 그의 가장 높은 노력은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몰락해가는 사람들,  현실에 대한 관계를 상실하는 현상들과 천재드을 향한 것이다. 

..

 그는 <알려지지 않은 걸작>에서 완성의 욕구, 완전하게 만든다는 광증에 사로잡혀서 이미 완성된 것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다가 지나치게 노력한 나머지 재료를 망가뜨리는 화가를 그리고 있다. 음악가 강바라는 예술의 한계를 넘어서 자기 음악의 화음만 듣는다. 마치 루이 랑베르가 자신의 생각만 이해하고, 프레노페르가 자신의 환상만 이해하는 것과 같다. 


..

  다른 작품에서는 사회의 비판자이기만 하던 그가 여기서는 생산적으로 활동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획을 구상하려고 했다. 그는 실제 공간에도 창조가 있다는 것, 진짜 천재적인 인간은 점토나 색채나 생각으로 창작하듯이, 인간이라는 깨지기 쉬운 재료를 써서도 시간을 초월한 모범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


  이 두 작품 <시골 의사> 와 <세라피타>는 가장 높은 의미에서 성공하지는 못했다. .. 이 작품들은 너무 가볍게 쓰였다. 현실의 인간인 그가 종교적이 되고자 하면 그것은 하나의 가식이다. 무엇보다도 영원한 문제들의 최종해결을 가져올 작품들은 선불을 받은 다음 신문에 연재되는 식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루이 랑베르>와 <세라피타>는 그의 최고 작품들이 아니라 최고로 노력한 작품들일 뿐이다. 그는 천재만이 다른 천재를 묘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천재를 이해했고 묘사하였다. 그가 예쑬가로서 예술가를 묘사한 작품들만이성공적이다. 


306p
  순수한 이야기꾼과  사색가 사이의 한가운데 관찰자가 서 있다. 그의 진짜 토대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발자크는 '자기 시대의 역사서술자'가 된 소설들에서 완벽한 균형을 보여준다. 그의 최초의 큰 성공은 <샤베르 대령>이었다. 이 시기 그의 두 번째 성공은 <외제니 그랑데>였다.
  그는  이제부터 자기 작품을 지배할 법칙을 찾아냈다. 현실을 묘사하되 소수의 인물에 한정시켜 강렬한 역동성을 가질 것. 전에 그는 낭만적인 것 속에서 소설적인 것을 찾으려 하였다.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의상을 입혀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법 가죽, 세라피타, 루이 랑베르처럼 공상적인 것, 신비한 것에서 일손을 구했다. 이제야 그는 제대로만 보아낸다면 시대사에도 똑같은 밀도가 포함되어 있따는 것을 알았다. 주제, 장식, 꾸밈이 아니라 내적인 역동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사람들은 충분한 긴장감으로 가득 채울 수만 있으면 같은 효과를, 그것도 더 참되고 더 자연스런 방식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밀도는 채색이나 줄거리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사람에게서만 드러난다. 소재란 없다. 모든 것이 소재이기 때문이다. 
  <외제니 그랑데> 에 나오는 포도농사꾼 그랑데의 낮은 지붕 아래에는 <서른 살의 여자>에서 해적의 선식만 못하지 않은 긴장감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욕심 많은 아버지의 위협적인 눈길 아래서 사촌 샤를의 커피에 설탕 한 덩이를 더 넣어주는 것은 나폴레옹이 손에 깃발을 들고 로디 다리를 넘어 돌진할 때와 독같이 용기있는 행동이다. 

..

  <고리오 영감> 에서 열두 명의 어린 학생들이 살고 있는 보케 하숙집은 라부아지에의 실험실이나 퀴바에의 연구실 못지않은 밀도를 가진 중심점이 될 수 있다. 모습을 그려낸다는 것, 창작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제대로 보고, 집중시키고, 상승시키고, 최고의 것을 끄집어내고, 모든 정열적인 존재에서 정열을 드러내고, 모든 강인함 속에 들어 있는 허약함을 보고, 졸고 있는 힘들을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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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관련 나와의 약속

Growing 2011. 6. 1. 06:05

현재 몸무게: 약 59kg
목표 몸무게: 53kg + 유지 

1. 샤워는 되도록 매일 밤(수영간 날 제외). 호드는 아니지만 씻고 자자.

2. 수영은 내일 당장 재시작 (오늘 6월 1일) 

3. 수영간 날 제외. 무릎 상태 봐서 최소 30분 할 수 있으면 1시간 자전거. 

4. 근육 운동 매일. 윗배 50  아랫배 50 40 아령 50 팔운동 50 하늘자전거 15분. 앉을 때는 두꺼운 책 끼거나 아니면 정자세.

5. 언제나 허리 쭉 펴고+ 목운동 간간이 해주기 <- 이것만 해줘도 목 훨씬 덜 아픔. 

6. 과일은 하루에 두개만.

7. 배고프다고 탄수화물 계 간식 먹지 말 것. 같은 거면 야채로 먹을 것.  아님 차라리 단백질을 먹든가.

8. 배가 부르면 그만 먹을 것. 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지 말긔'3' 배도 안 고픈데 먹고 싶다고 다 삼키는 건 몸에 해로울 뿐임.

10. 다이어트 콜라 금지.  콜라 먹고 죽을 일 있니. 

11. 먹고 졸리다고 잠들지 말긔'3' 

12. 과제or마감 있는 날 제외. 늦어도 한 시에는 무조건 자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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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해부 - 노스롭 프라이 -

Growing 2011. 5. 23. 07:08

셸리는 '시는 그 자체의 힘을 규제하거나 제한하려고 하는 예술과 공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예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제까지 결코 없었다. 공존과 기술을 종속과 가치판단으로 대치시켜버리는 짓. '일부 시인들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모든 시인은 이러저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대치시켜버리는 짓은 결국 여러 가지 적절한 사실들이 아직까지 충분히 고려된 적이 없었다는 표시에 불과하다. 

술어 중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든가  '해야 마땅하다'든가 하는 말을 담고 있는 비평문은 현학이거나 동어반복이거나 둘 중의 하나로서, 그것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현학이 되든지 동어반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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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자들의 소외

Growing 2010. 2. 11. 21:55


- 하지만 정신적 상류계층과 경제적 상류계층 사이의 이러한 잠재적 갈등은 한동안은 전혀 표면화되지 않았는데 특히 예술가들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사회적 의식이 좀더 강했던 인문주의자들보다도 예술가들은 이 점에서 훨씬 느린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설령 그것이 외면화되고 표명되지 않는다 해도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었고, 모든 지식인계층은 문인이든 예술가든간에 사회적 근거를 상실한 '비시민적'이고 원한에 가득 찬 보헤미안 아니면 보수적.수동적이며 지배계급에 추종하는 아카데미션이 될 위험에 봉착했다.

이러한 양자택일 앞에서 인문주의자들은 상아탑 속으로 도피함으로써 결국은 그들이 피하고자 했던 두가지 위험에 모두 빠지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근대의 모든 유미주의자들은 이러한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적 근거를 잃으면서 동시에 수동적이 되며, 그들이 지지하는 사회질서에 적응하지도 못하면서 보수주의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독립의 의미를 무구속으로 이해하였고, 그들에게는 사회적인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은 바로 소외이며 현재로부터의 도피는 무책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묶어두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정치적인 활동도 삼갔는데, 이러한 그들의 정치적 수동성은 권력자의 위치를 현상태 그대로 굳히는 결과를 초래했을 따름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에 대한 '지식인의 배반'(trahison des clercs)이요, 결코 근자에 비난의 대상이 된 정신의 정치화가 배반이 아닌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현실과의 연관성을 상실하고 낭만주의자가 되는데 이때부터 그들은 현실세계로부터의 소외를 세계에 대한 경멸로, 사회적 무관심을 정신적 자유로, 그들의 비시민적인 사고방식을 도덕적인 독립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잘 아는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들에게 인생이란 다듬어진 산문을 쓰는 일이요 아름다운 시구를 짓는 일이며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 그들의 눈에 본질적인 것은 갈리아인들이 정복되었다는 사실보다도 갈리아 정복에 관한 주석서가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 행동의 미는 문체의 미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인문주의자들만큼 그렇게 멀리 동시대와 유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정신생활은 이미 밑바닥부터 뒤흔들렸고, 중세적 사회질서 속에 통합됨으로써 예술가가 누리던 균형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행동주의와 유미주의의 갈림길에 있었다. 아니면 그들은 이미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예술형식과 예술 이외의 목적의 결합이라는, 중세에는 소박하고 자명하며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던 사실이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는 상실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인문주의자들이 단순히 비정치적 문예애호가나 공허한 능변가 아니면 현실로부터 유리된 낭만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또한 열광적인 세계개혁자요 광신적인 계몽주의자이며 무엇보다도 미래의 승리를 낙관하며 지칠 줄 모르게 일하는 교육자였다. 르네상스의 화가나 조각가들이 인문주의자들로부터 힘입은 것은 그들의 추상적인 유미주의뿐만이 아니다. 예술가는 정신적 영웅이고 예술은 인류의 교육자라는 생각 또한 그들에게서 나왔다. 예술을 청므으로 지적.도덕적 교양의 한 요소로 만든 것은 바로 이들 인문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화사]. 110~111p 인문주의자들의 소외. 창작과 비평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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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혹은 비망 5 - 최승자

Growing 2009. 12. 17. 04:18


 

어떻게 잠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할 것인지.
이제 개들은 머뭇거리며 골목 안으로 꼬리를 숨기고
침묵은 오래도록 홀로 신음할 것이다.


잠으로 들어가는 저 입구가 두렵다.
검은 굴속에서 꿈은 또 물고늘어질 것이다.
꿈은 물어뜯고 물어뜯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악몽의 환각이,
두려운 생시의 파편들이 번갯불처럼 번쩍일 것이다.

한 테마의 연속적인 꿈들과
그 사이의 단절된 악몽의 환각들의 폭발.
잠으로 들어가는 저 입구가 두렵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독한 하이타이로
수백 번 빨아 헹구고 쥐어짠
거덜난 누더기 옷감처럼 나는 또다시
아침의 햇빛 속에서 내동댕이쳐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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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과제 토픽 3

Growing 2009. 12. 17. 04:17


해마다 유월이면 - 최승자


해마다 유월이면 당신 그늘 아래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내일 열겠다고, 내일 열릴 것이라고 하면서
닫고, 또 닫고 또 닫으면서 뒷걸음질치는
이 진행성 퇴화의 삶,

그 짬과 짬 사이에
해마다 유월에는 당신 그늘 아래
한번 푸근히 누웠다 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리허설 없는 개막이었던
당신의 삶은 눈치챘었겠지요?
내 삶이 관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오만과 교만의 리허설뿐이라는 것을.

오늘도 극장 문은 열리지 않았고
저 혼자 숨어서 하는 리허설뿐이로군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지켜봐주시겠어요?
(I go, I go, 나는 간다.
Ego, Ego,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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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출신 - 오규원

보행기를 처음 타보는
호모 사피엔스 출신 아이
으으아 으으아 환성을 지르며 발을 구른다
으으아 으으아 환성을 지르며 앉았다 일어선다
그때마다 보행기는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밀리고
앞으로,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사람과 멀어지고
다급하게 앞으로 손을 내밀지만
내미는 순간 더 뒤로 밀리고
앉는 순간 엉덩이의 무게가 뒤로 쏠리고
일어서는 순간 바닥에 닿는 다리의 힘이
무릎 관절에 꺾여 뒤로 쏠리고
뒤로 뒤로 보행기는 밀리고
좌우 벽에 부딪히고
가야 할 길을 접어 숨기고 있는
바닥과 멀어지고

으으아 으으아 ----
으으아 으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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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리- 강은교
바리데기, 가장 일찍 버려진 자이며 가장 깊이 잊혀진 자의 노래


그리움을 놓치고 집으로 돌아오네
열려 있는 창은
지나가는 늙은 바람에게 시간을 묻고 있는데
오, 그림자 없는 가슴이여, 기억의 창고여
누구인가 지난 밤 꿈의 사슬을 풀어
저기 창밖에 걸고 있구나
꿈속에서 만난 이와
꿈속에서 만난 거리와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의 얼굴과
그 얼굴의 미세한 떨림과
크고 깊던 언덕들과
깊고 넓던 어둠의 바다를,
어디선가 몰려오는 먹구름 사이로.

너무 멀리 왔는가.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리움이 저 길 밖에 서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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