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놀이공원

Swimming/OO 2009. 5. 26. 22:09
밤의 놀이공원에 갔다. 실내형식인데 안이 온실처럼 꾸며져 있는, 제법 식물이 울창하게 우거진 화단 사이로 길이 있고, 가끔 가끔 냇물이 가로 지르는 위로 나무다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별다른 조명도 없이 으슥했는데 어느샌가 마이스터즈들이랑 같이 걷고 있었다.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딱 그들다운 끊어지다 이어지고 이어지다 끊어지는 잡담을 한마디씩 주고 받았던 것 같다. 세츠나가 여느 때처럼 묵묵하게 길을 걷고 있고, 티에리아가 또렷한 목소리로 뭔가 핀잔을 줬던 것 같고, 록온이 뭔가 한마디 하고 다리를 건너가서 벤치에 앉았다. 아. 록온 상의는 색빠진 녹색바탕에 빨간색 무늬가 있는 셔츠였다.(하의는 다행히 멀쩡한 바지였다. 배바지아니었음.) 화단 건너 인공폭포를 보던 할렐루야가 킥 하고 비웃으면서 한마디 덧붙였던 것 같다. 그 뒤를 따라 알렐루야가 다리를 건너면서 얌전하게 할렐루야를 말려서, 그때서야 그녀석이 할렐루야인 줄 알았다. 알렐이는 얌전한 니트차림이었는데 할렐루야는 하와이안 셔츠 차림이었다.
알렐이 뒤로, 역시 좀 멀쩡한 옷의 록온이 나타났다. 아, 라일인가 보다 싶었는데 그 순간 벤치 쪽에 앉은 록온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각 잡히지 않은 자세로 늘어져 있던 록온이 툭툭 바지 털고 일어나면서 자기는 이제 그만 가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얼굴이 잘 안 보였다. 쫓아가서 팔을 잡고. 지금 가면 안된다고 붙잡았다. 뭔가 많은 말을 횡설수설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 - 왜 가냐. 가면 안된다고. (이러니까 저편 건너다보면서 가야 한다고 웃더라.) 너 얼마나 힘들었냐고, 들을 테니까 얘기하고 가라고. 혼자 그렇게 가면 안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을 하고 나서 이게 꿈이란게 인식되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러다가 깼다.

...

이불 개다가 잠들었는데 그 몇분 사이에 별 꿈을 다 꾼다 싶다. 창피하고도... 참. 어쩐지 묘하게 더블오와 현실 일이 섞인 듯한 느낌. 저 말은 사실 김닐보다는 그 분한테 더 해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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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Walking 2009. 5. 25. 07:25
어째서 이렇게 무력하단 말인가.
어째서 지인의 눈물에 같잖은 위로 한마디를 할 수 없단 말인가.
그저 나도 너와 똑같은 문제에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먼 하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절을 하는 순간, 머리 위 쪽이 섬뜩하고 멍해졌다. 영정과의 거리가 천길 낭떠러지처럼 멀게 느껴졌는데, 아 그런데 정말 거기 당신이 계십니까? 정말로 거기에 있는게 당신 사진입니까?

나는 정말로 죽은 당신에게 이별의 절을 한 겁니까?

정수리부터 멍해져서 이배가 힘들었다. 어째서 이 악몽에서 깨지 않을까. 아. 당장 꿈에서 깨서 엠에센 지인들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꿈을 꾸었다고 웃어 넘길 수 있다면.



미래를 잃는 한이 있어도, 무언가를 부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런데 이건(상호 존중 하의 의사소통이 아닌 원천부정, 폭력을 통한 제거) 결국 원흉인 그들이 한 행동의 재현이거든. 단순히 부숴버리고자 하는 목표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사회 전체에 강요해야 하는 거란 말야. 결국 세상을 변하게 하기 위해서는 원흉과 똑같은 인간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런 존재에 대해 인정하고 긍정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정말 그렇다면 그런 사태를 만든 원흉과 다른 것이 뭐지? 우리는 정말 그런 타락 위로 올라설 수 밖에 없단 말인가?

이래서 영웅이 나오면 안된다. 정말 위험해져. 지금도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있는데, 영웅이 나온다면 정말 끝장일거야. 마지막 기회마저 없어지고 말거다.

아... 하지만 정말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긴, 길이 있었다면 그가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가 고작 20대 중반 휴학생이 생각해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몰랐을 리가 없다.

우리는 수치를 알고 자신의 가치에 책임을 지고 죽을 수 있는 정치인을 잃었다. 이 나라에서 다시 저런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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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까지 두 시간 남았는데 지금 자면 좆망이겠지.

광우병 집회 나갈 때부터 느낀 거지만, 모임에 나가면 구호의 80%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 이건 너무 문제 범위를 협소하게 잡은 것 같은데, 이건 논점에서 빗겨가 있잖아, 이건 너무 의도적 왜곡아닌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번에도 마찬가지긴 했는데. 그게 요근래 모임의 특징이려니 한다. 같은 공간에 있되 모두 자신만의 구호를 가지고 서 있다. 모두 한 개인의 자격으로 나와 있는 거다. 그래서 평등하고, 그래서 아무도 다른 이에게 명령할 자격이 없다. 오 맙소사. 이 절박한 혼란이라니.


다만 모임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아 물론 사안이 다르지. 그런데 그게 문제라기 보다는, 폭력의 횟수 - 그리고 뭣보다도 폭력을 말리는 사람에 대한 반응이 몹시도 살벌하게 변했다. 한마디로 마지노선이 붕괴해 버렸다는 거겠지. 이성을 지키고 룰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거다. 그저 '나'를 막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만이 지펴졌을 뿐이더라. 너가 저기 서 봤어? 너가 막아 봤어?

네. 작년 여름 내내 길바닥에서 굴렀습니다. 전경 코 앞에서 스크럼 짜기도 여러번이었고, 물대포도 여러번 맞아서 옷도 많이 버렸고요.

아니 그전에, 지금 이 자리에 같이 있는 우리가 어째서 서로에게 너는 내게 말 할 자격이 없다고 외치며 상대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 걸까. 어디에서 얼마나 참여하고 뭘 겪었다는 게 무슨 상관인가. 설령 생각이 다르다 한들 어떻단 말인가.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 특별화와 단절이 우리의 가장 큰 적 아냐?

대화와 소통이라는 작년 집회의 대전제가 너무 쉽게 날아가 버린다. 서로 다르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던 관용은 1년간의 좌절때문에 거의 바닥이 나버린 모양이다. 촛불이 서 있을 자리를 뺐는 것은 전경이 아니라 이런 자세인데 - 이런 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자신이 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테니까.

가두시위를 하며 기꺼이 인도의 사람들에게 환호로 함깨 하자고 하던 그때로는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래. 물론 돌아갈 수 없지. 지금 이 사태에서 어떻게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겠어.

하지만 -촛불의 존망을 떠나서- 국민들이 설 자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국민이 설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결국 같은 국민 뿐인데...




그러고보니 쾌거 추가.
2시인가 3시인가, 아침 출근을 위해 체력 유지 겸 식사 겸 해서 종로 맥도날드로 향했다. 멤버 다섯명이서 초 세 개인가를 켜들고 시청에서 종로까지 당당하게 걷긔를 시전했음. 저 앞에 후방 전경애들이 앉아서 쉬고 있길래 아 애들이 앉아있네 하고 지나갔는데, 얘네들이 갑자기 일어나고 무전기를 꺼내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분향소 쪽에서 뭔 일이 일어난 줄 알았지. 근데 무전 내용: 여기 촛불을 든 사람들이 나타났!! 블라블라

...

... 어 설마 지금 너네 우리때문에 오십여명이 일어나고 열댓명이 한꺼번에 무전기 꺼내들고 신호등 저 건너에 있던 애들까지 뛰어온거니? 그런거니?

이로서 우리 다섯은 오십 전경을 움직인 용자가 되었음. 음하하하.

... 랄지 일행 말대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는 생각함. 그런데 무전 내용을 듣는 순간 너무 웃겨서 미친듯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야 얘들아 긴장하지 마 우리 비루하게 맥도날드 가서 감자 먹을라고 그래. 아놬ㅋㅋㅋ

하긴 우리가 확 미쳐서 그대로 안국동까지 가기만 했어도 너네는 조짐을 당했겠지... 어 사실 뻥 뚫린 후방을 보니까 그대로 안국동까지 가고 싶긴 했어. 근데 너무 배가 고프고 피곤하고 추워서...

... 이래서 우린 안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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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갔다.

Walking 2009. 5. 24. 01:29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한 나라의 전망을 제시하고 미래를 말하고 변혁을 꿈꾸던 사람이.
더 숨 쉴 수가 없어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스스로 내일을 버렸다.

사실은 육십대 남성 하나가 절벽에서 몸을 던진 것일 뿐이거늘, 그러나 나는 갈피를 못잡을 뿐이다.
아 대체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의 정권이 출범할 때 나는 아직 투표권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의 정책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 뿐,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고 그저 어렴풋하게- 아주 어렴풋하게 아 언론에게 많이 까이는구나, 자기 편이 없구나,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구나... 정도. 국민과의 대화 때에는 뭣도 모르면서 그냥 아 저거 웬지 좋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인데.

그런데 그 사람이 사실은 나한테 해준 일이 굉장히 많았다. 나에게는 그가 대통령이었던 거다.
작년 여름 내내 촛불을 들고 나가면서 그를 구호로 부른 적은 없었지만. 내가 촛불을 들고 밤새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 전제는 그의 정부가 있었을 적 인정된 것들이었어.

당신은 나에게 국민 개인의 힘을 믿게 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이렇게 가시다니요. 



언제나 내가 인문학을 배웠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 그럼에도 묻건대, 역사란 게 대체 무엇인지. 역사 그게 대체 뭐냐. 뭐가 역사란 말이냐. 

여기에서 무너질 수는 없다고 나도 생각해. 여기서 딛고 나가야 한다고. 그런데 대체, 어디로 딛고 나가야 한단 말인지? 방향도 보이지 않고 짐은 너무 무겁습니다. 아. 당신의 죽음은 우리의 책임인데,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 세대의 책임이 너무 무겁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가야 하는 겁니까?


과연 역사란 것이 있습니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고작 유서 열몇줄을 띄엄띄엄 쓰고 그렇게 갔다. 그렇게 열변하던 사람이. 그렇게 텅 비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아버린 거다. 그 사람의 그 작은 도원이, 봉하마을이. 그렇게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그 사람의 융중이...


나는 정말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된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역사란 건 유구해서 내 생에서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결 안에서 통해야 하는 거라고, 무수한 현실 안에서 내가 믿고 있는 진실을 꾸준히 추구하면 언젠가 흐름이 내 믿음에 부응해주는 때가 올 거라고, 내가 그 씨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게 뭔지, 애초에 그게 현실에 있을 수나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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