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렇게 갔다.
Walking
2009. 5. 24. 01:29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한 나라의 전망을 제시하고 미래를 말하고 변혁을 꿈꾸던 사람이.
더 숨 쉴 수가 없어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스스로 내일을 버렸다.
사실은 육십대 남성 하나가 절벽에서 몸을 던진 것일 뿐이거늘, 그러나 나는 갈피를 못잡을 뿐이다.
아 대체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의 정권이 출범할 때 나는 아직 투표권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의 정책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 뿐,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고 그저 어렴풋하게- 아주 어렴풋하게 아 언론에게 많이 까이는구나, 자기 편이 없구나,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구나... 정도. 국민과의 대화 때에는 뭣도 모르면서 그냥 아 저거 웬지 좋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인데.
그런데 그 사람이 사실은 나한테 해준 일이 굉장히 많았다. 나에게는 그가 대통령이었던 거다.
작년 여름 내내 촛불을 들고 나가면서 그를 구호로 부른 적은 없었지만. 내가 촛불을 들고 밤새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 전제는 그의 정부가 있었을 적 인정된 것들이었어.
당신은 나에게 국민 개인의 힘을 믿게 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이렇게 가시다니요.
언제나 내가 인문학을 배웠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 그럼에도 묻건대, 역사란 게 대체 무엇인지. 역사 그게 대체 뭐냐. 뭐가 역사란 말이냐.
여기에서 무너질 수는 없다고 나도 생각해. 여기서 딛고 나가야 한다고. 그런데 대체, 어디로 딛고 나가야 한단 말인지? 방향도 보이지 않고 짐은 너무 무겁습니다. 아. 당신의 죽음은 우리의 책임인데,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 세대의 책임이 너무 무겁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가야 하는 겁니까?
과연 역사란 것이 있습니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고작 유서 열몇줄을 띄엄띄엄 쓰고 그렇게 갔다. 그렇게 열변하던 사람이. 그렇게 텅 비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아버린 거다. 그 사람의 그 작은 도원이, 봉하마을이. 그렇게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그 사람의 융중이...
나는 정말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된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역사란 건 유구해서 내 생에서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결 안에서 통해야 하는 거라고, 무수한 현실 안에서 내가 믿고 있는 진실을 꾸준히 추구하면 언젠가 흐름이 내 믿음에 부응해주는 때가 올 거라고, 내가 그 씨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게 뭔지, 애초에 그게 현실에 있을 수나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