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Walking 2009. 5. 25. 07:25
어째서 이렇게 무력하단 말인가.
어째서 지인의 눈물에 같잖은 위로 한마디를 할 수 없단 말인가.
그저 나도 너와 똑같은 문제에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먼 하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절을 하는 순간, 머리 위 쪽이 섬뜩하고 멍해졌다. 영정과의 거리가 천길 낭떠러지처럼 멀게 느껴졌는데, 아 그런데 정말 거기 당신이 계십니까? 정말로 거기에 있는게 당신 사진입니까?

나는 정말로 죽은 당신에게 이별의 절을 한 겁니까?

정수리부터 멍해져서 이배가 힘들었다. 어째서 이 악몽에서 깨지 않을까. 아. 당장 꿈에서 깨서 엠에센 지인들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꿈을 꾸었다고 웃어 넘길 수 있다면.



미래를 잃는 한이 있어도, 무언가를 부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런데 이건(상호 존중 하의 의사소통이 아닌 원천부정, 폭력을 통한 제거) 결국 원흉인 그들이 한 행동의 재현이거든. 단순히 부숴버리고자 하는 목표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사회 전체에 강요해야 하는 거란 말야. 결국 세상을 변하게 하기 위해서는 원흉과 똑같은 인간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런 존재에 대해 인정하고 긍정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정말 그렇다면 그런 사태를 만든 원흉과 다른 것이 뭐지? 우리는 정말 그런 타락 위로 올라설 수 밖에 없단 말인가?

이래서 영웅이 나오면 안된다. 정말 위험해져. 지금도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있는데, 영웅이 나온다면 정말 끝장일거야. 마지막 기회마저 없어지고 말거다.

아... 하지만 정말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긴, 길이 있었다면 그가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가 고작 20대 중반 휴학생이 생각해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몰랐을 리가 없다.

우리는 수치를 알고 자신의 가치에 책임을 지고 죽을 수 있는 정치인을 잃었다. 이 나라에서 다시 저런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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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까지 두 시간 남았는데 지금 자면 좆망이겠지.

광우병 집회 나갈 때부터 느낀 거지만, 모임에 나가면 구호의 80%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 이건 너무 문제 범위를 협소하게 잡은 것 같은데, 이건 논점에서 빗겨가 있잖아, 이건 너무 의도적 왜곡아닌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번에도 마찬가지긴 했는데. 그게 요근래 모임의 특징이려니 한다. 같은 공간에 있되 모두 자신만의 구호를 가지고 서 있다. 모두 한 개인의 자격으로 나와 있는 거다. 그래서 평등하고, 그래서 아무도 다른 이에게 명령할 자격이 없다. 오 맙소사. 이 절박한 혼란이라니.


다만 모임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아 물론 사안이 다르지. 그런데 그게 문제라기 보다는, 폭력의 횟수 - 그리고 뭣보다도 폭력을 말리는 사람에 대한 반응이 몹시도 살벌하게 변했다. 한마디로 마지노선이 붕괴해 버렸다는 거겠지. 이성을 지키고 룰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거다. 그저 '나'를 막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만이 지펴졌을 뿐이더라. 너가 저기 서 봤어? 너가 막아 봤어?

네. 작년 여름 내내 길바닥에서 굴렀습니다. 전경 코 앞에서 스크럼 짜기도 여러번이었고, 물대포도 여러번 맞아서 옷도 많이 버렸고요.

아니 그전에, 지금 이 자리에 같이 있는 우리가 어째서 서로에게 너는 내게 말 할 자격이 없다고 외치며 상대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 걸까. 어디에서 얼마나 참여하고 뭘 겪었다는 게 무슨 상관인가. 설령 생각이 다르다 한들 어떻단 말인가.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 특별화와 단절이 우리의 가장 큰 적 아냐?

대화와 소통이라는 작년 집회의 대전제가 너무 쉽게 날아가 버린다. 서로 다르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던 관용은 1년간의 좌절때문에 거의 바닥이 나버린 모양이다. 촛불이 서 있을 자리를 뺐는 것은 전경이 아니라 이런 자세인데 - 이런 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자신이 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테니까.

가두시위를 하며 기꺼이 인도의 사람들에게 환호로 함깨 하자고 하던 그때로는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래. 물론 돌아갈 수 없지. 지금 이 사태에서 어떻게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겠어.

하지만 -촛불의 존망을 떠나서- 국민들이 설 자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국민이 설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결국 같은 국민 뿐인데...




그러고보니 쾌거 추가.
2시인가 3시인가, 아침 출근을 위해 체력 유지 겸 식사 겸 해서 종로 맥도날드로 향했다. 멤버 다섯명이서 초 세 개인가를 켜들고 시청에서 종로까지 당당하게 걷긔를 시전했음. 저 앞에 후방 전경애들이 앉아서 쉬고 있길래 아 애들이 앉아있네 하고 지나갔는데, 얘네들이 갑자기 일어나고 무전기를 꺼내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분향소 쪽에서 뭔 일이 일어난 줄 알았지. 근데 무전 내용: 여기 촛불을 든 사람들이 나타났!! 블라블라

...

... 어 설마 지금 너네 우리때문에 오십여명이 일어나고 열댓명이 한꺼번에 무전기 꺼내들고 신호등 저 건너에 있던 애들까지 뛰어온거니? 그런거니?

이로서 우리 다섯은 오십 전경을 움직인 용자가 되었음. 음하하하.

... 랄지 일행 말대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는 생각함. 그런데 무전 내용을 듣는 순간 너무 웃겨서 미친듯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야 얘들아 긴장하지 마 우리 비루하게 맥도날드 가서 감자 먹을라고 그래. 아놬ㅋㅋㅋ

하긴 우리가 확 미쳐서 그대로 안국동까지 가기만 했어도 너네는 조짐을 당했겠지... 어 사실 뻥 뚫린 후방을 보니까 그대로 안국동까지 가고 싶긴 했어. 근데 너무 배가 고프고 피곤하고 추워서...

... 이래서 우린 안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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