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때가 되었다.


온 사방에 자랑하고 싶은데 트위터에는 이미 폭풍멘션을 쏟아부었고 지인들한테도 얘기해서 더 할 데가 없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 많이 사귀어 둘 걸 그랬어? 자랑질 하고 싶을 때는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좋은 거군 아이고 입 근질근질 



김옥선 

김옥선 파동(金玉仙波動)은 대한민국 제9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 김옥선의 반유신헌법취지 발언이 몰고온 정치적 파동을 말한다.
 
배경 및 경과

1975년 10월 8일 정기국회 회기 중 신민당 의원 김옥선은 대정부질문을 통해 당시 횡행하던 관제 시국 행사를 비판했다. 이 무렵 유신헌법에 대한 불만과 반발이 거세지자 고려대학교 등지의 학원소요를 막는다는 명목의 긴급조치 제7호와, 베트남 전쟁 종료에 따라 북조선의 남침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제9호가 내려져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김옥선은 전쟁심리 조성은 영구집권으로 가는 방편이라고 말하고, 베트남 공산화 이후 안보 행사 등으로 이같은 분위기를 선동하는 제4공화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발언 몇 분 만에 여당인 민주공화당 및 유신정우회 의원들의 야유로 김옥선의 질문은 중단되었으며, 정회가 선포된 뒤 일부 발언은 국회 속기록에서도 삭제되었다. 
이후 국회의장인 정일권이 김옥선의 발언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이적 행위라며 징계안을 회부해 제명을 결의했다. 김옥선은 이 파동으로 여야의 대치가 계속되자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공민권을 정지 당해 이후 10년간 정계에 복귀하지 못했다. 신민당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반유신 투쟁의 수위를 놓고 선명성 논쟁을 벌였다. 
한편, 속기록에서 삭제된 김옥선의 발언은 2007년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아 김옥선은 속기록 복구 요구와 손해배상 소송 등 명예회복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이름은 저 사람 이름에서 따옴. 옥선이로 하려다가 저 의원이 결혼을 안했다는 걸 기억한 아빠가 내 시집길ㄱ-...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름자 순서를 바꾸었다고...... 아빠 고맙습니다. 상냥하긴 한데 그다지 섬세하지는 않은 배려까지ㅋㅋㅋ



 그랬구나 내 이름도 정치인한테서 따온 거였구나 아빠 젊은 시절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지.

 나한테는 92년 대통령 선거 포스터 한 장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분.  당시 전 초 1이었져. 그때 포스터에 낯익은 이름을 보고는 싱기해서 어, 내 이름하고 비슷하다 설마 여자? 올'3'-3-3 하고 지나갔는데... 진짜 거기서 따왔을 줄이야 ㅋㅋㅋㅋ


 박정희의 독재가 이 나라에 잡아 놓은 주름의 깊이와 추함이 또 절절하고. 남정현도 분지필화사건 이후 글 성격이 확 고정되어 버렸고, 저 의원도 저 사건 이후 인생은 저 사건에서의 명예회복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대통령선거 입후보 이후 거의 기사가 없고 최근 기사는 학교 개설 비용 문제가 꼬인건지 사기죄로 실형 선고. 어느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자신의 명예 회복과 관련하여 너무 성의가 없는 듯 하다고 섭섭함을 표하는 걸 봄. 이런걸 봐도 역시 저 사건 자체는 김옥선씨 본인에게는 어찌되었든 정치 해프닝으로 끝난 거지. 애초에 저 사람 포지션이 정치가이지 운동가가 아니니까. 


저 의원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저 사건의 전후가 어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데 검색질 정도로는 나오질 않네. 내가 태어난 85년은 저 사건 있은 후 10년, 아 내가 태어나기 전 해에 해금되었었네. 그럼 해금되면서 기억해내신 거구만. 파파. 십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해내고 그 주인공 이름을 딸한테 줬나 했더니.


어쨌든 독재자 면상에 독재자라고 말한, 자기 인생 개척하며 살아온 사람. 그런 사람을 골라서 아빠가 내 이름자를 따왔다는 게 중요한 거시다. 그런 거시다. 아마 저 사람이 활동한 시대는 저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테고, 결국 묻혔다고 해도. 아무튼 저런 사람 이름을 줘서 고맙습니다 아빠. 이 이름은 제가잘 활용해 볼게요.'ㅠ'-3

d&d캐릭터 테스트 : http://php.chol.com/~blueari/tmjollnir/dndwho.html

야채샐러드와 스프를 선택한 덕분인 것 같다?



Chaotic Good Elf Bard Druid

Follower Of Hanali Cenanil


Alignment:
Chaotic Good characters are independent types with a strong belief in the value of goodness. They have little use for governments and other forces of order, and will generally do their own things, without heed to such groups.

Race:
Elves are the eldest of all races, although they are generally a bit smaller than humans. They are generally well-cultured, artistic, easy-going, and because of their long lives, unconcerned with day-to-day activities that other races frequently concern themselves with. Elves are, effectively, immortal, although they can be killed. After a thousand years or so, they simply pass on to the next plane of existance.

Primary Class:
Bards are the entertainers. They sing, dance, and play instruments to make other people happy, and, frequently, make money. They also tend to dabble in magic a bit.

Secondary Class:
Druids are a special variety of Cleric who serves the Earth, and can call upon the power in the earth to accomplish their goals. They tend to be somewhat fanatical about defending natural settings.

Deity:
Hanali Cenanil is the Chaotic Good elven goddess of love, beauty, and art. She is also known as the Heart of Gold and Lady Goldheart. Her followers delight in creation and youth, and work to spread happiness, love, and beauty. Their preferred weapon is the dagger.




Detailed Results:

Alignment:
Lawful Good ----- ■■■ (3)
Neutral Good ---- ■ (1)
Chaotic Good ---- ■■■■■■ (6)
Lawful Neutral -- ■ (1)
True Neutral ---- ■■■ (3)
Chaotic Neutral - (-1)
Lawful Evil ----- ■■ (2)
Neutral Evil ---- (-5)
Chaotic Evil ---- (-1)

Race:
Human ---- ■■ (2)
Half-Elf - ■ (1)
Elf ------ ■■■ (3)
Halfling - ■ (1)
Dwarf ---- ■ (1)
Half-Orc - (0)
Gnome ---- (-2)

Class:
Fighter - (0)
Ranger -- (-2)
Paladin - (0)
Cleric -- (0)
Mage ---- ■■■ (3)
Druid --- ■■■ (3)
Thief --- ■■■ (3)
Bard ---- ■■■■■■■ (7)
Monk ---- (-3)



정리: 대박 바라지 말고 근면하세요. + 괜히 싸우지 말고 인간관계 간수 잘하세요 

분수를 지켜라? 


재물이 크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다루고 아끼면 재물이 쌓이게 되니 즐거움 저절로 느껴질 것입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고 순탄하게 지내면 내가 얻을 수 있는 재물과 뜻밖의 횡재로 재산이 차곡차곡 늘어날 수이니 서둘러 재물을 탐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과 다투지 말아야 하니 다툼으로 얻어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얻음이 없고 잃음만 있게 되어 나의 일을 끝맺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은 비록 곤란하다 하더라도 뒤늦게 운이 돌아올 것이니 때를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좋은 운에 순응하는 지혜로움이 될 것입니다. 뜻밖의 횡재가 나를 찾아와 태평하게 지내리니 기다리는 자의 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탐하여 얻지는 못할 것이니 순리에 순응하면 저절로 찾아오는 복이 됨을 또한 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거만을 부리게 되면 스스로 손해를 만드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고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는 시기이니 처음에 충실하듯 매사를 차분히 처리하여 주어진 복을 취하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구하여 얻지 말고 오는 복을 차분히 치키는 지혜가 절실하니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셔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분수를 지키면 대길이요 욕심을 부리면 망하는 운이니 허황된 일에 매진하여 시간과 재물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한번의 어려움과 대길함이 있으니 재물을 구함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있겠지만 주변 상황과 여건이 이를 따라주지 않아 안타까움과 고민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다가오는 어려움만 극복되면 큰 재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상반기 중에서 재물로 인해서 발생하는 어려움으로 마음의 고민이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시기만 무사히 잘 넘기면 결국 크게 들어오는 재물이 있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마음의 짐을 다 털어내게 될 것입니다. 올해는 횡재나 행운으로 얻어지는 재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들어오는 재물은 모두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 될 것이니 일로써 성과를 거두어 이득을 얻고 요행을 바라거나 모험성이 있는 일에 재물을 투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행운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돈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손실이 될 것입니다. 고생하지 않고 재물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일을 게을리 하면 얻어지는 재물이 없음을 또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장사나 영업부문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은 일의 성과가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과의 인연이 좋은 시기이므로 일의 시작일 때와는 달리 나중에는 자신을 찾는 이가 많아질 것입니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더욱 좋으며 인연이 되어 여러 사람과 교류를 하게 됩니다. 성과가 크게 나타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고 자신의 책임과 위치가 상승하여 대단히 분주하게 보내는 시기가 됩니다. 내부적인 관리보다는 바깥으로 활동하는 일에서 더욱 큰 성과가 있으니 관리를 하시더라도 때에 맞추어 외부의 활동을 함께 병행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 계신 경우라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자신이 직접 나서서 주도하는 일이라면 성공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일과 관련하여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 또한 좋은 인연의 기운이 작용하는 것이니 대인관계에 더욱 신경을 쓰셔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집안에 경사가 많아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두터워지게 되니 가정이 화평하고 근심이 거의 없을 해가 될 것입니다. 윗사람으로부터 들려오는 경사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고 아랫사람들에게 축하해줄 일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화목하니 근심이 찾아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한차례의 어려움이 있으나 가정의 화목에 금이 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약간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비가 온 후에 땅이 더욱 굳어지는 것처럼 가족 간의 사랑을 더욱 끈끈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다만, 가족과 친지 중에 환자가 생길 징조가 보이니 건강에 유의하시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좋은 시기에 환자로 인하여 시간을 보내게 되면 이 또한 좋은 운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큰 병은 아니지만 사소한 질환이라도 유의하시고 특히, 봄 즈음에 가족의 건강검진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지 중에 새로운 식구가 생길 징조가 보이면 적극적으로 관심과 배려를 해주고 축하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식구는 가족의 경사가 될 것이며, 좋은 운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인연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자신보다는 주변사람과의 관계로 인하여 많은 덕을 입게 되는 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사거나 흠이 될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좋은 운이 줄어드는 결과가 있음을 인식하고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애정관계도 대단히 좋은 시기입니다. 미혼의 선남선녀들은 좋은 짝을 만나거나 혹은 결혼을 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신혼부부는 아이를 임신하거나 출산을 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모든 사람들과의 인연이 좋으니 자신의 것을 고집하여 다툼이 되는 경우를 반드시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의 어려움만 극복하면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사람의 도움이며, 사람으로 인하여 복이 크게 받는 시기입니다. 도움을 주고 인정을 베푸는 듯 하지만 모두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는 시기이니 인정을 베푸는데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사가 많아지는 시기이니 애정관계에서도 대인관계에서도 모두 좋은 일이 생기는 년도입니다.
 
 
 
 
 
 
 
풀과 나무가 봄을 만나 꽃과 잎이 무성해 집니다. 집안이 화평하고 새로운 일이 순조롭게 준비되니 기쁨이 넘칩니다. 슬하에 영화가 있거나 가족 중에 경사가 있습니다. 집안의 기초가 튼튼해지고 어른이 제 역할을 하게 되니 위아래가 모두 좋습니다. 내가 계획한 것을 믿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지요. 좋은 달이나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큰 경사는 미리 조짐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릴 기운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가정에 기쁨이 넘치는 시기이니 재물이 들어오고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능력이 크게 발휘되어 주변에서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손님이 많으니 가정의 경사를 다른 사람도 함께 기뻐해 줄 일이군요.
 
  
 
 
 
화가 복으로 변하니 기쁜 빛이 얼굴에 가득할 것입니다. 어려웠던 일들이 하나씩 풀려가니 모든 게 새롭게 변할 기운이 시작 되는군요. 재물이 서서히 나의 집을 향하니 지금보다는 앞으로 더욱 좋을 운세입니다. 터를 옮기고 직업을 바꾸면 횡재를 만날 수 있으나 억지로 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대길은 대흉과 같으니 매사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일은 앞으로 더욱 많은 시기입니다.
 
  
 
 
 
시비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시기가 눈앞에 있으니 구설에 걸려 어려움을 당하면 시간이 아까울 뿐입니다. 재물이 한번에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길함이 시작되니 좋아지는 기운을 느낄 것입니다. 다만 가벼운 질병에 노출 되어 있으니 건강에 유의 하시고 본격적인 일의 진행은 3월을 넘기시어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재액을 맞아 곤란을 당하게 되는 달입니다. 나의 것을 지키려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는 격이니 이를 효과적으로 경계하면 얻음이 또한 클 것입니다. 일에 문제가 없으면 재물 운이 좋아 큰 돈을 만질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고백을 해도 좋은 시기입니다. 자신을 가지세요. 나의 것을 탐하는 자가 분명 있으나 나의 상대가 아니므로 경계하면 내가 이길 수 있습니다.
 
  
 
 
 
길함이 있기 전에 흉함이 먼저 드는 시기입니다. 무리를 하면 큰 화를 당할 것이니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 입니다. 시간과 재물을 낭비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 하며 나가는 재물을 관리하여 불필요한 곳에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달 나가는 재물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이 점 유의하시기 바라며 제3자의 일에 관여하여 구설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평안한 형국입니다. 어려움은 피했으니 한숨을 돌릴 것입니다. 다만 집안에 병자가 있을 수 있으니 그것이 근심이 되는군요. 귀인은 어려운 상황에서 찾아 오는 법입니다. 순리를 따르셔야 합니다. 집안에 화평이 최고이니 조금만 더 희생하세요. 천을성이 나의 덕을 키울 것이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입니다.
 
  
 
 
 
화목한 분위기가 집안에 가득하여 온화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타고난 복이 이제서야 찾아 왔으니 즐겁기 그지 없으며 답답하고 괴로웠던 일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새롭게 마음먹은 일들은 모두 좋은 일들이니 실천에 옮기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이 많으니 모두가 좋은 인연입니다. 언쟁이 생길 수 있으나 이기려 하지 마세요. 져주면 크게 이기는 날이 올 것입니다.
 
  
 
 
 
활동력이 넓어서 분주함이 아주 많은 달입니다. 성과가 눈에 보이니 움직인 만큼 재물이 들어 옵니다. 재물로 인해서 기쁘고 좋은 말도 듣는 달이니 아주 좋은 시기군요. 베푼 것이 돌아오는 기운이 있으니 혹시 투자해 놓은 곳이 있다면 좋은 소식이 들릴 겁니다. 그러나 새로운 투자는 금물입니다. 거두어 들이는 달이니 일을 크게 벌이지 말고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재물이 나를 비켜가지는 않을 것이나 욕심을 부리면 좋지 않은 인연이 꼬이는 달입니다.
 
  
 
 
 
씨앗을 뿌리자마자 곡식을 기다리면 어찌 수확이 가능하겠습니까?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결실이 없으니 분주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아직은 가을이 아니니 한 번에 많은 재물을 탐하거나 서둘러 결실을 얻고자 하면 고생도 허무한 망사가 될 것입니다. 들판에 바람으로도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 향기만 가지고도 꽃이 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두르면 이루지 못할 것이니 순리대로 진행하고 노력하면 크게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화합하여 그 이익이 재물이나 일로써 생길 운세입니다. 작은 것을 버려 큰 것을 취하는 운세이니 기존의 것은 잊어 버려도 좋을 것입니다. 새로이 투자하는 부분은 아직은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매사가 좋음이 더 많으니 손익을 따지면 반드시 얻음이 클 것이지만 신규로 재물을 들이어 얻는 것은 위험수가 있으니 자중이 필요합니다. 서쪽으로 가게 되면 불리하니 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은 경계하고 피해야 할 것입니다.
 
  
 
 
 
해와 달이 모두 밝은 기운을 머금었으니 기쁜 일이 많이 생기는 기운입니다. 나날이 새롭고 쉬워 가는 어두움도 달빛이 비추어 주니 근심이 없습니다. 몸이 고단하지만 부귀가 따르므로 피곤을 모르고 분주합니다. 공명이 함께하여 부를 얻어도 부끄럽지 않은 재물입니다. 운수가 길하여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를 것이니 만사가 즐겁고 행복 할 것입니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교분을 두터이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인연이 드는 시기입니다.

호빗


: 이하 설명은 생략합니다. 




올 해의 내 글: 또 하나의 


올 해의 내 캐: 하인리히 폰 노어 / 처음 쓴 버전에서가 갑이었음. 


올 해의 자체풉짤: 숟가락 살인마 / 모비딕


올 해의 잘한 일: 방금 목욕재계 / 수화 배우기 시작한 것 


올 해의 고민: 니 문제는 너 스스로랑 해결하는 거란다.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맞춘다고 없어지지 않음요.


올 해의 한계: 내가 알 일이 아니니까 / 혹은 이거 저거 신경쓰기 귀찮으니까 _ 묻지 말자 -> 책임지지 못할 테니까 아예 관심 끊겠다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올 해의 깨달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올 해의 자아성찰: 그렇다 나를 한 글자로 줄이면 낄이었던 것이다. 왜 사냐건 낄_해찰 라이프 해찰과 덕질 오 그것은 인생


올 해 주변인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충고: 말 좀 느리게 하든가 정확하게 하든가 둘 중 하나만 / 의성어 의태어 아 쫌... / 식견을 넓히셔야죠. 


올 해의 연극: 필로우맨


올 해의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올 해의 남배우: 김영민


올 해의 여신님: 전미도


올 해의 헐-_-작: 시공간 초월물 메이퀸 (ㅋ)


올 해의 기념비적 망작: 조조, 황제의 반란 ^ㅂ^ㅗ


올 해의 놓쳐서 후회 작: 라만차 


올 해의 발린 소설: 배명훈 안녕 인공존재 


올 해의 작가님 이거 왜 썼나요 소설: 이기호 이정 


신년을 맞는 자세: 신나게 해찰하겠슴미다ㅋㅋㅋ 파닥파닥펭펭 


신년에 하고 싶은 일: 

돈 벌고 싶다. 돈. 돈이라든가. 돈. 

수족냉증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움짤을 잘 만들고 싶다.

미중년 연애시뮬 만들고 싶다.

동화 쓰고 싶다. 

안내상 연기력을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고 다 쓸 수 있는 그런 ...글 쓰고 싶다.

수화 잘 하고 싶다.

학교 그만 다니고 싶다. 이젠 몇 년 소식 끊겼던 사람들은 내가 아직도 학교 다닌다 그럼 개깜놀할 거다. 아 물론 날 기억한다는 전제 하에.

한자 잘 하고 싶다. 

영어도... 호빗 무자막 관람 + 대사 정도는 좀 외우게.

몽골이랑 뉴질랜드 가고 싶다.








  공지영이 트위터에 또 불을 싸질렀다. 고료를 받지 못한 만화가에게 '좋은 일 하는 출판사를 공격하느냐, 전화 해도 해결이 안되더냐, 제가 받아다 드릴까요'. 게다가 아무 상관없는 최근 발간작 <의자놀이>까지 끼워 넣어서 한마디. 

  정말 대단한 자의식이지 않은가. 내가 좋은 뜻으로 책 출간한 출판사 까지 마라. 만화가 하나 고료를 주지 못해 출판사가 곤혹을 당하면 어떻게 하겠냐 라니? 이거 진심 진지하게 하는 소리?ㅋ 설마?... 오 그런데 아마도 진지하게 한 소리가 맞을 거라는 거. 신이여 맙소사.


  아무튼 잊을 만하면 한건씩 일을 터뜨린다. '만화 좋아하는 한나라당 알바생' 드립, '연아 안녕'드립, '의자놀이 원본 표기 문제'에 이어 끊임없는 막말 행진이다. 막말 행진의 패턴은 모두 엇비슷하다. 이슈가 될만한 사건이 일어나면, 공지영이 한마디 툭 싸지른다. 그리고 펑~! 

   그녀가 일으키는 해프닝의 범위는 지극히 좁다. 어디까지나 그녀 개인의 생각, 표현일 뿐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녀가 한마디 할 때마다 난리법석 시장통 꼴이 나는가? 그녀가 남성 위주 한국 사회에서 베스트셀러 여류작가이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이 문제적이라서? 그녀의 한 마디가 촌철살인이라?


  차라리 셋 중 어느 한가지에라도 걸리면 좋을 것을. 공지영의 막말에 사람들이 흥분하는 건 유명인에 대한 시샘때문이 아니다. 유명세에 걸었던 기대와 실망감이 교차할 뿐이지. 그녀의 이혼녀 경력과 작품 활동이 만들어낸 가면은 딱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아니지만 어딘가에 있는 똑똑하고 쿨한 여 작가 말이지. 사회 문제도 적당히 쑤셔주고. 여권에 대해서도 적당히 있어 보이는 문제를 제기할 줄 아는. 


  공지영에게 진보 키워드를 갖다 대준 건 문학시장과 대중들의 옹호다. 그녀의 글은 대중적인 것이지 진보적인 게 아니다. 그냥 거기에 진보라는 이름을 적당히 갖다 붙여놓은 거지. 진짜 진보적인 게 뭔지 따지려는 건 아니다. 진보적이어야 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진보는 성역이 아니니까. 오히려 진보를 성역으로 만드는 건 그 가면을 쓰고 있는 공지영이다. 

작가는 계속 '진보 인형옷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종이옷마저 제대로 안 맞아서 툭툭 알몸을 노출하는 거다. 출판된 책이 공지영의 화장한 얼굴이라면 트위터의 막말은 생얼일 뿐이다. 화장이 예의라는 우리 사회에서 화장 전후 갭이 좀 나는 게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잖은가. 공지영의 막말은 딱 그 정도 해프닝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지영의 해프닝이 되풀이 될 때마다 그 작가에 덧쒸어진 진보 가면까지 괜히 흙탕물을 뒤집어쓴다는 거다. 기실 공지영이랑은 아무 상관없는 이름인데도.

  공지영의 해프닝 중에 어느 것 하나 핵심을 지르는 게 없다. 심지어 의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당장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공지영의 생각없는 말은 한 만화가와 출판사 간의 고료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출판사의 고료 관행과도 별개의 문제였다. 출판사 휴머니타스가 법적으로 공정했든 아니든, 공지영은 한 작가로서 다른 작가에게 무례하고 무책임한 말실수를 저지른 거다. 덧붙여 출판사 관행에 대한 더러운 인상과 그녀 자신의 본래 성격까지 아주 예쁘게 인증해 주시면서. 

그래서 이 모든 일의 본질은 무엇? 한 여 작가의 막말일 뿐이라는 거. 그 막말에 불쾌감을 표시할 때마다 다 공지영의 진보에 대한 공격이 된다니. 대체 뭣때문에? 그녀가 정말 뭘 했는데? 


  이런 문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뻔하다. 그녀가 '진보 시늉'을 하니까, 그녀를 둘러싸는 문제도 딱 '수박 겉핥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다. 허지웅 말마따나 공지영에게는 성전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루한 해프닝 연속일 뿐. 재미없는 시트콤일 뿐이다. 제발 자기를 주인공으로 한 장르 불분명 로망스는 그만 두길. 진보적이어야 할 필요도 진보 시늉을 할 필요도 없다. 작품에 얼마만큼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느냐는 작가가 '나 깨여있어. 나 이만큼 생각 깊이 해.'라고 떠드는 거랑은 아무 상관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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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ㅏㄴ리미ㅏㄴ이라 한마디로 말해서 쪽팔려 쪽팔려 뒈지겠다고ㅗㅗㅗㅗㅗ 아오 씨발 저런 게 한국 대표 여류 작가라니 미ㅓㄴㅇ리ㅓㅏ마ㅣㄴㅇ리ㅏ '작가' 자체에 환상을 가질 맘은 없는데, 이건 너무 ... 평균 이하잖아. 평균. 머ㅣㅏㄴ어ㅏ라 어휴 만화 그리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못 들만큼 쪽팔려 이게 뭐니 머ㅣㅏㄴ리ㅓㅁ니ㅓㅏ리ㅏㅓㅁ닝라ㅓ  




한줄 요약: 주호민 작가는 뭔 죄인가?


박근혜가 대선주자로 올라서자마자 퍼지기 시작한 게 색깔론이라는 게 우습다. 과연 본색을 드러낸달까. 그 일파가 주도권을 잡을 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고편이랄까. 제발 예고편에서 끝나길. 이게 서막이 되어선 곤란하다. 


진보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위기를 기회 삼자고 외치지만 그 외침 아래 그리고 있는 상은 죄 다르고, 게다가 추상적이다. 저 고리타분한 색깔론의 구린내를 잠재우기에는 너무 약해. 게다가 직접 정치판 안의 진보세력이란 것들은 저 색깔론 전쟁에 대해서는 서 있는 자리만 다르지 공식은 새누리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거든. 


뜻있는 분들이 꺾이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당장 한국 정당 정치 안에서 주체적으로 뭔가 변화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모두가 이 판 위에서 서로 깎아내리기 바쁘지, 이 판 자체를 거부하고 뒤집어버릴 생각을 못하니까. 고작 인터넷 뉴스 보고 받은 감상평을 직접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못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함. 하지만 직접 발 담고 있으니 아무리 용써도 한계라는 게 있겠지. 


박근혜가 돌아왔을 때,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진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절대로 내가 박근혜와 한 시대를 겹쳐 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 색깔론이다. 난 이런 색깔론은 6, 70년대 선배 작가들 작품에서나, 그것도 철지난 회고담 느낌으로만 접할 줄 알았지. 저걸 가지고 저렇게 목청껏 소리 지르는 걸 내가 직접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박근혜도 지금의 색깔론도 진짜 예전에 비하면야 '흉내내기'에 불과하지만. 저 인물 저 도식은 이 시대에 뒤집어쒸워진 허물이지, 원래 이 시대의 얼굴은 아...아닐 거라고 믿고 있음. 이미 벗어버린 뱀 허물을 뱀에게 억지로 갖다 덮는 격.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포천을 보다 문득 든 생각인데, 지금에 와서야 조선 초나 말이나 다 옛날이기에 별 생각을 안했었는데 말야. 흥선대원군이 흥한 후 왕족의 위엄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궁궐을 다시 짓는 행위, 마치 조선 초 흉내를 내는 모습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지금 내게 박근혜나 색깔론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려나. 이 시대와는 맞지 않고, 그럴듯하거나 그럴듯 하지 않거나 흉내일 뿐인 허물. 흥선대원군에게야 박근혜따위보다 훨씬 심도 깊은 원칙과 강단이 있을 테지만. 



어떻게 하면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 매번 되풀이하다 답을 찾고는 너무 뻔해서 또 이마를 치게 하는. 
어쨌든 써야 해. 쓰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아. 다른 많은 일들도 하고 싶지만 결국 최선은 이거다.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무엇을 어떻게 왜 쓰는지. 


아롬이와 대화 중

: 넌 항상 조용한데, 정신 차리고 보면 언제나 뭔가 해내고 있더라. 자기 할 일은 은근히 다 해내고 있더라고. 난 항상 시끄럽기만 하고 실속이 없는데

그런가? 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네. 그런데 난 그거만(하는 일)만 생각하니까. 외에는 신경을 안 쓰잖아.: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또 유레카.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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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는 문제로 엄마와 싸우고, 분하고 아파서 울다가 일어났다. 미간이며 앞이마가 저릿저릿하다. 목을 붙잡고 몇 번 스트레칭하고 앉아 글을 쓴다. 아까보다 한 결 낫다.

생각해보면, 분한 건 그저 '지금 당장 그 일'을 못 해서일 뿐이다. 지금 당장 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성급해서. 내가 내 성질을 못 이겨서.
아픈 게 싫은 것도, 계속 아플까봐 불안한 것도 당장 낫지 않는 다는 걸 견디지 못해서 그런 거다. 느긋하게 기다려 주지 못하는 거다.

아픈 건 힘들어. 우울해지고 짜증나고 답답하고 분하다. 그런데 이걸 이겨내지 않으면 계속 아플뿐이야. 더 울고 신경질 부린다고 낫는 게 아니다. 후우

아플 땐 그냥 놓고, 쉬어. 안 아플 때 하면 되잖아 나야. 24시간 내내 아픈 것도 아니잖아. 지금 결실이 없는 건 아프다고 생각하면서 헤매서지. 이렇게나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이것만으로 성에 안 차서 갑갑한 거다. 페이션스, 영 파다완. 메이 더 포스 비 위드 유. 

  엄마와 아빠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두 사람은 약하고 지치고 둔하고,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시간이 갈수록 둘이 피곤에 절고 닳아가는 게 보인다. 막무가내 고집불통이 되거나 만사 놓고 무기력해지거나. 둘이 아직 헤어지지 않은 건 분명히 이 구질구질한 상태를 벗어날 용기가 없어서였을 거다.(물론 전적으로 그런 건 않았겠지.) 이 부부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 위해선 끝없이 타협하는 수 밖에 없다. 아빠는 엄마의 신경질과 유치하고 엉뚱한 질문들을 참아야 한다. 엄마는 아빠의 피로와 무관심, 침묵을 견뎌야 한다. 한 사람은 계속 상대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사람은 상대에게 끝없이 상처받는다. 결국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서 찢어진다고 각자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둘은 서로에게 맞지 않는 수족이다. 이제와서 수족을 잘라낼 수도 없고, 짧은 팔 너무 긴 다리로 절뚝거리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게 우리들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사랑한다. 나는 분명히 사랑받고 자란 딸이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저 두 사람이 줄 수 있는 걸 다 받고 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은 졸아드는데 희발되고 남는 것들이 자식에 대한 희생이라니. 참 이상한 일이야.

  엄마는 막내가 '그래. 난 어차피 쓰레기다. 그러게 왜 날 낳았냐'고 따지면 울먹이며 자신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한 사람이다. 질문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상처는 다 받는다. 결국 나오는 건 그 상황에서 최악의 답뿐이다.'난 너한테 해줄 거 다 해줬다. 난 잘못한 게 없다. 니가 그런 취급 당할 만 하니까 한 거다. 넌 그렇게 두들겨 맞아 쌌다.' 자식이 당신에게 귀중한 신의 선물이라는 말과 넌 쓰레기라는 말이 어떻게 병치되는지 모르겠다. 자식은 그 말을 들으면 맷돌 사이에서 아주 갈아져 버리는 기분이다. 결국 난 엄마의 고혈을 빨아 먹고 컸는데도 쓰레기밖에 안되었다는 뜻 아닌가? 
저런 말을 들으면 한 40층 쯤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누굴 원망하고 자시고를 떠나서 내가 저 갭이 감당이 안된다. 저렇게 어쩔 줄 몰라하는 부모를 보면 정말 '어쩔 수 없다'는 게 절절하게 느껴져 버리니까. 
  우리는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그게 최선이었다. 그 사람은 정말 해줄 걸 다 해줬다. 온갖 애정과 매질과 미움과 보살핌을 다 줬다. 우리밖에 몰랐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풀 대상도 우리 밖에 없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돌아볼 여력도 없으면서 계속 자기가 해준 대로 퍼부어주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자식을 감싸는 것 외에 다른 건 모른다. 
  어제 문득 깨달았다. 그나마 내가 저 둘에게 저런 질문을 직접 던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거.(했는데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자식들이 그냥 거기에 있는 것 만으로 고생을 감내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그거다. 그러지 않고선 우리 아빠가 나한테 초조해하지 말라고 할 리가 없다. 
  어쩌면 완전히 내 맘대로 안되는 것들을 지키고 아끼는 게 어른인 것 같기도 하다. 음. 

  이런 생각들을 하면 속이 먹먹해 오곤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게 사는 건가,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뭐. 싶기도 하고. 마와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줄지 않는다. 아니, 엄마와 아빠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내가 포지션을 바꾸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지금까지는 음. 막내는 한없이 난폭해지고 둘째는 학교로 종교로 도피해 버렸다. 난 글쎄. 그냥 한없이 신경질을 부리면서 꾸역꾸역 두 사 람이 주는 걸 다 주워 먹었다. 이젠 중학생 때처럼 싸우진 않는다. 집안일도 제법 돕고 엄마와 대화도 제법 한다. 아빠의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란 것도 안다.
  그래도 울컥 올라오는 거부반응이 어떻게 제어가 안된다. 길에서 엄마를 갑작스럽게 만나거나 엄마가 나한테 엉겨오면 도저히 받아줄 수가 없다. 엄마가 내게 보내는 싸인들이 징그럽다. 정말 혐오스러워서 못 견디겠다. 할머니는 더 심하다. 그냥 그 뒷모습 옆모습이 잠깐이라도 눈에 비치는 게 싫다. 할머니 목소리를 들으면 누가 나한테 고름을 끼얹는 거 같다. 특히 할머니가 가족이란 걸 확인하게 할 때마다 토할 거 같다. 준서를 위해서 기도한다거나 아롬이한테 친한 척을 한다거나. 그동안 지인들에게 할머니가 이래서 싫다 저래서 힘들다 주절거렸다. 뻥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으로 틀린 거 하나. 그런 걸 하든 말든 난 할머니가 싫다는 거. 할머니가 내 토끼를 나 몰래 팔아치웠든 말든 매일 싱크대에 이상한 국물을 튀겨놓든 말든 온 동네에 내 소문을 이상하게 내놓든 말든 난 할머니가 싫어. 그냥 싫다고. 

  어쩔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이건 그냥 답이 없어. 누가 할머니를 치워 줄 수는 없잖아. 설령 치워준다고 해도 해결날 문제가 아니야. 난 결국 누구든 할머니처럼 싫어할 거니까. 그게 누구일진 모르겠지만. 내가 문제를 해결하든, 아니면 이런 문제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만큼 자라서 나가든.

  나는 사랑받고 자란 자식이다. 그런데도 난 내가 쓰레기라는 생각을, 절대 한 사람 몫으로 제대로 크지 못할 테고 언제까지나 흐물흐물한 흙덩어리에 불과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 먹어도 아주 근본적인 데서는 난 어차피 이대로 알 껍질 속에서 성계 건너 뛰고 바로 노계가 되어 썩어 버릴 거라고 생각한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다. 굉장히 뚜렷한 이미지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는 걸 지켜보기만 하다가 결국 알바 몇 개 전전하고, 그러다 10년 20년 쯤 지나서 엄마 아빠가 죽거나 약해져 버리면 그땐 답없이 길바닥에 나앉는 거. 취직을 하느냐 결혼을 하느냐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자립을 못할 거라는 확신.
 올챙이는 시간이 지나면 뒷다리 앞다리가 생겨야 하잖아. 난 아가미는 허파로 바뀌었는데 앞뒷다리가 안 생긴 올챙이같아. 눈은 개구리처럼 불룩 나와서 수면 위로 빼꼼 올라갔는데 몸을 뭍으로 올려줄 팔 다리가 없어. 게다가 이젠 숨도 잘 안쉬어져. 이제 더 물 안에 있을 나이가 아닌 거지. 당장 어른 개구리 노릇은 못하더라도 뭍에서 나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남들은 자연스럽게 꼬리가 떨어지고 뭍으로 올라가는데, 내 몸은 점점 굳어져 가는데 난 뭍으로 올라갈 수가 없다. 뭐 이런 이미지.ㅇㅇ (근데 이 와중에 내 비유 진짜 찰지다. 내가 봐도 난 이런 거 써넣는 건 좀 잘하는 거 같다. 아 이렇게 자뻑 한 번 해주지 않으면 살 맛이 안 나지 난.)

  요새는 동안이 대세라지만, 결국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얼굴은 징그럽기만 하다. 요새 내가 내 얼굴 보면 그래. 스타일은 하나도 안 변했는데 점점 피부 탄력은 없어지고 눈은 어두칙칙하게 꺼져 가고. 살 처음 뺐을 때는 그래도 전보단 좀 나아 보여서 거울 앞에 붙어 있었다. 요샌 그냥 넙데데하고 푹 삭은 상판만 보이니까 거울 볼 맛이 안난다. 별거 해본 것도 없는데 또 '그래봤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안될 거야. 애초에 뭘 바라긴 했나?' 하는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그래. 사실 안될 거라는 생각보다는 이 '내가 이걸 정말 바라긴 했나? 내가 뭘 하긴 했나? 내가 그걸 좋아했던가?' 쪽이 더 큰 문제다. 이전까지 축적되던 내가 저 질문 한번에 싹 무너져서 그냥 진흙더미로 돌아가 버린다. 뭔가 자랄 것 같다가도 저런 의심들이 날 다시 올챙이 알 단계로 돌려 보내 버린다. 덕분에 난 언제까지나 초보자고 언제까지나 어린 애고 언제까지나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필요한 것도 문제될 것도 없는 인간이고 음.'ㅠ' 그리고는 자기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방어하는 걸 아예 포기해 버린다. 저런 질문에 맞서서 아냐,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하질 못하는 거다. 누가 한 마디 비치기만 하면 난 언제든 그 핑계로 날 허물어뜨려 버리고, 그게 허물어뜨린 후에 아무것도 안 남으면 깔끔하기나 할텐데 그 자리에 진흙덩어리가 남는 다니까. 오물투성이가 되어서는 냄새가 나는 줄도 모른다. 그러면서 이게 솔직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계속 깎아 내리지. 남이 들으면 삽질 장광설에 불과한데 말야. 자학적이라는 건 결코 칭찬이 될 수 없는데...... 

  하고 싶은 일도 있고 그 일을 생각하면 몸에 열이 오르고 침이 마르는데 그래도 난 내가 그 일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계속 발버둥을 치고는 있는데 이건 그냥 발버둥 치는 시늉이 아닐까? 내 스스로 이걸 정말 바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 고 생각해 버리면 정말 답이 없다. 요즘은 저런 질문에 '이런 발버둥 하나하나가 다 답'이라는 식으로 좀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음. 아주 근본적인 데서는 언제든 저 질문이 덮쳐올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뭐 이러고 산지 오래 되었으니까, 작년 말에 좀 정신상태가 좋아졌다고 이게 싹 나을 거라고는 생각 안해. 다만 내 생각보다 내 저 자학 강박?이 심한 것 같아 새삼 놀랐다. 요새 내 생활 패턴을 돌아봤는데, 이게 10대 때부터 쭉 반복되던 거더라. 계속 먹거나 읽거나 해대는데 그걸 전혀 즐기지 못한다. 먹고 읽고 하면서도 '이건 결국 다 핑계 딴 짓이다.(혹은 그럴 거라는 의심)' , '몇 시까지 어떻게 버티지?'만 생각하고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선 여섯시까지 어떻게 버틸지 걱정하고 여섯시부터는 열두시까지 어떻게 버틸지 걱정하고 열두시부터는 저녁까지 어떻게 버틸지, 저녁부터는 잠들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어쩔 줄을 몰라한다. 뭔가 계속 하는데, 그리고 그게 전적으로 의미 없는 것도 아닌데 계속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걸 뭔가 자꾸 입에 넣는 걸로 극복하려고 하고... 그러니 살이 찌지... 이걸 근본적으로 고쳐놓지 않으면 난 건강해질 수 없다. 살도 살이지만 그보다도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다. 몸까지 아프니까 '몇 시까지 어떻게 버티지'가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제대로 알겠다. 매 시간을 버텨내면서 하루 이틀 사흘 보내가는 건 정말 못할 짓이야. 그리고 기본적으로 내가 쓰레기라는 정의, 해봤자 안될 거라는 정의를 바꾸지 않는 한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지. 어차피 뭘 해도 안 되는 거니까 뭘 하든 도피가 되어 버리는 거잖아. 내가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의미 부여를 못하는 게 문제라고. 내가 짓고 있는 집 재료가 모래가 아니다. 내가 그걸 모래 다루듯이 하고 있잖아. 말랑한 진흙이면 구워서 굳게 하면 되는데 난 계속 물을 부으면서 형체가 단단해지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는 거지. 

  그냥 내가 쓰레기가 아니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나에게 집중하고 긍정하고 참을성을 가질 수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만 음. 지금보다는 좀 편하게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6. 나는 88만원세대인가? - 오창은 


 -   [88만원세대]  의 저자들이 이야기하듯 '수치화된 임금지표'의 극복이 20대의 희망일 수 없을까? 눈길을 보다 먼 곳을 향해 던져보자. 물질적으로 안정된 정규직 삶을 위해, 높은 임금만을 목표로 대학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사색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모두들 최소 월 2백만 원의 정규직을 향해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내던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책은 근본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성찰적 힘이 결여되어 있다. 

 -  [88만원세대] 가 이야기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청년세대는 비판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논의가 기본적으로 세대론 담론에 포박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선 지적되어야 한다. 40~50대가 20대를 착취하고 있다는 세대갈등론은 일종의 지분 싸움을 조장한다. 문화혀명 당시의 홍위병처럼 20대가 40`~50대를 전복한다고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청년세대 역시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약소자에 대한 진지한 관심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억압당하는 20대'가 아니라 '고통받는 약소자'로 인식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   과연 한국의 20대에게는 정규직만이 희망인가?
사회체제 내에서 만들어진 직업관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들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사고 속에서 윤리적 실천, 보살핌의 철학을 위해 나눔의 가치 실현을 실천적으로 모색하는 20대도 있다. 체제 속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체제를 만들려고 고투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삶이다. 예를 들면 시민단체에서 한 달에 88만 원 이하의 급여를 받고 자기가치의 실현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삶은 어떠한가? 골방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이나 악보를 그리면서 창조적 자아실현을 위해 몰입하는 이들의 삶은 또 어떠한가? 직업 전선에서는 비참한 알바지만, 그곳을 벗어나서는 주체적이고 건강한 자아실현을 위해 고투하는 이들을 단지 자본주의에 포박된 소비기계라고만 호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하지메(마츠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처럼 다른 삶을 상상하고 실천하거나, 독서 마니아로서 지식 소비와 생산에 개입하거나, 독립영화를 제작하거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많은 이들은 기존의 사회. 경제적 가치와는 다른 가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것은 문화적 가치일 수도 있고, 윤리적 가치일 수도 있으며, 자기실현을 위한 고투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율적 자기결정권을 위해 필요에 따라 알바를 하기도 하고, 캥거루족이 되기도 하고, 사회의 일탈적 주체가 되기도 한다. 돈을 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 실현과 공공선을 위한 역할에 충실한 이들도 있다.
 사회적 상식이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을 비참하게 호명한다고 해서, 이런 독립적 자아들이 비참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기존 사회시스템에 대한 반란자들이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구현하는 대안적 존재일 수 있다. 


(** 지금 내 주소는 이 글에서 말하는 훌륭한 체제 종속자도 못되고 그렇다고 적극적 자아실현의 주체가 되지도 못하는 많은 변두리 어디쯤이다. 사실 많은 20대들이 그럴 거다. 종속되기는 싫다. 종속된다고 행복한 가축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
  하지만 적극적 주체가 된다고 해도 '체제에 속하지 않는' 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내가 자기가치를 실현하려고 해도 지금 이 판국에서는 '내 행위가 아름답다'는 것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내가 약간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건 결국 이 응원에 내가 완전히 응할 수 없어서인 거겠지.
  물론 이 글에서 말하는  아름답다는 게 대충 젊은이의 낭만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저자들은 분명 이런 모든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아직은 구체적 결실을 얻지도 못하고 목적도 불분명한, 지금 당장은 실효를 얻지 못하는' 행위라고 얘기 하고 있다. 아름다운 건 낭만이 아니라 버텨내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는 자세란 거지. 지금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가 이쁘다는 거지.
  그래. 내 위화감은 지금 내 포즈를 내가 아름답다고 느낄 여유가 없어서, 그리고 '나는 무능잉여쓰레기'라는 2n년간의 자학이 뿌리깊어서인 걸 거다. 음. 지가 재활용불능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 불쑥 넌 꽃씨였다고 하면 당황할만 하잖아. 기둥도 약도 땔감도 못되는 손톱만한 녹색 이파리 두 개가 언젠가 자라서 꽃을 피울 거라고 하면 그 말이 곧이 들리겠어?

  한 번 곧이 들어보자.  ㅇ<-<) 



7. 노예교육과 불량의 윤리학 (하승우)

- 그러나 시장의 평등은 개인의 평등만을 의미할 뿐이고, 시장의 자발성과 평등은 인간을 시민으로 성장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공동체 내의 사람들이 자유를 향유할 기회를, 공동체의 평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 특히 시장은 시민권이 지탱하는 공적인 장을 사적인 이해관계로 변질시킨다.  

9. 직접행동의 민주주의 (하승우)
 -   개인이 개인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자가 필요하다. 다른 생명과의 공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급과 자치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직접행동은 개인과 사회를 대립시키지 않고, 공존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강하고 자율적인 개인을 만드는 과제는 강하고 자율적인 사회를 만드는 과제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강함을 추구하는 건 권력정치로 변지되기 쉽다. 
  새로운 주체에 관한 구상은 반드시 이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10. 한국의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 관한 이론적 고찰(하승우)

- 프레이리([페다고지])는 민중지식의 신비화, 민중지식의 절대찬양은 민중지식의 거부만큼이나 문제가 된다며 무조건적인 수용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프레이리는 "민중지식을 거부하는 것이 엘리트주의라면, 민중지식을 절대 찬양하는 것은 근본주의"라고 비판한다.  대중의 상식에 기초하지만 그 상식을 무조건 인정하자는 것은 사람들을 상식의 틀에 가두고 운동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을 무조건 인정하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그 둘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글너 점에서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동일화하거나 차이를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프레이리가 비판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을 그복하는 방법, 혹은 스니데르스가 원시문화와 선진문화라고 부른 것 사이의 변증법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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