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아직도 안철수의 정체를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정치인으로서 증명할 만한 걸 내보인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으로 공허한 소음을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는 것.

2. 사람들이 결국 안철수에게 바라는 게 좋은 이명박 이상 이하가 아닌 것 같아서 무섭다.

둘 중 더 끔찍한 건 당연 2번. 이명박 정부가 막 만들어졌을 때 이 나라는 저런 걸 대통령으로 만든 나라였다. 그런데 5년 지나니 이젠 이명박같은 것만 만드는 나라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적어도 이 시스템 안에서는...

어제 새해에 하고 싶다고 적어놓은 일을 모두 클리어했다. 잠, 목욕, 알바 그만두기. 
  알바는 당장 그만두지는 못하고, 사장님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1월까지는 풀로 하게 될 것 같다. 나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 큰 불만은 없...다. 돈이 필요하긴 하니까. 으으 돈... 돈...ㅇ<-< 뭔가의 밑천으로 투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순전히 '소비되는' 돈들. 

  지금 내 상황에서 반년간 대여점 알바. 굉장히 미묘한 선택이었다. 일단 돈이 필요해. 엄마에게 용돈 받는 것도 너무 미안해. 뭔가 하긴 해야겠어. 그런데 멀리 출근 나가거나 오래 서 있는 아르바이트, 평일 내내 하는 아르바이트는 지금 몸 상태로는 무리야... 그래. 지금 내 상태에 맞는 조건의 아르바이트처였던 건 분명 맞아.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유통시스템에 대해 세상에서 지가 제일 걱정한다는 투로 열변을 토하다가 주말에는 바로 내가 그 문제의 장소에서 일 한다고 생각하면,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까지야 아니라 해도 좀 미묘한 기분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것도 이 나이에 시급 삼천원 받으면서. 남들은 회사 다니며 실적 쌓고 자리 잡을 때에 난 편의점 알바보다 더 안 쳐주는 일을 하고 있다니. 이건 그냥 잉여력만 기르는 거 아닌가? 난 지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또 잉여질을 하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걸까? 남들은 되든 안되든 부딪히고 자기 격 높이려고 발버둥치는데 난 실실 웃으며 네 전 한시간 삼천원 짜리입니다 삼천원 짜리로 살게요 - 하고 타협하는 꼴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게다가 아직도 글 한줄 마음껏 뽑아내지 못하는 새끼글쟁이로서 책들이 그렇게 쌓이고 대여되고 돌아오는 걸 보고 있으니까 되게 착잡하더라고. 만화는 좋았어. 지금껏 돈이 없다는 핑계로 애써 관심 끊고 있었는데 이건 식량 없다고 밥 굶는 거나 마찬가지 짓거리더라. 일하는 틈틈이 훔쳐본 거지만 어찌나 좋은 작품이 많은지. 예전 걸작들을 다시 훑어보고 새삼스럽게 반하기도 하고 최근 나오는 작품들 중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서 흥분하기도 하고.
  문제는 소설. 음. 그러니까 장르소설류였는데... 먼 발치에서 뭐 저런 것도 다 있지 하고 혀 차며 보던 바로 그 이고깽대여점용판타지들을 내가 직접 싸고 대여하고 추천하고 반납받고 제자리에 꽂고 자리를 옮기고.... 제목이나 카피만 봐도 한숨이 푹 나오는 책에 붙어 있는 작가 한마디를 보면, 이걸 내가 비웃을 처지가 되나 싶어 미안해지고....... 그래 이 사람에게 이 글은 쥐어짜낸 노력의 결실인데... 이 사람은 이걸 쓰면서 어떤 작품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던 것들이 있을 텐데.... 하지만 카피가 정말 눈뜨고 못봐줄 수준인 건 사실이고. 아 왜 이 많은 글러들이 이따위 시스템에서 쳇바퀴 돌리듯 글을 써야 하나... 그리고 난 왜 거기에도 못 끼나. 물론 내가 쓰고 싶은 게 이런 스타일 글은 아니지만... 
 
  써놓고보니 알바하면서 뭐 저렇게 생각을 복잡하게 하냐 싶네. 아무튼 주말 양일 20시간 알바는 내 허리에는 과히 좋지 않았고 지갑 두께 유지에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거기 붙어 앉아 있었던 게 영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어. 동네 단위나마 사람들이 책(만화 소설 다 포함)을 고르는 걸 직접 봤으니까. 지금까지 '나는 여기 속해있다'고 떠들기만 했을 뿐 (책 살)돈 없다고, (어디에 글을 내보기엔) 무능하다고 쳐다도 안 보려 했었다는 걸. 고작 대여점 알바하고 깨달을 정도로 난 현실도피하고 있었던 거다. 이 쩔어주는 도피 덕분에 일반인(에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선 꽤 덕처럼 보이지만 정작 뚜껑을 까보면 본 만화가 없고 읽은 소설이 없고... '나 만화 좋아해. 그런데 좋아하는 작품은 없어.' 라니.... 어. 이건 이상하다기보다 그냥 평범한 휴덕의 상태인가?


지금 생각해보니 굳이 만화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 이 모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 글 쓰는 거 좋아해. 근데 써놓은 글은 없어. 책 읽는 거 좋아해. 그런데 좋아하는 작가는 없어. 나 국문학과 학사 졸업에 문창과 석사 과정 밟고 있어. 그런데 국문학 쟁점은 몰라. 잘 모르지만 시시한 거 같아. 다 그렇고 그렇지 뭐... 와 진짜 같잖다. 같잖아. 참 이러고도 잘도 문창과 갈 생각을 했다. 교수님들 보시기엔 얼마나 한심했을까... 이런 주제에 다른 사람들 얕잡아보고 까대면서 주변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징징대다니... 아무리 안하무인은 정중지와의 특기라지만.... 

 올해는 우물 물 마시며 바닷물에 대해 떠드는 개구리 꼴은 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알바도 되도록 빨리 후임이 구해지면 좋겠구. 으 허리 아파. 

  환난의 2011년이 지났다, 라고 첫 문장을 끊고 가만 따져보니 20대가 된 후 별로 평탄하고 이쁘게 보람찬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더라. 뭐 거창한 일은 없었지만 삽질과 고민과 병신미가 적당히 어레인지되어... 죄다 무난하고 평균적인 20대 잉여 대학생의 세월이었는데... 아. 애초에 무난하고 평균적인 20대 잉여 대학생이라는 거 자체가 평탄같은 거랑 그리 가깝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좀 드라마퀸이든가. 

  아무튼 올 한 해 핵심은 건강. 1월에 무릎부터 시작해서 목, 어깨, 허리 ... 응 손가락 발가락 빼고 거의 온 몸이 찌그럭찌그럭거리고 있다. 다이어트 여파덕분에 부채질되어서 시간이 갈수록 상태 악화. 이 병원 저 병원 옮겨다니며 병원비 압박으로 울어보기도 하고 병맛도 팍팍 터뜨리며 아주 폭풍같은 한 해를 보냈다. 정신건강 면에서도, 최악은 아니었지만 그간 쌓인 것들이 터지면서 가히 방향감각 상실 수준에 이르렀음. 
  한 가지씩 일을 내려놓으면서 숨 좀 돌리고 보니 이 문제가 한 두해 곪은 문제가 아니란 건 알겠다. 내가 병신인 건 맞는데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날더러 병신이라고 해서 그렇다는 것도. 어쩌면 날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도. 당연한건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정말 별 거 아닌데 지금은 이런 자잘한 것들을 손에 꼭 쥐고 힘내자고 다독거리고 있다.  아직 난 아무것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질 못했는데, 하나도 펼쳐보지 못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알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터질 것 같은데. 이젠 좀 더 어른스러워야 할 나이인 것 같은데 난 아직도 이렇다. 

  아무튼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 지금까지는 장난이다 싶게 힘들었다. 심신 양면으로 지금까지 누적한 병신스코어를 외면할 길이 없더라. 한 해 내내 어쩔 줄 몰라 빙빙 돌고 겁에 질려 징징 짰다. 좀 비장하게 말하자면 그 어느 해보다도 죽을 것 같다는 걸 구체적으로 느낀 한 해였다. 근데 또 그만큼 살 만 하다는 걸 알게 된 한 해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조금은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16살 이후로 말라 비틀어졌던 거기에서 새끼손톱만한 싹이, 나오려고 온몸을 틀고 있는 것도 같다. 요새는 정말 심신이 모두 사춘기 때 외면해 버렸던 그때 그 상태랑 겹치는 게 꽤 많아. 그런거보면 돌고 돌아서 이제 겨우 예전 문제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래서 새 해의 목표는 강박 노이로제가 아닌 '의지' 기르기. 쉴 때는 확실하게 쉬기. 일단 이거 두 개 제대로 하고 나머지는 그때 그때 추가. 


올해 제일 잘한 일: 셀프 토킹어바웃 시도? / 경주 여행 / 부담스러웠던 스터디 때려친 것. 

올해 제일 병신같은 일: 1학기 때 소설수업 안 뺀 것.

올해 제일 힘들었던 일: 병원 초진 때마다. '선천적으로 약하다'란 말 듣고 병원 로비에서 질질 짠 것만 두 번.나 진짜 겁쟁이다

올해  제일 웃펐던 일: ... 세훈이 사퇴? 문수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올해 제일 존경스러운 인물: 김진숙 

올해 제일 아쉬운 일: 결국 희망버스 한 번도 못 탔다.

올해 제일 빡친 일:... FTI / 사대강은 올 해만의 일이 아니니까... 

올해 제일 쇼크: 정일이가 죽다니...

올해의 전공서: 테리 이글턴. 이론 이후 /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문학의 종언 

올해의 소설: 나츠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올해의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올해의 게임: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  (아 검은방4... 너란 게임... 아 진짜... 너한테 실망했단 말 쓰고 싶어서라도 항목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야... )

올해의 최애캐: 찰스 자비에  

올해의 만화: 3월의 라이온

올해의 극: 웃음의 대학 

올해의 음악: 시유. 천년의 시  

올해의 음식: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닭. 김장김치 

올해의 사건사고: 우리 집 물난리. 우리 집 공사.   

내년의 나에게 바라는 것: 글로 돈 벌게 되어서 졸업과 돈 문제가 한 큐에 해결 케케케... 
덜 힘들어하고 더 행복해 하길. 헬스 스테미나 풀 충전. 강박 벗어나기.  하루에 여섯시간 이상 잠자기. 공상 말고 현실에서 마음 단단히 먹기.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쓰자. 끌고 가지 말고 흘러가게 하자. 

내년의 나한테 보내는 키워드: 務, 更

내년에 피하고 싶은 것: 복학..이 논문이...아 뙇... 아놔...?... 

내년 제일 기대되는 일: 더 호빗! 호빗! 호빗! 호!빗!

내년에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잠, 목욕, 알바 그만두기.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년이 기대된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 맞길//  

학부 친구들과 타임스퀘어 세븐스프링스에서 연말 모임. 제비뽑기로 선물을 교환했다. 노래방에 가서 두 시간 불러제끼기까지 하고 체력이 방전되어서 먼저 귀가. 하지만 워낙 잘 먹고 잘 놀아서인지 등이 좀 아픈 걸 제외하면 오늘 컨디션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역시 내 몸에 제일 잘 받는 약은 '일단 즐겁게 보내는 것'인가 보다. 

밥을 먹는 중에 친구들에게 요새 고민 거리 얘기를 했는데,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보니 약간 분위기가 다운... 다들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투정을 부리고만 나는 이 얼마나 한심한가. 역시 어떤 구체적인 답이 나온 건 아니고, 난 또 얘기를 하다가 횡설수설 삼천포로 빠졌지만, 그래도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내야지. 지지 말아야지. 

어깨 힘 빼고, 이런 내가 바로 나로다 하고, 그냥 가자. 에라. 한 살 더 먹으면 더 먹는 거지. 지금까지 스물일곱 번 먹었는데 한번 더 먹는다고 뭐. 하늘이 무너지냐? - 차라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준다면 편할 텐데 말이다. - 
어차피 세상은 힘들게 하는 것 투성이고, 코웃음 치며 쿨시크하게 이고깽 판타지 주인공처럼 손가락 한 번 튕기고 스펠 한 번 외우는 걸로 다 스루해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연히 - 그리고 다행히 나는 이고깽 판타지 주인공처럼 강하지 못하다.  

남의 일일 때는 약한 것이야말로 긍정해야 할 일이라고, 제 약함을 이고 가는 사람이 좋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먼치킨이 되지 못해 불만이라니, 아. 이 역시 얼마나 한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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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정말 저 '약점을 지고 가는' 인간을 너무 좋아한다. 지 약점에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저항하는 게 좋다. 약점을 가리려 허세를 부리는 것도, 그러다 외려 괴벽스럽게 약점만 두드러지게 되어서도 살아가는 것도 좋다. 그 인간의 딱딱하게 굳은 겉껍질과 피떡칠이 된 속살이 다 너무 좋다. 주름과 투박한 손, 바래졌으면서도 둔탁하나마 아직 빛을 잃지 않은 눈빛이 좋다. 아. 정말 너무 좋다.ㅠㅠㅠ 하도 오랫동안 삭풍을 받다보니 나중엔 삭풍에 버티는 건지 기대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고목이 정말 좋다.ㅠㅠㅠㅠ 너무 좋아.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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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 천성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작은 일에 연연할거냐. 그래. 모두 신경 써야 할 일들이지. 하지만 지금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다고! 
어쨌든 한 달 동안 다닌 걸 몰아 쓰려니 쉽지 않다. 

일단 11월에 3일간 친구들과 담양에, 그 다음 주에는 또 3일간 혼자 경주에 다녀왔다. 담양 여행 전날 생리를 시작. 몸 컨디션으로는 최악일 때. 그나마 생리를 하니까 훨씬 기운이 난 건 다행이었지만... 그 다음  경주 여행은 완전히 내 방식대로의 거지 여행이었음. 난 여행에 가면 눈은 보신하고 몸은 고생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같은 게 있는 걸까. 아무튼 두 여행 다 즐거웠다. 의외로 난 여행 체질인 것도 같고... 이번 공사 때 초반 이주일 그렇게 여행이라도 안했다면 정말 스트레스 엄청 받았을 거야. 역시 여행하기로 한 건 베스트 초이스였어. 

안타까운 건 찍은 사진이 죄다 구 스마트폰과 함께 증발되었...다는 ... 것. 그러타 나는 한달만에 스마트폰을 도둑 맞았던 것이다. 그것도 찜질방에서, 범행 추정 시각은 새벽 4시에서 5시. 4시에 핸드폰을 확인한 후 5시에 일어나 바로 핸드폰에 전화를 했는데 이미 꺼져 있더라는, 도난사건 교본같은 이야기 되시겠다. 약정은 35개월 남아서 난 앞으로 35개월 간 이만삼천원씩 기기 값을 내야 한다. 음... 으으음... 어허허. 그래서 담양과 경주의 풍광은 고스란히 내 기억 속에만 남았다. 담양의 경우야 친구들 사진이 남아 있고 사실 찍은 내용물도 거진 겹치고. 결정적으로 그 친구들 사진이 훨씬 잘 찍히긴 했는데...(스마트폰을 가지고도 사진을 못 찍는 나란 여자. 항상 사진이 삐뚜름해지는 나란 여자...) 아무튼 내 시야가 아닌 거잖아. 

그래서 안타깝지만 이번 기행문은 모두 사진이 없는 채로 진행하게 될 것 같다. 이것도 나름 도전이다. 과연 어디까지 기억해 내고 얼마나 생생하게 기록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담양의 경우야 친구들이 보고 틀린 곳을 지적해 줄 수 있지만 경주는 어...음.

더 잊기 전에 여행 코스나 간략하게 메모.

담양: 포인트 - 선비들이 놀았던 정자. 공부했던 가옥. 들판. 작은 마당과 시내와 대나무 대나무 그리고 대나무 
1일: 다미 소라 혜미와 10시였나 11시 버스 타고 출발(우등버스 오오)->국수거리(혜미와 내가 멸치국수 다미와 소라가 비빔국수)죽녹원->죽녹원 뒤 쪽 정자 아마도 식영정 면앙정->죽통밥으로 저녁-> 메타세콰이아 길-관방재림 산책-> 근처 카페에서 휴식. 카페 이름이 독특했는데 잊어버렸다. -> 숙소
2일: 컵라면으로 아침->소쇄원->소쇄원 근처 길가 걸어서 이동->떡갈비 오오 승리의 떡갈비->가사문학관->환벽당->숙소->삼겹살 파티 
3일: 한옥마을?->순대국으로 점심->오일장에서 엿과 과자 사들고 버스터미널로... 집으로 집으로 고고 


경주: 포인트 - 유물과 유적 불교 문화재 - 아기자기한 볼거리 잔뜩.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감은사지와 황룡사지.
담양보다야 당연 월등 낫지만(담양은 택시뿐이다... 현지인 중 버스 번호나 루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생각보다 구린 교통망. 그리고 쓰러지지 않는 경주빵...
 
1일: 아침 9시 전라도 광주 터미널에서 출발 -> 1시 도착 -> 경주 게스트하우스에 짐 내려놓고 바로 감은사지로-> 가는 데 1시간, 가서 2시간, 돌아오는 데 1시간 걸렸지만 좋았다. 여행 기간 중 제일 날씨가 좋았는데 역시 이것도 행운이었다. 그 파란 하늘에 서 있는 탑 두 개와 탑신 뒤로 넘어가는 해를 선명하게 봤다.-> 돌아와서 피시방에서 폭풍 연성...피시방 찾느라 경주 시내 돌아다닌 것도 산책으로 칠 수 있으려나-> 11시 넘어 12시 쯤 귀가 취침 

2일: 불국사(중간에 버스에서 내려서 괜히 돈 한 번 더 냄. 아무튼 불국사는 아름답고도.)->경주박물관->안압지(울긋불긋하게 조명 까는 거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안압지 야경은 레알이었음. )->석빙고->첨성대 멀찍이서


3일: 포석정(누가 포석정에 볼 게 없다고 했는가)-> 분황사->황룡사지 (황룡사지에서만 적어도 2시간 있다 감.)-> 신경주역(경주 시내와 신경주역 사이 몹시 멀다. 버스로 한참 간다. 게다가 버스 코스가 꽤 험난. 경사로에 S자 코스에...의자에 앉아있다가 미끄러질 뻔 했음.)->ktx 타고 서울


 돌아와서는 본격 공사 관련 일 - 내 잠자리 마련 - 스마트폰 도난 등으로 몹시 정신없고 심란한 하루 하루. 그 와중 읽은 책이 뭐 뭐 있더라. 일단 여행지에서 백년 동안의 고독(이건 뒷부분을 1/4 정도 못봤다. 다 읽고 리뷰 써야지.) 훙루몽과 창선감의록. 고전막드의 향연.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 시리즈- 뒤 시리즈로 갈수록 실망. 재미있는 요소가 있긴 한데 작가가 제대로 유도 못한 것 같음 -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1권. 용의자 x의 헌신. 눈먼 자들의 도시 절반 정도. 극장은 영화관이든 연극 쪽이든 근처도 못 갔다. 이번 주 금요일에 갈 예정. 아. 그리고 요새는 백귀야행을 다시 보고 있음. 1권이 내 기억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놀랐는데 역시 뒤로 갈수록 연출이 난해해지고 있어.......OTL 하지만 역시 이 작가 특유의 세계관이며 인물이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존나 취향. 환월루기담 다음 권도 사야 하는데 으...으. 

어제 인터넷 다시 연결하는 걸로, 집안 공사는 일단락이 되었다....... 남은 일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간 위치가 정해지고 가재도구도 90%쯤 자리를 잡았다. 책 정리의 막중한 사명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도 일단 책장에 꽂는 데까지는 진행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조용히 앉아 긴 글을 쓸 수 있을 짬이 난다. 그게 중요한 거다. 간절히 바라기로는 앞으로 한달 간 아무 데도 나가고 싶지 않다. 마침 겨울이잖아. 집에서 의사가 가르쳐준 운동이나 하며 쉬고 싶다. 음. 이 건으로 집안 사람들 모두 한달 넘게 고생했고 그 중 베스트는 엄마일 테지만... 아무튼 나에게도 까방권은 있다고 생각해.

달력으로 확인하니 정말 오늘로 딱 한달째다. 11월 6일 아침부터 시작했으니까. 그 전에 짐싸며 준비하던 기간을 생각하면 한달 반은 잡아 줘도 될 거다. 우... 우우. 한달에 걸쳐 이사를 했다. 몸만 가는 게 아니라, 집 내부를 만들면서 했지............... 으으.

덕분에 몸 상태가 좀 거지다. 특히 저번 주 금요일에 쓰레기 버리다 계단에서 넘어진 게 꽤 타격이 크다. 무릎이 제대로 쑤심. 저번번 달부터 생리를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있는데, 슬슬 생리할 때가 되어서인지 배로 힘들다. 무릎, 어깨, 허리 - 지금 탈 난 관절부가 평소 세 배 정도로 지끈지끈.
처음에는 배가 고파서 힘이 없나 했는데,  몸에 남아 있는 열량이 얼마나 되냐하고는 상관없는 문제인 게 가면 갈수록 확실해진다. 예를 들어 저녁보다 훨씬 공복 상태일 텐데도 몇시간 누워 있다가 깬 아침에는 아프지도 않고 매우 꿩강하다. 몸 일으켜 생활하다 보면 아파지는 거지. 즉 아플 때 뭔가 먹은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냥 내 몸이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란 거지. 

그래서 요새 자꾸 뭔가 먹으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주의 중. 이대로라면 먹는 패턴이 옜날 그대로 돌아온다. 너무 많이 먹어 속이 더부룩한 것도 문제지만 이제는 먹어봤자 안 아픈 게 아니라는 거. 잠깐 정신이 맑아지긴 하는데 그래봤자 아픈 건 여전하다. 금방 상태 훅 가기도 하고. 차라리 바로 누워 버리는 게 낫지.

이게 더 힘든 건 몸의 힘은 다 떨어졌는데 잠이 오는 건 아니란 거다. 잠을 잘 자는 것도 축복이요 건강의 증거다. 분명히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고개 까딱 하는 것도 버거운데, 차라리 잠이 들어 버렸으면 좋겠는데 잠이 안 온다. 진이 빠져 가는 걸 생으로 느끼면서 깨 있다. 끄르륵 .................. 특히나 몸이 생리 준비 하려고 더 힘든 거... 여분이 없는 몸에서 생리 지분을 만들려고 몸의 각 부분끼리 싸우는 게 느껴진다. 여력이 없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서 생리를 해야 할까 회의가... 물 밀듯이...  밀려와.... 어떻게 하면 여력이 생길까. 먹는 걸 잘 먹어야 하나? 뼈 문제가 해결되면 몸이 좀 살아나려나? 어떻게 해야 하니. 매번 저녁 즈음마다 생으로 미이라가 되는 기분 느끼는 건 너무 힘들단 말이드아.....................................

음 공사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몸 신세 한탄 얘기로 왔나. 요새 이야기는 정말 내 몸 상태 보고가 70%인 듯. 그런데 내가 지금 가장 긴급하게 느끼는 문제가 이거니 하는 수 없다. 글쟁이로서의 미래라든가 학교 문제라든가는 생각해야 떠오르지만 이건 정줄을 놓고 있어도 똑똑하게 느껴지는걸. 으으...

아무튼 좀 쉬자. 내 몸이 쉬라고 해. 난 쉬어야 해. 이젠 정말 쓰러질 거 같단 말야.... 사실 쓰레기버리다 넘어진 것도 반쯤 쓰러졌던 것 같고... 멍...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111024094324781&p=yonhap&RIGHT_COMM=R3
<- 기사 원문


한국 사회 質 OECD 회원국 중 28위"
연합뉴스|이연정|입력 2011.10.24 09:43|수정 2011.10.24 09:43|누가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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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연정 기자 = 한국 사회의 질(質)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BS는 24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사회의 질'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 결과 한국은 OECD 30개 회원국 중 28위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영역별로 보면 한국의 교육과 일자리 제공 능력(인적자본)은 18위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지만 사회 응집성(23위)이나 복지·정치참여(29위), 제도 역량(28위), 시민 역량(27위) 등은 모두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종합 1위는 제도·시민역량, 복지, 사회적 응집성, 정치 참여 등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덴마크가 차지했고 아이슬란드가 2위, 스웨덴이 3위였다.

또 노르웨이와 핀란드가 각각 4, 5위에 오르는 등 전체적으로 북유럽 국가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미국은 종합 19위, 일본은 23위를 기록했으며 30위는 터키였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사회의 질' 최하위권인 한국과 1위인 덴마크를 비교해보면 덴마크에서는 젊은이들이 과감하게 창의적인 일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급급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사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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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새삼스러워서 지적하는 것도 기 막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복지포퓰리즘^ㅁ^ 운운할 수 있는지 그 정신력에 경탄.  
여러모로 나아지긴 했다. 심신 양면으로 봤을 때 지난 10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상태가 좋다고 확신한다.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고,앞으로도 더 나가려 하고 있음. 하지만 뭔가,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삶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강한 소속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일들이다. 거울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이쁜지 만족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한테 확인을 받고 싶...ㅇㅇ 뭐 백설공주 계모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건가. 

이것도 그만큼 상태가 좋아졌으니 하는 생각이겠지. 어떻게 하면 왈칵 삶에 뛰어든 느낌이 날까. 지금의 나는 호수 주변을 뱅뱅 맴돌며 입수 지점을 찾고 있음. 되는 대로 발을 담가 보고는 있는데 딱 여기다 하는 지점이 잡히질 않고, 그나마 현재 선 위치에서 더 깊이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있다. 음. 마인드가 좋을 때 어서 들어가고 싶어 자꾸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바심과의 싸움인거지 ㅇ<-< 으으 으으 좀 더 집중 좀 더 집중 포커스 온 센터에 놓고 스위치 

일단 꾸준히 하자 뭐든 꾸준히 습관을 만들어 놔야 해  


우리는 화훼를 주업으로 하는 평화로운 마을의 학생이었다. 학교는 예술 계열이 특화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은 제각각 특기 하나 씩을 가지고 있었다. 토비는 모든 부분에서 굉장히 우수한 학생이었다. 글도 곧잘 썼지만 그가 주 종목으로 삼은 건 무용이었다. 나는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단짝이었고, 나는 토비가 정말 잘 되길 바랐다. 

학교에는 매 시즌마다 발표회를 열었다. 발표회에는 프로 예술가들이며 고등 예술학교 교사들이 와서 학생들을 스카웃하는데 그 시즌에는 토비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미 도시의 무용 학교에서 그 애를 데려갈 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곳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토비가 다른 장르에 한눈을 팔지 않도록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 애에게는 음지나 양지에서 스카웃 제의가 계속 들어왔다. 단짝인 내게 권유를 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생의 편지가 온 건 바로 그때였다. 당신의 글을 봤다. 나는 당신의 재능에 관심이 많고, 당신이 누구보다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며 자기 밑에서 배워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 그는 현재 최고의 작가였다.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에게도 매이려 하지 않는, 상당히 괴팍한 태도로도 유명한 이였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는 심지어 스카웃하러 온 손님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당장 그  편지를 토비에게 전했다. 당연히 토비에게 온 편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애는 도시에 이미 여러 번 글을 내고 상을 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이런 편지를 받을 만한 사람은 그 애 밖에 없었다. 선생의 제안은 이미 무용 쪽으로 기울어 있던 그 애마저 놀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서 이 편지 하나 때문에 다 결정된 진로를 틀 수는 없었다. 토비는 무용을 준비하면서, 예전에 쓴 글을 하나 보냈다. 그 후 얼마간은 발표회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빴고 나는 그 편지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발표회가 다 닥쳐서 언뜻 토비에게 물어보니 보낸 글에는 답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좀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토비는 웃어 넘겼다. 

그리고 그때 무용 학교 선생과 친구였던 선생이 발표회에 들렀다. 정식으로 스카웃에 끼어든 것도 아니고 그가 그 쪽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 존재감은 확실히 대단했다. 작가라기보다는 수렵인처럼 보일 정도로 덩치가 크고 검은 머리카락을 텁수룩하게 기르고 있었다. 정말 격 없고 시원시원한 태도에, 제 할 말은 다 하는 타입이었다. 나는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선생과 얘기하면 마음이 편했다. 짧은 기간에 친숙해졌다고 하기는 힘들고, 꼭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삼촌 조카 사이 정도라고나 할까. 어색한데 또 어딘가 통하기도 하는 뭐 그런. 

발표회는 마을의 커다란 온실에서 꽃 전시회와 함께 진행되었다. 선생은 문간에 기대선 채 멀찍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토비의 춤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난 선생에게 토비가 만약 글을 썼더라면 참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은 영 모르는 척을 하며 토비가 글을 선택하지 않은 게 뭐 그리 안타까운 일이냐고 말했다. 나는 난감해져서 예전의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편지는 나한테 보낸 거라고.

정말 놀랐다. 정말 그 자리에서 기절초풍할 만큼 놀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편지 어디에도 토비 앞으로 보낸다는 말이 없었다. 당연히 토비에게 온 편지라고 믿었었는데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작가가 되라는 말은 토비가 아니라 내가 들은 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발 날 제자로 받아 달라고. 선생은 웃으며 거절했다. 일고해 볼 가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계속 쫓아가면서 빌었다. 화려한 축제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꼴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선생이 웃으며 날 피하고, 나중엔 발을 지팡이처럼 써서 날 슥 밀어냈다. 그래도 계속 빌었다. 선생이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투로 말했다. 꼭 내게 배워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까지처럼 조금씩 쓰면 되는 것 아냐? 언젠가 지방 신문 한 켠에 그럭저럭 인정 받는기고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넌 유명세같은 문제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으니 너만 만족할 수 있으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겠어? 뭐하러 내게 배우려고 해?

나는 꼭 당신한테서 글 쓰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나 유명한 작가가 되느냐도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쓰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자세라니, 말하는 내가 의아할 정도였다. 내가 그런 걸 배우고 싶었던가? 내가 정말 그에게 배우고 싶긴 한건가? 어떤 대우를 감수하고서라도? 대체 난 왜 지금 이렇게 빌고 있는 거지,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처럼 나 혼자 써대도 상관없을 텐데. 그런데 난 빌고 있었다. 그가 밀어낼 때마다 무릎 걸음으로 기어가면서. 선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이젠 정말 끝이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선생을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을 사람들이 나섰다. 미리 말해두지만 절대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을의 축제 분위기는 여전했다. 선생의 거절하는 태도마저 어찌나 유쾌한지 꼭 축제의 일환같았으니까. 아무튼 마을 사람 한 명이 나서서 내가 왜 저러고 있는지 묻더니 가볍게 선생을 야유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누군가 선생의 바지 허리춤에 빵을 집어 넣었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가볍게 떠나지 못하리라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굉장히 가시가 많이 돋아 있는 장미꽃을 집어 넣었다. 그러자 모두가 그를 본받아 특별히 가시가 날카롭게 난 장미를 수백, 수천 송이 던져댔다. 나를 저렇게 버려두고 가는 게 가시밭길에 내버리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던가? 아무튼 선생의 앞뒤로는 붉은 장미길이 펼쳐졌다. 나는 그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선생을 바라보았다. 선생은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런 소박한 사람들을 상대로는 어쩔 수 없다며 투덜거리고는 내게 일어나라고 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선생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떠나는 내게 온갖 화초와 자잘한 추억을 장식할 만한 기념품들을 잔뜩 안겨 주었다. 나는 절대 이 장미 길을 잊지 않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까지가 오늘 꾼 꿈.  정말 선생을 만난 거 같아서 즐거웠다. 요즘은 날마다 기념할 만한 날인 것 같다.


자세히 읽어보고 싶은데 기사 옆의 광고짤이 너무 토 나와서 기사 통째로 퍼왔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41313


5달동안 대학생 4명 자살...대체 무슨 일?
'최고은 후배'들의 잔인한 가을 계속된다
[대학잔혹사②] 추계예술대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11.10.19 12:53 ㅣ최종 업데이트 11.10.19 15:45 홍현진 (hong698)



 
추계예대, 예술대, 최고은, 한예종, 부실대학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 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지난 1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했던 유망한 32살의 예술인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가 집 주인 문 앞에 써 붙인 메모는 예술인의 열악한 현실을 대변했고, 곧 여야는 물론이고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나서서 '예술인 복지법' 통과를 촉구했다.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들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로부터 9개월여가 지난 10월. '최고은의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예술대학생들은 '잔인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는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부실대학'에 지정되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다섯 달 사이 무려 4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야가 함께 발의했던 예술인 복지법은 법제사법위 논의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 유보된 상태다.
 
[추계예술대학] '부실대학' 선정 한 달... '모래알' 같은 예술대생들
 

'연어구이 페스티벌'이 열리는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추계예술대학교(이하 추계예대) 캠퍼스는 한산했다. 학교 정문 앞에 붙어있는 '추계 지금 야단났어'라는 발랄한 문구의 포스터가 무색했다.
 
'연어구이 페스티벌'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월 5일 추계예대를 '부실대학'으로 선정하자 이에 반발한 추계예대 졸업생들이 준비한 축제. '집나간 연어(졸업생)들도 돌아오게 만드는 교과부'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캠퍼스 곳곳에는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운동장에 있는 농구대 앞에는 교과부 장관 명의로 '청년인력의 정신에 획일적 사회구조와 무관한 이념을 심어준 불순함이 인정되어 철거를 결정한다'는 내용의 '퇴출공고'가 붙어 있었다. 교과부가 취업률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순수예술대학'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정한 것을 비꼰 것이다. 
 
'집나간 연어'들은 돌아왔지만 정작 재학생들은 조용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뿔난 추계인들(뿔추)'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의 수. 판화과 4학년 이현정씨에 따르면 현재 15명 정도가 '뿔추'에 속해 있고, 이 가운데 언제든 활동 가능한 학생은 5~6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추계예대생은 1200명이다. 이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술가들이 원래 좀 모래알 같아요. 자기 성향이 강하고 활동이 개별활동이다 보니까 .이 와중에도 '내 살길이 더 힘들어졌구나. 내 그림 더 열심히 그려야지. 학교가 내 인생 책임져줄 것도 아니고 내가 잘 되자'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지 한 달, 대학 본부 측은 '전국 1위'였던 등록금을 2012년부터 10% 인하하고, 재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은 2학기부터 15% 늘리기로 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추계예대는 2014년까지 장학금 확충과 전임교원 확보 등 직접 교육비로 8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씨를 비롯한 '뿔추'들은 이러한 자구책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예술대를 '취업률'로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한 달간 '뿔추'들은 '예술대 평가기준 수정'을 요구하면서 서울역, 광화문, 인사동 등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모은 서명지는 9월 30일 현재 2300여 장. 목표치는 1만 장이다. 이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순수예술이 뭔지, 실용예술, 응용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그런 무지한 사람들이 교과부에 앉아서 대학구조조정을 하고 있어요. 지금 다른 학교들 보면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순수예술학과가 사라지고 있어요. 순수예술학과가 학교 점수를 깎아먹는 골칫거리가 된 거죠.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순수예술학과가 다 없어질지도 몰라요."
 
또 다른 '뿔추' 이가은(서양화과 4)씨 역시 "정부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예술을 쓸모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예술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보고 있기에…"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 선배의 직설 "먹고 살려면 그림 그리지 마세요"
 

  ▲ 추계예술대 재학생 이현정씨가 서울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뿔난 추계인들
 추계예술대
물론, '순수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현정씨는 그래서 더욱더 '직장보험 가입여부'로 자신들을 평가하는 정부가 야속하다.
 
"좋아하지만, 섣부르게 선택할 수 없는 게 이 길이에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도 아니고 적게 벌어서도 아니고 먹고 못 살까 봐 못해요. 내 밥은 내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88만 원 세대, 88만원 세대'하지만 88만 원도 못 벌까 봐 못해요. 제 동생이 홍대 미대를 나왔는데 한 달 실수령금이 100만 원도 안 돼요. 2년차 됐는데 연봉이 1500만 원도 안 돼요.
 
그런데 저는 4학년이 되어서야 '그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으니까 3년만 해보자. 3년은 어떻게든 해보자고 결심을 했는데, 그걸 힘들게 결심하게 만드는 이 나라가, 그런 꿈을 펼치기 무섭고 두렵게 만든 것도 부족해서, 괴롭히지나 말라는 거예요.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감, 프라이드로 사는데 그것마저 짓밟으니까… 100원 한 장 보태준 것 없으면서 이제는 부실이라고 수치, 모욕감까지 주니까…."
 
이날 오후 4시 30분께 추계예대에서는 '졸업 후 진로와 미술현장'이라는 제목의 '특강'이 진행됐다. 추계예대 출신인 홍경한 미술평론가(월간 <퍼블릭 아트> 편집장)는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전했다.
 
"여러분들, 취업 목적으로 대학 온 거 아니잖아요. 그냥 그림이 좋아서 온 거 아니에요? 반 고흐가 되려고, 박수근이 되려고. 그런데 살아생전 반 고흐, 박수근은 안 원하더라고요. 앤디 워홀을 원하지. 여러분, 먹고 살려면 작가하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한 해 여러분 같은 예술전공하시는 분들 3만 명 정도가 배출돼요. 그림, 처음에는 많이 그려요. 그런데 나중에는 손가락에 꼽아요. 왜? 돈 때문에. 생활고 때문에. 물감, 요즘 비싸요. 하나에 3~4만 원씩 해요. 그런데 예술가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는 너무 빤해요. 그림 파는 게 목돈이 돼요. 그런데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으면 그림 안 사요.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럼 뭘로 살아야 하나. 하나밖에 없어요. 자존감. 굶어죽어도 마음은 지켜야 해요. 그러니까 먹고 살려면 그림 그리지 마세요."
 
홍 평론가의 '충고'에 강의실에 있던 30여 명의 학생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쉬쉬하는 사이 재발, 삼발"... 다섯 달 새 4명 자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에서는 '교수협의회' 주최로 학내 현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논의된 '학내 현안'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두 명의 학생은 미술원 2학년, 또 다른 두 명의 학생은 각각 영상원 3학년, 4학년이었다고 한다. 앞서 지난 6일 한예종 캠퍼스에서는 세상을 떠난 네 명의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한예종 캠퍼스 곳곳에는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명의의 추도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 5월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한예종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숨진 2명의 학생이 속해 있는 영상원의 전규찬 교수는 "첫 사건이 저희 학과에서 있었을 때 주변의 고통과 불편에 움찔하면서 말을 아꼈고 결국 사건은 재발, 삼발, 사발했다"고 개탄했다.
 
윤상정 총학생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많은 기자분들이 개별적인 이유를 궁금해하시는데, 개별적인 이유는 개별적인 이유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애도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학생들의 학생회 차원에서 비상대책회의를 한 결과,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공통적인 고민이 있는 것 같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예술을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나'라는 고민이 있다. 굉장한 경쟁구도 안에서 서로가 좁을 문을 뚫으려다 보니까 '내가 하는 작업이 과연 예술이 맞는 건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드는 거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예술이라는 게 A라는 인풋(Input)을 넣는다고 B라는 아웃풋(Output)이 나오는 게 아닌데 정부나 학교는 당장 콩쿨 수상 실적을 요구한다.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거기에서 생기는 열패감이 있다."
 
윤 회장은 '추계예대 사태'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추계예대 사태만 보더라도 정부에서 예술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하는 것은 예술가를 노동자로 본다는 거다. 연초에 최고은 선배의 죽음으로 인해 예술인 복지법이 환기됐지만, 결국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물건너 간 상황이다. 예술인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 복지법을 시행할 수 없다는 거다. 이는 모순된다. 문화예술을 보는 척박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개인 작업에만 몰두... 경쟁만 하고 서로에게 무관심"
 

  ▲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예술계열 대학생들이 2009년 6월 서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말할 권리를 막아 나선데 이어 문화예술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문화예술을 정권의 도구화하려 하고 있다"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자료사진).
ⓒ 이경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어 윤 회장은 '감사사태' 이후 이러한 '성과주의'가 더욱 더 강화됐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예전에는 학교에 대안학교적인 성격이 있었다. 모여서 파티하거나 서로 작업 보여주고 비평하는 시간 갖거나.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다 개인 작업에만 몰두하게 됐다. 그러면서 경쟁만 하고 서로에게 무관심해진 것 같다. 감사사태 이후 학교가 경직화됐다."
 
지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예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실시한 후 통섭교육 중지, 이론과 축소·폐지 등과 함께 교수징계를 요구했다. 이에 황지우 당시 총장은 "한예종 감사는 진보성향 문화예술 인사에 대한 전형적인 표적감사"라며 유인촌 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한예종에는 뉴라이트 성향의 박종원 총장이 취임했다. 당시 교수직까지 박탈당했던 황 전 총장은 '총장직에서 물러났어도 교수직은 유지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번 학기에 교수로 복귀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황 교수는 "귀국 후 잇따른 제자들의 자살소식을 듣고 전임총장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콩쿨 같은 경우 매우 근소한 차이로 어떤 자는 1등이 되고 어떤 자는 2등이 되는데 그 작은 차이 때문에 2등은 전적으로 무시되는 예술교육은 구 교수법이다. 학생들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러한 교육으로부터 온 측면이 있다. 공유창의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법이 교수들 차원에서 마련되고 실시돼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는 교수 10여 명, 학생 10여 명만이 참석했다. 최근 '한예종 사태'에 대한 외부의 관심에 비해, 낮은 참가율이었다. 발언을 신청한 한 학생은 "적어도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이 회의에 참석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교수님들이 정말로 학생들의 죽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최고은' 그 후] 10월 20일, 추계예대생 600명 모일까?
 
2학기 들어 처음으로 대규모 반값등록금 촛불이 켜졌던 지난 9월 29일. 예술계열대학생 100여 명도 집회에 참석했다. 촛불을 들고, 팻말을 든 일반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들은 '눈' 그림이 그려진 풍선 수백 개를 엮어 하늘 높이 들었다. '지켜본다'는 의미의 풍선들이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한예종, 추계예대, 이화여대의 합작품이었다.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지 한 달 여. 이현정씨는 '학내 연대'를 꿈꾸고 있다. 오는 10월 20일 추계예대에서는 1974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학생총회가 열린다. 추계예대생 1200명 가운데 절반인 600명 이상이 모여야 37년 만의 학생총회가 성사될 수 있다. 이씨에게 '학생총회'는 예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찾는 과정이다. 
 
"저희가 여태까지는 그냥 착한 학생들이었어요. 학교가 (돈) 내라는 만큼 내고, 학교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그런데 이제는 이 일을 통해 학생들의 권리를 되찾는 것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싸움이 길어지려면 학생들이 지치면 안 되잖아요. 우리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향후 움직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같이 의견을 모을 수 있도록 총회를 열었으면 해요. 그래서 교과부에게 공식사과 받아내고 평가기준 수정하는 거죠. 진정한 학교 홍보는 교과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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