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움

Walking 2012. 6. 11. 12:03


박근혜가 대선주자로 올라서자마자 퍼지기 시작한 게 색깔론이라는 게 우습다. 과연 본색을 드러낸달까. 그 일파가 주도권을 잡을 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고편이랄까. 제발 예고편에서 끝나길. 이게 서막이 되어선 곤란하다. 


진보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위기를 기회 삼자고 외치지만 그 외침 아래 그리고 있는 상은 죄 다르고, 게다가 추상적이다. 저 고리타분한 색깔론의 구린내를 잠재우기에는 너무 약해. 게다가 직접 정치판 안의 진보세력이란 것들은 저 색깔론 전쟁에 대해서는 서 있는 자리만 다르지 공식은 새누리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거든. 


뜻있는 분들이 꺾이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당장 한국 정당 정치 안에서 주체적으로 뭔가 변화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모두가 이 판 위에서 서로 깎아내리기 바쁘지, 이 판 자체를 거부하고 뒤집어버릴 생각을 못하니까. 고작 인터넷 뉴스 보고 받은 감상평을 직접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못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함. 하지만 직접 발 담고 있으니 아무리 용써도 한계라는 게 있겠지. 


박근혜가 돌아왔을 때,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진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절대로 내가 박근혜와 한 시대를 겹쳐 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 색깔론이다. 난 이런 색깔론은 6, 70년대 선배 작가들 작품에서나, 그것도 철지난 회고담 느낌으로만 접할 줄 알았지. 저걸 가지고 저렇게 목청껏 소리 지르는 걸 내가 직접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박근혜도 지금의 색깔론도 진짜 예전에 비하면야 '흉내내기'에 불과하지만. 저 인물 저 도식은 이 시대에 뒤집어쒸워진 허물이지, 원래 이 시대의 얼굴은 아...아닐 거라고 믿고 있음. 이미 벗어버린 뱀 허물을 뱀에게 억지로 갖다 덮는 격.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포천을 보다 문득 든 생각인데, 지금에 와서야 조선 초나 말이나 다 옛날이기에 별 생각을 안했었는데 말야. 흥선대원군이 흥한 후 왕족의 위엄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궁궐을 다시 짓는 행위, 마치 조선 초 흉내를 내는 모습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지금 내게 박근혜나 색깔론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려나. 이 시대와는 맞지 않고, 그럴듯하거나 그럴듯 하지 않거나 흉내일 뿐인 허물. 흥선대원군에게야 박근혜따위보다 훨씬 심도 깊은 원칙과 강단이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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