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웹툰 리그 1부 연재작 카산드라 (http://cartoon.media.daum.net/league/view/1219)
작가 이하진
- 카산드라 49화 중 일부- 위 카산드라 아래 헬레네.
아 새삼 ...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헬레네다.
리뷰를 길게 썼지만, 이 긴 글은 그저 내가 카산드라에 하고 싶었던 찬사를 늘어 놓은 것뿐이다. 이 작품에 대한 추천사라면 한 마디면 족하다. '가서 봐.'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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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접속하기 쉽고 빠르게 넘어간다는 거다. 그래서 그만큼 자주 클릭하지만 또 그런 만큼 큰 기대는 하지 않게 되는 게 보통이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외출하는 과정, 책 한 권을 고르고 첫 장을 읽어나가며 내용을 점치는 과정이 웹툰에는 없으니까. 지금부터 즐길 작품을 뜸들여 '특별한 것'으로 내면화하기에 마우스 클릭 속도는 너무 빠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장르 특성을 사뿐히 즈려밟고 우뚝 서는 작품이 나온다. 분명히 이 작품이 이 장르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은 아닌데, 그 어떤 작품 못지 않게 재미있다. 이런 작품들은 도저히 별점으로는 점수를 매길 수가 없다. 별점제는 작품을 개시한 사이트에서 제시한 기준인데, 내가 이 작품에서 받은 건 이 기준 안에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
최근 다음 웹툰 리그에서 55화까지 연재된 카산드라는 그야말로 '추천 한 번 꾹' 누르고 만족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원래 재미있는 이야기란 게 한 번 정주행 시작하면 끝까지 가게 마련이긴 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이 작품을 읽는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건 물론이거니와 특별해지기까지 하다면 그건 단순히 재미만 있는 수준이 아닌 거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웹툰이란 건 바쁜 일상 중에 틈틈이 넘겨 보게 마련이지, 각잡고 보게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을 작품의 원안인 고대 서사시 읽듯, 그만한 무게감을 받으며 읽었다. (아까부터 의도적으로 읽었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웹툰에서 이만큼 출중한 스토리를 뽑아내는 작가는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 작품의 원작이 워낙 유명한 이야기 트로이 전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원본 신화와 호메로스의 서사시들. 이야기가 레벨이 높은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저렇게 유명하니까 오히려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만드는 건 훨씬 어렵다. 원래의 이야기 자체가 힘이 세니까 그걸 다시 입맛대로 요리 조리 굴리려면 내 혀 힘이 엄청나야 하는 거다. 게다가 이게 대체 언제적 얘기냐고. 트로이 전쟁이 추정 BC 13~12세기에 일어났던 일이고 호메로스가 일리야드를 쓴 것도 BC 9~8세기다. 아무리 유명하고 수없이 리메이크된 일화라 해도 '원래 있었던 일' '그 당시 자료'까지 닿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단순한 호기심, 현대적 감성만 가지고는 제대로된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아. 이런걸 무시하고 대충 이야기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는 그냥 요새 메이저 방송사에서 매주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 더 짚을 필요도 없겠다.
아무튼 카산드라의 작가는 저 난제들을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워삶아가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트로이 전쟁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독특하다기 보다는 견고하다. 그리고 그 견고함이 다른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함으로 치환된다. 독자에게는 생각도 못한 진수성찬이다. 편의점 문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9첩 반상이 펼쳐져 있는 격이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상의 상차림은 어떨까.
이야기는 저주받은 무녀,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와 아프로디테가 인정한 세계 최고 미녀 헬레네의 각축전이다. 지성의 신 아폴론의 무녀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무녀가 맞선다. 그러나 두 여인에게 깃든 건 신이 아니다. 신보다도 날카로운 지성과 섬뜩한 권력에의 욕망, 그리고 확고한 의지다. 두 여인의 긴장관계는 그들을 둘러싼 엄혹한 환경에 의해 더욱 굴곡지고 뒤엉킨다. 작가는 두 여인에게 신적인 능력을 부여하지만 결코 그들이 신처럼 마음껏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저 세계는 여자라면 얌전히 남자의 전유물이 되어야 하는 고대 왕국이고, 하물며 전쟁 중이다. 두 여인의 앞뒤로 만만치 않은 수많은 전쟁 영웅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은 그녀들을 원하고, 증오하고, 경원하면서도 소유하려 한다. 카산드라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짜임새 있게 찬찬히 쌓아 올린다. 이들 모두가 부각되면서도 절대 번잡스럽지 않다. 굵직한 이야기가 조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가면서 당대의 쟁쟁한 영웅들을 받아낸다. 카산드라는 커다란 선박들이 떠 있는 거대한 강과 같은 작품이다. 작품의 두 여주인공은 이 강에 번갈아 드리우는 해와 달같다.
그야말로 대서사시다.
당연하게도, 클릭질 한 번 뚝 해서 스크롤 한 번 쭉 내리는 것만으로는 저 매력을 다 감지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작품, 어딜 봐도 절대 '이미지 중심의 연출'이 아니다. 작가는 이미 경력이 있는 스토리 작가로 만화 공부를 정식으로 하긴 했으나 그림 전공이 아니다. 몇 번 '타블렛으로 컷 만화를 그려봤던 글쟁이'라면 박수 치면서 알아보게 되는 특징들이 회수 초반에 여기저기 눈에 띈다. 분명 이미지 파일 크기 자체는 큰데 어쩐지 납작해 보이는 공간이라든가, 주요 진행이 대사에 치중해 있다든가.
아니 이런 저런 말 할 거 없이 그냥 카산드라 초기 작은 요새 감성 만화가 아니다. 배경에 주는 빛 효과, 인물 자세 컷 등등. 원로 순정만화가들마저 기피하는 효과들이 그것도 어설프게 배치되어 있다. 제목에도 썸네일에도 으리번쩍한 게 안 보인다.
그런데 지금 이 만화가 다음 웹툰 리그 1부 1위다. 이야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시각적으로 예쁘장하지도 않은데, 개그가 빵빵 터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다. 이런 작품이 아직 정식 책으로 엮이지 않은 게 안타깝고, 나와줬다는 것 자체가 반갑기도 하다. 웹툰 카산드라는 다루기 까다로운 원재료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듬지 않았는데도 이야기와 재미를 충분히 전달해낸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 주까지 이 작품을 기억하게 만든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일부러 다음 웹툰 코너에 가게 만든다.
독자는 골치 아프게 이 작품이 웹툰이냐, 잘 그린 웹툰이냐, 이야기 분량이 길냐 짧냐 따질 필요가 없다. 이 작품은 독자한테 그런 군소리 할 거 없이 그냥 작품을 즐기게 해준다. 이야말로 '좋은 웹툰'을 넘어선, 좋은 작품 아닌가. 위에서 그림 깠는데, 이거 뒤로 갈수록 연출 쩔어간다. 여전히 글쟁이 감성의 연출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아무튼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걸 전달해내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여기에 작품 카산드라의 강점이 있다. 작가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뽑아내는 거다. '최선'에는 곧 '철저한 준비'가 수반된다. 단순히 자료 고증이나 재해석 문제가 아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성심껏 준비해야 하는 건 작가 자신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안 흔들리지 않도록, 잃지 않도록.
카산드라는 이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다. 리그전을 기회로, 웹툰을 형식으로 나왔을 뿐 거기에 휘둘리는 작품이 아니다. 휘둘리지 않으니까 오히려 효과는 가장 잘 이용한다. 이야기가 독자에게 전달된다. 물론 그걸 보며 느끼는 건 모두 다를 테지만. 작가도 이런 저런 제약에 시달리며 그리고 있을 테지만... (분명히 그림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불편이 많을 거다. 또 어떤 환경이든 현실이란 게 백퍼센트 내 작품 활동에 맞춰지는 것도 아니고)
결국 재미있는 건 깊이 있는 것과 연결되게 마련이다. 지름길이란 건 절대 없다. 지름길처럼 보이는 것마저 독자의 눈에 그렇게 뵈는 것일뿐. 그 지름길을 뚫기 위해 작가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기, 그게 가장 의미있는 거다. 이미 다 아는 뻔한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뜻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작가에게 더 고맙기도 하다. 음. 작가 본인이이런 얘기 들으면 참 당연한 얘기를 새삼스럽게 한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
작가는 출판사에 '연재 완결해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자' 연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55화까지 줄기차게 달려온 이야기, 어떤 방향이든 작가가 정한 목표들을 모두 완수해내길 바란다. 나도 마지막까지 이 이야기를 맛나게 즐기기를.
ps> 이 작품의 가장 깨알같은 부분은 오디세우스와 헬레네 관계의 재해석인 듯. 아. 현명한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 했는데 저런 동인으로 움직이는 오디세우스는 처음 봤어. 어 그런데 왜 지금껏 저런 생각을 못했나 신기하다니까. 혹시 작가와 이 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오디세우스 캐릭터를 어떻게 짜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헬레네에 대해서도 얘기 나눠보고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