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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8. 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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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해서가 아니라 _ 후죠의 증가와 후죠질의 개인화

Walking 2015. 8. 7. 10:02

미개해서가 아니라 _ 후죠의 증가와 후죠질의 개인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서 묻지마 폭행을 예술이라고 하는 거야? 진챙총씨의 광역 어그로 소식을 듣고 뒤늦게 그의 칼럼(http://acomics.co.kr/archives/24144 겁쟁이폐단. 살아남아라 후죠시)을 읽었다. 어. 대략 글의 요지에는 동의한다. 현재 동인계의 룰 중 많은 것들이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하며, 그 룰 안 지켜도 사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거. 사회에 있어 너희는 가둬야 할 범죄자도 퇴치해야 할 악마신봉자도 아니니 자 후죠여 당당히 후죠질 하자.


그래 그래 다 맞는 말이다. 갈수록 동인계 룰은 세분화되는데 그 룰의 근거는 빈약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룰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비난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고, '왜 이런 룰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기요.


글의 서두에서부터 묻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댁이 중지를 세워주고 싶다'는 그 죄의식 양산자가 대체 누구인가? 그런 길트립을 만들어서 동인계 길목마다 깔아놓은 정신병자가 대체 누구냐고. 어떤 피리부는 사기꾼이 우리 순진한 후죠시들을 몽창 홀려서 자기검열의 늪에 빠뜨린 건데?


진챙총씨가 현 후죠문화를 만든 근간을 무엇이라 파악했는지는 모르겠다. 저 칼럼에서 그는 후죠시들의 피해망상환자적 일면을 나열하며 비꼬기 바쁘다. 그리고 이번 진챙총씨의 전시 역시 글쎄...머리 열심히 굴려서 또다른 방식으로 시비를 거는 것뿐, 근본적인 성찰은 칼럼을 썼을 때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식의 '계몽 시도'를 할 리가 없으니까.


그랬다면 차라리 문제가 간단했을텐데_ 진챙총씨의 적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후죠들은 미신에 홀러거나 피해망상에 빠져 벽장에 숨는 게 아니다. 오히려 벽장에 숨고 싶어서 미신과 피해망상을 이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미신이라고 규정하는 게 미신 타파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금의 후죠에게 저작권법 강의를 한다는 건 애초에 면역 있는 사람에게 백신을 놔준 후 생색내는 것이나 똑같다. 꾀병을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꾀병의 원인을 짚어야 명의라고 추켜줄 것 아닌가.

게다가 정말 안타까운 건, 현 후죠문화는 어찌 보면 진챙총씨 주장대로 '당당하게 마음껏 후죠질을 한 결과'라는 거다.


현재는 90년대나 2000년대 초가 아니다. 수입되는 서브 컬쳐 장르도 늘어나고 유통 경로도 확산되면서 당연히 후죠도 늘어났다. 동인계의 독재자ㅋ 코믹월드의 대체 행사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이제 어지간한 장르는 다 온리전을 주최한다. 동인계 판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다. 물론 그래봤자 조금만 링크 타고 돌다보면 갸가 갸인 웅덩이지만, 적어도 이만큼 행사가 주최될 규모는 되는 거잖아. 자신이 자신의 장르 행사를 직접 기획해 진행하는 온리전은 후죠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생산-소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세상에. 이제는 시장을 직접 만든다. 


그리고 나는 온리전의 증가야말로 현 후죠 문화의 핵심이자, 진챙총씨가 공격하는 v길트립v의 확산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 현대 후죠들은 온리전을 기획하는가? 그저 서드플래이스의 갑작스러운 증발 때문이라면 케이크스퀘어나 동네 페스타가 나타난 시점에서 그 행사에 참여하면 될 일이었다. 이 좁은 반도 땅에서 매 행사 때마다 대관처를 직접 수소문해야 하다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게다가 각 행사의 룰을 직접 짜고 룰이 잘 지켜지는지 감독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온리전 주최자는 행사를 열 때는 초대자가, 문제 발생 시에는 책임자가 된다. 권한은 적으면서 의무는 많다. 이런 행사는 열리더라도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당연하다고_누구나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후죠들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한다. 대체 어째서? 온리전의 이점은 단 하나. '같은 장르 파는 너 나 우리만의 행사'라는 거다. '누구에게도 참견받지 않는 내 취미 생활을 마음껏 즐기는 하루'를 얻기 위해.


진챙총씨가 문제시한 후죠의 피해망상적 사고는 결국 '누구에게도 참견받기 싫은' 후죠들의 예방적 행위이다. 나 좋아하는 동인질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규칙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예방 행위는 2차 창작 활동이 소규모화하면서 더 극성스러워졌다. 

대형 교류전에서 판 회지가 문제가 된다면 그건 교류전을 상대로 왈가왈부할 일이다. 하지만 개인 온리전은? 주최자가 아무리 베테랑이라해도 일개 개인이 예방.책임질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어떻게 보호할 건가? 내 권리를 무슨 근거로 주장해야 하나? _나를 보호할 수단이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진행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_ 아니, 난 아예 문제 자체가 일어나는 걸 원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문제를 사전 차단하지?

 

'누가 니네 케이크 스퀘어에 간 사진 현상에서 직장에 뿌리는 거 아니다.' 라고 얘기해봤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거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누군가 나를 공격한다면?' '너가 날 편들어 줄거야? 무슨 수로? 공격당하는 건 '개인'인 나인데?'


현재 후죠계의 수많은 룰들은 이런 후죠들의 불안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 룰들이 효력이 없는데도 실제 세계의 법을 모방하는 것 (ex: 표지의 19금 수위물 표시 규칙) 역시 그때문이다. 정말로 불법을 저지를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법을 준수하는 흉내를 내서 '나 개인'이 참견당할 여지를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격당하는 것이 '개인'이기 때문에 상상하는 피해 범위 역시 자꾸 늘어난다. 결국 내가 보호받을 확실한 대피소가 생기지 않는 한 후죠의 매뉴얼은 더욱 정교화할 것이다.


후죠는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다. 현 후죠 문화는 래밍 무리의 본능적 대이동이 아니라, 오히려 후죠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 전략에는 아주 많은 폐단이 있으며 시급한 수정이 필요하다. 후죠 스스로 정말 이런 방법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하고, 후죠질이 진짜 개인의 영역인지도 돌아봐야 한다. 취미 생활은 개인적으로 하더라도 그 권리 주장은 단체로 할 수 있는 연대도 필요하다. 그래.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진챙총씨의 방식으로 문제를 까발리는 게 과연 후죠들의 의식 전환을 불러올 수 있을까? 진챙총씨 본인은 어떤가? 


현재 진챙총씨의 퍼포먼스가 유의미하게 끝나는 길은 하나뿐이다. 진챙총씨가 고소당해 패소하는 것. 후죠들에게 '법을 이용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물먹인'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진짜로 법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오히려 수많은 동인계 룰은 없어지지 않을까? 문제가 생기면 법대로 하자고 끌고 가지 누가 효력도 없는 룰이 이렇네 저렇네 따지고 앉았겠냐. 진챙총씨가 패소까지의 시나리오를 짜고 움직이는 거라면 대단하다고 박수쳐줄 용의가 있다. 진심으로. - 너의 성장을 위해 악역을 감내했다-라니 여기 2D에나 나오는 악당 보스를 현실 재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누군가 그를 꼭 고소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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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주최자가 전시에 대한 반응들을 모은다고 들었습니다. 반응하는 것 자체가 병신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무서워서 할 말 못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몇 줄 적어 봅니다.




아. 혹여나 걱정되어 덧붙이지만 이 글은 온리전을 공격하는 글이 아닙니다. 진챙총씨가 공격하는 현상이 오히려 후죠가 발전했기에 만들어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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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탄(1996) 남자들의 세계에서 히로인의 역할

Swimming/etc 2015. 6. 21. 14:46

상해탄 (1996) 장국영 / 유덕화 / 영정 주연 



상해탄 (1996)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정석적인 여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아무리 작품을 잘 만들고 캐릭터가 매력적이어도 분명 한계가 온다. 남자가 아니라 계승권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는 절대 메인 서사가 될 수 없다.

이야기 배경은 1919년 상해. 여주인공 풍정정은 이 영화 최종 보스 풍선생의 딸이다. 대개의 픽션 악당답게 풍선생도 제 딸을 세상 때는 하나도 묻지 않게 곱게 싸서 애지중지 기른다. 덕분에 풍정정은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자격 요건을 두루 갖추게 된다. 그녀는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고 아름답고 순결한데다 풍선생의 하나뿐인 무남독녀다. 대략 이 영화 풍선생의 힘은 이미 지참금이 어쩌고 할 급이 아니다. 그냥 상해=풍선생 ㅇㅇ 풍선생을 계승한다는 건 상해를 손에 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정은 '상해에서 가장 소중한 것' 이라 불릴만 하다. 하지만 여기에 정정의 한계가 있다. 그녀는 가장 소중한 '것'이지 소중한 것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정정은 아버지와 그 수하들이 얼마나 지독한 악당인지, 그들의 그물망이 얼마나 넓게 펼쳐져 있는지 잘 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일탈을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세상 어디에 가도 아버지가 있음'을 깨닫는다. '딸을 소중히 소유하려는' 아버지에대한 반발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원망할 정도로 괴로움에 빠진 풍정정. 그녀가 시도한 일탈 중 성공한 것은 단 하나, 아버지 외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여자에게 사회적 자리를 내주지 않는 세계에서 그녀는 어딜 가나 '보호받는 존재'니까.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뿐이기에.

그녀는 자신이 온전히 사랑하는 남자 허문강과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남자 정력 사이에 놓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둘 중 어느 남자와 함께 할지 선택하는 건 그녀가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이 그녀와 함께 할지는 친구이자 연적, 허문강과 정력 두 남자가 결정한다. 이건 그녀가 허문강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보다, 정력이 얼마나 허문강에게 아량을 베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분명 사랑을 한 건 그녀인데 결정권은 정력에게 넘어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거기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없었다. 정력이 워낙 아량이 넓어서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는 바람에. 

재미있게도 정력과 허문강은 각자의 방식으로 '풍선생의 사위 노릇'을 수행한다. 허문강은 풍선생을 살해하고 정력은 풍선생을 계승한다. 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이면서 아버지에게 반발하는 정정의 할 일을 대신 수행해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정정의 이야기는 끝난다. 그녀는 제 눈 앞에서 아비를 살해하는 허문강에게 총을 쏘지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다. 이후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이 되어 정력의 도움을 받는다. 상해의 모든 것은 정력이 물려받고 그녀는 완전히 영화 뒤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절망에 빠져 속옷 차림으로 욕실 바닥에 늘어져있는, 누군가 도와줘야만 하는 나약한 여성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권력을 쥐고 발언할 수 있었다면 그런 모습으로 엔딩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두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기에 그녀에게 내줄 자리가 없다. 그녀는 마땅히 두 남자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물러나야 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그럼 이 세계에서 여자가 권력을 쥐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가? 이 영화에는 이미 그런 '금기'를 범하고 있는 여캐가 등장한다. 그 풍선생마저도 '동업자'라고 표현하는 여 보스. 초반에 허문강을 위협하고 그 동지들을 모조리 사살해 버린 여자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무려 허문강과 정력 둘을 성추행하는 여자 강간범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미지를 보자마자 '아 이게 남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강간 공포로구나' 하고 팍 깨달음이 올 정도다.
이게 그냥 여자 강간범이 아니라 '남자들이 상상하는 강간 공포'라는 삘이 오는 데는 근거가 있다. 일단 그녀가 정력을 덮치는 장면은 그녀가 정력을 따먹으려는 건지 거세하려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녀가 키우는 거대 뱀이 정력의 사타구니를 물어뜯으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거나, 곳곳에 비치된 칼 이미지라거나... 그녀가 허문강을 위협하는 장면에서도 마음대로 허문강의 샅에 손을 넣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전까지 참고 있던 허문강이 그 직후에 반항한다 -

남자 못지 않는 권력과 힘을 가지고 제 욕망대로 행동하는 여자는 남자들에게 저렇게나 공포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최소한 극중 배경인 1919년 당시) 여자가 그런 힘을 가지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만큼 그녀는 더욱 환상 속 괴물이 된다. 그리고 남자들이 생각하기에 '위협적인 여자'는 자신의 남성성을 노리고 파괴하려 드는 게 당연한 것이다. 왜? 그녀는 남자가 아니니까. 정상적인 권력의 대물림 루트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기형아이므로.

아마 풍정정이 권력을 가졌다면 그녀 역시 남자를 위협하는 여자로 그려지거나 / 남성화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상해탄을 배경으로 남자 둘의 운명적 만남과 엇갈림, 영혼 결혼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니 이런 가정은 불필요하지만. 그리고 이 서사에서 풍정정이 '소위 현대적 / 주체적 여성'으로 행동했다면 매력도 고뇌도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해탄은 자기가 갖고 있는 서사에 걸맞게 캐릭터 매이킹을 해냈다. 다른 여캐를 보고 싶다면 다른 서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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