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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의 정치 - 181~186p 정몽주의 등장과 불행한 의식

Walking 2016. 12. 6. 23:57




  공민왕 5년 7월 인당에게 벌어졌던 일이 재현되었다. 장군들의 군사적 승리는 정치적 위협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찬양받는 것이다. 그것이 당대의 역사이다. 그들은 그 시대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의미 안에서만 수용된다. 사가史家들이 공정한 이유는 그들이 역사 밖에 있는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역사가는 그로 인해 당대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가들의 경우 당대를 넘어서는 의미를 이해한다 해도 정치적 불가피성은 그들에게 한정된 선택을 강요한다. 이런 정치가는 스스로가 분열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현실의 불가피성과 역사의 이념 사이에서 방황한다. '불행한 의식'은 역사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의식이다. 그러나 역사의 목적이 없다면 역사는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역사의 목적은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탄생된다. 그 경우 역사는 도달해야 할 목적을 가진다. 목적론적 역사는 자연적 의식이 아니라 불행한 의식의 역사이다. 


  정몽주는 엯사의 이러한 성격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었다. 홍언박 등 당대의 유수한 정치가들은 장군들의 살해를 불가피한 일로,혹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공민왕 역시 그랬다. 그들은 당대의 역사 안에서 그들을 이해했다. 그러나 안우의 아들에게 보인 공민왕의 연민을 볼 때 공민왕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공민왕은 안우 등이 정치적 불가피성의 희생자임을 알고 있었다. 안우 등을 처형한 뒤 내린 교서에서 왕은 "옛 공로를 생각하여 처자에게는 죄가 미치지 않게 할 것이며, 아울러 그 관할에 소속된 대소 관리는 관계 기관으로 하여금 공을 헤아려 서용케 할 것"을 명했다. 또한 안우의 어린 아들이 헐벗은 몸으로 길가에 서 있따는 말을 듣고, "슬퍼하여서 불러 궁중에 두고 돌아갈 곳을 물어서 보냈고, 안우의 휘하 군사가 놀라 무너지자 왕이 불러서 위로하였다"고 한다. 백성들 역시 이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방실의 아들은 중문中文이다. 안우의 아들은 나이가 겨우 10여 세였다. 저자에 나가 놀자, 사람들이 음식을 먹이면서 말하기를 "지금 우리들이 편하게 먹고 잘 수 있는 것은 모두 원수의 공"이라 말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고려사 열전 26, 안우)

  정치가들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로는 이들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민왕 13년 정도전은 일찍이 정세운이 개경의 동문 밖에 심은 버드나무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성을 나와 남쪽 바라보니 갈 길은 멀고 먼데,

동풍 불어 때는 바로 이월 초순,

뉘라서 도성 문에 버들을 심었느냐. 

해마다 버들솜 날아 사람의 슬픔을 더해주네. (삼봉집 出城)


  그러나 이 사건을 역사의 보편적인 문제와 결부시켜 이해했던 사람은 정몽주였다. 김득배와 정몽주는 좌주와 문생 관계였다 김득배는 원래 과거에 급제한 문신으로 정당문학에 올랐다. 그는 공민왕 9년 10월에 지공거 (과거 시험관)를 맡아 정몽주를 뽑았다. 당시의 습속에서 '좌주-문생' 관계는 부자 관계처럼 인식되었고, 평생 동안 유지되는 중요한 정치적, 윤리적 관계의 하나였다. 김득배가 죽자 직한림 정몽주는 왕에게 청하여 시체를 거두고 글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아아! 황천이여! 나의 죄가 무엇이며, 아아 황천이여!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대개 듣건대 선인에게 복을 주고 악인에게 화를 내림은 하늘이요, 선인을 상 주고 악인을 벌함은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비록 다르다 하나 그 이치는 하나인즉, 옛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이 정하면 사람을 이기고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긴다 하였으나, 하늘이 정하면 사람을 이김은 과연 무슨 이치며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긴다 함은 또한 무슨 이치입니까? 지난날 홍건적이 침입하여 임금이 서울을 떠나시니 국가의 운명이 한 가닥 실 끝에 달린 것처럼 위태롭거늘, 오직 공이 먼저 대의를 선창하자 원근이 향응하였고 몸소 만 번 죽을 계책을 내어 능히 삼한의 대업을 회복하였으니, 무릇 이제 사람이 이 땅에서 먹고 이 땅에서 잠자는 것이 그 누구의 공입니까? 비록 죄가 있더라도 공으로써 덮는 것이 옳을 것이요, 죄가 공보다 무겁더라도 반드시 그 죄를 자복시킨 뒤에 베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말의 땀이 마르지 않고 개선하는 노래가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태산 같은 공을 오히려 칼날의 피가 되게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내가 피눈물로써 하늘에 묻는 바입니다. 나는 그 충혼忠魂, 장백壯魄이 천추만세토록 반드시 구천의 아래서 울음을 머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아, 명命이로구나!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고려사 열전 26, 안우)


  비통함으로 가득한 이 글은 장차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한 글이다. 그런데 이 글에는 단순한 슬픔 이상으로 당대 고려의 정신이 직면한 분열과 위기가 격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즉 정몽주는 인간세계의 부조리와 하늘 및 인간의 관계를 묻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사마천이 중국 역사를 시작하면서 물었던 물음과 같은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천도天道는 특별히 친한 자가 없으며 항상 선인과 함께한다고. 백이. 숙제 같은 사람은 정말 선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인을 쌓고 깨끗한 행동을 하였는데 굶어 죽고 말다니! 70명의 문도 중에서 공자는 안회만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칭찬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안회는 굶기가 일쑤였고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여 베푸는 것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 나는 심히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 도대체 이른바 천도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기 열전 1. 백이숙제)


  하늘은 인간과 만물을 낳았으니 인간과 하늘은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역사의 이 비극들은 어찌된 것인가? 과연 하늘은 존재하는가? 우리의 이해가 잘못된 것인가? 하늘이 인간을 이긴다 하고 인간이 하늘을 이긴다 하면, 하늘과 인간은 달느가?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영원한 가치의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가? 모든 가치는 상대적일 뿐 절대적인 가치는 없는 것인가?


  정몽주의 이 모든 질문은 결국 그가 혼란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학문을 통해 배운 세계가 아니었다. 김득배의 죽음은 그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ㅇ벗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이성에 강렬하고도 파괴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제문은 정몽주가 이 도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비탄이 그 증거로, 그는 "이것이 내가 피눈물로써 하늘에 묻는 바"라고 말하고 있다.


  정몽주의 이러한 질문들은 매우 독특한 인간의 탄생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는 홍언박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고착되어 그 안에서만 의미를 이해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현세에 있으면서도 현세 너머에서 현세의 문제를 통찰하려는 인간이었다. 그는 행위에 불변의 원칙을 가져다주고 삶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을 탐색하는 인간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삶과 모든 행위는 하루살이처럼 부질없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의 비탄처럼 이러한 모색은 혼란을 가져온다. 세계는 더 이상 조화롭지 않으며, 모든 것은 이원적인 요소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이 속에서 우리는 현실 속에 가라앉거나 현실의 뿌리를 뽑는 극단적인 길을 택한다. 앞의 경우 역사의 의미는 질문되지 않으며, 뒤의 경우 역사의 의미는 살아갈 터전이 없다. 두 극단의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할 때, 그는 분열된 인간이며 그의 의식은 불행한 의식이다. 정몽주는 바로 그런 상태에 있었다. 정몽주는 그 혼란을 '명命'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그것은 알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란 뜻이다. 우리는 이 모든 역사의 부조리에 대해, 그리고 이 혼란에 대해 체념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이 역사를 묵묵히 견디며 살아갈 뿐이다. 


  성리학은 인간의 구원을 인간의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완성하려는 시도였다. 즉 인간은 그 잣니을 떠나서는 이 세계에서 구원될 수 없다. '천리'와 '수신'. '평천하'에 이러는 복잡한 설명은 그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세계의 실제는 그처럼 논리적으로 정합적인가? 인간은 그 자신을 스스로 구할 수 있는가? 또한 구원된 인간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가? 인간이 내적으로 그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성리학자들 역시 증험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나 이뉼, 만물로 확대된 자아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거기에 성리학자들의 곤경이 존재했다. 세계는 자기의 단순한 확장 이상인 것이다. 하늘은 세계를 선하게 창조하였찌만, 다만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남겨두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이 분열의 크레바스이다. 정몽주의 '천명'은 그 점에 대한 비통한 고백인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의 이 절규를 통해 우리는 하늘이 역사에서 이념 혹은 모적을 실헌하는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정몽주의 제문은 바로 그 자신이 김득배의 죽음을 통해서 역사의 참다운 이념을 근본적으로 자각했음을 보여준다. 김득배의 죽음에 대한 비탄은 역사의 불합리에 댛나 의문이지만, 동시에 역사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발견이기 땜누이다. 그리하여 여말선초의 역사에서 정몽주는 이념의 서식처가 되었다. 정몽주의 의식 속에서 역사의 이념은 이미 탄생되었으나, 그것은 아직 세계 속에 실현되지 않았다. 김득배의 죽음은 그 분열을 분명히 자각시켰다. 그러나 이념의 성술은 정몽주에게 그의 삶 전부를 요구했다. 그리고 정몽주는 정치적 생애의 종국에 마침내 그와 같은 인간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제문은 정몽주 자신의 정신적 운명에 대한 예언이다. 그는 정치 속에서 그의 정신을 완성하고자 했으므로, 그것은 또한 그의 정치적 운명이기도 하다. 그 자신도 본질적으로 김득배와 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정치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략의 희생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세계 속에 나타난 정신의 고통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김득배와 달리 그는 잣니의 죽음이 가진 이념적 의미를 자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몽주의 죽음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서 정신적 사건이 되었다. 조선의 정치적 탄생은 조선 건국자들의 공업이었지만, 정신적 탄생은 근본적으로 정몽주의 죽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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