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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당가> 샘플 2
6월 1일 케이크퀘어 삼국지쁘띠온리전에 참여할 화봉요원 기반 소설 카피본 <대주당가> 일부입니다.
현재 수량조사 진행 중: http://singendestern.tistory.com/784
“넷째의 상태는 좀 어떻지?”
순욱의 질문에 집사는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한 게 여러 날이요, 오늘 저녁도 죽 두어 숟갈 밖에 뜨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스승께서 명의 화타를 부르셨으니 이 밤이 가기 전에 진료를 하게 되리라고도 했다. 화타라면 순욱 역시 알고 있었다. 빛바랜 머리칼에 혈관이 또렷한 기인인데, 다른 의원들은 감히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대침을 썼다. 그라면 능히 아이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순욱은 애써 심란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명상을 해보아도 영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수경부 전체가 병실이 된 것만 같았다.
부 내 하인들은 넷째의 몸에 맡는 약을 구하느라 바빴다. 스승님과 사형제들 역시 넷째를 염려하고 있었다. 가후는 매일 곽가의 용태를 직접 살피고 있었다. 원방도 두어 차례 방문해 위로를 한 모양이었다. 순욱만이 여직 넷째의 방문턱을 넘지 않았다. 순욱은 요 며칠간 밤늦도록 침상 위에서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내가 이토록 속이 좁았던가?’순가를 떠나기 전 아버지와 숙부들의 가르침을 떠올려도 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넷째에게로 선뜻 걸음이 옮겨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제 화 선생이 오는 이상 걱정할 일은 없다고, 순욱은 그리 생각하며 억지로 눈을 붙였다.
그러나 순욱은 그날 밤도 깊이 잠들지 못했다. 문밖에서 계속 부산한 사람 기척이 들린 탓이었다. 무슨 일인가 바깥을 내다보니, 화타 선생이 와 있었다. 그런데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어찌 오각을 달여 먹였단 말인가! 환자의 체질에 상극인 것을!”
기를 보할 때 흔히 먹이는 약재이기에 넣었노라 집사가 어물어물 해명했다. 화타는 한숨을 쉬더니 급히 몇몇 약재를 적어 집사에게 건넸다. 잠시 후에는 자기도 직접 나서 어디론가 달려갔다. 순식간에 숙소에서 사람들이 쑥 밀려나갔다.
“스승님! 사형?”
순욱은 한 걸음 한 걸음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당 건너편에는 넷째의 방이 있었다. 불빛이 새어나오고는 있지만, 문지방으로 아무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넷째의 상태가 그리 위중한가? 다들 환자를 내버려두고 어디 간 거지?
자꾸 두근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르며 문 안쪽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지만, 열에 들뜬 신음성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없는 거야? 순욱의 두 손이 문을 밀어젖혔다. 뜨뜻한 공기가 확 퍼져 나왔다.
“넷째?”
아이는 이불을 겹겹 덮은 채 침상에 누워있었다.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손 하나가 보였다. 손등 처음 이곳에 온 날보다 더 말라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순욱은 아이의 손을 들어 가만가만 이불 안에 넣어 주었다.
“언제까지 서 있나 했어.”
아이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순욱은 침상 옆의 물수건으로 아이의 바짝 마른 입술을 축여주었다. 아이가 시원한 기운을 느꼈는지 눈을 떴다. 고통에 울었는가, 눈물자욱이 길게 남은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순욱은 다시 물수건을 들어 아이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잘못 힘을 주면 아이가 그대로 부서질 것만 같아서 손에 조금도 힘을 줄 수 없었다.
“어찌 이리 낫지 않는 거야?”
“걱정했어?”
아이가 말했다. 순간 그 얼굴에 순욱이 첫째날 보았던 수줍은 미소가 돌아온 것 같았다. 순욱은 마주 웃어주다가, 문득 아이가 저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순욱의 심기를 눈치 채고는 살살 웃었다. 순욱은 뾰루퉁하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내가 수업에 나가길 기다리고 있다는 거 알아. 나한테 답을 하지 못했잖아.”
“왜 내가 네 헛소리에 일일이 답하리라 생각하는 거지?”
“형은 다른 사람에게 성실하니까.”
아이의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순욱은 이대로 아이가 숨을 놓을까 걱정되었다. 그는 아이가 더 편히 숨을 쉬도록 베개를 고쳐 주었다.
“…더 기다릴 수 없다면 지금 답해줘도 돼. 사형의 고견을 감사히 듣지.”
“허튼 소리를. 감히 뻔뻔히 누워 사형에게 가르침을 청하다니.”
“…내가 본시……. 예에 어두워.”
더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어……. 순욱은 제 도톰한 손을 들어 아이의 눈을 덮었다.
“답은 네가 바르게 앉아 똑똑히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해줄게. 수업은 서탁 앞에서, 침상에서는 잠을 자는 거야.”
아이는 몇 번 입술을 달싹였지만 더 대꾸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규칙적으로 숨 들이내쉬는 소리만 병실에 가득 찼다. 순욱은 아이의 눈꺼풀이 꼭 닫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 손을 얹고 있었다. 아이의 이마에서 오르는 열이 제 손바닥에 옮겨 올 때까지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