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버지의 죽음

Swimming/etc 2013. 7. 8. 22:26


  리부트 파이크는 워낙 '양부' 포지션 하나의, 하나를 위해, 하나에 의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길게 얘기할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커크의 말대로 좋은 친구이자, 함장이자, 아버지였다.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고, 낙심했을 때마다 나타나 어깨를 두드려주는. 좋은 아버지. 그러니까 '가짜 아버지'만 될 수 있는 아버지 상이다. 아무튼 그는 커크에게 그런 아버지 역할을 다 해주고 깔끔하게 뒈졌다. 너무나 적절한 리타이어였다.ㅇㅇ. 순수히 애도하기에 좋은 죽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죽음은 커크나 스타트렉 영화에만 적절한 죽음이 아닌 거다. 사실 이 양반 무지하게 운이 좋달까.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지. 이 사람은 거기에 팔자가 편하다는 말까지 추가해야 함. 죽는 마당에 팔자가 편하다고 말하니 미묘하지만. 이 사람 이때 죽었으니 스팍이 마인드멜딩이라도 하며 보냈지 안 죽었으면...어...음...

  만약 여기서 파이크가 살았다고 쳐보자. 아무튼 스타플릿 실전 능력자들은 개빡살이 난 상태다. 그 와중 스코티가 칸의 도주 위치를 파악해 오겠지. 자 그럼 이제 마커스는 어떻게 움직일까? 파이크가 죽지 않았으므로 커크가 복수혈기가 뻗쳐 앞뒤없이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분명 마커스는 다크니스 원래대로의 계획을 진행할거다. 현재 클링온과의 외교 관계를 볼 때 '야 이 반란군 노무 시키야 내가 지금 클링온 몰래 어뢰를 몰고 가서 너를 박살내 주겠어' 작전에 반대할 명분은 거의 없다. 그리고 마커스가 희생양을 고른다면 눈엣가시 커크를 고를 확률이 매우 높지 않겠어? 커크는 커크대로 복수혈기가 아니라 공명심때문에 불나방이 되어 뛰어들 확률이 매우 높지.(애초에 난 커크가 복수심때문에 엔터프라이즈 몰고 날랐다고 생각하지 않아. 파이크가 죽어 버렸다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복수심으로 튀었다면 모를까.ㅋ) 가뜩이나 파이크 없었으면 학교에 처박혀야 할 신세였던 커크다. 사회를 초워ㄹ..아니 규칙을 초월하는 본인의 일 처리 방식도 인정 받을 겸, 함장직에 어울리는 공도 쌓을 겸 덥썩 미끼를 물 수 있지. 충분히. 이 경우 스팍을 못 데려갈 가능성도 있어. (그러고보면 3초 스팍 함장 된 브래드버리호 함장은 칸의 습격 때 죽은 걸까? 되게 쉽게 스팍 엔터프라이즈로 돌려 보내던데.) 스팍이 없다면 커크에게 그렇게 강고하게 '로지컬한 윤리 기준'을 들이댈 인물이 없다. 커크 얘가 허당이라 정말 어뢰를 쏠 가능성은 이 경우에도 그리 높지 않기는 함.(차라리 술루가 위협하다가 레알 날려 버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봄) 하지만 체포로 작전을 바꾸는 타이밍이 다크니스 보다 늦어질 수 있고 덕분에 더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 수 있다. 엔진 고장난 함선에 범죄자를 태운 채 증거인멸하러 달려온 제독 짱짱함선과 1:1 떠야 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상황 말이지. 레알 레알 레알 클/링/온/ 이 뜬다든가. 

  한편 파이크는 가뜩이나 다리도 불편한 양반인데다 어뢰 작전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듯 함. 때문에 엔터프라이즈 다시 커크한테 내놓고 뒤로 빠지게 될 가능성 있음. 그리고 이 양반이 지위와 짬밥이 어지간한 양반이 아니므로 당연히 마커스의 의중 꿰뚫어 볼 거라 봄. 마커스 왈 제가 군인이 되라 추천했다고 하니, 마커스와 각별한 관계일 것이니만큼 다른 이들보다 더욱 빨리 눈치 챌 수 있으리라 봄. 그럼 이 양반이 가만 있을까? 양아들(삘인) 커크가 덧없는 우주 먼지가 되어 날아가게 생겼는데. 당연히 뭔가 조치를 취할 것임. 그런데 그 조치가 절대 자신의 군내 지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닐 거임. 즉 온당하다는 거임. 마커스같은 (최소) 군내 절대 권력자+수완가에게 '온당한 조치'란 뜨뜻미지근한 미온수에 불과함. 즉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기 이전에 마커스에게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는 처지가 되실 거란 말임. 아마도 커크에게 경고 정도 해줄 수 있는 게 전부 아닐까. 

  그러니까, 자신에게 군인이 되라 추천한 사람에게 붙잡혀서 자기가 군인이 되라 추천한 애가 망하는 꼬라지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다는 거지. 내 스승이 내 제자 뒷통수 치는 꼬라지 말야. 마커스가 곧바로 파이크를 죽일 거 같진 않아. 파이크는 굳이 곧바로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거든. 그는 온당하니까요. 파이크는 애초에 마커스를 끌어 내리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조차 않았을 테니까. 최고 제독에게 다짜고짜 그 의자에서 내려오라고 페이저건 들이댈 수 있는 건 우리 대책없는 커카스파니엘 정도지.ㅋ ... 마커스가 '나 내려간 자리 니가 책임질래?ㅋ' 할 때 어멈칫하던 거 봐.ㅋㅋㅋ

아무튼 저런 꼬라지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참. 다리도 불편하신 분이 참. 갇혀서 말임. 몸이 덜 불편한 대신 마음이 한없이 불편하고. 양자 걱정에 눈을 감지 않아도 눈 앞이 캄캄하시겠지. 참. 그래. 아.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거 땡기잖아. 말할수록 괜찮은 거 같아. 아 이거 꽤 볼만한...꽤 절경인데...어...

...아무튼 이러 저러한 이유로. 파이크는 저때 죽은 게 운 좋은 거였습니다. 네. 좋은 죽음이라고요. 좀 아쉬운 죽음이기도 하고...쳇...'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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