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웬일이야. 번역 이 정도면 꽤 잘한 편이잖아. 극장판에서 심각했던 오역들 거의 다 고친 것 같다. 조조랑 헌제 대화라든가 공명과 손권 대면, 손권이 주유 좌도독으로 임명할 때 관직명 등등. 특히 감동적이었던건 공명 손권 대면 때 좌우 신료들 발언 살린 것. 전에 E가 자막 작업 할 때 자막 한계 때문에 다 못넣고 고생했던 걸 꽤 많이 살렸다.(역시 난 원어를 못 알아 들으니 얼마나 맞게 살렸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듣기에 이상하지 않았음.) 몇몇 배우가 좀 사극톤이 아니라서 어쩐지 서양영화 더빙 볼 때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난 이 정도면 꽤 만족. 아 시발 우리 전하 간지 좔좔난다. 아주 그냥 예술이다.
아, 성우 캐스팅에서 한 명 에러였다면 손권. 아무래도 캐스팅 담당자가 군주는 다 존나 우월하고 간지 좔좔나고 기백 넘치는 목소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어디 주윤발한테 어울릴 목소리가 나름대로는 불안한 내면 연기를 했던 것도 같지만 장첸 얼굴이랑 너무 떠서 난 보는 내내 응아앜꼐이가 되었을 뿐이고...
그리고 음 공명 성우도 꽤 훌륭하긴 훌륭했는데 내가 그영화에서 금성무 목소리를 워낙 좋아해서... 역시 완전히 몰입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우리 전하 성우는 다 좋은데 적벽 내려가다 시 읊을 때 어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어... 하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했어. 특히 이 영화 초반 조조와 헌제 대화 때, 빡빡하다 싶은 대사를 소화하신 걸 생각하면 점수를 더 쳐드리게 됨.
한실의 광복이란 표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내가 원어를 모르니 이건 맞는건지 틀린건지 모르겠고... 제를 올려라! 를 처형을 집행하라! 쪽으로 바꿨는데 이건 아무래도 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그 후 공융이 '감사히 받아 마시겠소! 승상!' 이라고 했거든. 즉 번역자도 제를 올려라! 라는 대사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던 거다. 다만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바꾼 것인 듯. 그런 느낌 대사가 몇 개 더 있었는데 잘 기억이 안나네.
편집도 과감한 게 제법 우수. 특히 소교와 주유 떡씬을 자르고 극장판에선 잘린 평안이 드립을 넣은 건 탁월한 선택인 듯. 낮 11시에 보여주기엔 수위도 높은데다, 솔직히 그 장면 별로 필요도 없는 거잖아. 차라리 평안이 드립이 들어가는 게 뒷 내용하고도 더 잘 연결되지. 그런데 그 장면 주유는 아무리 봐도 병신이라. 편집자인지 대본가인지 총 책임자인지도 그 장면에서 왜 주유가 소교의 임신을 눈치채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간 모양이다. 영화판에서는 그냥 주유가 빗소리를 듣고 있는데 더빙 판에서는 주유가 빗소리에 맞춰 흥얼흥얼거리더라고. 아마도 흥얼흥얼거리느라 소교의 드립을 눈치 못 챘다는 식으로 설명하려는 듯. 뭐 그래봤자 눈새 어디 가냐마는.
이런 걸 보면 대체 적벽 편성 담당이 누군지, 참 엄청나게 공들인 티가 팍팍 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냥 오역과 뻘연기가 넘쳐나겠거니 명절에 대뿜할 각오했는데 이게 웬 일, 꽤 양질의 더빙판 선물이었어. 비디오로 녹화 못한 게 한이 되더라. 아 이거 어디서 다시 못 구하나?
그 외에도 잘린 부분 둘, 공명이 멍멍이 받아내는 장면과 손권의 호랑이 사냥 장면. 호랑이 사냥 장면을 잘라낸 건 꽤 과감한 선택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전 장면과 다음 장면을 잘 연결해서 나쁘지 않았다. 주유가 활시위를 당김에 연이어 손권의 탁자 협박이 나오니 그 모퉁이 잘린 탁자도 박력 넘쳐 보이더라. 아... 이 박력은 어쩌면 손권 성우의 엄청난 박력(...) 덕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기왕 잘라내기로 한거 치고 잘 잘라냈다고 생각해. 긴장감이 잘 유지되었거든.
살짝 아쉬운 건 아무래도 멍멍이 받아내는 걸 자른 건데, 음... 그 부분 공명을 좋아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윤건 쓴 공명과 주유가 멍멍이 주고 받는 걸 어떻게 처리할지도 좀 걱정. 그냥 앞부분 무시하고 어린 말을 넘기는 걸로 처리할 모양인데 뻘쭘하긴 할 것 같거든. 그렇다고 해서 설마 그 윤건을 자를리는 없지. L1님은 윤건 자르실까봐 걱정하시던데 난 별로 그런 걱정은 안됨. 그러기엔 이 더빙 기획자들 너무 공을 들였거든. 아마도 마지막의 멍멍이 교환을 그냥 넣어도 상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멍멍이의 탄생보다 소교가 임신했다는 걸 알리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도 같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 적벽2 더빙도 몹시 기대되는 것이다. 제발 편집자가 내일 게딱지 공성전을 잘라주길 빈다. 뭐 오늘 보니 액션은 거의 안 자른게 내일도 액션 안 자를 것 같지만. 그래도 기대는 해보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못봐줄 장면이라고 생각하잖소. 설마 게딱지는 안 자르고 우리 전하가 머리 풀리는 걸 자르거나 마지막 윤건 쓴 공명을 자른다면 그 저주 어찌 감당하시려오.
허허 모든 것은 내일 밤 11시 35분에. 허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