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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ing 2013. 7. 20. 13:44


귀환기념 박선생에게 드리는 글+
모처에 올린 애들 기반...의 패러디...의 번데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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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는 후덥지근했다. 준일은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연신 관자놀이 언저리를 닦았다. 판사와 검사, 서기 까지도 틈틈이 땀을 찍어내고 있었다. 준일의 반대편에 앉아있던 기자는 숫제 목 언저리 단추를 풀어버리고는 물통을 입에 처박았다. 준일은 그 모습을 곁눈질하다가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어놓은 창으로 작은 무당벌레 한마리가 기어들고 있었다. 누런 껍질에 점이 한쌍 박혀 있는, 아주 작은 놈이었다. 놈은 꾸물꾸물 하얗게 바른 벽을 타고 내려오다 문득 사라져 버렸다. 
  준일은 다시 사방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이 방 안은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시선을 고정해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얀 벽, 탁자, 의자와 타자기, 판사, 다시 검사, 서기, 경비와 기자. 한준일 자신. 그리고 그들 사이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피고 네 사람. 그들 사이에 앉아 있는 채윤서 뿐. 
  말랐다. 준일은 윤서의 뒷모습을 보고는 그리 생각했다. 원래도 살집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더 야위고 작아졌다. 본래 어두운 편이던 낯색이 아주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었다. 예전에는 저 옆얼굴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보인다고 종종 생각하고는 했었는데, 왜 깡마른 지금 보니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윤서는 한 시간 째 앞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뻣뻣하게 앉아 있었다. 준일에게 다행한 일이었다. 일부러 피고들이 착석한 후 입실한 보람이 있었다. 

  “이미 다 결판 난 거나 마찬가지 재판이오. 형량이나 더해지면 모를까.”
  재판 소식을 알려준 경감이 함께 찔러준 말이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끌고 온 죄수들을 방치한 채, 재판은 검사와 판사 사이에서만 진행되고 있었다. 항의도 소요도 없었다. 어차피 보석금을 낼 처지가 못 되는 조선 불순분자들은 판결을 받는 것 외에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죄수들은 지금 여기서 진행되는 일과 가장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형이 얼마나 내리든, 교도소를 어디로 옮겨야 하든 어차피 제국의 사정에 따라 결정될 일이었으니까. 
  더욱이 신문에 한 줄 언급되기도 애매한 고만고만한 독립운동가들이라면. 어디서나 골칫거리일 뿐.  
  “가본댔자 한 사장님께 좋을 일은 없을 텐데요. 죄인들과 면식이 있는 사이라면 괜히 귀찮은 일에 말려들 수도 있고.”
  돕고 싶은 이가 있다면 차라리 죄인의 가족들을 돌봐주는 게 낫다고 경감은 말했다. 혹여 준일이 보석금이라도 내겠다고 나설까봐 경계하는 눈치였다. 경감은 준일의 아버지가 두번째 광산에 손을 댔을 때부터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처지였다. 그는 정말로 준일을 조카대하듯 했고, 앞으로도 죽 ‘함께’ 무탈하기를 바랐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그저 무탈한 게 상수인 것이다.   
  게다가 당신처럼 ‘젊은 시절 치기’로 엉뚱한 곳을 갸웃거렸던 사람은, 그런 곳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다-. 그리 신호를 보내는 경감에게 준일은 웃어 보였다.
  - 그러나 경감. 채 형에게는 대신 돌봐줄 가족이 없습니다.
  같은 말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경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더위에 환기도 잘 되지 않는 재판정까지 행차한 건, 글쎄. 그냥 회의감때문이라고 해두자. 
  준일은 꽤 오래전부터 회의감을 핸들 삼아 살아왔다. 처음 그것을 느꼈던 것은 아마 큰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을 것이다. 큰할아버지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관료들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준일이 어린 시절 내내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준일의 할아버지가 본토 상인들과 쌀거래를 하고 아버지가 뇌물을 퍼올려 채굴 사업에 한 자리 끼어든 이후까지도 말이다. 큰할아버지의 제사 때마다 상 위에는 온갖 제수들이 푸짐하게 벌려졌다. 큰할머니는 아직도 죽은 남편의 옷가지며 갓끈을 어루만지며 그의 절개를 기렸다. 당숙은 아버지와 준일이 들르면 까딱 한 번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준일은 어쩐지 그 당숙을 대하는 게 무서웠다. 해서 당숙 뒤에 세워진 신위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가 어떤 씁쓸한 액체가 갈빗대 사이로 쑥 흘러 나가는 기분을 느낀 건 막 중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그 해에도 어김없이 큰할아버지의 제삿날이 돌아왔다. 집안 어른들이 모여 있는 큰 마루 끝에 앉아 잠깐 졸았던가. 문득 고개를 들자 신위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차려진 접시 뒤에 세워져있는 종이 한 장. 그게 그 순간 왜 그리도 괴상해 보였을까. 결국 준일은 그날 제수는 먹는 둥 마는 둥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 큰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본토 유학을 거부하는,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제국대학 건축학과에 가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를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만 보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여동생은 오라비가 괜히 집안 분위기만 굳히는 것이 반갑잖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만은 예전과 똑같이 그의 밥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주었다. 그가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몹시 드물었지만 말이다. 
  “대체 어쩔 셈이냐?”
  다그치는 아버지에게 그는 막연히 미국에 가겠노라 했다. 술에 벌겋게 달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또 쓴 물이 속에서 솟아나는 것 같았다. 미국행은 그저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더 대하지 않기 위해 갖다 붙인 말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꽤 안심한 것 같았다. 그날부터 집에서는 그의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물론 유학생 본인이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진행은 더디었다. 그는 이런 저런 준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시내 이 곳 저 곳을 쏘다녔다. 중학교 때 동기들과 고등학교 때 선배를 만난 것도 ‘준비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들 대부분도 준일처럼 길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준일과 달리 가고자 하는 곳이 뚜렷했으나 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술을 매우 좋아했지만 술을 마실 돈은 없었다. 준일은 술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지갑이 항상 두둑했다. 그는 기꺼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오뎅탕에 싸구려 정종이면 네다섯 입 정도는 감당할 만 했다. 덕분에 그와 친구들은 지붕 있는 술집에 앉아 여유롭게 비 내리는 바깥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윤서와 마주쳤다. 
  

  윤서는 그보다 세 살 쯤 많았다. 성은 채 씨. 경성제대 중퇴생. 준일이 그에 대해 아는 것 전부였다. 그는 분명 좋은 술친구였다. 그가 끼어든 날에는 비우는 술병도 오가는 이야기도 늘곤 했다. 하지만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이야기 차례라도 돌아가면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눙치곤 했다.
  준일은 그와 술집에서 여러번 마주쳤지만, 그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하지 못했다. 그 주변에 널려 있는 술병 중 그가 비운 게 얼마나 될까. 준일은 어쩐지 그가 술을 마시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가 낀 술상의 잔은 거의 다 그가 돌리다시피 했는데도, 정작 잔을 입에 대고 고개를 젖히는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아마 처음 만난 날 받은 인상 때문이리라. 비 내리는 소리가 하 요란한 밤이었다. 준일 일행은 비를 피해 아무 술집 문이고 밀어젖히고 들어선 판이었다. 지붕 낮은 술집 안에는 손님이 몇 없었다. 내부는 문을 닫았는데도 바깥 빗소리가 그대로 들릴 만큼 조용했다. 
  “어째 으스스한데.”
  일행 중 하나가 우스갯소리를 하며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른 집이라면 문간부터 달려 나와야 할 여종업원이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혹여 폐점이 아닌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구석에 한 테이블 차지한 사람이 보였다. 이쪽으로는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지만, 준일 또래의 젊은이인 게 틀림없었다. 그의 앞에는 가득 찬 술잔과 딱 한 잔 만큼 빈 술병이 놓여 있었다. 어째서일까. 그가 그렇게 술잔을 건드리지도 않은 채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걸 내내 지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뭘 그리 보는 거야?” 
  동기가 준일의 어깨를 툭 치며 시선을 맞춰왔다. 
  “별 거 아니야.”
  준일은 고개를 저으며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준일의 일행들이 다 같이 고개를 구석자리로 돌렸다. 선배 하나가 고개를 이리 갸웃 저리 갸웃 거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어이, 채윤서?”
  “……응?”
  구석 자리의 사내는 잠에서 깬 것처럼 느릿느릿 답했다. 선배는 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성큼성큼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사내의 마른 어깨를 덥석 끌어안아 일으켰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대체 어디에 박혀있나 했더니 다 망한 술집 손님 노릇이나 해주고 있었나?”
  “뭐야. 오 군이었어? 난 또 누구라고.”
  사내는 방금 전까지 딱딱하니 굳어있던 자세를 일시에 허물고는 선배와 마주 어깨동무를 했다. 준일은 이제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중키, 마른 몸, 까칠한 낯, 경성시내 대학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이었다. 사내가 허물없이 웃으며 합석해왔다. 
  “자네는 여전히 패거리로 몰려다니나 보군. 여기 이 준재들은 또 어떻게 꼬여 낸 건가? 자네 같은 사상범과 붙어 다니기에는 다들 너무 순수해 뵈는데.”
  “내 후배들을 모욕하지 말게. 다들 이 시대를 살기엔 너무 영민한 친구들이라고.”
  선배는 낄낄거리며 일행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준일을 가리키자, 윤서가 툭 한마디 했다.
  “아, 아까부터 나를 빤히 바라보던 친구로군.”
  “아…….”
  “이크. 말하지 말걸 그랬네.”
  준일은 낯이 확 붉어지는 걸 느꼈다. 사과를 해야 하나, 농담을 해야 하나. 혀가 꼬여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사내 쪽에서 외려 사과를 건넸다. 이어 소개 받은 이름 석자, 출신 대학, 친구들이 당겨 앉아 마련해준 제일 끝자리. 가득 찬 술잔과 꼭 술 한 잔 만큼 빈 술병. 그게 한준일이 아는 윤서의 전부가 되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윤서가 준일에게 특별히 말을 건 일은 없었다. 
   

  “그럼 15분간 휴정하겠습니다.”
  해가 제법 기울었다. 여전히 실내는 찜통이었다. 준일은 축축 처지는 몸을 억지로 세웠다. 경비가 죄인들을 툭툭 쳐 일으켰다. 죄인들이 일어나자 죄수복에 땀자국이 흥건히 남은 게 보였다. 그들도 땀을 무진 흘린 모양이었다. 
  ‘살아는 있는 모양이구나.’
  준일은 새삼스럽게 그리 생각하고는 재판실을 빠져나갔다. 문 앞에는 간이의자와 물주전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주전자속 물은 미지근한데다 냄새가 났다. 준일은 주전자가 텅 빌 때까지 그 물을 다 마셔 버렸다. 그래도 모자라 시원한 냉차나 사 마실까 하다가 관두었다. 이 근처에는 냉차 따위를 파는 곳은 없다. 어차피 곧 돌아와야 하는데 멀리까지 나가기 싫었다.
  - 곧 돌아온다라.   
  그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식구들을 생각했다. 가족들은 모두 ‘그가 곧 돌아올 것을’ 믿고 편안히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여동생도,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그들에게 그는 언제나 ‘곧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젊은 시절 방랑’에서도 곧 돌아와 주었으니까. 언제나 믿음직한 장자, 신뢰를 주는 사업가였으니 말이다. 
  준일은 여기서 재판정 앞 도로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여기서 몇 발짝 걸어 나가기만 한다면 인력거꾼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아무나 잡아타면 여기보다 훨씬 쾌적한 곳으로 단박에 준일을 데려다 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곳에 올 필요가 없겠지.  
  - 나는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지. 
  준일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한 시간이 넘게 채윤서의 뒷등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 그 이상 참견할 마음은 없었다. 그를 위해 보석금을 내주거나 사식을 넣어줄 마음도 없었다. 사상범 채윤서의 형량은 건축업계의 큰 손 한 사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무도, 아마 채윤서마저도 채윤서와 한준일 사이에 무슨 연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건 한준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그는 여기에 온 것일까. 왜 떠나지 않는 걸까? 왜 그는 채윤서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까. 이럴 때면 언제나 솟구치던 역한 느낌, 뒷목과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헛바람이 새는 듯하고 목구멍으로는 쓴물이 올라오는 듯한 그 느낌이 왜 밀려오지 않는 걸까. 그 기분만 든다면 그는 언제나 그랬듯 주저 없이 등을 돌렸을 것인데.
  그러나 아무리 오장육부를 되짚어봐도 그 씁쓸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경비가 재판이 곧 다시 시작될 것을 알려왔다. 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주전자를 한 번 더 기울였다. 주둥이 끝에 맺혀 있던 물 한 방울이 그의 입술로 떨어졌다.


  “채 형.” 
  뒤에서 와르르-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제 발이 뭔가 걷어찬 모양이었다. 아마도 병이 든 상자나, 상자 무더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자신은 뒤를 돌아보고 제가 찬 게 뭔지 분별할 수도 없었으니까. 
  윤서가 준일의 옆구리에 손을 밀어 넣었다. 부축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비록 키는 비슷하지만 윤서는 준일보다 한참 말랐다. 그는 준일의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준일은 허우적거리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몸이 가눠지질 않았다. 
  “그러게 왜 그리 마셨나. 한 군 답지 않게.”
  윤서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뭉개진 것처럼 들려왔다. 자기가 술에 취한 탓인지, 윤서가 입속말을 하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준일은 몇걸음 걷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한 기운이 올라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다면 모조리 뱉어 버리고 싶었다. 요 이 년간 친구들과 어울리며 먹은 그 싸구려 술과 안주들, 모두. 왁 다 쏟아 버리고 남이 뱉어 놓은 오물 보듯 미간을 찌푸린 채 지나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초에 이 모든 게 다 뜻 없는 짓이었어. 다 꼭두각시 놀음에 불과했다고! 채 형, 채 형은 알고 있었지요? 제국이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넣는 건 그들이 본토의 위협이 되기 때문이 아니야. 죄다 쓰레기 처치지! 저런 쓰레기들 아니면 조선  독립 따위 외치는 놈들이 없기 때문이야!”
  그는 뱃속 대신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토해놓았다. 한 번 혀가 뒤틀리자 마구 튀어나오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우정이며 어줍잖은 정의감으로 꽉 막아놨던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쇠꼬챙이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채 형은 알고 있었지요?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을 거야.”
  그는 자꾸 윤서를 불러댔다. 윤서가 제 머리를 발로 차고 입을 틀어막아 주길 바랐다. 그 손으로 제 토사물들을 쓸어 담아 주길 바란 것도 같았다. 아무튼 그는 윤서가 뭔가 어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해줘야 했다. 그는 결국 어설프고 순진한, 그리고 너무나 약한 젊은이들이 어찌 될지 알고 있었을 테니까. 어설프고 순진하고, 너무 약한 한준일이 결국 어떻게 할지도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항상 술잔을 가득 채운 채 넘기지는 못하고 있었던 거니까.
  왜 처음 만났을 때 순순히 그는 준일이 있던 자리로 합석해 왔을까. 그가 그 자리에서 한준일을 쫓아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더러운 부르주아 자식이 돈으로 너희와의 술자리를 샀다고. 그리고 얼마간 놀다가 너희를 팔아 버리고는 자기는 몸 편히 유학을 떠날 거라고 폭로해 주었다면 모든 게 간단했을 텐데. 
  뜨뜻한 손이 준일의 등을 쓸어내렸다. 준일은 그 손길마저 원망스러웠다. 밀쳐내고 싶은데, 지금은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그는 윤서가 쓸어주는 대로 몇번 더 헛구역질을 해보았다. 하지만 나오는 게 없었다. 
  “너무 속상해 하지 말게.” 
  마르고 쉰 목소리가 뒷목에 닿았다. 지쳤지만 한결같고, 자기만큼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윤서는 준일의 등을 쓸어내리면서 몇 번이고 그 말을 반복했다. 속상해 하지 마. 속상해 하지 마. 준일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 술이 깨는 것도 같았다. 그는 비칠비칠 몸을 뒤집었다. 윤서는 여전히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는 준일의 등을 쓸어내리던 손을 엉거주춤 뻗은 채 피식 웃어 보였다. 준일은 그 손에 제 손가락을 얽었다. 손가락마디가 울퉁불퉁한, 별로 곱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손이었다. 
  “채 형 보기에는 내가 짐승 같지 않은 가요?” 
  “흐음. 글쎄?”
  윤서가 고개를 젖히고 준일을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빛이 그의 마른 뺨과 목을 비추었다. 품평하듯 가늘게 뜬 눈에도 빛이 도는 것 같았다. 
  “한 군.”
  그는 준일의 손을 끌어당겨 천천히 살피더니,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는 농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한 군은 짐승이라기에는 너무 잘생기지 않았소?”


  윤서는 농담을 퍽 잘했다. 그는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항상 뜻 없고 가벼운 농담을 던져댔다. 맛없는 맥주를 안주 없이 먹더라도 그와의 술자리는 즐거운 데가 있었다. 그러나 준일이 기억하는 채윤서의 농담은 그날 밤의 저 품평뿐이었다. 저것보다는 쓸 만한 농담이 훨씬 많았는데도 말이다. 그 날 기어이 그는 정신을 잃었던가. 어찌나 술에 취했던지 이틀간 기억이 흐릿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가족들이 그의 곁에 둘러앉은 채 그간 어디에 있었느냐 묻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손을 얹고 기억을 가다듬었지만 결국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나는 거라곤 제가 밀고한 사상범에게 받은 외모 품평뿐인걸 어쩌랴.
  그 후 준일은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가족들도 준일에게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렸다. 그들 중 준일이 오늘 엉뚱한 재판에 참관했다는 걸 아는 이는 없었다. 아마 알더라도 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저녁식사까지는 집에 돌아갈 테니까. 

  재판은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형의 확정, 교도소 이전.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을 쓸어 담은 판결문이 몇 몇 단어만 바뀐 채 번복되었다. 아마도 이 자리의 죄수들은 여러 번 들어봤을 말이었다. 준일은 다리를 꼰 채 판결문을 듣고 있었다. 판사의 망치를 두드릴 때에는 순간 무릎이 움찔거렸다.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채윤서를 포함한 세 사람의 재판이 끝났다. 판사와 검사가 순서대로 퇴장하고, 경비가 죄수들의 수갑을 일일이 확인했다. 네 사람의 수갑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경비가 시키는 대로 나란히 재판정을 빠져 나갔다. 십여분 전부터 졸던 기자는 허둥지둥 필기구를 챙기며 부산을 떨었다. 준일은 그 기자가 나갈 때까지도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씁쓸한 기분과 불쾌감은 아직도 그를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죄수들 중 두번째에 선 이를 돌려 세워 보는 상상을 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한층 마르고 죽은 얼굴이 피식 웃는 것을 그려보았다. 가득 찬 술잔을 떠올리고, 얽은 손가락을 떠올렸다. 길에 주저앉은 채 토악질을 하던 자신을 세워놔 보았다. 그런데도 역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나는 내가 역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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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 대사 나온 맥락 까먹어썽

일제시대 버전 애들 설정도 까먹어썽

존나 고증 안했어 저게 일제 촌지 중지 후기인지도 몰게씀 대강 뭐 그 어딘가 ... 려니? 일제시대 재판 어떤지 알게 뭐야 저기 법정이 어딘지도 모르게씀 난 대강 지방 어디라고 상상했는데 

암튼 윤서는 저러고 북쪽 어디로 옮겨간다고 망상함 


암튼 수고많아씀 잘 다녀와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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