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Singing 2012. 5. 24. 20:00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얼레? 땅을 향해 다리를 쭉 뻗어 봤지만 웬걸. 헐렁한 운동화가 허공에서 덜렁거릴 뿐이었다. 어―― 어? 여기저기서 멀건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누군가는 날갯짓하듯 팔을 휘저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벽을 붙잡고 늘어졌다. 얍! 묵직한 과일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있던 배달부가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쓰러뜨렸다. 땅에 부딪힌 박스가 터지고 배달부는 반동을 받아 더 높이 떠올랐다. 박스에서 튀어나온 노란 참외들이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지만, 모두가 점점 땅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빌딩 옥상과 산머리를 넘어 구름을 뚫고, 머리부터 허공으로, 허공으로…….

허공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한계까지 질러대는 고함 소리에 목이, 귀가, 온 몸이 아파왔다. 운 좋게 다른 사람을 붙든 이들은 서로를 꼭 부둥켜안았다. 어떤 이들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기를 볼에 가져다 붙였다. 하늘 위에서는 눈보라와 비바람이 동시에 몰아쳤다. 몸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다. 숨을 들이키려 입을 벌리면 혀부터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사람들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일까요.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땅이 우릴 버린 걸까? 난 벌 받은 거예요. 아니, 난 벌 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어. 휴거란 게 이런 거라고는 말 안했잖아요. 목사님! 양이여. 선택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세요. 신의 계획을 어찌 우리가 다 알 수 있겠어요. 당신 같은 불평꾼을 선택 하신 것만 봐도 말입니다. 아, 하지만 계시하셨던 그 날 오지 않으신 건 저도 조금 유감스럽군요. 아, 땅이 점점 멀어져 가요. 내가 하던 일, 내가 먹던 음식, 내가 살던 집. 우리가 남겨 놓은 것들은 어떻게 될까요. 오븐에 케잌을 꺼내야 할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일기를 마저 쓰고 나올 걸. 누가 우리 집 새를 풀어 줘야 할텐데. 집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은? 난 평생 이 마을에서 떠나 본 적이 없었어요. 이건 너무 끔찍해. 난 한 마을에서 반년 넘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나도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끔찍해요. 이런 여행 방법이 있을 줄은 몰랐어. 당신은 뭘 하고 있었나요? 무얼 하던 사람이었죠? 지금 기분이 어때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맨몸으로 이렇게 높은 곳에 와 있는데 죽지 않다니. 그런데 우린 여기 올라온 건가요, 내려 온 건가요?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사람들은 서로 멀어져 갔다. 우리는 모두 다른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땅을 등진 채 점점 멀리.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도 대화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손나팔을 하고, 몸짓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비록 보이지 않아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추락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마침내 첫 번째 추락물이 - 참외, 아니면 배달부가 ? - 대기권을 벗어났다. 사방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허공에 갑자기 돌밭이 펼쳐졌다. 그리고 어느 샌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빛으로 한순간 지구에 거대한 빛무리가 생겼다. 모두가 감동으로 몸을 떨자 빛무리가 일렁였다. 그리고 모두는 제 몸이 향하는 대로, 이미 사방을 매우고 있는 빛 사이로 흩어져 갔다.

빛 덩어리들은 계속 떨어져 내렸다. 끝도 없이. 펄럭 펄럭 사지를 흔들며. 그들이 먹던 음식, 하던 일, 살던 집, 마지막에 눈에 박은 사람의 얼굴, 거대한 빛무리마저 잊을 때까지. 추락을 멈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은하수 수십 개를 거스르고, 뜨거운 가스 뭉치 수만 개를 뚫고 나가도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빛 덩어리들은 서로 완전히 멀어졌다. 이따금 거대한 빛 무더기 너머로 반짝 흐르는 작은 빛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들의 긴 추락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추락이 한없이 이어지면서, 운 좋게 서로 부딪는 빛 덩어리들이 있었다. 은하계를 수백 개 쯤 뚫고 지나가면 한 번 쯤. 만에 하나 그렇게 부딪힐 때면 빛 덩어리들은 반드시 서로를 알아보았다. 오랫동안 혼자 빛 무더기를 담아온 그들의 눈은 다른 빛 부스러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비록 각자가 떨어져 내리는 방향이 달라 손을 붙잡을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었지만. 한 빛 덩어리가 말했다.

어디로 간다 해도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처음 우리가 빛이 되었을 때, 내 곁에 있던 이가 한 부탁이야. 자기 애인을 만나면 꼭 전해 달라는데. 당신이 그 이의 애인인지 아닌지 알아 볼 수는 없지만. 다른 빛을 만난다면 꼭 이 말을 전해줘.

나도 내가 그 애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어쩌면 내가 부탁한 그 사람일지도 몰라. 그래도 네 부탁을 들어줄게. 대신 너도 내 답을 전해 줘.

어디로 간다 해도 너를 잊지 않을 거야.

그렇게 다시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빛들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형체를 유지한 채 빛나고 있다. 사지를 펄럭이며. 작은 빛 무더기들이 서로 부딪는 일은 이제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흩어지고 있는 저 허공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맴돌고 있다. 이제 은하 어디에서나 그들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반사되던 빛, 바람, 마른 빵 한 조각, 나를 품어주던 가슴, 꿈, 그리고 너. 나와 함께 빛나고 있는 너.

그들의 이야기가 사방에 가득 차올랐다. 그들은 이야기 속에서 여행을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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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머릿 속에 돌던 이미지인데 역시 이미지... 이미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시부엉. 콘티는 짤 수 있어도 이미지를 못 만드네. 'ㅠ' 시점이 거지야. 으헤헤. 분위기도 뭔가 반짝반짝하지 않고. 문장 크헤헤. 이거 뭔 소린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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