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 루이 조르주 탱

Swimming/BOOKS 2011. 12. 27. 06:03

부제는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으로 잡아놨지만, 너무 자극적이거나 점잖 빼는 부제들이 흔히 그렇듯 원문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동성애와 이성애 간의 싸움보다는 오늘날의 이성애 개념이 지배적 힘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중세부터 현대까지, 세 가지 방향에서 풀어놓은 책이다. 동성애와 이성애 간의 알력은 이 세 방향 중 첫 번째, 중세 기사 사회(남성 동성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나올 뿐, 이 다음 이어지는 신학적 관점과 의학적 관점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뭐 표지부터가 참... 어설프게 외설적이긴 한데 말이지. 

  원인보다는 현상 진행 설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각 방향에 따른 예시가 다양하다. 내용이 정밀하다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접근하기 용이한 책. 굉장히 술술 읽힌다. 일단 오늘날의 이성애 개념이 어느 시대에나 '정상'이며 '의문시하는 것부터 배격되는 인생 규칙'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효과적으로 전달됨. 예시는 치밀하고 말투는 위트있다. 후룩 후룩 잘 읽힌다. 

  다만 현상 설명에 치중하다보니 '왜'가 약한 건 아쉬움.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이성애가 부각되기 전 사회와 후 사회의 차이는 '남성사회'에서 '여성'을 (도구로서나마) 사회에 편입시키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그런 변화는 왜 일어났는가?  책은 서구 문화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설명하고 있는 현상은 사실 여러 문화권의 동성 집단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인데, '왜'가 설명되었다면 서구 성애 담론 양상에서 한 발 더 나가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다. 

  그리고 아무리 근대 이전까지 여권이 시망이었고 사료도 얼마 안 남아 있다고 하지만 여성 동성애 혹은 여성 동성 사회에 대한 설명이 너무 없는 것도 좀 씁쓸함. 여자가 동성 문화권에서나 이성애 문화권에서나 주체적으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는 건 잘 아는데 그래도 좀.....'ㅠ' 오늘날 이성애담론이 의문시 자체가 힘들 정도로 지배적이고 폭력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그에 대한 반발로 이런 작업을 수행한다면 당연히 여성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님?'ㅠ' 

  저자는 - 이성애의 관습은 성별에 따른 사회관계, 일반적으로 남성의 지배가 행사하는 관계를 확실히 구조화하는 사회의 객관적인 요구- 라고 했는데 책에서 다룬 데까지만 보면 적어도 중세 동성 사회 문화도 어차피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에 따라 만들어진 것 아닌가? 물롱 동성애 문화라고 해서 성적 편견에서 자유로울 거라고는 생각 안합미다. 이성애 문화건 남성 중심 동성애 문화건 여성 중심 동성애 문화건, 이성에게나 동성 양쪽에게 매우 매우 편견 쩔 수 있음.ㅋ

  다만, 이성애 문화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사회적 요인을 저렇게 잡았다면 동성 사회 문화 혹은 이성애에 별 관심 없던 문화는 왜 그런 사회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는지 차이점이 드러나야 할 거 아냥.ㅎㅎㅎ 그리고 남자 동성애는 설명이 된다 치고 여성 동성애는 아예 전혀 설명이 안되잖 ㅎㅎ 그럼 이게 과연 성애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냐구. 거기가 너무 빈약... 뭐. 저자가 예상 불가능하게 써놓은 건 아니지만 부족한 건 부족한 거라긔.
  그래도 계속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책이었음. 특히 3부 의사들의 저항 편이 신선했다. 



>

 ... 마찬가지로 이성애의 관습이 보편적이라 할지언정 이성애 문화는 보편적이지 않다. 사실 인간의 본성이 명백히 이성애적이라 할지라도, 이로써 인류의 번식이 가능해지긴 하지만, 인간의 문화가 반드시 이성애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고대 또는 '원시'사회의 검토를 통해 입증되듯이 문화나 문학 또는 예술의 재현에서 남녀 커플과 사랑에 언제나 우위가 부여되지는 않았다. (중략) 실제로 수많은 사회에서 이성애의 관습이 비록 통상적인 관례라 해도 열정의 양태는 물론이고, 사랑의 양태로도 고양되지 않는다. 
- 9~11p 머리말 중 


  예전에 나약한 남자는 에레크처럼 여자의 환심을 사려는 풍조와 이성애 문화를 다소 지나치게 따르는 이였다. 반대로 남색자는 남성의 동성사회 문화를 다소 지나치게 따르는 이였다. 이것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고정관념이었다. 
(중략)
프랑스 역사에서 앙리 3세는 필시 남색자이자 동시에 여자 같은 남자라고 비난받은 최초의 주요 인물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 결합이 어느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19세기부터는 동서애자의 이미지가 대체로 여성화된 남자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앙리 3세 이전에는 이와 같은 동일시가 그다지 실재하지 않았고 여자 같은 남색자의 모습이 결코 그 정도로 공들여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73p 제 1부 이성애 문화에 대한 기사들의 저항 


  적어도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에 따라 철학자가 영혼의 의사라면 의사는 육체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207p 제 3부 이성애 문화에 대한 의사들의 저항 
 

  오베리는 자신의 개론서에서 시인, 특히 롱사르로부터 많은 구절을 인용한다. 이것은 현대 독자에게 뜻밖의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 당시의 의사들은 시인이 견디고 동시에 퍼뜨린 사회병리를 치료하려고 애썼다. 시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욕망을 고양하는 새로운 문화의 확산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고, 장 오베리는 이 현상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참조하면서 이 문화를 개선할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210p  제 3부 이성애 문화에 대한 의사들의 저항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