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 참
Walking
2011. 6. 5. 00:58
광우병 파동 때에도 '의제'를 지지해서 나간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핵심 논제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었달지, 어찌 되든 큰 관심 없었달지. 그래서 그 쇠고기가 들어오냐 마냐가 그렇게 큰 문제인가? 쇠고기 안 들여온다고 했으면 다들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겠냐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의제가 광우병 때보다 좀 더 피부에 와닿는 것이긴 한데. 여전히 난 회의적일 뿐이고. 사회 전체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는 특정 집단의 문제라는 점에서는 광우병 때보다야 훨씬 흥미롭긴 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절벽에 몰려 있다는 자각을 한 건 당연하다. (솔직히 말하면 늦은 감이 있다. 나를 비롯해서.)
하지만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작 반값 등록금으로 타협하는 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로, 반값이 되면 아무 문제 없는가? 애초에 우리는 왜 그토록 압박스러운 등록금을 바쳐가며 자기 자신도 의미를 알 수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는가. 우리에게 현재 캠퍼스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왜 대학에 다니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왜 배우고 있는가.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에 갔기 때문에'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절박하게 유지하는 관성이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이에게는 대학에 가라고 밀어붙이고, 대학에 간 이에게는 다른 길은 없다고 눈가리개를 씌운다. 우리는 우리 뒤를 쫓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미친듯이 달리고 있다. 정말로 여기서 뒤쳐지면 루저인가? 길이 없나?
요즘 대학생들이 대학에 다니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을까. 이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사람답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기나 할까? 사람다운 건진 몰라도 '잘 사는' 방법은 이미 다 공략본이 나와 있다. 명문중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서 대기업에 들어가고 남들보다 크게 뒤쳐지지 않을 때 결혼을 하고 집을 산다. 그 외의 모든 건 다, 그 다음 일이다. 꿈은 갈수록 소박해져 간다. '내 앞가림 하고 남은 시간에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왜 내 취미는 취미로 남을 수 밖에 없는가? 우리의 가능성을 우리 인생과 상관없는 기호품으로 밀쳐놔 버리는 게 정말 똑똑한 삶인가? 그렇게 살아서 얻어지는 건 뭔데. 그렇게 안 살면 잃을 건 또 뭐고.
우리는 노력했다. 방향은 틀렸을지 몰라도 다들 죽도록 노력했다. 애초에 이 방향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재고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이젠 유치원 생들까지 군대 가고 대학 가고 취직하고 땅 사는 걱정 하더라. 우린 그렇게나 팍 삭아 버렸다. 우리는 스스로 젊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젊은이 들이다. '공략본대로의 삶'을 살기에 젊음은 외려 방해만 된다. 그건 '남들은 얼만큼 하는지, 난 얼만큼 하는지' 재보며 초조해하는 기간이 는다는 뜻일 뿐이다. 그래. 우리는 방황조차 하지 못한다. 너무 초조해서 방황할 시간같은 것도 없는 게 현 20대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이 문제인가? 등록금이 반으로 줄어들면 우리가 잃어버린 저 모든게 돌아오나? 당장 부담이 좀 줄면 이 미친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계획할 기회를 박탈 당하고 있다. 그저 그게 '돈'의 형태로 쥐어짜이고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현 정부에게 돌려 내라고 할 것은 이명박의 지켜지지 않은 수많은 공약 중 한 줄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누구에게도 부정당하지 않고 꿈꿀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래도 저기 낀다면 물대포때문이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광우병 파동 때 물대포보다 더 어이없고 우스운 게 이 물대포인데.... 그래서 정말 쏘려고? 고작해야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애기들. 소박하게 돈 좀 덜 내게 해주세요 하는 애들한테 물대포를 쏘겠다고? 차라리 대학 폐지를 주장했더라면 물대포도 거기까지 굴러간 보람이 있을 텐데 말이야. 허허...
가면 갈수록 아주 조그마한 쓴소리도 못하게 윽박질러대는 게 너무 우습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 우스워 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작 반값등록금때문에 물대포를 쏘는 것에 비장해지지 말자. 비웃어 줘야 한다. 비웃어 주러 가는 거라면 얼마든지 나갈 용의가 있다.
-------------
+ 명박이는 지금 상황이 아주 황당할 거야. 지가 한 말이지만 아무도 그 말에 신경쓸 거란 생각 안했을 거거든. ㅋ ...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니까요.
+ 생각해보면 차라리 지금 돌아가는 꼴이 나은 것도 같다. 여기서 정부가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춰줘서는 특정 정부의 시혜가 되고 만다. 자연스럽게 대학의 거품이 꺼지는 게 맞지. 대학생 스스로가 대학을 허물어야 등록금이 준다.'ㅠ'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