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는 성녀다. 성녀임에 틀림없다. 로브 플래밍이 열일곱명하고 잔 것보다 로라가 쟤랑 다시 사귀어 주는 게 더 기적에 가깝지. 이 책의 교훈 중 하나는 신은 쉽게 사람을 버리지 않는 다는 걸거야.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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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바로 우리 둘이 함께하는 이유야. 너에겐 가능성이 있어. 난 그걸 끄집어내려고 여기 있는 거고.
- 어떤 가능성?
- 인간으로서의 가능성. 넌 기본적인 건 다 갖췄어. 맘먹고 노력만 하면 넌 정말 아주 호감 가는 사람이지. 맘만 먹으면 살마들을 웃길 수 있어. 게다가 친절하고, 네가 누굴 좋아하기로 가정하면, 상대방은 마치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느끼게 돼. 그거 꽤 섹시한 느낌이거든. 단지 넌 별로 신경을 안 쓸 뿐이지. 
- 응. 이런 대답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 넌 그저 ...... 넌 그저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머릿속에서 헤매고 있어. 뭔가 일을 시작하기보다 주저앉아서 생각만 하고, 또 대부분은 쓸데없는 것만 생각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늘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중략 

- 너 이런 얘기 들어봤어? '시간은 주어졌으나, 온통 생각만 많다.' 그게 바로 너야. 
-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 나도 모르지. 뭐라도 해. 일, 사람 만나는 거, 스카우트 활동 같은 거나 아니면 클럽 운영이라도. 그냥 삶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선택의 여지를 열어놓는 것 말고 그 이상의 뭔가를 말이야. 넌 할 수만 있다면 네 남은 평생 선택의 여지를 열어놓겠지. 아마 임종의 순간에도, 아마 담배와 관련된 병일 텐데, '음, 그래도 난 선택의 문은 열어놨었어. 적어도 발을 뺄 수 없는 어떤 일에 연루되진 않았다고.' 하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말이야. 네가 선택의 여지를 열어놓는 내내 실은 그것들을 다 닫아버린 거나 다름없어. 넌 서른여섯인데 자식도 없어. 아이는 언제 가질 건데? 마흔? 쉰? 마흔이라 치자. 그리고 네 아이가 서른다섯까지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해봐. 그 말은 환갑 지나고도 10년이나 더 살아야만 네 손자 그림자라도 볼 수 있단 뜻이야. 네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사는 지 알겠지?
- 결국 그 얘기군.
- 뭐?
- 아이를 낳자, 아니면 우린 헤어진다. 가장 오래된 협박이잖아.
- 집어치워, 로브. 내 말은 그게 아냐. 네가 아이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난 상관 안 해. 그래, 난 아이를 원해. 하지만 네 아이를 갖고 싶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아이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그건 내가 풀어야 할 문제야. 난 그저 너를 깨우쳐주려 했던 거야. 난 그냥 네가 인생의 절반이나 살았지만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곤 열아홉 살짜리랑 다를 바 없다는 얘길 해주려고 했어. 돈이나 부동산이나 가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로라는 내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너야 그런 말 하는 게 쉽겠지. 잘나가는 법무법인 변호사니까. 하지만 가게가 잘 안되는 게 내 탓은 아니라고.
- 세상에 맙소사
로라는 상당히 과격하게 기어를 바꿨고 한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거의 어딘가 도달했다는 걸 안다. 용기라도 좀 있었다면 그녀가 옳고 현명하고, 난 그녀가 필요하며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결혼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난 그저, 그러니까, 선택의 여지를 열어놓고 싶었던 거고, 아무튼 말할 틈도 없다. 얘기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서. 
- 내가 왜 정말 약 오르는지 알아?
- 그럼 알지. 네가 방금 나한테 말한 모든 것 때문이지. 내가 선택의 여지를 열어놓고 사는 방식이나 뭐 그런 거.
- 그런 거 말고.
- 젠장. 미치겠네.
- 난 네 문제가 뭔지,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아주 정확히 짚어줄 수 있는데, 넌 내게 그 비슷한 것조차 해줄 수 없어.

중략 

- 너더러 뭘 어쩌라는 게 아냐. 그저 내가 너와의 관계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는 건 아니라는 걸 네가 깨달았으면 하는 거지. 우리 사이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내 삶 자체가 해결된 건 아니라는 듯이야. 나에겐 또 다른 의혹과 걱정, 야망이 있어.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어.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삼 년 후에 내가 벌어들일 돈은 겁이 날 정도야. 그리고...... . 
- 왜 처음부터 그런 걸 다 털어놓지 않았어? 내가 그걸 무슨 수로 알겠어? 또 그게 뭐 그리 큰 비밀이야?
- 비밀은 아니지. 단지 우리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이 전부가 아니란 걸 얘기하는 것뿐이야. 우리 둘이 함께 있지 않아도 난 계속해서 존재할 거니까. 

  결국 나도 그 문제를 풀었어야 했다. 내가 애인을 잃고 세상이 다 허물어진 것같이 느꼈다고 해서 남들도 그러라는 법은 없다. 그걸 알았어야 했다. 


중략 

- 넌 남은 평생 똑같을 작정이야? 똑같은 친구들만 만나거나 아니면 친구가 없으면 없는 대로? 똑같은 일? 똑같은 태도?
- 난 문제없어. 
- 그래, 문제없겠지. 하지만 너도 완벽하진 않고, 분명 행복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네가 만약 '행복해진다면' 중략 우린 헤어져야겠네? 난 네 불행한 모습에만 익숙하니까. 만약 네가, 음, 네가 너만의 레코드 레이블을 내서 성공함녀 어쩔 건데? 새 여자친구를 찾을 거야?
- 억지부리지마.
- 뭐가 억지라는 거야? 네가 네 레이블을 내는 거랑 내가 구조공단에서 법무법인으로 옮긴 게 뭐가 다른지 설명해봐. 
  하나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장기적인 일부일처 관계를 조금이라도 믿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도, 또 일어나지 않는 일들도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 소용없지. 
난 과장해서 온순한 척 말했지만, 그녀의 지성과 사나움과 언제나 정당한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로라는 적어도 언제나 내 입을 틀어막을 만큼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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