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아이돌 팬질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이돌 관련 일로 이렇게 치떨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게 뭐야. 와, 소속사에서 추잡하기 그지없는 공지를 올리더니 이번엔 남은 멤버들이랍시고 형 형 하던 것들이 막말로 진탕을 만드네.
모처를 돌아다니다가 남은 멤버들이 이해가 간다, 팬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 애초에 그들이 피해자다 라는 식의 글을 보고 어이가 증발했는데 그렇다고 내가 거기 끼어 들어서 싸우기에는 문제의 그룹 멤버 이름도 다 못 외우는 부외자인지라 방구석에서 몇 마디 중얼중얼거림.
일단 모 기획사의 주장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앞뒤 따질게 한 소쿠리지만 지저분한 소리 다 떼어내고 그쪽 논리대로 따져 보자. 함께 하고자 노력했으나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심각한 사생활 문제 - 이런 게 애초에 존재 가능한건가?
그토록 심각한 사생활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멤버들에게 반감을 살 정도였다면 훨씬 이전에 구설수에 올랐어야 했다. 문제의 그의 연습생 시절 외국어로 써놓은 싸이 일기까지 터졌던 마당인데, 그런 심각한 사생활 문제가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질 수 있었나?
결국 소속사에서 문제의 그를 영구 탈퇴시키기로 결정한 근거는 오로지 그 애매모호한 '사생활 문란'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소속사는 가장 더러운 수를 취하고 있다. '여기 뭐가 있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착해서 애를 보호해야 하니까 차마 우리 입으로는 말 못하겠고. 알아서들 상상해 봐요. 아, 우리 입으로는 말 못하지만 이 일 아는 게 우리만은 아니니까 말이 샐 수도 있죠. 말이 새도 우린 책임 안져요. 우리가 말을 흘렸다는 증거가 어딨어요? 하지만 그게 틀렸다고도 말 안하죠.'
가장 치졸한 언론플레이의 예로 기록되어도 될 멋진 퀄리티다. 브라보.
이런 상황에서 남은 멤버들은 화재 진압은 커녕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언행을 보여준 모양이던데. 이들이 사실상 언행의 자유가 없고 불쾌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도를 넘어섰더라. 니들이 다 탈퇴에 찬성했다는 소속사 주장, 안 믿는다. 동의고 나발이고 먹힐 리가 있나. 하지만 오늘의 그 막나가는 태도는 뭐지? 아이돌 팬 아닌 나도 어의가 달아나던데. 몇 몇 질문들이 불쾌했을 수도 있지.(내가 보기엔 정당한 질문이었다만.) 그래도 그 자리는 애초에 석연치 않은 사태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자리 아니었나. 그런데 해명도 변명도 아니고 우리가 무슨 죄냐 드립. 왜 자꾸 들이밀어 드립. 졸음 드립. 비웃음 드립...
설령 소속사에서 시키지 않더라도 그들이 거기서 할 일은 팬들을 성심껏 위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였다. 그 자리에 모인 팬들과 치고 박고 싸워서 이기는 게 다가 아니지 않은가. 정작 중요한 건 팬들의 눈과 입과 귀를 통해 그 그룹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간담회에 임한 멤버들은 준비된 자세를 보여주기는 커녕 내내 감정직이고 직설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굳이 팬을 상대하는 경우를 따질 것도 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써 예의가 아니다.
그들 주장대로 '그'가 정말 도저히 같이 활동할 수 없는 결함을 갖고 있었다고 쳐도 그들의 언행은 말이 안된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다 똥값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저럴거면 처음부터 철저하게 '그'를 상종못할 놈으로 몰았어야지. 중간 중간 팬들 낚시질 하다가 막판에 저렇게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퍼붓는 모습은 제3자가 봐도 아연실색이다. 아이돌이 환상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거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지만, 환상은 유지될 때 의미가 있는 것 아니니. 지금까지 그 환상을 쌓고 유지하는데 들인 노력과 비용을 다 마이너스로 박아 버리는 짓을 지들 손으로 하다니. 대체 얘네들 재화는 어디서 나오길래 저렇게 당당한가.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다들 앗쌀하게 털어 버리기로 한 건가? 아니면 얘네 그렇게 인기가 쩌나? 이러고도 당당할 만큼 개인팬이 많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문제의 기획사나 멤버들이나 하는 짓의 냉정함에 비하면 언행이며 뒷처리 방식이 너무 수준 낮다. 비정하다고 표현하면 멋있기나 하지 이건 그냥 천박 중에서도 상 천박일 뿐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렇게 일방적으로 물고 뜯고 찢어대는 와중에 탈퇴당한 개인은 자신을 방어할 어떠한 루트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난 부외자니까 기사같은 거 열심히 찾아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 물 건너 가 있는 청년이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다는 기사가 떴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하긴 이렇게 더럽게 디스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나서는 순간 하이에나들에게 죄 뜯길 텐데. 그래도 마냥 만악의 근원은 그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불공평에 대해 아무 감흥이 없나 보다. 이전에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건 이런 식의 입막음은 부당하다. 이따위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소속사 측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뜻 아닌가.
그리고 다 지난 일이니 의미 없는 소리지만. 애초에 걔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