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 과제 토픽 1
풀밭 위의 식사 - 오규원
함께 온 어른은 산기슭의 나무 그늘에서
맥주 깡통을 텅 텅 따고 소리지르고
고기 안주를 씹고 옆의 철쭉꽃은
사람들과 무관하게 태양 때문에 붉다
아직 몇 발짝 기지 못한
산딸기의 줄기가 아른거리는 풀밭 구석에서
아이 하나 시퍼런 풀을 움켜쥐고 있다 풀이
완강하게 저항하는지 목이며 팔뚝에
힘줄이 굵게 솟는다 먹을 것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데 그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아이의 머리 위에서 아카시아가
꽃과 가시를 뭉텅뭉텅 내밀다가 잠시
멈추고 찾아온 벌떼를 껴안는다 풀을 잡아당기는
아이의 손에서 풀의 줄기가 뜯겨나온다
저렇게 집요하게 감아쥐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가 보고 싶은 것은 풀이나 풀의
뿌리가 아니리라 나는 개암나무 사이에
박힌 돌처럼 안 보이는 것이 모두 궁금하다
먹고 있던 빵을 한 손에 쥔 채 나는
아이의 손에서 무엇이 뽑혀나오는지 기다리고
어른들은 계속 마시고 떠들고 묘지에
퍼질고 앉아 화투짝 두들기는 소리가
묘지 아래로 굴러내리고 태양은 빛나고
아이는 함부로 뽑을 수 없는 풀을
두 손으로 쥔 채 눈을 반짝이며 다시
잡아당긴다 풀의 줄기가 우두둑 뜯기고
아이는 넘어지며 철쭉을 짓뭉갠다
땅에 떨어져도 철쭉꽃은 여전히 붉다
땅이 저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면
땅이 숨기고 있는 것은 풀의 뿌리만이 아니리라
어른들과 떨어져서 아이는 당기고
풀은 뽑힐 생각을 아직도 하지 않고
내 곁에서 개암나무 잎 사이의 어린 열매가
그늘을 제끼고 따가운 햇볕 속에 고개를 내민다
무덤 - 오규원
내 무덤을 내가 파헤친다 마음도
넉넉해라 땅은 누구의 삽질도 받아들인다
추하고 아름답던 내 살은
벌써 다른 욕망에 옮겨가
잘들 있는지 흙은 바싹 말라 있다
삽질을 방해하는 것은 작은
돌뿐이다 뒤축이 다 닳은 세 켤레의
구두가 새 구두 한 켤레와 불쑥
하늘 아래 얼굴을 내민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밑에서 잡고
당기는지 새 구두의 뒤축이
잘 빠져나오지 않는다(잘 있거라 구태여
내가 그것까지 방해하랴)
삽질을 한다 20년 이상 도수만
바꾸어 낀 낡은 테의 안경
그 옆에 가까운 곳을 보려고 준비해
다닌 안경이 서로 더러운 흙을
붙들고 있다 (거기 머물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세계의 그림자!)
파헤쳐놓은 무덤 위로 울 듯 울 듯한
몸으로 새가 한 마리 지나간다(칼의
세월이여 말의 세월이여) 무릎 쪽에
책이 몇 권 아픈 허리의 뼈를
받치고 있다 정다워라 그러나 메마르고
가벼운 언어의 땅이여 책이여
언어는 물이려니 ---- 언어가
거기 있을 리가 있느냐 파헤쳐진
무덤 곁에 무성한 아카시아나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