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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28 아놀드 웨스커의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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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웨스커의 <키친>
Swimming/etc
2011. 5. 28. 16:21
2011. 05. 27. 금. 오후 8시. 명동예술극장 공연.
악몽의 연속. 뭘 원하냐는 공허한 - 공허해서 처절한 외침. 있는 그대로의 주방을 보여주는 통에 지루한 감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지루함은 김빠진 콜라따위와는 다르다.'왜 이런 것까지 이렇게 길게 보여주는 거야' '내가 지금 지루해하고 있다'라는 것까지 자각시키는 날카롭고 불편한 극.
사람을 가장 절망스럽게 하는 건 '말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 상황이다. 더러운 벽, 금속성 기기, 끊임없이 김과 열기를 뿜어내는 오븐, 미친년과 미친놈들, 주문 주문 또 주문. 지옥같은 주방 풍경보다 더 끔찍한 건 우리 앞에 펼쳐진 길고 긴 담벼락이다. 담벼락은 끝 없이 이어져 있지만, 사실 그 벽은 그리 길지 않다. 다만 우리를 빙 둘러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담을 따라 뱅뱅 돌아도 담은 끝나지 않는다. 이 담이 싫어서 옮겨 간다고 해도 그 다음 담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담을 뛰어 넘어 버리면? 그러면 무언가 달라지나?
그게 정말, 해답인가?
끔찍하고 정석적인 극이었다. 연기자나 관람자나 에너지를 엄청 써야 한다. 요새 사람들이 '즐기고 싶어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스타일적으로나, 주제나 이미 옛 것.이미 한 번 풀어졌던 담론들. 하지만 그래서 더 이런 극이 살아 남았으면 싶음.
극을 보여준 s와도 한 얘기지만 차라리 우리나라 배경으로 바꿔서 딱 80년대 쯤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말이지. 여러 유럽 언어 혼용이라거나 개신교와 자본주의 정신의 밀접이라거나, 유럽의 19세기와 20세기를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잘해봤자 '머리로만' 이해될 것 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아쉬웠다. 이 극의 집필 목적이 생생한 현실의 반영이라면 역시 각색을 확 해버리는 편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나... 하지만 지금으로서도 괜찮았음. 특히 약 서른명 쯤 되는 배우들의 연기 호흡이 대단. 소품도 많은데 짝 짝 맞게 잘 해낸다.
뻘한 생각이지만 괜히 리얼리즘의 한계 비슷한... 뭔가가 생각나서 스스로 좀 우스웠음. 극히 사실적인 부분들을 접할 때마다, 무대와 나 사이의 극명한 온도차가 느껴지면서 '아, 저기는 다른 세계'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결국 가장 생생한 표본을 얻는 곳은 실험실이잖아. 이런 얘기 한 고명한 학자분들이 한둘도 아니고 한두 분야에서 이런 소리 나온 것도 아니지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