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숙주

Swimming/etc 2012. 5. 19. 11:16

이기적 유전자에 소개된 일화. 어떤 개미 종은 일벌레라는 존재가 아예 없다. 개미가 홀몸으로 다른 개미 굴에 들어가면 그 굴의 일개미들이 돌변해서 자기들 여왕개미의 머리를 잘라버리고 침입자를 여왕으로 섬긴다. 이런 행동은 침입자 개미의 다른 개미들에 대한 강력한 최면으로 일어난다고 함. 

이번에 엠나비 보는 내내 이기적 유전자에 소개된 이런 일화들이 계속 생각났음. 포인트는 침입자-사기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기꾼에게 속는 피해자의 상태. 스스로 제 생명줄(일개미에게 알 낳는 여왕 개미란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인 거니까)을 끊어 버리는 일개미와 (연극 관점에서-프랑스에서 15년간 생활하는 동안에는) 제 사회적 생명줄을 갉아먹어버린 르네 갈리마르가 상당히 겹쳤다는 거.ㅇㅇ


요는 '속박 상태'에 한 번 이르면 이건 의식적으로 끊을 수 없다는 거임. 한 번 불러일으켜진 환상은 대상을 떠나서까지도 피해자를 조종하는 거임. 그래서 르네 갈리마르가 마지막에 남기는 말은 '직시할 수 없었다.'인 거지. 직시하기 싫어. 가 아닌 것이다. 송이 제시한 환영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갈리마르는 이 환영의 숙주가 된 거니까. 마지막 자살씬이 순교자 분위기가 나는 건 바로 이 때문. 광기때문에 죽는다면 저런 분위기는 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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