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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8 어느 감독의 상업영화 은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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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감독의 상업영화 은퇴 선언
Walking
2011. 2. 28. 12:22
영화를 만든 사람도, 그의 영화를 본 사람도 원하지 않았던 은퇴 선언이 진짜 은퇴로 이어졌다. 영화 개봉과 함께 나온 선언이었고, 개봉 기간 내내 말은 조용히 현실화되고 있었다. 설마, 진짜 그러겠어? 어, 진짜 그렇게 되었네? 말한 대로 T.
섭섭하고 충격적이긴 하지만 넋이라도 있고 없는 상태가 된 건 아니다. 지난 한달간, 쭉 봐온 일이니까. 물론 속이 많이 허하긴 하다. 빈 지갑을 털어가며 극장에 네 차례 갔던 건 내가 네 번 다섯 번 보면 그가 은퇴를 안할 거라 믿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네 번을 보든 사십번을 보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재벌 총수쯤 되어서 전국에 표 80만장을 뿌린다면 모를까.
이제와서 그 시간이 아깝다는 건 아니다. 시간이 아깝기는 무슨. 누가 내 목에 올가미 매고 영화관으로 끌고 가기라도 했나? 나는 이 영화가, 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 대화 방법이 몹시 좋았다. 지난 한달간 나는 이 영화를 내가 할 수 있는 한 꼼꼼히 씹으며 즐겼다. 영화는 영화로서 막을 내린 것이고, 좋은 영화를 보여준 감독에게는 감사할 일이다. 그걸로 된 거다.
감독 죽었다는 소식도 아닌데 시일야 방성대곡은 주책일 뿐이지. 감독이 감독 그만 두겠다고 한 게 이니니까, 그저 '상업영화'를 찍지 않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호들갑은 떨고 싶지 않다. 나는 이 감독이 어떤 형태로든 창작 활동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가 멈춰서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까, 아직은 괜찮다. 사람은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거다. 그러니까 현재 이준익을 두고 슬퍼할 건 없는 거다. 이건 패스.
하지만 이준익이 은퇴하겠다고 한 세상에는 좀 슬퍼해야겠다. 250만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250만이 전부다. 수치가 말한다. '나는 너의 영화에 관심이 없다.' '너의 영화에는소소비가치가 없다' 즉 ''너의 영화는 있을 자리가 없어.' '만들어질 수가 없어.'
모 기사에서는 '스스로 한 말을 지키기 위한 내키지 않는 은퇴'라는 표현을 썼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영화와 250만 수치는 감독에게 명백한 하한선이었다. 그게 백오십만이든 십오만이었든 마찬가지였다. 신은 의인 열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 멸망 안 시킨다고 아브라함이랑 손도장 찍었지만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좆망했다. - 에이 혹시 아홉명 쯤, 여덟명 쯤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좀 봐주지 그랬어. 지금은 없어도 앞으로 의인이 될 싹수가 보이는 사람이 두 셋 쯤 더 있을지도 모르잖아. 신 이 자비없는 새끼야.- 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의인 열명은 그 도시가 존재할 수 있는 최소 수치였으니까.
얘기하다보니 성경 얘기로 빠졌지만 뭐 이준익 영화 안봤다고 타죽어 마땅한 소돔인이라고 우기려는 건 아니다. 이준익 영화 안봤다는 게 이준익에 대한 거부도 아니고, 안 땡기면 안 보는 거고 돈 없으면 안 보는 거고 시간 없으면 안 보는 거지 뭘.
요는 감독은 신이 아니라는 거다. 신은 자기를 못 알아보는 놈들을 세상에서 아웃시키지만 감독은 자신에게 관심없는 세상에서 자기를 아웃시킨다. 감독의 상업영화 은퇴 선언은 감독으로서 살기 위한 탈출이지 지가 누운 관에 지가 못을 박는 생쇼는 아니다.(물론 원해서 즐거이 나가는 건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이 바닥이 내 영화 안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영화를 보게 만드나. 이게 무슨 공익영화도 아니고, 정말로 표를 억지로 쥐어주고 2시간동안 극장에 몰아 넣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사실 슬허하고 분노하는 건 지난 한달간 차고 넘치게 했다. 영화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 보지 않는 사람 하나 잡고 탓하기는 쉽고, 후자 쪽 둘에게는 이미 퍼부을 만큼 퍼부었다.(사석에서) 감독이 영화를 못 찍었네 관객이 머저리네 따지기 전에, 나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이, 사람들이 이러한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게 슬프다. 그냥 영화 한 편 재밌게 본 1인일 뿐인데 왜 이렇게 오버하는지 나 스스로도 부끄럽다. 그런데 꼭 세상 수백억 사람 중에 250만명도 나랑 안 놀아준다는 걸 직접 봐버린 것처럼 슬프다. 지구가 온통 사막이 아니란 건 알지만 나는 사막에 떨어져 있는 기분이다. 정작 준익이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가는데, 같은 바닥도 아니고 처지도 다른 20대 햇병아리가 이러고 있으니 더 웃긴다. 차라리 내가 친인척이나 지인이나 하다못해 같은 촬영장에서 얼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사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그냥 의문이 남는 거지. 난 뭘 해야 하나. 준익이는 250만 250만 하지만, 나는 15명에게라도 읽힐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쓰기도 전에 그게 무서워서 덜덜 떨고만 있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요즘 세상에서는 나도, 너도, 아무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우매한 누구누구들이 고매한 누구를 따시키는 게 아니라 모두가 모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쪽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나를 이해하는 저쪽으로 가면 된다. 이쪽과 저쪽이 모두 날 이해하지 못한다면 혼자서라도 그들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 되겠지. 그런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마저 어디에 섰는지 알 수 없고, 나 역시 그들을 이해못한다면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걸까.
읭 아니 어쩌다 얘기가 말하는 나도 못 알아 듣게 흘러가나.
간단한 두 문단 요약:
아이고 난 준익이 영화가 열라 취향인데 매소성 이제 물건너 가나 아이고 씨발 아이고 안돼 엉엉
+ 창작의 목표는 소통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엇을 말하려 하든, 남에게 전달해줄 수 없다면 그건 틀린 거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소통이 아닌 타협이 되고 나는 벙어리 뻐꾸기만 되어 버리는 상황이 되면 그때에도 이 방법을 고수해야 하는 걸까.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지금 난 누구에게 보여줄만한 작품 하나 쥔 게 없지만, 이런 고민은 때 닥치면 하라고 미뤄둬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뭐 대강 이렇게 되네요. 넹. 그래서 심란하다는.'ㅠ'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