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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01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글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Swimming/etc
2012. 2. 1. 20:19
간만에 즐긴 뮤지컬. 우리는 왜 이야기를 만들고 뽑아내는지, 어째서 이야기는 그토록 싱그럽고 매력적인지 한시간 반 남짓 절절하게 느끼게 해준 좋은 공연이었다. 어깨에 힘 주지도 않고 개폼 잡지도 않고 그렇다고 삽질하지도 않고. 달콤한 추억 속에 잠겨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 나가는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게 된 동기는 철저하게 잔인하고 쓰라리다. 유년기의 죽음과 추도. 남은 자의 홀로 서기. 내 머릿 속 친구와 나누는 고독한 대화. 두 친구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면 할수록 파국은 섬뜩하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우리는 글을 쓴다. 우리의 유년기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 때문에, 왜 죽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종국에는 백지를 들고 헤매기 때문에 우리는 쓴다. 노래한다. 춤 춘다. 우리는 엘빈을 추도한다. 엘빈을 떠나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엘빈이 될 수 없으니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걸 굳이 또 말하자니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사는 한 계속 이야기를 만들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삶에서 이야기를 분리한다는 건 삶에서 호흡을 분리한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수천개의 이야기들. 바람 한 번 훅 불면 스러져 버릴 나비같은 현실들. 우리는 그걸 기어이 붙잡아 우리의 백지에 꼬박 꼬박 스크랩 해 놓는다. 내게 세상이 이랬다고 말하려 한다. 날갯짓 하려 한다. 백지. 그리고 또 백지.
작품은 토마스와 엘빈 모두에게 잔인한다. 예쁜 만큼 잔인하고 시큼하다. 그중 가장 잔인한 건엘빈이 자기 아버지의 추도문을 발표하는 걸 토마스가 바라보는 장면이다. 자신의 분신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걸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있는 거.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섭다. 소름끼친다. 내가 작중 토마스가 되어 내가 썼어, 내가 썼다고 하고 지랄을 치고 싶어진다. 엘빈이 왜 아버지의 장례식 직후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추도문 발표가 모든 것의 끝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 후 엘빈은 더 이상 토마스와 함께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더 이상 토마스의 영감이 아니니까.
좋은 작품은 간단한 이야기 몇개로 수만 겹의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걸 배웠다. 1에 1이 더해져서 2로 끝나도 안되고 20이나 200으로 끝나도 안된다. 1에 1을 더해. 글쎄. 한숨을 쉬면서 먹먹하고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인 거겠지.
+ 그런데 작중에서 계속 송덕문이라고 번역한 거. 추도문이 더 낫지 않나?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