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4부. 대지와 인간 - 13. 개척지대 



  그런데 이것이 정말 미신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그러한 편애 속에서 나는 오히려 미개민족들이 무의식중에 행하엿던 어떤 지혜의 흔적을 보며, 거기에 역행하려는 현대의 반항에는 정말 광기조차 서려있음을 본다. 우리들이 숱한 좌절과 안타까움을 대가로 하여 쟁취하는 정신적인 조화를 그들 미개민족들은 흔히 쉽게 얻을 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경험의 진정한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한계와 리듬을 벗어나는 것은 우리 힘 밖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편이 낫다. 음향과 향기가 새 ㄱ채를 지니며, 감저에는 무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간은 그 고유의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 


  (중략)

  만약에 물고기가 명암에 의해서 냄새를 미학적으로 구분한다면, 또 벌들이 빛의 강도를 무게에 의해서 분류한다면 - 벌들에게 어둠은 무거운 것,ㅡ 밝음은 가벼운 것이므로 - 화가. 시인 또는 음악가의 작품과 신화 그리고 미개인들의 상징은, 우수한 형태로서는 아니더라도 가장 근본적이며 또 우리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유일한 지식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야만 한다. 그 지식은 과학적 사고가 오직 날카로운 첨단 - 사실이라는 돌 위에다 갈았기 때문에 더욱 깊이 찌르지만, 본질의 상실이라는 희생을 대가로 치른다 - 만을 구성하는 것이며, 또 그 효능은 충분히 깊숙하게 꿰둟는 능력에 기인한다. 


  사회학자들은 전세계적이고 구체적인 인도주의를 공들여 만들어내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의 규모가 큰 시위운동과 예술작품은 둘 다 무의식적인 삶의 수준에서 태어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집합적인 것이며, 후자는 개인적이라는 상이성이 있다 하여도 그 차이는 부차적이며, 다만 공중에 의한 것과 공중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나 차이가 드러날 뿐, 공중은 똑같이 공통분모를 제공하고 그들이 태어날 조건을 결정지어준다. 




16. 장터 


  지나치게순진하거나위선적 억지가 아니고서는 인간이 자기의 생활조건과 무관하게 자기의 신조를 선택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 조직이 사회의 생존 형태를 결정하기는컨여 생존 형태가 그 자체의 표현인 이데올로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 기호(즉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지적하는 대상체가 현존하는 경우에만 언어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현재의 서양과 동양 간의 오해는 우선 의미론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동양에서 우리가 선전하는 개념의 형식(시니피앙)은, 그곳에서는 의미(시니피에)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의미가 다른 것이다. 반면에 만의 하나 여건이 전혀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도저히 우리가 견뎌낼 수 없다고 판단하는 범위 내의 변화인지 아닌지는, 이런 사태의 희생자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도리어 강제 노동이나 식량배급이나 주입된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해방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길이 일을 얻고, 식량을 획득하고, 정신적 생활을 누리게 해주는, 역사의 진화 과정이 그들에게 주는 당연한 수단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척해야 마땅하다고 여기던 갖가지 상황들도 새로이 제 시된 명배갛ㄴ 현실-우리 자신이 종전까지는 그 외관만 보고 거절해오던 현실이지만-앞에서 눈 녹듯 힘없이 사라져버린다. 




7부 남비콰라족 29. 남자 여자 족장



  1560년경에 몽테뉴는 어떤 항해자가 데리고 돌아온 세 명의 브라질 원주민을 루앙에서 만났을 때 그들 중 한사람에게 족장-왕-의 특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자신이 족장이었던 그 원주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 써서 싸우는 사람이다." -몽테뉴 / 수상록 / 1권 31장 식인종에 대하여 - 

  내가 그로부터 거의 4세기 후에도 동일한 대답을 들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커다란 놀라움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문명화된 국가들의 정치철학에는 동일한 일관성이 지속되지 않는다. 매우 놀랄 만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같은 생각은 남비콰라족의 언어에서 족장을 나타내는 말인 '우일리칸데-uilikande 통일하는 사람or결속시키는사람-'속에서도 나타난다. 

(중략) 다시 말해서 족장이란 어떤 기존의 집단이 느끼고 있던 하나의 특 권적 권위에 대한 필요성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집단으로써 집단 그 자체를 형성하려는 집단의 욕 구로부터 발생되는 것이라고 원주민들이 의식하고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개인적인 위세와 신뢰감을 촉진시켜주는 자질이 남비콰라족 사회에서 권력의 기반을 이룬다. = 이같은 많은 직무에 관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족장은 명확히 규정된 권한이나 공적으로 인정된 권위를 기반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말해두어야만 하겠다. 동의가 권력의 근원을 이루며, 족장의 지 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한두 사람의 불평분자들이 비난받아야 할 행동을 하거나 악의를 표명한다면, 족장의 모든 계획이 어긋나버리고 공동체의 행복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족장은 다른 성원들 모두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때만이 불만족스러운 요소들을 제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현명함이라 전권을 장악한 군주의 현명함이라기보다는 불확실한 다수의 동의를 유지하려 하는 정치가의 수완이라고 하겠다. 

  족장은 어떻게 그의 의무를 완수해 나가는가? 그의 권력이 지닌 무기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대부분의 미개민족들 사이에서,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관대함이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그것은 재산에 대한 개념이 단지 몇 개의 조잡한 물건들로써 구성되고 있는 원초적인 문화에서조차 어떤 역할을 나 타내고 있다. 비록 족장은 물질적으로 어떤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거 ㅅ같지는 않다. 그는 아무리 자질구레한 것들일지라도 빈곤이 닥칠 경우에는 상당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식량. 도구. 무기. 장신구 따위의 여분의 양을 그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개인이거나 가족이거나 또는 전체 무리가 어떤 것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할 때 그 호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바로 족장이다. 그러므로 관대함이란 새롱누 족장에게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 하겠다. 그것은 거의 계속적으로 두드리게 되는 하나의 음표와 같은 것이다. 그것에서 나타나는 소리 - 그것이 화음이 되든 불협화음이 되든 간에- 의 성격으로부터 족장과 그의 무리가 이루고 있는 동의의 범위를 판단할 수 있다. 그의 추종자들이 이 모든 것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제 9부 귀로 38 럼주 한 잔 


  여기에서 나는 우리들의 재판과 형벌의 습관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이것들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상반되는 사회형 구별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식인풍습을 실행하는 사회에서는 어던 무성누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중화 시키거나 또는 그들을 자기네에게 우리하도록 변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자기네의 육체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우리들 사회 같은 두번째 유형의 사회는, 이른바 앙트로포에미아(anthropoemie: 특수 인간을 토해버ㅣ는, 축출 또는 배제해버리는 일. 그리스어의 emein(토하다)로부터 나옴) 를 채택하는 사회이다.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여 그들은 정반대의 해결을 선택했다. 그들은 이 끔찍한 존재들을 일정 기간 또는 영원히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한다. 이 존재들은 이 특별한 목적들을 위해 고안된 시설들 가운데서 인간성과의 모든 접촉을 거부당한다. 우리가 미개적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같은 관습은 극심한 공포를 일으킬 것이다. 


  우리에게 잔인하게 보이는 사회들도 다른 관점에서 검 토할 때는 인가적이며, 자애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북아메리카 평원지대의 인디언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그들 중 어떤 부족은 하나의 온당한 형태의 식인풍습을 실행하고 있었으며, 둘째, 그들은 하나의 조직화된 경찰력을 지니고 있던 미개민족들 중 몇 안되는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 찰력 또한 판결을 내렸지만, 죄에 따른 형벌이 사회적 유대와의 단절이라는 형태를 추할 수 있다고는 결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 부족의 법률을 위반한 인디언은 모든 그의 소유물 - 텐트와 말-  파괴라는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이 선고와 동시에 경찰은 그 인디언에 대한 빚을 지게 되며, 그 인디언이 당한 고통의 피해에 대해 보상해줄 것을 요구받는다. 여기에 대한 손해배상은 그 범쥐자가 다시 한 번 집단에 대해 빚을 지게 만들어, 그는 일련의 증여물들을 제 공함으로써 경찰을 포함한 전 공동체가 그가 살아 나가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이같은 교환은 증여물과 대증여물을 통하여 범죄와 그것에 대한 징벌에 의해서 생긴 처음의 무질서가 완전히 완화되어 질서가 되찾아질 때까지계속되었다.

  이같은 관습들은 우리들 자신의 관습들보다 더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비록 우리가 이 문제를 현대 심리학의 측면에서 공식화한다고 할지라도 더욱 조리 있다. 형벌의 개념 속에 함축되어 있는 죄인의 유아화(幼兒化) 대신에 그가 어떤 종류의 보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인 것 같다. 만약 이것이 실천되지 않는다면 맨 처음의 조치는 효력을 상실해버리고, 처음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들을 초래할 수 있다. 이같은 관계에서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죄인을 어린아이와 성인으로서 동시에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의 극치라 하겠다. 우리는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림으로써 그를 어린애로 취급하며, 모든 사후적인 위로를 거절하는 점에서 그를 성인으로서 취급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동료 인간들을 잡아먹는 대신에 그들을 신체적. 도덕적으로 절ㄷ나시킨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우리들이 하나의 위대한 정신적 진전을 이루었다고 믿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문자



제 7부 남비콰라족 28. 문자의 교훈


   글자란기묘한 것이다. 글자의출현은인간들의 생활조건에 심오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었고, 또 이러한 변형들은 특히 그 성격이 지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일단 사람들이 글쓰는 방법을 알게 되면, 그들은 하나의 커다란 지식체계를 굉장히 축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문자란 일종의 인위적인 기억 형태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 ㄴ위적인 기억의 발다로가 함께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는 보다 큰 능력이 생기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몯느 기준들 가운데서 문자라는 척도가 가장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글을 쓰고, 어떤 사람들은 글으 ㄹ쓰지 않는다. 그을 쓰는 집단은 하나의 지식체계를 축적하고, 그 지식체계는 집단으로 하역므 그 자체에 부여된 목적을 햐 ㅇ하여 훨씬 빨리 움직여 나가도록 도와준다. 글으 ㄹ쓰지 않는 집단은 개인들의 기억이 결코 확대될 수 없는 한계 속에 구속되어, 그 집단의 기원에 대하여 명확한 지식도 지니지 못하고 또 그 집단의 미래상에 대한 논리적인 관념도 갖지 못한 채, 매일매일 움직이고 있는 어떤 역사의 죄수로서 남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문자나, 진화의 과정에서 그것이 한 역할에 대해 알고 잇는 사실은 결코 이같은 개념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시기의 하나는 농업과 야생동물의 가축화 및 기타의 기술을 발새 ㅇ시킨 신석기 시대의 도래가 있었던 시기다. 이 시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작은 집단은 관찰하고 실험하고, 자기들의 고찰 결과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웅대한 시도는, 그것이 성공한 것으로 보아서 명백하듯이, 정확하게, 그리고 중단없이 추진되었지만, 이 당시에는 문자라는 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태였다. 문자가 기원전 4000년 내지 3000년대에 출현했따 하더라도, 그것은 신석기 혁명의 오랜 노력의 - 아마도 간접적인 - 결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문자가 신석기 혁명의 필요조건은 아니었다. 


  문자는 어떤 위대한 개혁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기술이 관련되는 한 문제시되는 건 오직 건축뿐이다. 그러나 잊비트인이나 수메르인의 건축이 아메리카가 발견될 무렵에 아직 문자를 모르고 있던 아메리카의 어떤 원주민들의 건축보다 더 나은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문자의 발명과 현대 과학의 출생 사이에서 서구 세계는 약 오천년 간을 보내었다. 이 기간 동안에 서구세계의 모든 지식은 꾸준히 증가해왔다기보다는 증감을 겪었다. 흔히 그리스나 로마의 시민 생활과 19세기 유럽의 부유한 계급의 생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없다고 언급되어 왔다. 신석기 시대에서 인간들은 문자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ㅇ므이 없이 무한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문자가 서구세계의 문명들을 오랜 정체로부터 구원해주지도 않았다. 만약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19세기와 20세기의 과학의 확대는 결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건이 아무리 필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는 과학의 확대를 설명해 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문자의 출현과 문명의 어떤 다른 특지읃ㄹ을 관련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 관련성을 찾아야만 한다. 여기서 항상 수반되는 한 가지 현상은 도시와 제국의 형성이다. 이 형성에 의해서 상당수의 개인들이 하나의 정치체계 속으로 통합되고, 이 개인들이 계급과 위계 가운데로 배분되었다. 어쨌든 이같은 현상이 문자가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 이집트와 중국에 걸쳐 발견되는 공통분모다. 이 현상은 인간을 계몽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약탈을 조장하는 듯하다. 이 약탈은 노동자를 수천 명씩이나 모아서 그들의 체력이 닿는 데까지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의 시작이 이같은 약탈에 의존해 있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만약 나의 가설이 정확하다면, 커뮤니케이션의 한 수단으로서 문자의 원초적 기능은 다른 인간들에 대한 예속화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서 정신의 만족이라는 관점과 함께, 공정한 목적에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문자의 발명의 이차적인 결과이며, 단지 그것은 원초적 기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며 또는 은폐시키는 방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문자는 인간의 지식을 공고하게 만들지는 않았고, 하나의 영속적인 지배체게의 확립에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왔던 것 같다. 이 문제를 우리들의 시데애 보다 가까운 시기로 가져와보자. 19세기 유럽 의무교욱의 확대는 국복무의 연장 및 프롤레타리아 조직화와 함께 발새오디었다. 가끔 중앙의 권위에 의해서 개별적인 시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실행되었던 증가된 권력과 이 문맹에 대한 투쟁을 구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법에 대한 무지가 불법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는 주의는 오직 모든 사람이 정부가 법령으로써 공포하는 것을 읽을 수 잇는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 9부 귀로 38 럼주 한 잔 


  신석기 시대 인간들은 그의 안전에 필수적인 대부분의 발명품들을 이미 만들어내었다. 우리는 왜 문자가 여기에서 배 재될 수 있는지를 고찰해보았다 문자란 하나의 겹날 무기라고 말하는 것은 미개주의의 징후가 아니다. 오늘날의 인공두뇌학자들은 이 사실을 재발견하였다. 신석기 시대 동안 인간들은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생각할 여유도 지니고 있었다. 하기는 질병만은 대비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위생관념에서 진보를 꾀한다는 것이 도리어 다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야기시키고 있는지 여부는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질병의 예방은 도리어 부작용으로 대기근이라거나 대살육전, 또다른 인구 팽창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낳을 수 있다. 

 그신화적 심상을 소유했던 시대 인간은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더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었다. 자연에 대해 다만 매우 제한된 통제력만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인간은 꿈이라는 완충장치에 의해서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고 해방시키기도 하였다. 이같은 꿈들이 차차 지식의 형태로 바뀌어감에 따라서 인간의 힘은 증대하였다. 그러나 자연계와의 투쟁에서 이김으로써 얻은, 우리가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간의 힘이란 기실 인류와 물질계의 점차적 융합에 대한 주관적 의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 물질계에서의 거대한 톱니바퀴는 이제 인류에 대해서 무성누 이방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그 대행자 역할을 맡게 된, 고요한 세계의 식민주로서 작용할 뿐이다. 





민족학


  제 9부 귀로 38 럼주 한 잔 


  만약 이런 종류의 분석들이 성실하고도 조직적인 방법으로 실시된다면, 두 가지 결과를 얻게 된다. 1. 이 분석들은 우리로 하역므 우리들 자신의 것 과는 동떨어진 생활방식과 관습들에 대해 편견 없고 분별 있는 관점을 가지도록 격려한다. 2. 그것들은 우리가 다른 관습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편견을 지닌 채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 생기는, 우리들이 자신의 관습들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것들을 당연시하지 않게 한다. 민족학적 분석은 다른 사회들의 권위를 고양시키고, 우리들 자신의 사회 권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점에서 민족학 활동은 모순적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깊이 숙고해본다면 이 모순이 실제적이라기보다는 피상적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고 본다.


  흔히 서구하쇠에서만 민족학자를 배출해 왔다고들 하며, 또 이 점에서 서구사회의 위대성이 존재한다고들 해왔다. 그것은 민족학자들이 자기가 소속된 서구사회가 존재하지 않느 ㄴ한 자기들도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땜누에, 자기네드로 하여금 그 사회 앞에고개를 수그리도록 만드는 유일한 서구사회의 장점은 바로 자기들의 존재라고 믿는 까닭이고, 또한 그와 같은 장점 이외의 어떤 다른 장점도 그들이 자기네 사회에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반대의 논밥ㄱ이 또한 입증될 수 있다. 만약 서구가 민족학자들을 만들어내었다면, 그것은 서구가 양심의 가책을 몹시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를 다른 사회의이미지와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는 민족학자들로 하역므 이와 같은 결점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게 하여, 서구를 돕기를 희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의 사회를 현존하는 또는 과거의 다른 모든 사회들과 비교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사 회적 기반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달느 사회도 언젠가는 마찬가지의 동일한 숙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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