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켄스톤

Swimming/etc 2013. 1. 26. 06:09

소설 후반부(영화 2or3부 추정) 스포일러 있습니다. 







  -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지?


  드워프 왕의 일갈이 홀을 울렸다. 노기가 산의 뿌리에서부터 올라온 듯한 노기가 엉겨붙어 있었다. 왕을 마주 보고 선 호빗이 일순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던 드워프들 중 아무도 감히 나서 반인족을 부축하지 않았다. 그들은 분노하고 당혹한 채 그대로 돌로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침묵하고 있었으나, 모두를 휩싼 의문은 같은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단 말인가? 소리 없는 질타가 호빗의 어깨를 내리눌렀고 그는 두 눈을 꾹 내리감았다. 그들이 밟고 서 있는 황금무더기에서 난반사된 빛이 유난히 차고 시려웠다. 


  - 어떻게 감히!


  호빗은 지나치게 담담했다. 적어도 왕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감히 두린 왕가의 상징, 재산, 산의 심장돌을 훔친 도적. 안락한 삶이 그리워 적들의 손에 보물을 넘겨준 배신자. 어떻게 이토록 작고 비열한 자에게 심장돌을 유린당할 수 있단 말인가? 고비를 수없이 넘겨 간신히 되찾은 고향에서 또 한 번 약탈당했다. 이번 약탈자는 이 시대 최강의 용이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나 강력한 마법, 입에서 내뿜는 화염도 없었다. 한 주먹에 멱살을 움켜쥐면 달랑 들어 올릴 수 있는 반인족에 불과했다. 

  어떻게 그의 원정단에 이런 배신자가 끼어 있었단 말인가? 왕은 호빗을 노려보았다. 차라리 호빗이 심장돌을 삼켰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를 조각내 돌을 되찾았을 테니까. 하지만 호빗은 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자신에게 그 돌의 처분권이 있노라 주장하고 있었다. 

  어떻게 감히 그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그는 그런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르고는 왕 앞에 꿇어 엎드리지 않는 것인가. 호빗은 당장 빌며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자신이 몇 번이고 왕의 목숨을 살려줬던 것을 들먹이며 흥정하려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적반하장으로 저 조막만 한 어깨를 떳떳이 펴고는 그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낯색은 창백할망정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죄를 청하지는 않는다. 그를 노려보면 볼수록 왕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자는 자신을 위해 제 덩치의 세 배는 되었을 오크에게 달려들었던 그 호빗이었다. 


  그래. 좀도둑보다는 야채장수가 어울리는 그 반인족. 칼은 쥐어본 적도 없고 나귀 등에 오르는 데도 온갖 유난을 떨었던 얼간이. 그들의 험난하고 위대한 원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좀스러운 호빗.

그리고 여기까지 그들을 이끌어온 원정단의 일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평생 익숙했던 감각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서늘하고, 비릿하고, 저주스러운 통증. 배신당했다는 자각. 격분이 머리를 내리치고 가슴팍을 걷어찬다. 어이 없게도 두린의 후손은 이 작고 변변찮은 반인족에게 또 배신 당했다

  또 한 번. 다시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배신감은 신뢰했던 자에게서 믿음을 거둘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신뢰했던 모습 그대로 제 적으로 나타났을 때 생기는 것이다. 등을 맡겼던 단검이 제 뒷목을 겨눌 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왕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수십년간 그 단검 날 끝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가 처음 세상이 그들을 져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들판에 흩어진 동족들을 버려둔 채 자신들의 안전한 숲으로 돌아가던 엘프군단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그리고 아무도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왕가가 번성하던 무렵 찾아주었던 자들 중 단 한 세력이라도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면, 수많은 드워프들이 그리 들판에 뼈를 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용에게 쫓겨난 왕가는 주정꾼들의 노래에조차 오르내리지 않았다. 그들의 긍지와 부를 칭송하던 자들은 싸늘한 시선조차 그들과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왕이 왕국을 되찾지 않는 한 전설은 오욕이 되었고 고향은 치욕의 땅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왕좌를 장식하던 심장돌은 탐욕스러운 용의 노리개로 전락해 버릴 터이고........



  그리고 지금 심장돌은 하필 왕에게 첫번째 배신감을 맛보게 했던 바로 그 자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아. 세상 일이란 얼마나 우스운가. 왕은 제가 앉아있던 왕좌를 돌아보았다. 왕좌의 상부에는 섬세한 황금 격자가 장식되어 있었고 그 중간은 텅 비어 있었다. 거기가 할아버지가 만든 심장돌의 원래 자리였다. 심장돌. 그 존재를 아는 이는 모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던 왕국의 정수. 용에게 그것을 빼앗기기 전까지만 해도 왕은 돌을 저주했었다. 할아버지가 그 보석을 가슴에 안은 채 어르는 것을 먼 발치에서 볼 때마다 얼마나 진저리쳤던가. 궁전 가득 쌓인 황금 중 어떤 것도 그 돌에 견줄만하지 못하다는 재촉이 떨어질 때마다 얼마나 그 돌을 호수에 던져버리고 싶었던가. 돌은 할아버지로 하여금 존엄을 잃게 했고 왕국을 위험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온 지금에 이르러서는 에레보르의 모든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왕가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돌은 왕의 심장이었다. 왕이 다시 왕좌를 발견했을 때부터 그는 제자리에 돌아와 있는 심장돌을 보고 있었다. 심장돌뿐만이 아니었다. 왕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지금 앞에 서 있는 열 두명의 일원들 뒤로 홀을 가득 매우고 있는 제 백성들이. 다시 그들을 이 곳으로 데려올 것이다. 번성시킬 것이다. 그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줄 것이다. 산밑왕 스로르가 이루었던 영광과 위세를 재현해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심장돌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그와, 그와 함께 한 열두명의 동족들과, 그들의 아이 모두를 위해. 반드시. 


  왕이 호빗에게 선언했다. 


  - 네 몫을 주장하겠다면, 좋다. 너를 살려 주지. 그것으로 내가 너에게 지불해야 할 대가는 다 치루었다. 당장 에레보르에서 떠나라. 내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눈 앞에서 사라져!


   둘러선 동족들 중 몇이 눈에 띄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빗은 입술을 한 번 축이더니, 어깨를 한 번 추스르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저 제 갈길을 간다는 듯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걸이였다. 오히려 보는 쪽에서 빨리 도망치라고 재촉하고 싶을 정도였다. 왕의 마지막 충고가 완고한 벽이 되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착각하지 마라. 너는 내게 그 돌이 아니라 네 목숨을 받은 것이다. 


  산밑왕은 배신자들과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든, 어떤 경로든, 배신자들이 일족의 유산을 나누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왕이 이 간 큰 좀도둑을 살려 보내는 것은 그 이상 이하 어떤 의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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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니까. 이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인데요. 

그 스란두일이 그 아르캔스톤을 가지고 있는 걸 그 소린이 보게 하다니! 으하하 피잭 ! 당신이란 드워프는 정말! 으하하하! 


+ 아르켄스톤이라고 쓰는 것보다는 심장돌이라고 쓰는 게 더 와닿아서 글 안에서는 심장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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