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션썰03_한신
한신에게 세상은 너무 쉬웠다. 그가 제 앞의 사람이 전쟁터에서 얼마나 쓸만할런지 감별하는 데는 두 눈을 다 쓸 필요도 없었다. 회음현 현령에게는 입 안의 혀처럼 훈련 잘 된 정병 삼백, 그 이상을 줬다간 모두 굶겨 죽일 자다. 시장통 길목을 끼고 앉아있는 건달놈에게는 제 아래 오합지졸 스무 명, 그 정도만 호령해도 천군만마 다룬 줄 알 놈이다.
고향에 살던 시절 그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느라 바빴다. 그의 눈꺼풀 아래, 가느다란 햇살 한줄기 간신히 끼어들 틈 사이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의 대군들이 말을 달리고 토산을 쌓았다. 그의 귀는 아이들이 소꿉장난 하는 소리와 상인들의 흥정 소리, 당나귀 발굽 소리에 끼어 활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모두가 한신이 부리는 군사였다. 창병 뒤를 기병으로 덮치고, 그 위로 활을 쏘아, 물길을 몰아 발 딛을 땅을 없애고 불을 놓아 퇴로를 막았다.
항가 아래 들어간 후 그 세상은 좀 더 뚜렷해졌다. 그의 감은 눈 안에 살던 병사들이 현실이 되어 움직였다. 만 명을 맡길 만한 장수,오만을 부릴 지장이 매일 그의 눈 앞을 지나쳤다. 그의 눈 안 속에만 살던 자신도 있었다. 그가 나타나는 것만으로 수십만 장병들이 따르는 존재가. 그 혼자 능히 수백만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자가. 역발산 기개세의 주인.
항우는 세다. 한신이 본 사람들 중 가장 세다. 아마 그가 보지 못한 사람들을 다 합쳐도 그만한 장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극을 쥐고 항우의 막 앞을 지켜선 채 머릿 속으로 수없이 항우의 수십만 대군과 맞부딪혔다. 그때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전략을 쥐어짜야만 했다. 겁 먹은 병사들을 독려해 항우 아래 용장들을 하나 하나 무력화시키고 마침내 항우를 몰아 넣을 때까지. 막사 바깥에 쏟아지는 뙤약볕은 지독했고 극을 쥔 손에 땀이 찼다. 가만히 선 그의 어깨가 들썩대고 가쁜 숨이 쏟아졌다. 그렇게 일보 전진, 삼보 후퇴한 끝에 마침내 항우의 수급이 떨어졌다. 분명히, 그의 머리 속에서--.
- 이 자는 왜 이렇게 전력으로 눈을 감고 있는 건가?
한신은 눈을 번쩍 떴다. 눈가에 고인 땀이 진득진득했다. 그리고 그 뿌연 시야 앞에 항우가 서 있었다. 그의 번쩍이는 갑옷이, 선 굵은 얼굴이 보였다. 그가 비칠대자 항우는 싱겁게 웃더니 물러났다. 그가 물러나자 곧 옆에 서 있던 동료의 질책이 날아들었다.
- 감히 대장군과 눈싸움을 해서 어쩌잔 거야
한신은 어깻짓 한번으로 동료의 잔소리를 털어 버렸다. 항우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항우는 세다. 항우는 쉽다. 한신은 항가 군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았다. 어떻게 무너뜨려야 할지도 알았다. 한신에게 세상은 너무 쉬웠다.
멘션캐or커플 동인썰_ss모님이 주신 주제 _ 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