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 2013. 6. 3. 19:24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들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연극 [푸르른 날에] 삽입시. 시는 온몸으로 불러야 의미가 일어 나는 거구나 깨달은. 


이런 공연이 없었다면 모르되, 아니 없었다면 만들어야만 했고 있는 한에는 계속 올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 어. 

푸르게 돋아 난 한과 푸른 웃음을 한데 엮어 늘인 동앗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