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mming/etc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싱♪ 2011. 3. 7. 14:57


3월의 첫 주말은 좋게 이준익 메들리로 보냈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라디오 스타. 왕의 남자. 총 감상은? 

1. 망했습니다. 네. 전 망했어요. 너무 취향이라 망했어요. 이제 준익이 영화 보기도 쉽지 않을 텐데 아주 잘 망했어요.
2. 이준익은 평양성이 아니라 음식 영화를 찍었으면 개 흥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떻게 찍는 음식, 먹는 장면마다 다 맛있어 보이냐.
3. 차라리 저게 호모였다면 덜 더러웠을 것을....... 왕의 남자는 호모 아니냐고? 글쎄. 난 잘 모르겠고. 근데 더럽고.

개중 가장 인상이 강했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부터 몇 줄 끄적임. 자잘한 장면에 대한 스포 있습니다. 

일단 이 놈의 제목부터가 입에 착 착 안 붙는 것이 도무지 외울 수가 없는데 본 작품도 딱 그랬음. 가장 인상이 강한 영화. 가장  꿉꿉한 것이 존나 내 취향 어딘가를 건드리는 영화인건 맞습니다. 근데 내가 본 이준익 영화 중 제일 못 찍은 영화인 것도 맞음요. 덕분에 나는 이준익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 좋은 것보다도 이준익이 잡는 소재와 주제와 형식이 존나 좋은 거라는 깨우침을 얻었고....... 나 원래 이런 여자 아니거든요? 취향이어도 못 만든 건 못 만든 거고, 못 만든 거 굳이 팬심?으로 필터링해서 봐주는 거 질색인 여자거든요? 근데 이건 뭐....... 
이준익은 왜 이렇게 취향이란 말인가. 끙 끙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별점을 짜게 줄 수 밖에 없는 게, 내가 이준익 영화에서 제일 개발렸던 강점이 영 안 살았더라.
황산벌 - 평양성에서 아주 그냥 닥 닥닥닥 발렸던 유기적인 구조, 개그가 있기에 시리어스가 있고 시리어스이기에 개그가 사는, 모든 장면이 어우러지는 맛이 나지 않았다. 컷 하나 하나의 농도는 대단히 높다. 그 컷 사이에 깔린 설정들도 아주 찰지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게 제대로 이어지질 않는다. 애초에 이런 소재, 이런 주제를 좋아하든가 '나는 이 영화를 이해해주겠다' 라는 자세로 봐주지 않으면 엔딩스크롤에서 승기를 부르게 되는 영화. 

애초에 오프닝 3분이 아주 글러먹었다. 저 장면만 자막붙여 세 번 돌려 보여주지 않으면 관객 80%는 오프닝 3분이 왜 붙어 있는지 이해 못할 거 같더라. 차라리 황정민과 차승원 얼굴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기싸움 하는 걸 3분 보여줘도 이거보다는 이해 하기 쉬운 오프닝이 되었을 거다. 욕 나오는 건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저렇게 찍어 놨는지는 이해가 간다는 거. 그래. 어전에서 치고 박는 거 밑밥을 깔아 놔야 하긴 했겠지. 근데 저 오프닝이 이 영화 도입부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질 못 하고 있거든. 그냥 봐서는 이해 안 가거든. 굳이 이해하려고 해야 좀 들어올랑...말랑............

거기에다 개인적으로, 정말 너무 너무 눈물나게 아름다운, 각잡힌 복장과 배경에서 사극 말투를 안 쓰니까 위화감이 너무 심하더라. 일부러 그런 거란 건 알겠지만 (그래서 축도 이건 사극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퓨전이라 치고 넘어가기엔 또 그 외의 것들이 너무 각 잡혀 있다. 대사 센스 자체도 그닥 좋은 것 같지 않았음.  배우들의 전반적인 호연에 주요 대사들이 잘 살아나긴 했는데, '세련되지 못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너무 드러나는' 대사가 많았다. 칼이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가는 건 기습을 하기 때문이다. 칼 앞에 나서는 이몽학이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극 앞으로 튀어나오니, 좋은 소재 - 주제의 빛이 바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든 구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고....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단점들이 널려 있음에도 이준익 영화 답게 굳고 성실하다.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 특히 황정민이라든가 황정민. 혹은 황정민 말입니다. 

흥행을 생각해서도 이몽학(차승원)을 앞에 세우는 게 맞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기 보다 모두의 귀착점)이 이몽학도 맞고 차승원이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 영화의 핵심, 소금 결정은 황정학(황정민)이올시다. 화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존재이자 영화의 버팀돌이다. 이준익 나쁜 놈. 어떻게 배우 하나한테 저걸 다 시킨 거야. 황정민이 개존잘이니 망정이지.... 아니 근데 황정민이 이렇게 개존잘이었나요?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황정민의 미친 연기력부터 얘기하게 될 것 같음.

그리고 제복이라든가 도포라든가가 아주 많이 나와서 그것도 몹시 좋습니다. 뭐 사극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사극이니까 더 따지게 되는 거야 이 양반아. 고름만 달려 있으면 저고리고 소매자락만 넓으면 도포인가. 아무리 허리를 동여싸매도 다 같은 철릭이 아닌 거시여. 영화 제작비를 월매나 타썼는지는 모르겄지만 기필코 옷에다 웜청 쳐쏟았을 거시랑께. 
옷에 쏟아 부은 만큼 화면도 때깔나게 뽑았다. 액션도 아주 레알이다. 황정학과 이몽학의 대결 씬은 이 영화의 백미. 사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이 영화의 가치가 다 설명되어 버린다는 게 그닥 자랑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칼부림을 겁나 길게 잡았는데 그게 보는 사람을 저릿저릿하게 하는 클라이막스고, 그 외의 부분 - 특히 칼부림 이후 부분에서 어떤 장면이 나와도 그 이상 텐션 업이 안된다는 건...... 글쎄. 이건 구성 상 실패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그 칼부림은 정말 초장부터 막장까지 진리다. 아 말하다 보니 또 보고 싶어지네. 염병헐.... ㅇ<-<


그리고 비록 도미노처럼 연타를 치지는 못했을 망정 각 장면의 등장인물, 인물들의 행동, 인물들이 처한 공간의 성격, 그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정말 좋았다. 인정한다. 여기서부터는 극히 내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다. 이게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 내가 뭔가 쓰려고 할 때마다 걸고 넘어지게 되는 거랑 묘하게 겹쳐서, 미치겠는 거다. 이몽학과 황정학 - 큰길과 샛길. 실패한 - 실패할 혁명. 그 혁명보다 돌출되는 광기와 더듬 더듬,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는 발걸음. 이몽학과황정학은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 정말. 이 영화에서 저 둘은 서로에게 하나였다. (라고 쓰니 더러워서 살 수가 없다.) 이준익 왈 이몽학의 어린 시절이라 했다는 견자를 몰아가는 방법도 몹시 좋았다. 서자가 쓰러진 아비 붙잡고 우는데 굳이 그 마루 아래에 장자가 숨어들어 아비의 피를 흠뻑 맞는 장면을 넣는다든가. 궁궐 씬이라든가.
특히 진짜 미친듯이 좋았던 건 궁궐이라는 장소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확 끌어올린 건 마지막의 그 궁궐이었다고 생각함. 텅 빈, 역겹도록 덧 없는, 끝까지 가 닿았는데 그것이 '단순히 끝'일 뿐인 공간. 폐허에 남은 건 아직 꺼지지 못한 광기뿐인 상황. 꿈은 그 무엇도 아니고 꿈일 뿐이라는 걸 그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영화의 도대체 입에 안 감기는 제목도 의미를 갖게 되는 거지. 그런데도 구름에 가렸다고 달이 없다더냐 - 라잖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달'을 향하는 거' 잖아.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겁나 취향이었는데 축한테 또 보자고 하기는 부끄럽고 사실 또 보면 화 날 거 같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취향이고 자시고 다 필요없고 황정민의 미친 연기력은 정말 굉장하니까. 한 번 쯤 보셔도 좋을 것 같고 그래요... ...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