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퍼시픽림을 보고 왔어요. 조조로 용산 아이맥스를 뛰었어요. 알바하는 내내 떠들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지금 집에 왔어요. 바로 풀기 시작해요. 오늘치 공부는 이따가 하기로 해요. 일단 난 이거부터 풀어야겠어요.

이하 스포일러 남발합니다. 



일단 퍼시픽림 예고편






> 이하 내가 기대한 것:

- 쩔어주는 거대괴수vs거대로봇 액션

- 거대로봇과 파일럿 수트 디테일 

- 판타스틱! 스펙타큘라! 스케일 

- 내가 이런 류 영화에서 너무 너무 좋아하는 긴장감 넘치는 브금 

- 귀여운 너드 매드 사이언티스트들 

- 재난에 맞서는 인류의 의지+비장함+그 와중의 깨알같은 유머 - 등 스토리 

- 파일럿 간의 갈등과 브로맨스 



그래서 내가 본 건 뭐냐면:

- 쩔어주는 거대괴수vs거대로봇 액션

★></ 로봇액션 작품 잘 몰라요 하지만 죽인다 우와


- 거대로봇과 파일럿 수트 디테일 

★ㅎㅇㅎㅇ


- 판타스틱! 스펙타큘라! 스케일

 


- 내가 이런 류 영화에서 너무 너무 좋아하는 긴장감 넘치는 브금 

★ㅇㅇ


- 귀여운 너드/매드 

★////ㅎㅇㅎㅇ22


- 재난에 맞서는 인류의 의지+비장함+그 와중의 깨알같은 유머 - 등 스토리 

☆응 이 정도면 필요한 만큼 잘 팠다고 생각해요 잘 보여주기도 했고


- 파일럿 간의 갈등과 브로맨스 ..............................................


...없네?...

...없잖아...?...

...아니 기예르모 양반?...


....내가 제일 기대한 건 마지막이었는데 왜 마지막이 없냐고!

왜 없어!

저 예고편 보면 열라 있을 거 같잖아! 남 파일럿 둘이 메인인 거 같잖아! 브로맨스 떡칠일 거 같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근데 왜 5분만에 끝나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슈바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엉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




아니 이건 내가 남남 캐미에만 환장하는 더러운 부녀자라서 이러는 것만은 아닙니다. 자 차근차근 얘기해 볼게요.

이 영화 로봇 설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파일럿 둘이 로봇의 좌/우뇌를 분할 담당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파일럿들은 드리프트라는 걸 하는데. 이게 한마디로 파일럿 둘+로봇의 뇌 공유. 뇌트워크 되시겠음. 대사를 보면 이 드리프트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사람끼리도 상성이 잘 맞아야 하나 봅니다. 뭐 당연한 거죠. 단체스포츠에서 자기 몸 직접 움직여서 플래이할 때도 상성이 맞아야 하잖아요. 하물며 하나의 몸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


게다가 이 드리프트 파트너끼리는 '말하지않아도 알아요~' 자동 밀납의 성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아야 하기 때문에 혈육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이 파트너가 된다는 건 자동적으로 서로 특별한 사이가 된다는 뜻인 모양입니다...아...


...그런데 이런 설정에서 주인공이 시작하자마자 파트너인 형을 잃는단 말이에요. 드리프트된 상태에서 형이 죽는 바람에 그 순간까지 서로 뇌 공유를 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후 주인공은 5년간 잠적타고 장벽노가다나 뛰러 다니죠. 의기양양하던 히어로에서 별무소용인 장벽을 쌓는 익명으로 숨어버립니다. 한마디로 얘는 5년 동안 맺힌 트라우마 빙산, 트라우마의 블랙홀이란 거지. 


이런 팡팡 터지는 스토리로 시작을 했는데, 그럼 당연히 관람자인 나는 뭘 기대할까요? 주인공의 극적인 재활과 감동적인 상처 극복을 기대하겠죠? 주인공의 보스가 일부러 주인공을 픽업하러 왔을 때 주인공의 피폐한 상태를 보니 더욱 기대가 될 수밖에요. 메마르고 텅빈 채 보스를 맞던 주인공이 형 이외의 그 누구와도 뇌 공유는 할 수 없다고 말하던 바락바락 대드는 게 아주 상처가 터진 채 방치된 게 다 보이는구만.



...그런데 정작 주인공이 본격 복귀하기 시작하니까 그런 게 싹 날아갔어요.

하하.

없었다고.ㅠㅠㅠㅠ

다른 건 다 있었는데! 왕년에 잘나가던 주인공에게 개기는 젊은 후배와, 주인공을 인정해주는 베테랑 멤버와, 만화에 흔히 나오는 러시아와 중국 클리셰를 완전 끼얹은 러시아/중국계 조연들. 다 있었는데. 괴수들도 짱 좋았는데. 그 안에서 묘한 배척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살짝 겉도는 주인공도 아주 좋았고. 리더와 갈등하는 것도 좋았고. 그런데 정작 내가 기대한 게...본격적으로 다뤄지지를...않아.


내가 이후 전개로 상상했던 건 주인공과 잘 맞지 않는 남자 파일럿이 배당되어서, 너같은 건 형하고 비교할 수 없다고/내가 왜 당신 형 노릇을 해줘야 하냐고 당신이 내 파일럿이 되라고 티격태격하다가 / 서로 위기에 처하고 주먹다툼 발길질도 안 죽을 만큼 하고 / 그러다 서로 트라우마 컴플렉스 극복하고 괴수 물리치고 지구도 구하는 그런 스토리였음. 음. 정석적이죠.


그런데 주인공을 맞아주는 건 눈썹이 왕 진한 80년대 화장 언니.

단발머리에 넣은 파란 브릿지마저 쌍팔년도 전대물을 떠올리게 하는 언니. 

이 언니의 조신한 영어에 놀라버린 나. 아니 말투가 진짜 어렸을 때 본 전대물에 나오는 공주 더빙같이 들림. 나만 이래?


아무튼 난 이 언니가 서포터인가 보다 하고 언니가 뽑아놨다는 후보 남자 파일럿을 기대함.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왠지 그런 거 안 나올 거 같은 분위기다?

그래도 아 제발 하고 기다림... 근데 아... 없네. 남자 파일럿이 나오지 않았음. 그냥 언니가 주인공의 상대였음.


그럼 여기서 그냥 위에 말한 모든 갈등과 감동 에피소드를 남/녀파일럿끼리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라는 지적이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그랬으면 나도 불만 없었을 거임. 어 진짜. 그러다 연애 루트로 빠져도 불만 없었을 거임.

브로맨스가 안나온 건 아쉽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예고편 어디에 '브/로/맨/스'라고 박혀 있던 것도 아니니 말야.


그런데 문제는 저 언니랑 남주 사이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단 말이지.

내가 '영화 초반에 저런 걸 던져놨으면 당연히 이후에 스토리로 풀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게 하나도 안나오더라고.

여주의 트라우마 보여주느라 남주 트라우마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가 않아. 어느새 남주는 다 극복해버렸엌ㅋㅋㅋㅋ


애초에 형 아닌 누구와도 뇌공유 못한다고 뻗대던 건 뭐 순식간에...ㅠㅠㅠ 대련 몇 번 해버리더니 야 너 나랑 잘 통한다 / 이러고 땡끝. 


게다가 이 여주는 '오리엔탈리즘 클리셰'를 새삼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조신하고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동양인 여성이심. 그냥 그러기만 하심. 

그래서 이 여주의 감정라인도 딱히 설명이 안됨. 처음부터 남주에게 호감이 있었다 이외에 어떤 설정이 안 보임. 둘은 만나자마자 운명적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건가. 그런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내가 조신하고 순종적인 동양인 여성이라고 언니를 까는 게아니고요 ㅋㅋㅋ 아... 스타일 구린 건 까겠습니다. 하지만 뭐 그것마저도 그러려니 하는데 ㅋㅋㅋㅋㅋ 언니의 성격과 과거 설정은 남주와 아무 상관없이 던져지고 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의 스토리와 남주의 스토리가 전혀 융합이 되지 않는다고 ㅋㅋㅋㅋㅋ


이 와중에 괴수의 기원이나, 그걸 쫓는 과정, 무력한 군중들이나 책임을 모두 떠맡고 있는 리더 등의 스토리는 또 잘 풀어요. 문제는 여주와 남주의 스토리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것 뿐이야.


그런데 이게 단순히 캐미나 스토리 개연성만의 문제가 아님. 액션에서도 문제가 생김.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로봇 파일럿은 둘이다? 즉 둘이 같이 뭔가 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물론 파일럿들이 직접 괴수와 싸우는 건 아닙니다. 로봇 머리 안에서 꼭두각시 조종인거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긴장감 넘치잖아요. 두 파일럿이 합이 딱 맞아 집시 데인저가 포권 취하던 순간은 정말 인상적이었다고요. 당연히 새 파일럿하고도 맨 처음 형하고 한 것처럼 탁탁/ 타이밍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액션을 기대하게 되지 않나요. 



그런데 저 여주. 그렇게 비중 많이 먹어서 기어이 로봇에 탔는데... 왜 말이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리 여주가 초보라 선배인 남주가 주 조종사로서 지시하는 역이라고 해도말이지. 너무 하잖아... 그렇게나 열심히 타려고 했는데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 듣자하니 여주인공 배우의 영어 발음때문에 대사를 줄였다는 얘기도 있던데.; 앞에서는 대사 많이 해놓고 짧은 단말마 정도도 나오지 않으니 이해가 안갑니다. 


덕분에 집시 데인저 액션 보면 /괴수에게 공격 받음 / 급박한 상황 / 남주가 여주에게 무엇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소리가 들림 / 로봇과 괴수 부딪힘 /의 반복.... 여주가 실제로 화면에 거의 안 보여요0... 안 보여... ㅠㅠㅠㅠ

이러니 보는 난 : ...; 그렇게 러닝타임 먹어가면서 여주 과거 트라우마 동기 부여 설명 다 해놓고 왜 정작 싸울 땐 존재감이 없어지는가를 고민하게 되고.

내가 기대했던 딱딱 호흡 맞아 떨어져서 싸우는 파일럿들이 보이지 않아서 섭섭하고.

심지어는 마지막까지 그저 보호만 받고 시기적절하게 의식 잃어주는 여주를 보면서 할 말이...없어지고...


결국은 '저 여주'가 투입됨으로써 액션이 멋지게 나온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어요. 남주 혼자 모는 것 같았다고. 

감독한테 묻고 싶은 거죠. 저럴거면 저 여주 왜 넣었는지...왜 저렇게 만들었는지...스타일은 왜 저렇게 80년대 스러운지... 


후새드...


다른 부분에서도 비약이 보이는 작품이지만, 저는 이 여주인공의 애매한 돌출과 사용 실패가 큰 문제라고 봅미다. 일단 앞쪽에서 관객의 관심을 올려놨던 주인공의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버렸고, 포인트 설정 매력 살리는 데도 도움이 안되었으니까요. 언니가 너무 스타일이 구린 건 둘째 문제로 친다 해도 말이죠. 후우... 진짜. 클리셰라기에도 민망한, 클리셰의 원형 박물관 보존실에서 나온 것 같은 설정 집함까지도 그렇다 친다 해도 말이죠.



... 하지만 이외의 부분은 또 두근두근하게 마음에 들어서. 한번 더 봐 말아 미친 고민 중. 아.... 닥터들 정말 귀여운데 ㅠㅠㅠㅠㅠㅠㅠ 마코가 저를 너무 힘들게 합니다. 제가 마코가 여주라는 걸 인정하고, 그것도 꽤 비중이 높은 여주라는 걸 깨달은 후 되도록 좋아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어차피 앞으로 남은 러닝타임이 1시간 이상일텐데... 저 언니 자체만으로 보면 그래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내 즐거운 관람을 위해서좋아해보자...좋아해보자 세뇌를 했는데. 싫어하지 않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좋아지지가 않더라고.ㅠㅠ 이런 경우 전 대부분 한 번 관람으로 만족하는데, 퍼시픽림은 한번만 보고 놓자니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음... 다른 감상 포인트를 찾아보도록 해야겠어요.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되다>

 - 슈테판 츠바이크 / 남기철 / 이숲에올빼미 / 2011.11.01




  - 이제는 우리의 삶을 부정할 필요가 없어졌잖아. 우리는 우리가 파괴할 자격이 없는 어떤 것을 파괴하려고 했던 거야. … 한 줌의 돈만 있으면 내 안에서 아직 실현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들을 밖으로 펼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실현될 수 없는, 내가 지금 꺾어버린 이 나뭇가지처럼 시들어가고 있는, 단지 꺾어버렸기 때문에 시들어가고 있는 것들 말이야. 내 안에서 더 자랄 수도 있는 어떤 것들…… 

 -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되다 – 425~426p



  전쟁이 오스트리아를 덮쳤다. 음식도 돈도 한줄기 미소도, 모든 것이 모자라 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영영 지워지지 않는 그늘이 드리웠다. 숨 막히는 전시 사회, 뼛골까지 삭은 채 시골 우체국에서 시들어가던 여자가 있다. 육 년 동안이나 전쟁터를 떠돌았으나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남자가 있다. 둘은 대화를 섞자마자 서로가 무엇에 분노하는지, 무엇을 박탈당했는지 이해한다. 출구 없는 세계, 계속 그들을 메마르게 하는 가난, 앙상한 두 손 쥔 채 분노에 떨다 죽어야 한다는 무력감, 서로 묶여 있는 굴레가 같다는 걸 안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위로할 힘마저 고갈된 그들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 마지막으로 남자가 제안한다. 여자가 관리하고 있는 돈으로 그들이 박탈당한 것을 되찾지 않겠냐고. 남자가 횡령을 제의하고 여자가 동의하는 그 순간, 이야기가 멈춘다. 원고가 끝나 버렸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되다’는 두말할 것 없이 미완의 작품이다. 소설은 두 남녀가 마침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 아무 예고 없이 단절된다. 내용 역시 탄탄한 짜임새를 갖추지 못한 채 불균형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보잘것없는 우체국 직원 크리스티네가 뜻밖의 호화 호텔 휴가를 누리며 겪게 되는 변신과 몰락을 절반 넘게 다룬다. 딱 일주일, 크리스티네의 단 꿈이 이어진 것은 그녀 인생 28년 중 일주일 뿐이었다. 그동안 여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천국의 문 안에 들어선다. 너무도 쉽게, 옷 한 벌을 갈아입은 것만으로. 스위스 호텔에서의 여름은 아름다웠다. 원할 때면 언제든 쏟아지는 고급 의상과 장신구, 풍족한 식사와 신사들의 관심. 그곳에서 무책임하고 갑작스럽게 쫓겨났을 때 여자는 처음으로 자신이 전쟁 때문에 무엇을 빼앗겼는지 자각한다.

  독자들은 이 소설의 제목을 보고 흔히 이 호텔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끝날 거로 생각할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특기, 풍부하면서도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한 인물 심리 묘사는 이 소설에서도 매 페이지마다 살아있다. 즉 크리스티네의 폭발적 상승과 하락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인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호텔 생활 뒤로, 작가는 다시 길게 크리스티네의 절망을 그린다. 

  그녀는 자신에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들, 그것들과 자신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에 분노한다. 그 영원히 마르지 않는 황금 분수는 터무니없는 공상에 불과한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허름한 우체국 사무실 벽을 원망하게 되는 것은 그녀의 잘못일까? 그저 허영심이라는 열기에 애꿎은 가슴을 태우는 것은 가련한 우체국 직원의 착오일 뿐일까?

  그런 그녀 앞에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열아홉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인생의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절을 전쟁에 상납했다. 그 보상으로 그가 받은 것은 국적마저 불명확한 비정규직 인생. 육 년 동안 어린 시절의 꿈도, 생계 유지 수단도 잃은 그에게 남은 건 분노와 수치심뿐이다. 소설 후반부 절반은 그들이 가까워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관계 진전을 메인 스토리로 끌고 간다. 가난한 두 연인의 보잘것없는 연애사이니만큼, 앞쪽의 바쿠스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부분과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변화는 이야기 방식에서 발견된다. 앞 전반부에서 작가는 크리스티네의 스팩터클한 변신을 카메라에 담듯 묘사했고, 크리스티네의 심리 여과 없이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로 남주인공 페르디난트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즉 페르디난트의 긴 연설, 한탄, 분노에 넘치는 웅변으로 주제 '전쟁에 의해 영영 박탈당한 세대의 괴로움'이 전달되는 것이다. 


  - 아니야. 프란츠. 내가 자네를 비난하는 게 아니야. 자네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알고 있어. –중략- 자네가 선량한 친구라는 것을 잘 알아.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잘못된 점이자 어리석었던 점이야. 우리는 너무 착하고, 의심할 줄도 몰랐어. 그래서 우리는 이용만 당했지.

    하지만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에는 앞으로 절대 안 속을 거야. 내가 아직 사지가 멀쩡하고 목발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는 따위의 이야기에 설득당하지도 않을 거야. 숨 쉴 수 있고 먹을거리 있으면 충분하지 않으냐는 이야기, 그 정도면 만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설득 당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 신도, 국가도, 삶의 의미라는 것도 믿지 않아. 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런 권리를 찾지 못하는 한, 세상이 내 인생을 빼앗아 갔고 나를 속였다고 생각할 거야.

   - 본문 318p


  페르디난트의 감정상태에 대한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크리스티네의 섬세한 감정 묘사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야기 전달 방식이 페르디난트라는 한 인물의 등장으로 확 바뀌어버리는 것은 완성도 측면에서 볼 때 그리 매끄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크리스티네는 ‘특유의 내성적이고 의존적인 성격 탓인지’ 분명 페르디난트의 말에 동의하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공감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고 그를 감싸줄 뿐이다. 중반까지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고를 드러내며 더없이 매력적으로 이야기 속에서 춤추던 크리스티네의 존재감이 확 줄어들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이 균형감을 갖추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크리스티네의 호텔 유희 부분이 한층 줄어들거나 페르디난트의 등장이 훨씬 빨랐어야 했다.

  또한, 주제 심화 차원에서도 이러한 페르디난트의 난입은 문제를 노출한다. 전쟁에 직접 참가해서 손가락 불구까지 된 페르디난트의 문제의식과 후방에서 가난에 찌든 나날을 보내다 한 차례 화려한 휴가로 충격을 받은 크리스티네의 그것은 절대 같은 층위일 수는 없다. 물론 그 둘을 가두고 있는 거대한 굴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둘은 ‘이 모든 것이 전쟁 때문이며, 그들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것 또한 전쟁뿐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 둘의 분노가 과연 같은 종류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당장 둘은 상황의 급박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페르디난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사회상과 크리스티네가 바라는 회복된 삶의 질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앞쪽에서 섬세하게 묘사되었던 크리스티네가 이런 차이를 무시한 채 덮어놓고 그와 나는 같다고 공감을 표하는 것은 그다지 그녀답지 않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주제 ‘전쟁 이후 피폐해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성급한 진행인 듯 보인다. 


  이러한 여러 가지 불완전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되다>는 독자를 도취경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읽는 이의 심장을 움켜쥐고 깊이 끌어당기는 힘이 소설 전체에 작용한다. 아무 전조도 없이, 그것도 가장 중요한 순간 이야기가 끊겼는데도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상은 흔들리지 않는다. 

  인생의 매 중요한 순간마다 그 순간이 지나갈 때까지 성공 여부는 아무도 얼 수 없지 않은가. 뜨겁게 고민하느라 차갑게 식어가던 두 남녀가 성공할지 안 할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이 총 대신 강탈을 선택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 순간이 그들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그들이 횡령 계획을 진행하든 하지 않든, 모든 일이 잘 풀려 그들이 오래 함께 하든 금방 헤어지든, 성공하든 하지 못하든 그런 차이는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페르디난트가 짠 장문의 계획서대로 모든 것은 장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구성도 불안정하고 줄거리도 끊긴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모든 글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발산하기 위한 무대 장치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주 훌륭한 확성기다. 그는 페르디난트의 입을 통해 직접 전후 오스트리아 사회의 모순과 도태를 고발한다. 크리스티네와 그녀를 둘러싼 호텔 인물스케치를 통해 제 욕망을 상류층의 나태한 양상을 그린 것은 훗날 페르디난트의 비난 실례가 된다. 작가는 실로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 한 쌍을 통해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전체를 상대로 화풀이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 화풀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인물들의 생생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제 매력적인 문투로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어조와 행동을 끌어낸다. 그의 묘사로 태어난 인물들은 도자기 사이에서 홀로 피부와 뼈와 피를 나눈 자들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작가는 인물들의 성격과 생각의 변화, 대화의 혼선을 다른 이의 눈과 귀에 확고하게 박아 넣는다. 그는 뻔하고 천박한 욕심들을 단순히 더러운 것 이상으로 채색해낸다. 크리스티네의 허영심도, 페르디난트의 엉뚱한 분노도, 싸구려 호텔에서의 역겹고 초라한 하룻밤마저도 말이다. 그것이 몇 세기 전 섬나라의 실존 여왕이건 가상 설정 속 시골 우체국 여직원이건 츠바이크의 문장을 타고나면 둘 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어느 장르에서건 제 글 속 인물의 심리를 마음껏 펼쳐 보인다. 그의 글에서 긴장감은 인물이 '비밀'을 숨김으로써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모조리, 마음의 흐름까지 그대로 보여주면서 긴장감이 올라간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나비의 날갯짓을 쫓다 정신 차려보니 화단 한가운데까지 침범한 아이 꼴이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야말로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며 '인간의 감정'만으로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조건에 충실함으로써 츠바이크 소설은 공고한 세계를 구축해 낸다. 자살이나 절도 외에는 '미래'를 얻을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빠른 파멸이냐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남녀를 보여준 채 소설은 끝난다. 횡령은 영원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 채' 남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츠바이크의 인물의 생생함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장 바깥에서 어른거리는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실재하지 않으나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뒷모습을 쫓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잘 쓰인 소설의 마력 아닐까. 이런 마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비록 미완성 작품이라 할지라도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여자가 남자의 시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을 내밀며 대답한다. - 좋아, 한 번 해보자. 

      - 본문 461p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될까? 몇만 프랑을 얻는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그들이 박탈당했다고 믿는 것이 정말 그들이 박탈당한 것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전쟁을 통해 정말 박탈당한 것은 무엇을 박탈당했는지 확인할 능력이다. 그들은 외면에 익숙해지고 핍박에 수치심을 자극당하느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들은 열병에 걸린 나머지 환상 속 우물을 향해 고개를 처박는 환자들이나 매한가지 상태다. 크리스티네가 전쟁을 통해 잃은 건 안정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서민의 일상이다. 스위스 호화 호텔에서의 환락의 밤이 그녀가 박탈당해 못 견딜 것은 아니다. 페르디난트는 너무 모멸을 많이 겪은 나머지 화를 내야 할 상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의 예민한 정신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찔러댄 수치심을 가라앉히지 못해 항상 과민상태에 빠져 있다. 그들은 몇만 프랑을 횡령해서 자신들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무엇을 해야 이 끔찍한 예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모른다. 이 소설의 '열린 결말'이 한없이 씁쓸한 것은 결국 남녀주인공들이 또 다른 수렁으로의 길을 재촉했다는 것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어디까지 변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세계에 사는 독자 나는,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탈을 쓴 작가의 열변에 손을 꾹 쥐며 공감한 나는 어디까지 도취할 수 있을까? 




  리부트 파이크는 워낙 '양부' 포지션 하나의, 하나를 위해, 하나에 의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길게 얘기할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커크의 말대로 좋은 친구이자, 함장이자, 아버지였다.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고, 낙심했을 때마다 나타나 어깨를 두드려주는. 좋은 아버지. 그러니까 '가짜 아버지'만 될 수 있는 아버지 상이다. 아무튼 그는 커크에게 그런 아버지 역할을 다 해주고 깔끔하게 뒈졌다. 너무나 적절한 리타이어였다.ㅇㅇ. 순수히 애도하기에 좋은 죽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죽음은 커크나 스타트렉 영화에만 적절한 죽음이 아닌 거다. 사실 이 양반 무지하게 운이 좋달까.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지. 이 사람은 거기에 팔자가 편하다는 말까지 추가해야 함. 죽는 마당에 팔자가 편하다고 말하니 미묘하지만. 이 사람 이때 죽었으니 스팍이 마인드멜딩이라도 하며 보냈지 안 죽었으면...어...음...

  만약 여기서 파이크가 살았다고 쳐보자. 아무튼 스타플릿 실전 능력자들은 개빡살이 난 상태다. 그 와중 스코티가 칸의 도주 위치를 파악해 오겠지. 자 그럼 이제 마커스는 어떻게 움직일까? 파이크가 죽지 않았으므로 커크가 복수혈기가 뻗쳐 앞뒤없이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분명 마커스는 다크니스 원래대로의 계획을 진행할거다. 현재 클링온과의 외교 관계를 볼 때 '야 이 반란군 노무 시키야 내가 지금 클링온 몰래 어뢰를 몰고 가서 너를 박살내 주겠어' 작전에 반대할 명분은 거의 없다. 그리고 마커스가 희생양을 고른다면 눈엣가시 커크를 고를 확률이 매우 높지 않겠어? 커크는 커크대로 복수혈기가 아니라 공명심때문에 불나방이 되어 뛰어들 확률이 매우 높지.(애초에 난 커크가 복수심때문에 엔터프라이즈 몰고 날랐다고 생각하지 않아. 파이크가 죽어 버렸다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복수심으로 튀었다면 모를까.ㅋ) 가뜩이나 파이크 없었으면 학교에 처박혀야 할 신세였던 커크다. 사회를 초워ㄹ..아니 규칙을 초월하는 본인의 일 처리 방식도 인정 받을 겸, 함장직에 어울리는 공도 쌓을 겸 덥썩 미끼를 물 수 있지. 충분히. 이 경우 스팍을 못 데려갈 가능성도 있어. (그러고보면 3초 스팍 함장 된 브래드버리호 함장은 칸의 습격 때 죽은 걸까? 되게 쉽게 스팍 엔터프라이즈로 돌려 보내던데.) 스팍이 없다면 커크에게 그렇게 강고하게 '로지컬한 윤리 기준'을 들이댈 인물이 없다. 커크 얘가 허당이라 정말 어뢰를 쏠 가능성은 이 경우에도 그리 높지 않기는 함.(차라리 술루가 위협하다가 레알 날려 버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봄) 하지만 체포로 작전을 바꾸는 타이밍이 다크니스 보다 늦어질 수 있고 덕분에 더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 수 있다. 엔진 고장난 함선에 범죄자를 태운 채 증거인멸하러 달려온 제독 짱짱함선과 1:1 떠야 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상황 말이지. 레알 레알 레알 클/링/온/ 이 뜬다든가. 

  한편 파이크는 가뜩이나 다리도 불편한 양반인데다 어뢰 작전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듯 함. 때문에 엔터프라이즈 다시 커크한테 내놓고 뒤로 빠지게 될 가능성 있음. 그리고 이 양반이 지위와 짬밥이 어지간한 양반이 아니므로 당연히 마커스의 의중 꿰뚫어 볼 거라 봄. 마커스 왈 제가 군인이 되라 추천했다고 하니, 마커스와 각별한 관계일 것이니만큼 다른 이들보다 더욱 빨리 눈치 챌 수 있으리라 봄. 그럼 이 양반이 가만 있을까? 양아들(삘인) 커크가 덧없는 우주 먼지가 되어 날아가게 생겼는데. 당연히 뭔가 조치를 취할 것임. 그런데 그 조치가 절대 자신의 군내 지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닐 거임. 즉 온당하다는 거임. 마커스같은 (최소) 군내 절대 권력자+수완가에게 '온당한 조치'란 뜨뜻미지근한 미온수에 불과함. 즉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기 이전에 마커스에게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는 처지가 되실 거란 말임. 아마도 커크에게 경고 정도 해줄 수 있는 게 전부 아닐까. 

  그러니까, 자신에게 군인이 되라 추천한 사람에게 붙잡혀서 자기가 군인이 되라 추천한 애가 망하는 꼬라지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다는 거지. 내 스승이 내 제자 뒷통수 치는 꼬라지 말야. 마커스가 곧바로 파이크를 죽일 거 같진 않아. 파이크는 굳이 곧바로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거든. 그는 온당하니까요. 파이크는 애초에 마커스를 끌어 내리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조차 않았을 테니까. 최고 제독에게 다짜고짜 그 의자에서 내려오라고 페이저건 들이댈 수 있는 건 우리 대책없는 커카스파니엘 정도지.ㅋ ... 마커스가 '나 내려간 자리 니가 책임질래?ㅋ' 할 때 어멈칫하던 거 봐.ㅋㅋㅋ

아무튼 저런 꼬라지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참. 다리도 불편하신 분이 참. 갇혀서 말임. 몸이 덜 불편한 대신 마음이 한없이 불편하고. 양자 걱정에 눈을 감지 않아도 눈 앞이 캄캄하시겠지. 참. 그래. 아.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거 땡기잖아. 말할수록 괜찮은 거 같아. 아 이거 꽤 볼만한...꽤 절경인데...어...

...아무튼 이러 저러한 이유로. 파이크는 저때 죽은 게 운 좋은 거였습니다. 네. 좋은 죽음이라고요. 좀 아쉬운 죽음이기도 하고...쳇...'ㅠ'?


안도현


얼음 매미


매미가 벗어놓고간 허물 속으로, 눈이 내린다

이 누더기의 주인은 저 광할한 우주 속으로 날아갔는데

눈은 비좁은 구멍 속으로
자꾸자꾸 내린다. 그리하여 쌓인다

하늘은 몇 번이나 녹았다가 얼고,

(이 겨울이 지날 때쯤 나는 매미 허물을 가만히 벗겨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날아갈 줄도모르고, 발을 가슴께로 그러모은
얼음 매미 한 마리가 거기 웅크리고 있겠지







빗소리 듣는 동안


1970년대 편물점 단칸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가랑 연애 얘기하는 것철머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 척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이게 양푼 밥을 누나들이 같이 비볐네
그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 잡히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을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 같은 내 장딴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


도둑들

생각해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로 잽싸게 손을 밀어넣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내 손끝에 닿던 물큰하고 뜨끈한 그것,
그게 잠자던 참새의 팔딱이는 심장이었는지, 깃털 속에 접어둔 발가락이었는지, 아니면 깜빡이던 곤한 눈꺼풀이거나 잔득잔득한 눈곱 같은 것이었는지,
어쩔 줄 모르고 화들짝 내 손끝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던,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사다리 위에서 슬퍼져서 한 발짝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허공을 치며 소리 내어 엉엉 울지도 못하고, 내 이마 높이에 와 머물던 하늘 한귀퉁이에서 나 대신 울어주던 별들만 쳐다보았다
정말 별들이 참새같이 까맣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울던 밤이었따

네 몸속에 처음 손을 넣어보던 날도 그랬다
나는 오래 흐른 강물이 바닥에 닿는 순간 멈칫 하는 때를 생각했고
해가 달의 눈을 가려 지상의 모든 전깃불이 꺼지는 월식의 밤을 생각했지만,
세상 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만진
내 손끝은, 나는 너를 훔치는 도둑은 아닌가 싶었다
네가 뜨거워진 몸을 뒤척이며 별처럼 슬프게 우는 소리를 내던 그 밤이었다



3월에 내리는 눈


3월도 스무 닷새나 눈곱을 떼어냈는데
참말로 눈이 내리는 것입니다

도톰하게 입술 내밀고 있는 목련 꽃망울들한테
도대체 뜬금없이 달려들어 뭘 어쩌자는 것입니까?
꽃망울 속에 들어 있는 꽃들이
제 귓볼을 만지며 앗 뜨거워, 뜨거워하며
난감해하는 모양 보자는 것 아닙니까?

자글자글 햇빛이 끓는 봄의 냄비 뚜껑을
좀 열어보려다가
이거 신세 조지게 생겼습니다


칸의 분노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개드립입니다 올 캐릭터 망가짐, 스타트렉 원래 캐릭터 설정과 상충되는 드립 넘칠 예정. / 되도록 제가 본 버전 자막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이 모든 뻘짓은 흔히 매맞남이라 불리는 리부트 짐 커크에 비해 오리지널 짐 커크가 






이렇게 보이는 데서 연유하였다. 



대우주항해시대의 살아있는 레전설 짐 커크는 우주의 힘과 운과 능력과 인복의 절묘한 조화로 승승장구 하고 있었는데...! 


대략 그의 주변인들은 이러하였던. 



...닥터 마커스와 아들내미 캡처를 원래 훨씬 많이 하고 싶었지만. 아무튼 이 포스팅의 주인공은 이 분들이 아니라서 아쉽게도 탈락. 



이렇게 이 남자 저 남자 그 여자 여러 부하 생도들 잘 후리고 낚으며 제독까지 된 커크였으나...





이런 무인행성에 컨테이너 박스, 모래바람은 제대로 막아지는지 모를 곳에서 깡통음식으로 연명하면서도 모비딕과 리어왕을 읽는 당신은 누구? 라고 하면 저 손에 들린 띠(?) 이름을 친절히 보여주며 인증을 하셨는데...



매우 친절이 지나친 서비스샷이 길게 이어진다. 




더 칸. 바로 그 칸. 

근성으로 다 캡처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음. 저렇게 겹겹이 싸매고 그거 푸르는 걸 천천히 다 보여주는 건 어떤 친절? 게다가 저 헬멧 안에서 나오는 얼굴이 왜 저리 미노년? 

아무튼 상대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투더망을 각오하는 체콥. 옆의 함장님은 아직 감을 아니 잡으신 듯 하고. 



그래도 나름 십오년만의 손님인데, 이름을 불러주며 신사적으로 대하려는 데 얘가 자꾸 틱틱대. 그건 아마도 지은 죄가 있다는 걸 알긴 알기 때문이겠지? 


... 그렇다 칸은 커크와 얽힌 후 이 행성에 버려진 전적이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그것이 무려 십오년 전... 





그런데 십오년만에 찾아온 닝겐이란 것들은 하나는 왜 뭐 왜 우린 너한테 할 만큼 해줬어 틱틱대고 다른 하나는 아예 날 몰라? 야. 사람을 이런데다 버려두고 어떻게 한 번 언급조차 안할 수 있어? 칸의 붕노게이지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빡치는 건 그 커크가 바로




아 열 올라온다 훅훅 가뜩이나 모래밖에 없는 행성에서 열 받으면 안되는데 후...

그러나 자꾸 방문객놈들이 어그로를 끌고....... 




심지어 인간관계의 민감한 영역까지 커크 쉴드를 쳐주며 칸의 지성을 능요쿠하는데...



그래도 그는 칸이기에. 모든 면에서 우월한 칸 누니엔 싱이기에. 

마일드하게 손님 대접을 한 후 제임스 커크 v제독v의 행방을 묻는 예절바른 칸. 




한편



아 스팍이 나오면 힘들다. 너무 아름답고 숭고하셔서 개드립을 자제하게 된다... 

아무튼 엔터프라이즈 생도들의 훈련도 시찰할 겸, 생일을 맞은 커크. 노안(?)의 23세기적 치료법도 먹히지 않는 구식 눈이라 돋보기 안경을 착용하셨다. 어쩐 일로 가족들의 심신 건강을 챙기며 훈훈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음.



그러나 우주 저편에서는 그가 눈감아 버렸던 불화의 불길이 다시 점화되고 있었는데...


나름 칸을 막아보려는 그의 부관(?)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야! 너희 떳떳하게 살라고 이러는 거라고!

칸의 고집은 굽힐 줄 모른다. 


그리하여 결국 우주 한복판에서 마주친 두 사람. 




...헐...



역시나 역전의 용장 짐 커크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 자신을 조건으로 내걸고 함선과 크루들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다. 물론 칸은 그의 조건을 수락한다. 그러나 그간의 죄가 있는데 밥숟가락 하나도 없이 떨렁 몸만 온다는 걸 덥석 받기에는 자존심이 상하지. 그리하여 무너진 신뢰에 대한 사죄 표시로 선물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바로 스타플릿에서 마커스 박사가 비밀리에 진행하던 제네시스 프로젝트 되시겠다. 이것만 있으면 대략 거지같던 세티 알파 5 한 트럭이라도, 설령 그 세티 알파 5개 한 트럭이 지들끼리 충돌해 방사능을 마구 퍼뜨리더라도 창세기 하룻밤만에 클리어하기 퀘스트를 실행할 수 있다. 


대략 심각해진 함선 내.

물론 십오년 전 묵살한 칸의 요구를 이제와서 들어줄 이유는 없으므로 커크는 교섭구라스킬을 시전한다.  



어우 십오년 사이에 성질이 더 급해진 것 같아. 



저렇게 슬금슬금 발뺌해 놓고는 기어이 약점을 찾아내신다. 과연 캡틴보다도 레벨업한 제독 커크. 





이래 저래 우주 전투 끝. 서로의 행방을 놓쳤다 재교신하는 두 수장. 커크에게 또 통수를 맞은 후 칸의 피로도는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리고 칸은 그렇게 염원하던 혼수 제네시스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반대로 제네시스를 연구하던 연구기지에 갇히게 되는 커크. 

이 곳도 위험하지만 제네시스의 창세기 파워에 휘말렸다간 새 세상을 위해 얌전히 사망해줘야 한다는 걸 아는 커크는 긴장하고. 마지막 구라를 쳐보지만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입은 칸의 마음은 돌려 놓을 수 없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물론 짐 커크가 저기서 저렇게 갈 리 없으므로 어떻게든 탈출 성공. 전력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말머리성운 안으로 적을 유인하는 엔터프라이즈. 





그리고 무리한 전투 감행의 결과. 비극적인 희생. 




동족들을 모두 잃은 칸에게 남은 건 복수 뿐이다. 



네. 잠시 진지해지자면 바로 이 칸의 대사때문에 이 포스팅 시작한 거 맞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외계인과 함께 우주선을 타고 별 사이를 떠도는 이 우주 세계에서, 저렇게 고전적인 증오의 맹세를 들으니까 어찔해져서 말이죠. 삼백년 전 사람이라고 쳐도 너무나 고전적이죠. 저런 성격을 고수한다는 게 칸의 우월함인가 싶기도 함. 시간의 단절, 완전히 변한 세계에서도 와해되지 않는다는 건 일단 그 내구도가 엄청 견고하다는 증거니까. 리부트의 칸도 오리지널 칸도 결국 빌런이 될 수 밖에 없는 건 이 견고함때문인 듯. 



아무튼 다시 드립으로 넘어가서. 그런 칸이 마지막 분노의 숨결을 내뿜었으나. 

안타깝게도 커크에게는 수호반신이 있었으니... 





동작이 너무 절도있고 아름다워서 캡처질. 곧 희생합니다.




아.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난 스타트렉 팬이었다면 이 장면 보고 정신 못 차렸을 거야... 

인간적으로 저런 일을 겪은 스팍을 타임워프 시켜서 젊은 엔터프라이즈와 만나게 하다니. 하.하.하. 쌍제이. 하.하.하.


스팍의 희생 덕분에 엔터프라이즈는 무사히 워프에 성공하고. 칸의 분노의 숨결은 우주에서 허무하고 아름답게 산화한다. 결국 15년 사막에서 연마해온 증오는 '창세'에 의해 소멸됨. 



이 포스팅의 드립도 별폭발과 함께 날아가 버림. 아. 우주는 아름답다. 어떤 막드한 사연도 광대한 우주 안에 한 점박이 별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우주는 참 광대하고 아름다워여. 


end



커크는 결국 마커스와의 결실. 아들에게 인정 받고 서로 끌어 안는 데 성공. 과연 짐 커크야. 



마지막으로 스팍이 그에게 생일선물로 들려주려 했던 구절을 읊조리며 지구를 바라보면서 영화는 끝... 훌륭한 기승전스팍. 이후 작품은 무려 스팍을 찾아서 라니 아마 기승전결이 다 스팍스팍스팍스팍이지 않을까! 어쨌든 그것도 곧 감상할 듯. 


그리고 아마 TOS를 다 보고 나면 난 이 포스팅을 향해 하이킥을 하게 되게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이상하다?...전작이 더 산만하다는 얘길 언뜻 들었었는데... 난 닼니스보다 이쪽이 더 깔끔한 것 같아.




- 아마도 이야기 소재가 좀 더 내 취향이어서인 것 같은데. 닼니스는 내겐 너무 로맨스여서... 드라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궁예질인데 왠지 이쪽이 좀 더 스타트렉틱한 것도 같음. 그냥 왠지 느낌이 그래. 



- 캡틴 네로가 몰고 온 우주선은 모태 '이쁘게 망가지기 위한 디자인'. 무슨 채굴용 함선이 저렇게 이쁘냐. 



- 왜 초즌원들은 하나같이 속도광입니까? 



뭐야. 개입 안한다면서 강 스포는 구 스팍이 다 치고 있잖아. 아 이래서 스포일러를 조심해야 하는 거구나 


딴건 그렇다치고 미래에 개발되는 기술을 그 기술개발자한테 미리 보여줘 버려도 괜찮은 겁니까? 아직 난 떠올리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미래의 내가 만들었다면서 들이대면 뭐야. 김새잖아. 개발할 맛 나겠냐고. 


하긴 그걸 기반으로 좀 더 멋있는 거 만들어버리면 그만이긴 하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그다지 나쁜 건 아닐지도. 어차피 워프 되는 거 여러 차원의 나끼리 대동단결해서 릴레이연구라든가... 릴레이소설...와 합평이라도 했다간 멘붕오겠는데



- 닼니스에서 스팍이 '친구니까?' 라고 할 때 왜 저렇게 커크 표정이 오묘해지는가, 왜 대답을 안하는가 고민했는데 대강 아...이래서 이랬었군요. 어느 외계어로는 친구가 연인인가 보다 



- 술루 워프 실수하는 거 졸귀. 그런데 주종목이 펜싱이라면서... 칼 꺼내들자마자 공중재비를 하는 건... 닌자식 펜싱이냐며? 



- 아무튼 악역은 히로인에 대한 집착을 거두는 게 좋읍니다. 



- 우후라 참 좋은 캐릭터인데 ... 랄까 스팍과 우후라의 관계 설정은 꽤 마음에 듬. 그런데 정말 순수하게 캐미가 커크스팍에 밀림. 닼니스 마지막 장면에서 스팍커크 클로즈업 씬 뒤에 자그마하게 끼워넣은 건 레알 게이로맨스 소리 안 들으려고 한 것 같음.;; 



- 22nn년 미래로 가봤자 재난이 터지는 순간엔 평화로운 일상 속 민간인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가 꺄아악 도망치는 씬이 꼭 들어가는군. 



- 닼니스 보는 내내 커크 저 대책없는 인간 어떻게 저 나이까지 안 죽고 살았나 했더니 저런 과정을 통한 것이었다... 엔터프라이즈 전 함대원들 애도요 함장 목숨 연명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우주 최후의 미개척지 이건 엔터프라이즈호의 항해일기다 임무는 낯선 신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생물체와 문명을 발견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밟아보는 것이다 / 이 마지막 멘트(구 스팍)이 특히 개발렸는데. 레알 대항해시대의 로망이죠. 거대한 미지를 두고 인간이 꿀 수 있는 가장 로맨틱한 꿈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커크 캐스팅을 참 잘한 듯. 저 인간 미소가 되게 저 멘트랑 잘 어울림. 

스타트랙다크니스 뻘감상 




난 정말 이럴 줄 알았지.jpg


손 낙서해서 보정하느라 막 확확 날아감. 

글씨 다시 쳐넣을까 하다가 관둠. 뻘함이 살아나는 건 역시 내 악필. 

  "자연은 자기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죄 없는 사람이 매달려 죽는다고 흥분한 교수목은 지금까지 단 한 그루도 없었다. 전장의 풀도 쓰러진 자를 위해 애도하지 않는다."


  이걸 누가 썼을까? 당연히 나다. 소설 [철저한 중도]에서 쓴 글이다. 차모니아에서 나 말고 누가 이렇듯 심오한 표현을 하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연이 별 마찰 없이 움직인다고 해도 그 속에 자비로운 영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차모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의 행동조차도 철두철미하리만치 이기적이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뭔가? 무진장 나이 들었다고 해서 더 고귀한 형태의 지식과 도덕을 소유해야 할까? 어쩌다가 차모니아에서는 치매를 지혜와 끈질기게 혼동하는 일이 벌어졌나? 우리의 광신적인 연금생활자 숭배에는 도대체 어떤 장점이 있는가? '500세 이상은 면세. 200세 이하는 관직 금지. 1000세부터는 모든 박물관 무료 입장. 350세부터 의치 무료.' 각종 특권과 세금 혜택은 청소년들이 누리는 게 후렀니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런 혜택으로 아직 뭔가 할 수 있을 때 말이다. 미래를 위해 뭔가 배우도록 박물관을 찾아야 할 주체는 우리 청소년들이다. 늙어 덜덜거리는 노인들이 대가의 작품 앞에서 청소년들의 시야를 가려서 좋을 게 뭔가? 늙은 개는 더 이상 새로운 재주를 배우지 않는 법이다. 


  내가 별 감탄이들의 도덕적인 성숙에 관해 특이한 견해를 가졌다고 해서 놀랄 독자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우크질리어드 년 동안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떠오르는 생각이라고는 자기들이 양송이버섯을 즐기기 위해 어린이 둘을 멸망의 길로 보내는 것뿐이었다. 나이와 경험은 지적 능력이나 도덕적 성숙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걸까? 명청하게 태어나면 천 살을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나? 왜 군대 지도층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보병들은 언제나 꽃처럼 젊은가? 우리의 희망인 젊은이들을 불구덩이로 보내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여러분은 내 정치적 견해를 순진하다고 간주할 수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충돌 상황이 벌어지면 연금생활자들을 전장으로 내보내는 게 훨씬 옳지 않을까? 이런 종류의 전투는 금방 끝날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군인들은 양쪽 군대가 서로 부딪치기 전, 전장으로 가는 길에서 잠이 들거나 자연사할 테니까. 거기서 쏘는 거라곤 오줌줄기뿐이겠지. 자, 이제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엔젤과 크레테 -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의 동화 /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 ㅋ 

(아이언맨3 내용 유출 있습니다? 아이언맨에 '스포일러'라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스포일러의 개념이 상당히 방대하고 세밀해져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더군요)



천재 공돌이와 v미국v군수산업 자본 결합 최고의 돈지랄 크리스마스 쇼 - ver 토니 스타크 

또는 공돌이가 한을 품으면 크리스마스 전야에 대통령이 기름가마니 위에 매달린다 -ver 이름 기억 안나는 이번 편 악역(브래드피트 스몰 버전 같다) 


대략 이번 아이언맨3의 얼개. 주인공과 악역 버전. 


아이언맨이 지극히 미국의, 미국적인, 미국을 위한 히어로라는 거야 괜히 말해봤자 입 아픈  거고. 이번 아이언맨 영화 시리즈의 정체성은 '자본' 아닌가 싶다. 토니 스타크의 적은 배트남전 때 돌아버린 전쟁광도, 신기술에 영혼을 판 매드사이언티스트도, 메시아니즘에 쩔은 좀비들도 아니다. 자본가, 그리고 자본가. 돈과 돈의 싸움. 악당의 욕망과 화려한 전투씬은 자본의 부채질로 한없이 부풀어오른다. 그리고 그 비대한 이미지 남발 안에서 메시지는 방향을 상실한다. 이 방향 상실이 곧 실패라는 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메시지의 가벼움이야말로 이 영화가 의도대로 만들어졌다는 증거다.  이 영화의 대립 구도는 오로지 돈 대 돈이니까. 1편에서는 잡스의 분열된 인격 1, 2 가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가 우리가 친애하는 잡스 쪽이 쓰레기 잡스를 꺾고 승리한다. 3편에서는 광적으로 응용된 기술력 둘이 폐선 위에서 정면충돌하는데, 중요한 건 그 발상이 아니라 그걸 그만한 규모로 만들어낼만큼 집약된 돈이다. 멀끔한 사업가 페이스 악역에게 토니 스타크의 덕질이 대항하는 형태. 

그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끌어져 왔고 어떻게 쓰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척없는 전투력의 워머신을 만들어서 한 국가에게만 제공하는 것이나, 부상 퇴역 군인들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주사해서 생체병기로 만드는 것이나. 쌤쌤. 아. 후자 쪽이 악역으로 묘사되긴 했다. 후자 쪽 기술이 우리에게 아직 더 낯설기 때문이다. 아직은 생체병기보다는 온갖 기술력이 집결된 깡통로봇을 입고 구식으로 싸우는 남자 쪽이 더 우리 편 같으니 말이다. 

(대체 그 기술력으로 왜 더 효과적인 전투 방법을 고안하지 않는지 모르겠음) 


2는 안 본 상태(...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에서 불완전한 평이긴 하지만 영화편 시작-종결인 1,3 보고 하는 얘기니까 그리 빗맞추는 건 아닐 거다.(라는 전제 하에 마저 떠들기로 한다.)


그러므로 아이언맨은 극히 '지금,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히어로'다. 아이언맨은 국적을 초월하면서 국가를 대표한다. '비서구권' 온갖 나라가 짬뽕된 악역들은 항상 미국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어디까지나 민간인 사업가, 아이언맨으로서 자연스럽게 그 해결자 역을 떠맡는다. 온갖 한심한 짓은 미국 '정부'가 다 한다. 충직한 군인 로스 대령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거의 아무 갈등 없이 토니 스타크의 보조 노릇을 한다. 즉, 국가가 영웅의 종자가 된 것이다. 물론 시대를 불문하고 영웅은 사회와 분리되어 있기 마련이었지만, 미친놈, 사회부적응자, 불순분자, 손가락질의 대상(야유와 숭배 둘 다 포함)을 넘어서서 사회를 종자 삼는 건 또 의미가 다르지 않은가. 



이 영화에는 '아이언맨' 수트 이외의 아무 이미지도 없다. 마치 토니 스타크가 텅 빈 아이언맨 수트들을 떼거지로 조종하는 것 처럼. 서양인들의 두려움과 화질 나쁜 테러 영상, 구질구질한 소품과 얼간이 배우를 조합해서 테러리스트 '만다린' 을 만들어 낸 것 처럼. 메시지를 짜집기해서 그럴 듯 하게 만들어 낸 것 뿐이다. 우리가 영화를 즐기기 편하도록, 아이언맨 수트들의 액션이 멋있어 보이도록. 토니 스타크의 성장(...?)과 사랑이 감동적이도록. 욕 하지 않으면서 극장에서 엉덩이 뗄 수 있도록. 그런 악역을 만드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선 꽤 재미있었다고 생각함. 나머지는 진지하게 생각하면 지는 거고요.




ps> 아 나도 페퍼 같은 애인 있음 좋겠다 ㅠㅠㅠ 유능하고 충실하고 나만 보고 이성적이고 인내심 강하고 게다가 졸라 짱 센 애인 ㅠㅠㅠ 



ps2> 어느 히어로물에서나 악역은 마지막에 흥분을 해서 일을 다 망치는 거 같음. 대마왕들이여 제발 막판 전투에서 잘 안 나가던 시절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지 말자! 

  뒤뚱뒤뚱 달리던 킬리가 앞서가던 필리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제 삼촌의 단검집을 들고 이리저리 휘둘러대던 필리는 동생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둘은 그렇게 온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식탁 다리에 부딪히고야 간신히 멈췄다. 


- 필리! 


  아이들의 머리 위로 묵직한 호령이 떨어졌다. 필리가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두 시간 전 디스가 땋아준 금발은 먼지투성이였다. 제멋대로 풀렸다 엉킨 꼴이, 길이가 충분치 않다고 타이르는 어머니를 그리 졸라댔던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킬리의 머리꼴도 제 형 못지 않았다. 식탁 다리에 머리를 박은 채로 까르륵 웃어대는 아이의 뒤통수에는 반쯤 끊어진 끈이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어대는 걸까.” 드왈린이 중얼거리자 발린이 대꾸했다. “내가 보건대, 킬리는 아직 우는 법을 모르는 게야.”


  아니면 웃는 법 밖에 모르든가. 두 드워프가 맞장구를 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삼촌은 미간을 짚은 채 식탁 아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족이 순식간에 부랑자 신세로 전락한 후에도 한치 꺾이지 않은 드워프 왕자의 시선이었다. 필리가 킬리의 옆구리를 툭, 찼고 킬리가 두리번 거리다 삼촌을 쳐다보고는 똑바로 일어났다. 두 아이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두린은 그리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경거망동이 무슨 뜻인지부터 설명해 줘야 합니다. 소린.”


  발린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물론 그 전에 또 다른 경거망동을 하러 갈 테지만.”


  부러 익살을 부려봤지만 소린의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지간한 전사들도 긴장하게 하는 그 기세가 조카들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아이들 상대로 지나치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발린 역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두 소용돌이가 깬 후부터 온종일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안이었다. 찰나나마 고요한 게 어딘가. 맞은 편에 앉아있던 드왈린은 대놓고 골머리 앓는 시늉을 해 보였다. 


  ‘저 애들을 멈추려면 소린이 하루 종일 노려 보고 있어도 모자라오. 난 가끔 소린에게 모든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노려보고만 있어 달라고 청하고 싶어진다고.’

  언젠가 아이들이 동네 토끼장을 다 부숴놓은 날, 드왈린이 이를 갈며 한 말이었다. ‘그야 그렇긴 하지.’ 발린은 아우의 의견에 건성으로 동의했었다. 사실 소린은 그러고 싶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는 구태여 하지 않았다.


  - 그러니 어린 왕자들이 어서 제 삼촌 낯이 좀 풀어질 만큼 자라주면 좋을 텐데. 


  디스의 아이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깜짝 놀랄 만큼 무럭무럭 자라났다. 건강한 드워프 아이들이 다 그렇듯, 아니 그보다는 좀 더 개구지게. 에레보르에서 쫓겨난 후 처음으로 태어난 왕가의 후손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 외의 후손이 더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편이 죽어버린 후 디스는 갈수록 몸이 약해지고 있었다. 소린은 제 가정을 꾸리기에는 너무 짊어진 게 많았다. 동생을 지켜야 했고, 조카들을 지켜야 했고, 저와 사정이 비슷한 백성들을 지켜야 했고…….


  드왈린의 말마따나 두 아이들을 멈출 수 있는 건 소린 뿐이었다. 소린의 꾸중은 그리 긴 편은 아니었다. 그는 지그시 아이들을 내려다보다가 한 두 마디 이르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삼촌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저대로 둔다면 아이들은 소린이 돌아설 때까지 저렇게 버틸 것이다. 

  항상 그랬다. 발린이 온갖 말로 구워삶고 드왈린이 너른 팔 안에 가둬도 기어이 빠져나가는 다람쥐 같은 녀석들이 소린이 꾸중할 때만은 용케 조용했다. 그러고 보면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엉뚱한 데서 숙질간의 닮은 점을 찾아내는 발린이었다.

   킬리가 언제나 웃기만 한다면, 소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죄다 ‘지켜야 한다는 다짐’과 맞바꾼다. 정이 크면 클수록 의무감도 버거워진다. 버거움에 잠을 못 이루면서도 결코 짐을 내려놓으려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그들이 원래 받아야 하는 몫 전부를 합친 만큼.


  “생각해 볼 일입니다. 소린.”


  반년 전, 청색산맥 근처에 오크가 어른거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행히 곧 엉뚱한 인간 도적들의 흔적임이 밝혀졌지만 청색산맥은 아주 오랫동안 술렁거렸다. 오인이 달여준 특제 수면제를 마시고도 소린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드왈린이 대신 번을 돌겠다고 억지로 붙들어 둔 날에나 간신히 눈을 붙였을까. 아무리 잠이 얕은 소린이라도 무리였는지 낯빛이 초췌해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어둑한 촛불 아래서 그 얼굴을 마주보고 있자니 시체 꼴이 따로 없었다. 발린은 들여다보던 지도는 밀쳐두고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죽은 이들의 몫까지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겁니까. 죽은 이들 대신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겁니까.”


  소린은 피식 웃었던가. 거의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도 웃음이라 할 수 있다면. 


  “그걸 구분한다고 해서 내가 그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달라지나?” 

  “아니요. 그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건……"

  “그 아이들이 나 외의 다른 누구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아.”

  “당신이 지키지 못한 게 아니에요. 아이들도 지켜낼 거고요.”


  발린은 여러 번 표현을 바꾸어 소린을 설득했다. 소린은 식탁 구석으로 밀려난 지도를 끌어 왔다. 그것으로 답은 끝난 것이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자, 어머니에게 가서 다시 머리 정돈이나 해라. 그리고 이번엔 제발 멀쩡한 꼴로 방앗간에 다녀오는 거다.”


  드왈린이 아이들의 어깨를 툭 떠밀었다. 아이들이 식탁 쪽으로 넙죽 절을 하고 뛰어나갔다. 팔랑팔랑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빛났다. 열 발자국도 지나지 않아 다시 까르륵!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저대로 또 개울에나 뛰어들테지. 드왈린은 바깥을 내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발린이 소린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그제야 미간에서 손을 뗀 소린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그야 당연히 제 어머니 아닙니까?”


  드왈린이 뭔가 떠오른 듯 씩 웃었다. 


  “프레린도 빼놓을 수 없지요.”

  “아, 프레린. 그렇군.”

  “프레린이 처음 조랑말을 받은 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 중 하나였죠. 이제 말 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날은 정말 전사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지.”


  세 드워프는 ‘프레린의 전설’을 한참 들쑤셨다. 에레보르의 황금에도 밀리지 않을, 조상님들은 상상도 못해봤을 그 사건 사고들. 드워프들에게서만 전해오는 수많은 전설 중에서도, 그들 셋만이 알고 있는 그 빛나는 이야기들. 


  “그러고 보면 프레린과 가장 잘 어울려준 건 소린이었는데.”

  “아우를 돌보는 건 형의 당여한 의무야.”

  “아니, 소린은 분명 프레린에게 물렀어요.”

  “무르기만 한 게 아냐. 분명히 즐겼다고. 프레린이 도끼로 내 머리카락 반을 날려 버렸을 때 어찌나 피식거리던지. 소린. 아니라고 할 겁니까?”

  “……그건 자네가 하루 종일 비통한 얼굴을 하고 다녀서지!”


  소린은 일일이 맞받아쳤지만 몰리기 시작한 형국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발린과 드왈린 형제는 두린 왕가 남매들의 일화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만약 디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 드왈린의 입을 땜해버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을 것이다. 둘의 입을 덥석 틀어막고 이렇게 외쳤겠지. ‘내 아이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다 해줄 참이야?!’


  “마치 자네들은 그런 일 전혀 없다는 듯 말하는군.”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소린이 최후의 반항을 시도했다.


  “우린 안 그랬습니다.”


  눈까지 동시에 꿈벅이며 받아치는 형제였다. 


  “그럴리가?”

  “드왈린은 어렸을 때부터 정말 재미없는 녀석이었죠. 농담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러는 형님이야말로 쓸데없이 책이나 붙들고 있으면서 내 상대는 해주지도 않았잖소. 힘만 세다고 은근히 무시했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소?”

  ”뭐? 너한테 그 정도 눈치가 있었단 말이냐?”

  ”흥, 발린 건방진 거 모르던 드워프가 있었을까봐? 아버님이 지금 형님을 본다면 정말 놀랄게요. 그 똥똥하고 짤막한 발린이 제법 참모 노릇까지 하니 말이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늙은 형제의 설전이 벌어졌다. 형님은 턱을 한껏 젖히고, 아우는 부러 어깨를 구부정하니 구부린 채였다. 아우는 팔을 걷어붙였고 형님은 고개를 모로 꼬며 비웃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식탁을 밟고 올라서든가 아니면 아예 식탁을 걷어차버릴지도 모를 상황이 되었을 때 –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듣고 형제는 고개를 돌렸다. 소린은 입을 가리고 있었으나 웃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혈기가 왕성한 걸 보니 보기 좋군. 드워프들의 돈독한 형제애는 역시 다른 종족들과는 비할 바가 못돼.”

  “아니, 소린. 이건 어디까지나 드왈린이…….”

  “그래. 자네들을 보니 조카들에 대해서도 한결 마음이 놓여.”


  소린은 가뿐하게 일어나더니 집밖으로 향했다. ‘그럼 아침도 다 먹었으니 이만 나가 볼까.’ 확실히, 근래 어느 때보다도 가벼워 뵈는 발걸음이었다. 발린은 개울가로 내려가는 소린의 뒷모습을 보다 그만 푹 웃어 버렸다. 그래. 어쨌든 지금 소린의 아침 첫번째 용무는 어린 조카들을 개울가나 바위 틈에서 건져내는 것이니까. 아이들은 지켜내야 했다. 아이들은 정말 소중했다. 과거를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그들 전부보다 더 귀했다. 

  끝내 항복하지 않은 드왈린이 집 밖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아무튼, 우리는 안 그랬단 말입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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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제목이 안 정해진다 했더니. 또 엄청 이것저것 잡탕으로 섞였어. 구성은 어디 갔습니까? 아무리 팬픽이라고 해도 이렇게 자동기술 해도 되는 겁니까? 생각이란 걸 하고 써 제발. 


그래서 이 글의 의도는 뭔가. 개그인가? 시리어스인가? 개그하다 시리어스하다 개그해...네. 오랫동안 글을 안 쓰고 놀려두면 이런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니 그냥 내가 존못이라서 으끄흑 흐끄윽.


시작은 망충한 형제 사고질을 보며, 자기들 어린 시절을 상기하는 어른들이었음. 그 상태에서 한 달 가까이 방치하다 다시 잡으니 그 사이 추가된 생각들이 붙으면서... 음. 아니 전에도 내용이 없었지만 이건 정말 썰같네. 썰이야. 썰이군. 원래는 이것보다는 킬리랑 필리가 더 나왔어야 할 것 같은데... 애들로 깨발랄짓 하려던 걸 어른들로 하고 있다? 역시 나는 애들을 못 쓰는 것인가?


뭐 어쨌든 팬픽답게 써진 팬픽... 아니 썰이니까. 고칠 곳이 여기 저기 보이지만 일단 만족. 제목은 여전히 미정.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호빗 팬픽 2호? 


애정을 더 풀어보자면: 드워프의 의리 좋아합니다. 형제애 좋아합니다. 신념 좋아합니다. 타종족에게 매우 배타적이고 옹졸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뢰라는 말을 묵직하게 쓰는 종족이 또 없는 것 같아요. 피를 나누고 시간을 나눈 동족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은 정말 대단하고./// 피터 잭슨이 드워프 열세명 넣느라 죽을 고생 했으면서도 기어이 만들어낸 이유를 알겠달까. 말마따나 비극적이고도 유쾌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그래서 보푸르가 좋다고 보푸르가 언젠가 보푸르도 쓰고 싶은데 나만의 설정 돌아가고 있는데 그건 대체 언제 쓸까... 아니 왜 얘기가 기승전보푸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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