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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노객부원>

싱♪ 2016. 3. 19. 16:59


노객부원(老客婦怨)-허균(許筠)

늙은 떠돌이 아낙의 원망-허균(許筠)

東州城西寒日曛(동주성서한일훈) : 동주 성 서쪽, 싸늘한 해도 저무는데
寶蓋山高帶夕雲(보개산고대석운) : 우뚝한 보개산에 저녁 구름 걸려있구나
皤然老嫗衣藍縷(파연로구의남루) : 흰 머리의 늙은 할미가 다 떨어진 옷을 입고서
迎客出屋開柴戶(영객출옥개시호) : 사립문 열고 나와 나그네를 맞아주네.
自言京城老客婦(자언경성로객부) : 스스로 말하길, 서울에서 여지껏 살다가
流離破産依客土(류리파산의객토) : 가족들 다 흩어지고 타향땅에 묻혀 산다오.
頃者倭奴陷洛陽(경자왜노함락양) : 지난번 왜놈들이 한양성을 무너뜨릴 때
提携一子隨姑郞(제휴일자수고랑) : 외아들 손에 잡고 시어머니와 남편 따라
重跡百舍竄窮谷(중적백사찬궁곡) : 먼 길 오며 부르튼 발로 깊은 골짜기에 숨어
夜出求食晝潛伏(야출구식주잠복) : 밤에 나와 밥을 빌고 낮에는 엎드려 있었소.
姑老得病郞負行(고로득병랑부행) : 시모 늙어 병을 얻어 낭군이 업어서 걷고
蹠穿崢山不遑息(척천쟁산불황식) : 험한 산에 접어들면 쉴 겨를이 없었지요
是時天雨夜深黑(시시천우야심흑) : 하늘에선 비까지 내리고 밤은 더욱 캄캄하니
坑滑足酸顚不測(갱활족산전불측) : 웅덩이는 미끄럽고 다리지쳐 발 옮길 곳도 없었소.
揮刀二賊從何來(휘도이적종하래) : 칼 휘두르는 두 왜적은 어디서 왔는지
闖暗躡蹤如相猜(틈암섭종여상시) : 어둠 속에 머리 내밀며 서로 다투어 뒤를 밟아
怒刃劈脰脰四裂(노인벽두두사렬) : 성난 칼날 목을 갈라서 네 조각을 내버리니
子母倂命流冤血(자모병명류원혈) : 어미와 아들 함께 죽어 원통한 피를 흘렸다오.
我挈幼兒伏林藪(아설유아복림수) : 나는 어린 아들을 이끌고서 숲속에 숨었는데
兒啼賊覺驅將去(아제적각구장거) : 아이 울음에 들켜 잡혀가고 말았으니
只餘一身脫虎口(지여일신탈호구) : 내 한 몸 겨우 남아 호랑이 아가리 벗어났지만
蒼黃不敢高聲語(창황불감고성어) : 허둥지둥 경황없어 소리 높여 말도 할 수 없었소.
明朝來視二骸遺(명조래시이해유) : 날이 밝아서야 가보니 두 시체 남아 있는데
不辨姑屍與郞屍(불변고시여랑시) : 시모의 시신인지 남편의 시신인지 가려낼 수 없었다오
烏鳶啄腸狗嚙骼(오연탁장구교격) : 까마귀와 솔개가 창자 쪼고, 개들이 뼈를 씹는데
虆梩欲掩憑伊誰(라리욕엄빙이수) : 들것과 가래로 덮으려고 했지만 부탁할 사람 누가 있을까
辛勤掘得三尺窞(신근굴득삼척담) : 애 써서 간신히 석 자 깊이 구덩이를 파고
手拾殘骨閉幽坎(수습잔골폐유감) : 남은 뼈 손수 거두어 봉토하고 나니
煢煢隻影終何歸(경경척영종하귀) : 의지 할 곳 없는 외그림자 끝내는 어디로 돌아갈까
隣婦哀憐許相依(린부애련허상의) : 이웃 아낙 가여워하여 서로 의지하자 하더군요
遂從店裏躬井臼(수종점리궁정구) : 주막에 얹혀 살며 물 긷기와 절구질
餽以殘飯衣弊衣(궤이잔반의폐의) : 남은 밥찌질 먹고 다 떨어진 옷 입었다오.
勞筋煎慮十二年(로근전려십이년) : 고단한 생활로 속태우기 십이년
面黧髮禿腰脚頑(면려발독요각완) : 얼굴은 검어지고, 머리는 듬성, 허리도 다리도 뻐근한데
近者京城消息傳(근자경성소식전) : 근자에 서울 소식 드문드문 들으니
孤兒賊中幸生還(고아적중행생환) : 부모 잃었던 아들놈이 적중에서 요행히 살아왔다더군요.
投入宮家作蒼頭(투입궁가작창두) : 대궐에 투숙하여 창두가 되었다 하오.
餘帛在笥囷倉稠(여백재사균창조) : 옷장에는 비단이 남아돌고 창고에는 곡식 가득하니
娶婦作舍生計足(취부작사생계족) : 장가들고 집 마련하여 생계가 풍족하다 하나
不念阿孃客他州(불념아양객타주) : 타향에서 떠돌이하는 제 어미쯤은 잊은 게지요.
生兒成長不得力(생아성장불득력) : 아들을 낳아 성장했으나 그 덕을 보지는 못하오.
念之中宵涕橫臆(념지중소체횡억) : 한밤중에도 생각할수록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오.
我形已瘁兒已壯(아형이췌아이장) : 내 꼴은 벌써 시들었고 아들은 이미 장년이 되었으니
縱使相逢詎相識(종사상봉거상식) : 비록 만나더라도 알아볼 리 있을까.
老身溝壑不足言(로신구학불족언) : 늙은 내 몸 구렁에 버려지는 건 더 말할 나위 없거니
安得汝酒澆父墳(안득여주요부분) : 어찌하면 네 술이라도 얻어 아비 묘에 부어볼 수 있을까.
嗚呼何代無亂離(오호하대무란리) : 아 슬프구나, 어느 시대인들 난리야 없었으랴만,
未若妾身之抱冤(미약첩신지포원) : 이 못난 여편네처럼 원통하기는 처음일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