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mming/BOOKS

안도현시

싱♪ 2013. 6. 29. 06:12

안도현


얼음 매미


매미가 벗어놓고간 허물 속으로, 눈이 내린다

이 누더기의 주인은 저 광할한 우주 속으로 날아갔는데

눈은 비좁은 구멍 속으로
자꾸자꾸 내린다. 그리하여 쌓인다

하늘은 몇 번이나 녹았다가 얼고,

(이 겨울이 지날 때쯤 나는 매미 허물을 가만히 벗겨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날아갈 줄도모르고, 발을 가슴께로 그러모은
얼음 매미 한 마리가 거기 웅크리고 있겠지







빗소리 듣는 동안


1970년대 편물점 단칸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가랑 연애 얘기하는 것철머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 척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이게 양푼 밥을 누나들이 같이 비볐네
그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 잡히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을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 같은 내 장딴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


도둑들

생각해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로 잽싸게 손을 밀어넣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내 손끝에 닿던 물큰하고 뜨끈한 그것,
그게 잠자던 참새의 팔딱이는 심장이었는지, 깃털 속에 접어둔 발가락이었는지, 아니면 깜빡이던 곤한 눈꺼풀이거나 잔득잔득한 눈곱 같은 것이었는지,
어쩔 줄 모르고 화들짝 내 손끝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던,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사다리 위에서 슬퍼져서 한 발짝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허공을 치며 소리 내어 엉엉 울지도 못하고, 내 이마 높이에 와 머물던 하늘 한귀퉁이에서 나 대신 울어주던 별들만 쳐다보았다
정말 별들이 참새같이 까맣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울던 밤이었따

네 몸속에 처음 손을 넣어보던 날도 그랬다
나는 오래 흐른 강물이 바닥에 닿는 순간 멈칫 하는 때를 생각했고
해가 달의 눈을 가려 지상의 모든 전깃불이 꺼지는 월식의 밤을 생각했지만,
세상 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만진
내 손끝은, 나는 너를 훔치는 도둑은 아닌가 싶었다
네가 뜨거워진 몸을 뒤척이며 별처럼 슬프게 우는 소리를 내던 그 밤이었다



3월에 내리는 눈


3월도 스무 닷새나 눈곱을 떼어냈는데
참말로 눈이 내리는 것입니다

도톰하게 입술 내밀고 있는 목련 꽃망울들한테
도대체 뜬금없이 달려들어 뭘 어쩌자는 것입니까?
꽃망울 속에 들어 있는 꽃들이
제 귓볼을 만지며 앗 뜨거워, 뜨거워하며
난감해하는 모양 보자는 것 아닙니까?

자글자글 햇빛이 끓는 봄의 냄비 뚜껑을
좀 열어보려다가
이거 신세 조지게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