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ing

괜찮은 시작

싱♪ 2012. 1. 1. 21:56

어제 새해에 하고 싶다고 적어놓은 일을 모두 클리어했다. 잠, 목욕, 알바 그만두기. 
  알바는 당장 그만두지는 못하고, 사장님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1월까지는 풀로 하게 될 것 같다. 나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 큰 불만은 없...다. 돈이 필요하긴 하니까. 으으 돈... 돈...ㅇ<-< 뭔가의 밑천으로 투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순전히 '소비되는' 돈들. 

  지금 내 상황에서 반년간 대여점 알바. 굉장히 미묘한 선택이었다. 일단 돈이 필요해. 엄마에게 용돈 받는 것도 너무 미안해. 뭔가 하긴 해야겠어. 그런데 멀리 출근 나가거나 오래 서 있는 아르바이트, 평일 내내 하는 아르바이트는 지금 몸 상태로는 무리야... 그래. 지금 내 상태에 맞는 조건의 아르바이트처였던 건 분명 맞아.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유통시스템에 대해 세상에서 지가 제일 걱정한다는 투로 열변을 토하다가 주말에는 바로 내가 그 문제의 장소에서 일 한다고 생각하면,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까지야 아니라 해도 좀 미묘한 기분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것도 이 나이에 시급 삼천원 받으면서. 남들은 회사 다니며 실적 쌓고 자리 잡을 때에 난 편의점 알바보다 더 안 쳐주는 일을 하고 있다니. 이건 그냥 잉여력만 기르는 거 아닌가? 난 지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또 잉여질을 하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걸까? 남들은 되든 안되든 부딪히고 자기 격 높이려고 발버둥치는데 난 실실 웃으며 네 전 한시간 삼천원 짜리입니다 삼천원 짜리로 살게요 - 하고 타협하는 꼴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게다가 아직도 글 한줄 마음껏 뽑아내지 못하는 새끼글쟁이로서 책들이 그렇게 쌓이고 대여되고 돌아오는 걸 보고 있으니까 되게 착잡하더라고. 만화는 좋았어. 지금껏 돈이 없다는 핑계로 애써 관심 끊고 있었는데 이건 식량 없다고 밥 굶는 거나 마찬가지 짓거리더라. 일하는 틈틈이 훔쳐본 거지만 어찌나 좋은 작품이 많은지. 예전 걸작들을 다시 훑어보고 새삼스럽게 반하기도 하고 최근 나오는 작품들 중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서 흥분하기도 하고.
  문제는 소설. 음. 그러니까 장르소설류였는데... 먼 발치에서 뭐 저런 것도 다 있지 하고 혀 차며 보던 바로 그 이고깽대여점용판타지들을 내가 직접 싸고 대여하고 추천하고 반납받고 제자리에 꽂고 자리를 옮기고.... 제목이나 카피만 봐도 한숨이 푹 나오는 책에 붙어 있는 작가 한마디를 보면, 이걸 내가 비웃을 처지가 되나 싶어 미안해지고....... 그래 이 사람에게 이 글은 쥐어짜낸 노력의 결실인데... 이 사람은 이걸 쓰면서 어떤 작품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던 것들이 있을 텐데.... 하지만 카피가 정말 눈뜨고 못봐줄 수준인 건 사실이고. 아 왜 이 많은 글러들이 이따위 시스템에서 쳇바퀴 돌리듯 글을 써야 하나... 그리고 난 왜 거기에도 못 끼나. 물론 내가 쓰고 싶은 게 이런 스타일 글은 아니지만... 
 
  써놓고보니 알바하면서 뭐 저렇게 생각을 복잡하게 하냐 싶네. 아무튼 주말 양일 20시간 알바는 내 허리에는 과히 좋지 않았고 지갑 두께 유지에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거기 붙어 앉아 있었던 게 영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어. 동네 단위나마 사람들이 책(만화 소설 다 포함)을 고르는 걸 직접 봤으니까. 지금까지 '나는 여기 속해있다'고 떠들기만 했을 뿐 (책 살)돈 없다고, (어디에 글을 내보기엔) 무능하다고 쳐다도 안 보려 했었다는 걸. 고작 대여점 알바하고 깨달을 정도로 난 현실도피하고 있었던 거다. 이 쩔어주는 도피 덕분에 일반인(에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선 꽤 덕처럼 보이지만 정작 뚜껑을 까보면 본 만화가 없고 읽은 소설이 없고... '나 만화 좋아해. 그런데 좋아하는 작품은 없어.' 라니.... 어. 이건 이상하다기보다 그냥 평범한 휴덕의 상태인가?


지금 생각해보니 굳이 만화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 이 모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 글 쓰는 거 좋아해. 근데 써놓은 글은 없어. 책 읽는 거 좋아해. 그런데 좋아하는 작가는 없어. 나 국문학과 학사 졸업에 문창과 석사 과정 밟고 있어. 그런데 국문학 쟁점은 몰라. 잘 모르지만 시시한 거 같아. 다 그렇고 그렇지 뭐... 와 진짜 같잖다. 같잖아. 참 이러고도 잘도 문창과 갈 생각을 했다. 교수님들 보시기엔 얼마나 한심했을까... 이런 주제에 다른 사람들 얕잡아보고 까대면서 주변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징징대다니... 아무리 안하무인은 정중지와의 특기라지만.... 

 올해는 우물 물 마시며 바닷물에 대해 떠드는 개구리 꼴은 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알바도 되도록 빨리 후임이 구해지면 좋겠구. 으 허리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