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ing
닭살돋는 2011 마무리
싱♪
2011. 12. 31. 23:39
환난의 2011년이 지났다, 라고 첫 문장을 끊고 가만 따져보니 20대가 된 후 별로 평탄하고 이쁘게 보람찬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더라. 뭐 거창한 일은 없었지만 삽질과 고민과 병신미가 적당히 어레인지되어... 죄다 무난하고 평균적인 20대 잉여 대학생의 세월이었는데... 아. 애초에 무난하고 평균적인 20대 잉여 대학생이라는 거 자체가 평탄같은 거랑 그리 가깝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좀 드라마퀸이든가.
아무튼 올 한 해 핵심은 건강. 1월에 무릎부터 시작해서 목, 어깨, 허리 ... 응 손가락 발가락 빼고 거의 온 몸이 찌그럭찌그럭거리고 있다. 다이어트 여파덕분에 부채질되어서 시간이 갈수록 상태 악화. 이 병원 저 병원 옮겨다니며 병원비 압박으로 울어보기도 하고 병맛도 팍팍 터뜨리며 아주 폭풍같은 한 해를 보냈다. 정신건강 면에서도, 최악은 아니었지만 그간 쌓인 것들이 터지면서 가히 방향감각 상실 수준에 이르렀음.
한 가지씩 일을 내려놓으면서 숨 좀 돌리고 보니 이 문제가 한 두해 곪은 문제가 아니란 건 알겠다. 내가 병신인 건 맞는데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날더러 병신이라고 해서 그렇다는 것도. 어쩌면 날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도. 당연한건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정말 별 거 아닌데 지금은 이런 자잘한 것들을 손에 꼭 쥐고 힘내자고 다독거리고 있다. 아직 난 아무것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질 못했는데, 하나도 펼쳐보지 못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알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터질 것 같은데. 이젠 좀 더 어른스러워야 할 나이인 것 같은데 난 아직도 이렇다.
아무튼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 지금까지는 장난이다 싶게 힘들었다. 심신 양면으로 지금까지 누적한 병신스코어를 외면할 길이 없더라. 한 해 내내 어쩔 줄 몰라 빙빙 돌고 겁에 질려 징징 짰다. 좀 비장하게 말하자면 그 어느 해보다도 죽을 것 같다는 걸 구체적으로 느낀 한 해였다. 근데 또 그만큼 살 만 하다는 걸 알게 된 한 해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조금은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16살 이후로 말라 비틀어졌던 거기에서 새끼손톱만한 싹이, 나오려고 온몸을 틀고 있는 것도 같다. 요새는 정말 심신이 모두 사춘기 때 외면해 버렸던 그때 그 상태랑 겹치는 게 꽤 많아. 그런거보면 돌고 돌아서 이제 겨우 예전 문제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래서 새 해의 목표는 강박 노이로제가 아닌 '의지' 기르기. 쉴 때는 확실하게 쉬기. 일단 이거 두 개 제대로 하고 나머지는 그때 그때 추가.
올해 제일 잘한 일: 셀프 토킹어바웃 시도? / 경주 여행 / 부담스러웠던 스터디 때려친 것.
올해 제일 병신같은 일: 1학기 때 소설수업 안 뺀 것.
올해 제일 힘들었던 일: 병원 초진 때마다. '선천적으로 약하다'란 말 듣고 병원 로비에서 질질 짠 것만 두 번.나 진짜 겁쟁이다
올해 제일 웃펐던 일: ... 세훈이 사퇴? 문수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올해 제일 존경스러운 인물: 김진숙
올해 제일 아쉬운 일: 결국 희망버스 한 번도 못 탔다.
올해 제일 빡친 일:... FTI / 사대강은 올 해만의 일이 아니니까...
올해 제일 쇼크: 정일이가 죽다니...
올해의 전공서: 테리 이글턴. 이론 이후 /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문학의 종언
올해의 소설: 나츠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올해의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올해의 게임: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 (아 검은방4... 너란 게임... 아 진짜... 너한테 실망했단 말 쓰고 싶어서라도 항목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야... )
올해의 최애캐: 찰스 자비에
올해의 만화: 3월의 라이온
올해의 극: 웃음의 대학
올해의 음악: 시유. 천년의 시
올해의 음식: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닭. 김장김치
올해의 사건사고: 우리 집 물난리. 우리 집 공사.
내년의 나에게 바라는 것: 글로 돈 벌게 되어서 졸업과 돈 문제가 한 큐에 해결 케케케...
덜 힘들어하고 더 행복해 하길. 헬스 스테미나 풀 충전. 강박 벗어나기. 하루에 여섯시간 이상 잠자기. 공상 말고 현실에서 마음 단단히 먹기.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쓰자. 끌고 가지 말고 흘러가게 하자.
내년의 나한테 보내는 키워드: 務, 更
내년에 피하고 싶은 것: 복학..이 논문이...아 뙇... 아놔...?...
내년 제일 기대되는 일: 더 호빗! 호빗! 호빗! 호!빗!
내년에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잠, 목욕, 알바 그만두기.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년이 기대된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 맞길//